마을 공동체-자립적 소농이 대안
첫 농사에서 얻은 교훈
2000년 처음 충북 단양에 귀농하여 농사에 대해 느낀 점이 마을 사람들의 농사규모가 너무 크다는 거였다. 밭 농사를 보통 5-6천 평을 짓고 젊은 40-50대는 2-3만 평을 지었다. 2-3만 평 씩 짓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을까 궁금했다. 트렉터와 관리기등 동력 농기계를 소유하고 철저히 기계와 비닐 멀칭과 농약에 의존하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트렉터 하나에 당시 1,500만원에서 4,000만원 하는데 참 능력있는 농부라고 생각했다. 알아보니 트렉타는 보조50% 끼고 융자 받아서 샀단다. 트렉터의 본전을 뽑으려니 농사를 2만 평은 지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남자는 농기계를 다루고 품일하는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일 외엔 몸을 직접 움직여 농사짓는게 없다. 많은 면적을 지으려니 도저히 가족 노동으로는 불가능하고 모든 일에 사람을 사서 한다. 부채가 5천만원 이상이다. 수박, 배추가 주 작물인데, 몇 년에 한 번 1억 이상 소출을 올리다가도 어떤 때는 3,000만원도 못 올리곤 한다. 삼천 만원도 못 올리는 해는 농사 만에서도 적자고 생활비까지 합치면 이삼 천 이상이 적자이다. 생전 부채가 줄지는 않는다.
나도 첫 해에는 2,000여평, 다음 해에는 5,000평 , 다음 해에는 논을 얻어 6,000평을 지었다. 소득에서는 물론이고 생활도 생태적이지 못하고, 마음은 농사를 남보다 잘 지을 욕심과 경쟁심으로 그득했다. 농민들이 왜 투기적 농업에 매달리는지,왜 빛을 질 수 밖에 없는지,몸과 마음이 피폐해 있으면서도 농촌을 쉬 떠날 수 없는지 몸으로 이해가 되었다.
애들 교육비와 생활비에 최소한 2,000만원이 들어가고 애들이 대학 진학을 하면 여기에 또 최소한 1,000만원이 더 들어가는데, 농사로 수입을 올리자면 대규모농사나 시설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생태적 삶이 지속될 가능성은 없었다. 물론 가진 돈도 없었다. 귀농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한단 말인가! 농촌에 머물러 있으면서 생태적 삶을 가능케 하려면 애들 교육비를 줄이고 돈 없이 사는 길 밖에 없었다. 자본의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최소한 끌려다니지 않는 삶의 양식을 택해야 했다. 교육도 생활도 모두 자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소농 공동체였다. 시급히 이곳을 떠나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이 곳 봉화에서는 1,000평 정도의 농사를 짓는다. 적게 쓰고 소박하게 살며 하고 싶은 일(마을 공동체와 관계 된 일)을 한다. 1,000평에서 1,000만원 소출을 내는데 이 정도면 우리 식구가 먹고 살 만하다.
요즘은 새로이 몇 가정이 공동으로 소비자들과 직거레를 준비하며 점차 생활의 공동체화를 꿰하고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생태적 소농으로 먹고 살아야 할 이유
우리의 토지는 인구에 비해 아주 적다. 도시는 사람들로 차고 넘치며 농촌 역시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동력 농기계를 위주로 한 기업농은 경쟁력도 없고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낮은데도 정부는 이를 권장하며 농업정책의 기본 틀로 세우고 있다. 기름과 동력 농기계를 많이 쓰고 비닐 멀칭과 외부 투입량이 많은 농사법은 아무리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다 하여도 생태농사라 할 수 없다. 귀농학교의 교육이나 생태농업에 관한 책에서 유기적 순환농에 관한 강조를 거듭하더라도 귀농자들의 대부분은 생태농사라고 할 수 없는 농사를 짓고 있다. 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는다는 좁은 의미에서만 유기농일 뿐이다. 귀농 초기 1-2년간 삽과 호미와 최소한의 동력 농기계로 생태농업에 가깝게 농사를 짓지만 곧 생계유지와 자립이라는 절대 과제 앞에 자신의 초발심을 무시하고 비생태적인 농사와 타협을 한다.
생태적인 농사를 가족 노동력으로 지을 수 있는 한계는 2,000평을 넘을 수 없다고 보인다. 2,000평에서의 농사 소득도 시설재배를 하지 않는 한 1000만원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농사비용을 뺀 1,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야 하며 팔기 위해 하기 싫은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 하는지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판로는 어렵지 않다는 귀농초기의 생각은 농산물 가격과 상품성이라는 현실에 밀려 구차한 홍보와 구매자 관리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농사만 잘 지으면 살 수 있는 농촌이 아니다.
최대 1,000만원으로 평균 4가족이 1년 생활을 하기에는 무리로 보인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찌어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교육비는 아이가 중학교 이상만 되면 불가능하다.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만 이때는 농사 수입이 애들 교육비도 되지 못한다. 부모나 친지들에게 큰 일이 생기면 어려움은 더욱 가중된다. 저축을 하며 노후를 대비한다는 것은 꿈도 못꾼다. 전면적으로 도시적 생활양식을 바꿔 자급적 생활 양식으로 전환하여 자동차도 굴리지 않고 전자 제품도 사용치 말며 돈도 전혀 필요 없는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귀농자 대부분에게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아무리 생태농을 강조하는 귀농을 권하더라도 그대로 되기는 힘들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생태농사와 가족 소농, 그리고 공동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귀농이 이루어져야 그 정착률이 높아질 것 같다. 한 가정 중심의 농사로는 앞에서 보았듯이 한계가 많다. 먹고 살기 힘들어 결국엔 포기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어정쩡한 삶이 되고 있다. 이제 귀농자들은 생태 자립형의 소농 공동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할 시점이다.
한 가정이 1,000만원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지만 5-6가정 정도로 이루어지는 소농 공동체는 600-700만원의 년간 소득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 공동체의 생활에서는 월 평균 20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차량 유지비가 분담되고 아이들 교육은 자급이 가능하며 문화생활비도 분담이 되니 이것만 해도 월 30-40만원은 절감된다. 협업이 가능해 농사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 거의 모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먹거리의 자급도 월등히 높아진다. 농산물의 판매는 공동판로로 더욱 쉬워진다. 여러 가정이니 농.임산물 가공도 가능하여 소득은 더 오른다. 한 가정으로는 어려운 에너지, 농자재, 물 등을 생태적으로 자립하고, 기타 주위 환경을 더욱 생태적으로 가꿀 수 있다. 시간은 더 적게 들어 이웃과 가정과 지신을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다.
이런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 소농 공동체를 가로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전에 공동체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는다고 한다. 실재로 종교적인 성격을 지니거나 카리스마가 뚜렷한 공동체 외에 농촌 공동체는 거의 실패했거나 막 시작하려는 곳만 눈에 띈다.
먼저 생각되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선입견부터 버려야 하리라 보여진다. 생태 공동체의 정해진 형태와 방식은 없다. 미리 주어진 형식도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주변 여건이 다 다르며 자연의 파괴 상황도 다 다르기에 각각의 준비와 여건에 맞게 형태와 방식을 정하면 된다. 어떤 완성된 형태를 가정하고 그 틀에 맞추는 방식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완성된 형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도 완성된 정형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같은 마을이나 가까이 살면서 농사와 생활, 판로에서 협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땅을 공동 소유 할 수도 있고 아니라도 어떻게 협력하며 공동체적 삶을 높혀가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각각의 요구를 기반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동 생산 공동 판매, 그리고 생활의 공동화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공동체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가정의 자연스런 소농 공동체가 주위의 이웃과 마을 주민, 나아가 지역의 주민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내부 경쟁으로 떨어지고 더욱 더 많은 편리와 이익을 쫓게 된다. 1차로 마을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마을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애초에 공동체를 하는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작은 땅에서 소출을 올리며 공동체로 살기
왜 적은 땅에서 많은 소출을 올려야 하는지는 앞에서 농지는 적고 인구는 많은 우리의 현실을 들어 애기했는데, 여기서는 실제 예와 마을 공동체와 연관해서 얘기해보자.
보통 콩(메주콩)은 100평에 1가마(80kg) 나오기가 쉽지 않다. 유기농일 경우는 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면 150kg 이상의 콩이 수확 된다. 먼저 콩 농사 규모를 100평에서 300평 정도일 경우에야 100평 당 150kg 이상의 소출을 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500평 이상 규모가 커지면 다른 사람들이 내는 평균 소출 이상을 내기는 힘들다. 규모가 작아야 세밀하게 손이 가며 농사도 재미있게 지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콩 파종은 다른 이 보다 10일-15일 먼저 해야 하는데 이 곳 봉화는 5월 초순에는 콩을 심어야 한다. 이 때 직파도 좋지만 새가 파먹는 것을 막고 풀을 한 번 덜 메기 위해 콩 모종을 길러 심는게 좋다. 콩을 3개씩 포트 판에 넣을 때 아카시아 나무 뿌리 주위의 흙이나 전 해에 콩 농사 지은 밭흙에 흙설탕을 넣고 콩 종자를 버무린 것을 넣는 것이 모종의 뿌리혹 박테리아가 성장하는데 유익한 환경을 조성한다. 심을 때는 모종의 크기가 20cm가 넘지 않는 것을 심는다. 골을 타고 골에다 3개식 한 구덩이에 30cm간격으로 심어 나가는데 골과 골 사이는 60cm가 넘어야 좋은 것 같다.
아주 심기를 한 후 15 일이 지나면 풀들이 풀의 키가 1-2cm 정도 되기 직전에 호미로 긁어주며 콩 심은 골을 평평하게 메운다. 가급적이면 맑은 날에 작업을 해야 호미로 긁어진 풀들이 햇볕에 말라서 김메기 효과가 높다. 300평의 골을 메우는데 혼자서는 한나절이면 가능하다. 이 것으로 한 번의 김메기는 끝나는데 직파한 콩의 크기와 비교했을 때 2번 째 김메기할 때의 크기와 비슷하다. 이렇게 골을 메워주며 첫 번째 김메기를 끝내면 본격적으로 콩이 크기 시작한다. 콩 대궁에 흙이 덮이면 흙에 묻힌 대궁에서 새 뿌리가 뻗어 나와 양분을 더 많이 흡수하여 콩의 성장이 그 전 보다 곱절 빨라진다.
다시 15-20일이 지나면 콩의 키가 40cm 정도 크고 풀들은 역시 1-2cm 된다. 이 때 풀을 긁어주며 콩 주위로 북을 준다. 이 작업은 둘이서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북을 다 주고 나면 예리한 낫이나 예초기로 콩의 순을 질러줘야 하는데, 콩 대궁의 중간 이하를 과감하게 날린다. 거의 콩잎이 다 날라갈 정도로 용감하게 잘라버려야 한다. 이렇게 순을 쳐주면 잘라진 곳에서 콩 순이 또 나오는데 산술적으로는 두 배의 콩순이 나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5배 정도일 것 같다. 이 때 이 곳의 날짜는 6월 중하순 경이다.
그리고 다시 7월 초중순 경에 똑같이 김메고 북주기를 하고 다시 한 번 순을 쳐준다. 이 때 순치기는 콩 줄기가 여러 개 뻗은 바로 윗 쪽을 쳐야 하는데 땅에서 25-30cm 정도의 높이이다. 순을 치기 일주일 전에 콩이 자라는 속도가 느리면 액비를 분무기로 뿌려준다. 액비를 뿌려주어서 콩이 자라는 속도를 빠르게 해야 순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액비라야 좋다. 유기질 거름을 웃거름으로 주면 효과가 오래가기 때문에 순을 2번 치고도 콩 순이 웃자라서 수확이 감소 한다. 이렇게 2번의 순치기와 북주기를 하면 콩은 가지 수가 순치기를 한 번도 안했을 때와 비교해서 2배 이상 많아진다. 이렇게 순을 치면 넓은 골이라도 콩대가 옆으로 퍼져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풀도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한다.
7월 20일 이후 콩 꽃이 피기 시작하면 순치기를 해서는 안된다. 꽃이 피는 시기는 콩을 심는 시기와 지역 날씨에 따라 다르니 유의해야 한다. 콩은 병은 없지만 노린재란 놈이 콩 꼬투리를 망가뜨린다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피해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지역에 따라 노린재 방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가 필요하다. 나뭇 재를 뿌리기도 하는데 어느정도 꽤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콩 농사를 지으면 10월 경에 가면 300평에 약 450kg 내외의 콩이 수확된다. 일반적인 콩 농사가 200kg 내외가 나온다면 두 배 이상의 수확이라 하겠다. 5-6가마의 수확이면 유기농 콩일 경우 200-240만원의 콩인데 이를 가공하여 청국장가루나 메주와 된장으로 만들어 팔면 약 400-600만원이 되지만 처음 귀농해서는 판로가 없어서 1-2 가마 정도 이상은 힘들지만 몇 년 노력하면 거의 전량 가공 판매가 가능하리라 보여진다. 마을의 공동체화가 진행되어 공동으로 판로를 개척하면 물론 더 쉽고 빠르다.
고추 농사
고추는 생육 기간도 10개월 이상으로 긴 만큼 단위 당 소출액도 높아( 유기재배 노지일 경우 1평당 1만원 이상) 선호하는 작물이지만 유기재배일 경우 병이 많아 쉽지 않다. 단양에서는 2,000평 내외의 고추 농사를 노지에서 지었는데 사람도 사고 농자재도 구입하고 트렉터와 관리기 등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를 지었더니 실재 소득은 오륙백 만원 선이였다. 봉화에 와서 2003 년부터는 비가림 하우스 100평에서 고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2003년 400만원, 2005년 460만원, 2006년 570만원, 2007년에는 약 6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젠 100평에 고춧가루로 500근 정도가 수확된다. 직거레로 1근에 태양초 건고추 14,000원, 가루15,000원 판매로 700만원 수입이 가능한데, 이전 노지고추 2,000평 농사를 품과 농자재를 사서 지을 때 보다 오히려 수입은 더 높다. 물론 일은 10분의 일 이하로 줄고.
비가림 고추재배 100평에서 만약 비닐 멀칭을 한다면 심고 수확하고 말릴 때를 빼면 거의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비닐 멀칭을 안 하고 짓기 때문에 풀 메는 일과 액비 주는 일이 더 있지만 이 것 역시 평수가 100평 정도이기에 별 일은 아니다. 비닐 멀칭을 한다면 일도 줄고 고추 수확도 50-100% 더 나오기에 유혹이 일기도 하지만 몇 년의 시행 착오를 거쳐 이제는 멀칭한 집에 비해 80%는 수확이 나오는 정도가 되었다.
우선 비가림 재배는 윤작을 하기만 하면 고추에 가장 흔한 탄저병과 역병이 거의 없다. 대신 진딧물과 흰가루 병이 있는데 이의 방제는 어렵지 않다. 진딧물은 4월 초순에서 부화하기 시작하는데 심하면 이삼일 사이에 고추의 잎과 꽃을 온통 뒤덮어 버린다. 스스로 움직이는 놈들과 개미가 날라다 주는 진딧물이 있는데 고추는 자라지 못하며 꽃이 으러지고 잎은 영양을 다 뺏겨 오그라지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
진딧물의 방제는 진딧물과 개미를 접근 못하게 하는 기피제로 목초액이나 현미 식초를 쓰고 있다. 배로 호흡하는 진딧물의 특성을 이용해 우유와 요그르트, 비눗물등을 진딧물에 뿌려둠으로써 호흡을 막아 배 터져 죽게하는 방법도 있다. 대체로 날이 흐린 날이나 오후 늦게 해야 효과가 높다. 우유나 요구르트는 돈이 많이 들어 텃밭 같이 조금 재배하는 경우에나 쓸 수 있다. 우리 마을에서는 담배 우린 물과 목초액, 현미식초와 천연 비눗물울 많이 사용하는데 비눗물은 아무래도 고추에 장애가 있는 듯해서 우리는 현미식초를 50-70배액을 3-4차례 4일 정도의 간격으로 뿌려주는 것으로 진딧물을 쫒는다. 현미식초는 그 성능이 오묘해서 300배 이상을 부리면 고추의 세력이 좋아지는 영양 생장을 하고 100-200배에서는 생식 성장을 해서 꽃이 많아지며 50-70배에서는 진딧물 등 곤충을 퇴치하기도 한다. 진딧물은 알로 월동을 하는데 이 알을 없애기 위해 겨울이면 비가림 하우스에 물을 질퍽할 정도로 뿌리고 땅을 얼도록 하기도 한다. 땅을 바싹 얼리면 진딧물 뿐만 아니라 담배나방 등 고추에 피해를 끼치는 알들도 동시에 얼어 죽는 효과가 있다.
고추 흰가루 병은 습기를 좋아하는 곰팡이가 일으키는데 7월 중순부터 주기적으로 고추 잎에 물을 뿌려 줌으로써 습기를 많이 빨아들인 곰팡이가 터지도록 하는 방법을 쓴다.
담배나방의 애벌레의 유입을 막기 위해 한냉사로 비닐 하우스의 개폐기와 출입문에 둘러 준다. 하우스 내의 풀메기만 잘하고 한냉사를 쳐두면 몇 년 내에 거의 풀메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풀씨가 없어지는 효과를 보기도 한다.
비가림 재배 고추는 키가 사람 보다 더 성장하는 만큼 밑거름과 웃거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밑거름으로는 유기질 퇴비를 노지의 3배 즉 100평에 3톤 정도를 뿌려주고 7월 중순이면 완숙된 웃거름 1톤을 골과 골 사이 뿌리가 뻗는 곳에 골고루 뿌려 준다. 그래도 8월 하순 부터는 청초액비를 물 줄 때마다 관주해서 준다. 청초액비는 풀과 깻묵과 마른 닭똥, 혈분.골분, 쌀겨와 토착 미생물등으로 발효시켜 쓰는데 여름에는 일주일이면 완성되므로 그 때 그 때 만들어 20-30배액으로 관주한다.
보통 5-6회 따는데 더 자주 따며 횟수를 늘리면 더 빨리 붉어지고 많이 딴다. 또 1월 초에 씨앗을 부어서 3월 하순이나 4월 초에 아주심기를 하고 이중 터널 재배를 한다. 그러면 약 100근-150근 이상의 고추를 더 수확할 수 있다.
우리는 이상 고추와 콩 이외에 약초 마늘 파 감자 등 400평을 더 한다. 쌀은 먹기 위한 것이고 약초와 감자 파 등으로 100여 만원 소출을 더 올린다.
지역마다 작물의 종류도 다르고 날씨와 풍토도 다르지만 작은 농지에서 세밀하게 연구해가면서 지으면 1,000평 내외의 땅에서도 1,000만원 소득은 가능하리라 보여진다. 작은 땅에서 연구를 해가면서 농사를 지으면 우선 농사 자체가 재미있다. 작은 규모야만 농자재도 자급하며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농법이 가능하여 생태적인 농사가 된다. 또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 하에서 우리의 농업 농촌이 살아 남는 대안이기도 하며 작은 규모의 농사로 행복하게 먹고 살아야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어울리며 사는 마을 공동체의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올해는 마을 공동체에서 일꾼으로 더 잘 하기 위하여 몇 가정이 공동으로 도시의 소수 가정과 전격적인 교류와 농산물 공급을 꿈꾸고 있다. 년간 소득이 800만원이 안되는 소농 유기농업을 하는 4가정이 협력하여 도시에서 유기농 먹거리를 선호하는 가정과 월 10만원의 먹거리 구입비를 내고 일주일에 한 차례씩 공급을 해주며 가정 간에 전면적인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
4가정 간에는 더욱 공동체적 삶의 교류와 형식을 높여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 시점에서 무리하지 않는 방식이라 생각된다. 이 4 가정간의 시도는 꽤 의미가 깊다. 그 간 서로 마을에 살면서 여러 가지로 함게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느껴졌고 또한 이렇게 서로간의 공동체적 판매와 나눔이 하나의 예로 되어 마을 주민들과 소규모 유기농가들에게 공동체적 관게가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길 희망하고 있다. 마을에서 한층 공동체적 삶의 관계가 높아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첫댓글 1000평의농지에 집을짖고 나머지 700여평의 밭에 콩심고 고추심어 가을걷이를 해도 또 이것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판로도 없어 답답하기 짝이 없었던 참에 님의 글을 보고 조금은 희망의 마음을 갖아봅니다 직접 체험을통해
쓰신글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읍니다 비록 적은 농지지만 길이 없는것은 아니라는 힘을 얻었읍니다
감사합니다
님 덕분에 이 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나무지기님은 공동체로 자립적 소농을 꾸려가라고 했지만 농사는 은퇴 후 내려와서 소일거리로 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활을 줄여도 2천평 농사를 지어서는 답이 안나오는 게 농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