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090204a_이야기와웅변사이
짧은 낮잠 속에서 건져올린 말머리
이야기와 웅변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웅변을 해야 하는가.
이야기의 구언학을 할 것인가, 웅변의 구언학을 할 것인가.
이야기가 많은 세상을 꿈꿀 것인가, 웅변이 많은 세상을 꿈꿀 것인가.
웅변에 대한 기억들 #1
초등학교 몇 년을 웅변부로 보냈다.
도덕교과서 같은 웅변글과 어색한 웅변몸짓들
전교생을 앞에 두고 벌어진 나의 웅변발표
웅변단상은 너무 높아 내 목에 걸리고
웅변글이 목을 통해 소리로 뱉어진 순간
내 몸은 허공에 붕 떠서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난 아마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를
척척하고 불편한 기억들
웅변에 대한 기억들 #2
육군 모대대에서 정훈병 업무를 보았다.
국문과를 다니다 왔다는 이유 하나로 정훈 업무를 보게 된 것이다.
정식 보직은 아니었다. 군대말로 잠정보직이라고 했다.
대대원을 대상으로 한 대대장 정신교육 교안이나
여러 가지 정신교육 교안과 자료 따위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 번씩은 연대에 파견 가서 일주일 정도를 정훈병집체교육을 받았다.
주로 주체사상 비판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겨웠다.
교육 하던 가운데 연대 PX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던 학교 선배를 우연히 만났다.
졸라 웃겼다.
그 선배는 ‘주체사상 찬양’ 혐의로 구속되었었던 선배였다.
우린 서로 졸라 웃었다.
한 번은 연대 주최 ‘반공웅변대회’가 있었다.
웅변대회라니, 무슨 초등학교도 아니고...
여하튼 육군 잠점보직 정훈병인 나는 나라의 부르심을 받고
대대 대표로 연대에서 벌어진 ‘반공웅변대회’에 참가했다.
내가 쓰고 혼자 연습한 내 웅변글과 웅변발표는 진지했다.
근데 나는 속으로는 졸라 웃겼다.
나는 입상하지 못 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아마 속으로 졸라 웃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보안부대에서 이를 알아차리지는 못 했다.
말년에 다시 연대 ‘반공웅변대회’가 열렸다.
정훈병 쫄따구가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나갈 필요는 없었다.
뉴페이스를 발굴했다.
목소리가 졸라 큰 이등병 하나를 전격 발탁했다.
나라의 부르심을 받은 이등병 웅변병은 졸라 진지하고 졸라 군기 들었다.
때려잡자 오랑캐의 분위기로 원고를 그럴싸하게 썼다.
중대장과 대대장은 아주 흡족해했다.
일주일 동안의 웅변 지옥훈련이 시작되었다.
일단 PX에서 각종 먹을거리를 일발장전한 우리는 대대 뒷산으로 간다.
이등병은 일주일 동안 판소리 산공부에 버금가는 독공을 쌓는다.
군복 윗도리를 벗어재낀 고참은 노빵 디비잔다.
폭포만 없을 뿐이지 이건 서편제도 동편제도 아닌 완죤 육군제 판소리 영화다.
상상해보라. 군복입은 판소리의 고수들, 아니 웅변의 고수들,
아니면 공포의 웅변구단.
그 이등병은 지금쯤 웅변의 고수가 되었을까, 미안할 따름이다.
웅변이라니...졸라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