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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료바구니(기독) 원문보기 글쓴이: 자료바구니
대한 기독교 장막성전
1960년대의 시대상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나라는 가난하였고 혼란하였으며 교육의 성과가 아직 없었던 때였습니다. 세계는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시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 여성 해방 운동, 비틀즈의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 등 독특한 청년 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15부정선거, 4.19혁명, 61년 5.16군사정변, 62년 제 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등 1970년 새마을 운동전 시대상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도 1920-30년 신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가 침체기를 거치고 1960년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신학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83불에 불과하였습니다. 60년대는 교회적으로 엄청난 부흥을 일으킨 때였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떠나고 신학적인 토대가 아직 마련되지 못하였고, 우리 민족에게 놀라운 경제부흥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독교계 이단 사상 가장 나이 어린 교주를 꼽는다면 바로 대한 기독교 장막성전의 유재열 교주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7세의 ‘어린 종’으로 등극하여 현재장년이 되었습니다. 한 때 말세 심판의 피난처로 알려졌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저수지 윗 동리는 제 2의 신앙촌이라고 불리울 만큼 장막 성전 신도들로 집단 취락을 형성 했고 지가를 올려 놓았을 만큼 그 교세가 엄청났었습니다.
1960년 중반기 용산시외버스 정류소에서 주일 아침이면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과천행 시외버스는 장막성전 신도들로 초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일곱천사, 25장로, 48집사, 72문도 등 각급 조직을 두고 수천명의 교인들을 이끌던 유재열 교주의 장막성전의 전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교주 유재열의 약력과 신비체험
교주 유재열은 1949년 2월 1일 충북 청주시 북문로 1가 83번지에서 부친 유인구와 모친 신종순 사이에 장님으로 태어났다. 유인구는 해방전 만주에서 살았으며 해방이후 귀국하여 6.25 동란 때는 고향인 충북 보은군 산외면 백석리에서 살았다.
6.25 동란 시 부역행위로 인하여 유인구는 1950년 10월 28일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한 바 있고 그의 누이 인순은 1954년 1월 4알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방경비법위반 등의 혐의로 5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1961년 6월 8일는 국민의료법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8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아우 인수는 의사로써 월북했다는 소문과 아울러 북괴 고위층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유인구는 월북한 아우 유인수의 의사 면허증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병원개업을 한 바 있고 자신의 이름을 유인수로 하여 행세해 왔다.
유인구는 1928년 12월 20일 생으로 그의 장남 유재열과는 1968년8월 7일부로 부자간의 인연이 해소되고 백부인 유인선에게 입양되어 양자가 되었다.
평소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켰고 때로는 유재열이 잘못을 저지르면 매질을 하고 묶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을 정도로 가혹했다고 한다. 부친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유재열은 후일 교주가 되어서 부친을 배척하는 반항가가 되었다.
유재열은 성격이 단순하고 학업성적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지만 운동에 취미를 가졌고 S고등학교 2년 중퇴시까지 기계체조선수로 써 금메달도 여러개 획득할 정도였다.유재열은 대방초등학교를 나와 성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2년 중퇴가 그의 학력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외삼촌 신종환(일명 모세장로)의 집에서 많이 양육 받은 바 있다.
유재열의 모친 신종순 여인은 처녀 시절에 받은 몽시를 내세우고 있다. ‘한 신령님이 보자기에 싼 책 2권을 주기에 하나는 남편 될 사람에게 주고 하나는 아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를 유재열 유인구 부자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작이라는 심증을 굳혀주고 있다.
2. 교단 창립의 배경과 그 경위
1964년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이란 사찰암자 아래에 김종규가 이끈는 일단의 신비주의집단인 호생기도원이 있었다. 신도들로부터 주님 또는 아버님으로 불리우는 교주 김종규의 집단엔 후일 장막성전의 교주가 될 유재열과 그의 부친 유인구부자가 끼여 있었다.김교주는 말세비밀교리를 강조하며 많은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으며 여신도들과의 추문이 파다햇다. 그는 신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고 방언 계시 등의 은사를 강조했다.
유재열 일가중 맨 먼저 김교주를 추종한 것은 유의 모친 신종순이었고 그녀는 방언의 은사 특히 중국어 방언을 한다고 했다. 유는 당시 S고 기계체조선수로써 일본 원정 시합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방언을 받기만 하면 마음대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모친을 따라 호생기도원에 드나들었다.
1965년 1월 어느날, 유재열이 친구 몇 명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향해 가는 도증 대방동에서 신림동 중간 에 위치한 다리를 건너는 길로 가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 해졌다.
거기서 그는 할 수 없이 두 무릎을 꿇자 어둠속에서 예수의 환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 예수의 머리 위로는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영롱하게 뻗혀 있었고 하늘에는 일곱별이 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어린 양을 안고 있었다.이때 유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더듬거리면서 외쳤으나 동행한 친구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안았다고 한다. 그러자 또 유는 ‘흰 강아지를 안고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랑하는 내 아들아...내가 네게 큰일을 맡기노라.’고 했다 한다.그 순간이 약 40분간 소요됐다고 하며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 몸에 땀이 물 흐르듯 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유재열은 열심히 호생기도원에 드나 들었다. 그때 학교를 중퇴하라는 계시를 따라 학교를 그만두고 기도 생활에만 전념하여 방언 강필 통변게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며 어떤 때는 만년필을 입에 문 비둘기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그후부터 중국어 헬라어 강필을 자유자재로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생기도원장 김종규가 상도동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저수지 뒷 골짜기에 자리를 옮기자 유재열도 다시 그곳까지 따라갔다.
한편 과천 삼거리에서 월북한 동생의 의사 면허증으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유인구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환자의 병을 고치기 보다는 그 환자의 죄상만 투시를 통해 보였다고 한다.
1965년 11월경 병원 간판을 떼라는 지시를 받고 아예 병원을 거둬 버렸다고 한다.
유재열은 그때 16세의 소년으로 하루는 밤에 기도원의 경비임무를 맡았는데 갑자기 새까만 앙장차림의 날씬한 여인이 핸드백을 들고 나타나기에 깜짝 놀라서 ‘당신이 누구냐?’ 고 쳤더니 아무말도 없이 김종규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재열은 즉시 그 여인의 뒤를 따라가 김종규의 방문을 열어 제켰더니 김은 두 처녀 신도를 양편 팔에 누이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부터 유재열은 교주 김종규의 추잡한 여신도와의 관계를 알고 실망했으며 친구들에게 이를 알려 소문이 퍼졌다. 김은 약 60여명의 여신도들을 간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열을 위시하여 김창도등 20여명은 호생기도원을 이탈하기로 결심하고 나와 과천 3거리에 있는 유인구의 집에서 27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다.
1966년 3월 1일. 유가 운동을 하고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태양 빛이 강렬하게 유재열에게 비추이는 것을 27명의 신도중에서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깜짝놀란 유재열이 몸을 씻다 말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 태양빛이 유재열을 따라 들어 왔고 유재열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고 한다.이 때 모인 사람들은 유가 죽은 줄로 악고 있었는데 그의 부친 유인구의 환상에 유재열이 두루마리를 먹는 광경이 나타났으며 이를 27명의 증인들이 지켜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루마리를 다 먹은 유재열은 누운 채로 종이 테프 같은 것을 자꾸 입안에서 끄집어 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한권의 성경책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펼쳐보던 유재열은 갑자기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울었고 또 한 장을 넘기더니 이마를 잔뜩 찌푸리면서 인상을 썼다고 한다. 그것은 심판의 광경을 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겔 2:8-16, 계10:9-11을 펼쳐 보았다. 그런 후에 지구모형을 두 손안에 넣고 돌리더니 이를 갈면서 힘을 주어 부셔버리니 그 지구 모형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고 한다.
이와같은 신비체험을 지켜 본 27명의 증인들은 막계리에 들어가서 계시 받은대로 청계산 계곡속에서 증거 장막을 짓고 6개월간 기도생활을 했으니 그때가 1966년 4월 4일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장막성전의 고적인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장막성전에는 1966년 5월 14일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성탄절로 지키기로 했으며 동년 6월 1일에 장막성전을 기공하여 9월 24일에 마쳤다고 한다. 그들은 1966년 4월 4일에 증거 장막에 들어가 약 6개월간 기도를 하고 9월 24일에 하산하여 본격적인 전도생활에 들어갔다.
3.교단의 내분
1967년 2월 경북 청도 출신 이만희가 장막성전에 들어가 재산을 털리고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탈해 버렸으며, 1971년 9월7일 이만희에 의해 40여개의 항목의 비행혐의로 고소를 당하여 유재열 교주와 미카엘 천사로 불리는 김창도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만희는 장막성전을 이탈한후 신천지 안양교회를 세우고 ‘요한 계시록의 실상’‘신탄’등의 책자를 내고 장막성전 별파로써 기성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평화시장에서 섬유도매상을 하던 장모씨는 700만원(현재 약 1억원 상당)을 들여 집회장소까지 마련하고 교단의 발전을 꾀했으나 교주를 비롯한 간부들의 비리를 목격하고 환멸을 느껴 탈퇴해 버렸다.
1970년 4월에는 장막성전의 실력자였던 예비역 대령 신모씨가 탈퇴를 했고 7천사중 하나인 솔로몬천사 백만봉은 애인을 놓고 교주 유재열과의 삼각관계로 인하여 성남에서 새 교단을 이끌고 있다.
7천사중 하나인 여호수아신광일(모세장로 신종환의 아들)도 1970년 9월에 탈퇴해 버렸고 삼촌인 신종환도 탈퇴하여 안양에 있는 이만희파에 합세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7천사는 뿔뿔히 흩어졌고 많은 신도들이 이탈했으며 더구나 1969년 11월 말세 심판설이 빗나가자 이에 의혹을 품은 많은 신도들이 장막성전을 등졌다.
신도들의 대거 이탈을 막기 위해서 미카엘 천사인 김창도는 신도 심재권에게 폭행을 가하며 ‘모세도 애굽 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폭행을 합리화시켰다. 전도부장이었던 송모전도사와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도 이탈했다.
1966년 3월 1일부터 1260일이 지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이 환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장막성전이 있는 과천 막계리에 들어 와야 한다고 했고 그 마지막 때가 1969년 11월 1일 이었으나 그때가 장막성전의 전성기였다.
1975년 9월 6일 유재열의 비서를 지낸 김모씨등이 교주와 감부들의 비행을 열거하여 경찰에 진정 함으로써 교주 유재열과 미카엘 천사, 김창도 집사, 임종대 교주비서 박용만 등 4명을 사기 폭행 및 무고 등 혐의로 구속했다.
4. 주요교리 및 주장
(1) 보혜사 성령인 교주 유재열
영생의 알곡을 거두는 자이고 하나님께서 인을 가지는 자로 심으신 사자이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일곱인으로 봉함된 책을 먹었고 열방 선지자로 만민에 기호로 삼은 종이라
(2) 주장
1> 우리는 오직 진리의 말씀을 위하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전한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이고 곧 신령이시다. 또 말씀은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요14:6) 말씀은 지팽이요 생수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능력이요 생명이 되신다(요1:14).또 말씀은 칼이다(히4:12).
2> 우리가 가르치는 말씀은 우리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나에 게 말씀하시고 보내 주심으로 그대로 옮겨 줄 뿐이다(요12:49-50)
3> 예수께서는 비사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오늘 날 말세지말을 당하여는 신령한 것을 밝히 보여 주심으로 그대로 일러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 께 받아 말한 것이므로 (벧후1:21) 이것을 마음대로 풀거나 억지로 풀 것이 아니고 오직 짝을 맞추어서 풀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책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 이 없기 때문이다.(사34:16). 창3:23에 그룹 화영검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나무에 나갈 수 없는데 영육이 다 함께 살 수 있게 영생하게 된다.
4> 마지막 때에 구원 받을 성도에게 때를 따라(마24:45)나눠줄 말씀은 영계설, 예언설, 역 사설로 구분하며 이사야서 이후의 예언서를 주로 상고한다.
5>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심령에게 주신 구원의 능력으로 받아들일 것이 며 그 이해도 나의 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사회,국가,인류에게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3) 장막성전의 일곱천사관
장막성전에는 일곱천사가 있다. 그런데 장막성전에 7천사가 있어야 되는 이유와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상을 가진 일곱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아와 밝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대를 띄고 (계15:5-9)...’ 에서 7천사의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고전9:9에 송아지는 종을 뜻하며 일꾼을 가르킨다. 그러므로 사자(렘4:7)와 송아지(고전 9:9)을 연결하면 ‘하나님의 사명을 지닌 일꾼이라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처럼 영으로만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예수처럼 육체를 입고 일하는 일꾼이 바로 장막성전의 일곱천사라는 것이다. 슥3:9에 한 돌에 일곱 눈이 나오는데 7눈이란 추수꾼으로 보낸 천사(마13:39)이며 이들이 바로 장막 성전의 천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막 성전의 일곱 천사중 현재는 4명의 천사가 있으나 다시 일곱 천사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이탈한 자들에 대해서는 계2:10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라고 이미 예언해 놓았다고 주장한다.
1> 마지막 날의 구원은 한 나라만을 택하여 이룬다.(겔3:1-5)
2> 그 곳은 해 돋는 곳 곧 동방에 있는 나라에서 이루어진다.(사24:15, 59:19, 2:5, 41:25)-극동
3> 물이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는 곳이다.(슥14:8)-한국-
4> 그 곳은 동서로 갈라진 산이 있는 곳이다.(슥14:4-5)-청계산-
5> 연못이 있는 곳이다.(사22:11)-막계리저수지-
6> 언약궤가 있는 곳이다.(계11:19)-장막성전-
7>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인 일곱종이 있는 곳이다.(계1:20)-장막성전 7천사-
8> 여기에 어린양이 나타났다.(슥2:8, 사11:1-10)-교주 어린종 유재열-
8> 7천사의 어린종은 배꼽줄을 자르지 않고 버리운 자 밑에서 났다.(겔16:4-5)-김종규 아 래에서 났다는 뜻-
10> 어린 종은 만국을 다스릴 철장 권세를 받은 자이다.(계12:5)-교주 유재열-
장막성전의 7천사는 구원 받을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아장막성전으로 끌어 들인다고 한다.
이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성경적 근거로 창19:1-2, 계21:17, 히13:1을 들고 있다. 또 그들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일곱 천사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제시한다.
1>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고 했는데 7목자중 작은 책을 받을 자는 선지자인 교주 유재열이라고 했다 또 순금등대의 비밀의 주인공은 스룹바벨(슥4:2-3)이며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택하신 심판 날의 대변자이며 계시록 7장 1절에 인 치신 자가 바로 어린 종 유재열이라는 것이다
2>슥4:2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3>계5:6, 4:5 ‘일곱 등불 일곱 눈을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 이며 이 일곱 영으로써 일곱 천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받아 가지고 땅위에 일곱 재앙을 내리는 사명을 띄고 왔다. 한다.
4>사11:10에 일곱 천사 중에 하나인 교주 어린종을 가리키는데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싹으로써 만인의 기호로 설 것이며 그는 순이라 이름하는 자이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자이며 택함을 입은 천사이다(슥6:12)고 주장한다.
또 어린 종은 예루살렘서 곧 교회가운데 다니면서 불의와 불법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인치는 사명을 맡았으며(겔9:2)인 맞은 자만이 14만 4천의 반열에 들어와 구원 받을 수 있다(계10:10, 겔3:1-3)고 한다.
(4) 신천신지
마24:5에 있는 바와 같이 오늘 모든 사람들은 이기주의적이 되고 교회는 사랑이 식어 냉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말세의 결정적인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칭하고 입술로는 거룩한 말을 하면서도 행위는 음란한 데 그것이 3년반 동안 계속되리라.’(단12:11)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호생기도원의 교주이며 유재열의 스승인 김종규를 지칭한다고 한다. 또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농부라 할 것이며 무식자라 하고 나는 날 때에 배꼽 줄을 자르지 않았고 들에 버리운 바 되었다’.고 했으니 바로 김종규라는 것이다. 이 성경의 예언이 김종규를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한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자기의 의를 앞세우고 믿음이 교만해져서 자멸할 수 밖에 없고 이를 따르는 양떼들은 그들의 거짓된 인도로 멸망하게 된다.(요16:11)는 것이다. 지금은 말세의 끝인데 언제 주가 심판하시러 강림하실지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마24:36, 살전5:1).그러나 주께서는 자기가 강림하시기 전에 추숫꾼으로서 천사들을 먼저 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마13:39-49) 말세에 아마겟돈전쟁의 환란을 피하기 위하여 이미 청계산 계곡에 큰 밀실을 마련 해 놓았다.(사2:18-22)고 하며 그 암혈과 토굴속으로 장막 성전의신도가 다 들어 간 뒤에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그후 다시 나와서 신천신지를 이루고 신도들은 왕이 되어 각 고을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장막 성전이 있는 경기도 과천 막계리에서 약 3킬로미터가량 청계산 쪽으로올라가면 최초 27명이 모여 그중 10명이 수도하던 증거장막이 있는데 그 주변 바위에 모두 성서에 있는 모세, 예수, 예레미야 등 위인들의 상이 역력히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산상예배 때 외에는 아무나 함부로 못하게 하며 낯선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고 있으며 여신도 모임인 일심회에서 그 근처 산을 매입했다. 함부로 그곳에 가면 징벌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데 모세의 상 등 89개의 영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본 사람들도 긍정, 부정적인 의견으로 엇갈리고 있다.
청계산을 천개산으로 고쳐 마지막 날에 하늘이 열리는 곳이 장막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장막성전의 증거장막 그거 영록 현장에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 예수가 나를 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모습, 천사들이 목욕을 했다는곳, 등이 있다고 한다.
5. 장막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이단종합 연구2000년 6월 큰샘 출판사 이대복저)
유재열 교주는 ‘우리 성전의 현황’이라는 책에 아래와 같이 썼다. 인간의 지능과 노력으로 오늘날 과학의 힘은 신비에 쌓여 있는 수 천년 전의 달의 베일을 벗겨 신에 대한 일반적 도전을 성공리에 마친 것 같다.그러나 이 두렵기 까지 한 과학의 능력을 지어내는 인간은 과연 어느 분의 창조인가! 즉 우주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지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고 말하겠다.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를 말한 것이다. 즉 질과 양이 무한 변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지병을 만드는 토기장이의 능력에 따라 교묘한 장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오직 토기장이로서의 위대함을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흙을 떠나서는 이룰 수 없다 .이것이 곧 절대자(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는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렘31:35).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고 사람안의 심령을 지으신자(슥12:1)를 떠나서는 모략과 경영이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있다면 흙을 떠난 오지병이며 뿌라없는 나무로다.
이에 장막성전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흙이며 뿌리로다. 더 알기를 원한다면 흙이 뿌리에 덮히며 절대주가 물을 뿌리니 부패되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찌...구원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곧 인간들이 원하는 합목적(合目的)인 우주관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장막성전 단가]
1.시온산에 기호세워 나팔불어 외칠 때에
예루살렘 거민들아 돌아오라 모여라
스룹바벨 일곱눈과 일곱등불 켰으니
열방들을 멸하려 수풀에서 나왔네.
2> 방백들을 실심하고 깜짝놀랄 것이요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들이 없겠네
바다에서 큰 재앙의 멸망에 날 오리니
돌아오라 모여라 주의종은 오라네
3> 구원의 수 14만 4천 마음문을 열어라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 들어라
그날되어 어린아이 피리불어 외쳐도
감화감동 없으면 화가 닥쳐 오리라
4>보냄에 운 어린양이 험한 준령 인도할 때
따라올자 누구련가 첫째 부활 참여해라
구원예수 따르리니 겸손한 말 주께드려
이마에는 인 맞고 천국 잔치 참여해
5>지옥사자 마귀들 사자같이 덤비나
크신 능력 주 여호와 구원의 은총주니
하늘 문을 열으시고 하늘성사 이루니
누가 능히 하늘문을 닫을 자가 있으랴
6. 교단의 기구와 조직
(1) 1969년 당시
여호수아천사(신광일)탈퇴, 디라천사(김영애), 스룹바벨또는 임마누엘(유인구)탈퇴,
어린종 삼손(유재열), 미카엘 천사(김창도), 사무엘 천사(정창래), 솔로몬 천사(백만봉)탈퇴,
전도사 17-18명, 장로 24명, 집사 48명, 문도 72명(역군), 신도 14만 4천
* 1970년 2월 당시
어린종(교주)-제직회-회장:박옥래, 부회장5명
-총리부, 경리부, 교육부, 봉사부, 부녀부, 사업부(역군)
미카엘 천사, 디라천사,-선교위원회-국내선교, 국외선교.
(2) 전국 교회 분포(1986년3월 14일)
1>경기도-인천, 일산, 부평, 부천, 군자, 강화, 장봉, 평택, 오산,안양, 과천, 용인 신갈, 수원, 송탄, 안성, 성환, 여주, 이천, 성남, 신장, 인창, 의정부, 사기말, 기평, 포천등26개처
2>충남-천안 온양, 서산, 태안, 홍성, 대천, 공주, 입장등 9개처
3>충북-충주, 청주,괴산, 덕산 제천, 대월등 6개처
4>강원-춘천 강릉 동해, 홍천, 원주등 5개처
5>경북-대구, 안동, 영주, 김천, 구미, 포항등6개처
6>경남-창원, 마산, 울산, 거제, 진주, 충무등6개처
7>전북-전주, 군산, 이리, 부안, 정주등 5개처
8>전남-광주, 금성, 순천, 목포, 요수등 5개처
9>제주. 10>부산 ⇒ 72개처
(3) 사령장과 계급별 뱃지
장막성전 초기에는 계급별로 뺏지를 달고 다녔다. 7천사는 은색 24장로는 흰색, 48집사는 붉은 색, 72문도는 푸른색, 일반성도는 검정색 뺏지를 달고 다녔으며 제사장이라는 모세장로는 은색에 하얀 사기바탕을 한 뺏지를 달고 다녔다. 장막성전에서는 각 직분에 따라 사령장을 주는데 초기에는 유재열의 부친 유인수(본명 유인구)의 명의로 주었으나 다 회수한 후 유재열의 이름으로 주었다. 사령장 뒤편에는 일곱천사들의 혈관을 면도칼로 잘라 흘린 피로서 십자가를 그려서 주었다고 하나 감정결과 돼지 피였다는 설도 있다.
7. 장막성전의 예배
주일예배는 정오부터 시작하는데 보통 2-3시간씩 계속된다. 모세장로가 있을 때는 그가 사회를 맡았으나 그 후에는 천사들이 돌아가면서 인도하고 있으며 주로 천국에 관한 찬송가를 집중적으로 많이 부르고 있으며 천사 중 한 사람의 기도가 있은 후 어린 종 유재열이 설교에 나선다. 그는 주로 이사야서 이후의 예언서 즉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와 신약성서의 계시록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설교 노트를 준비하지도 않는다.
이때 단 위에 앉은 천사들은 성경구절을 찾아 읽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설교의 핵심은 말세의 징조와 구원 및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이며 세속적인 잡담이나 예화는 들지 않는다. 저녁예배는 8시, 어린 종이 집례하며 매일 새벽 4시에 새벽기도회가 있다. 한 때는 서울 시내6-7개처에 집회를 두고 있었으나 계시에 의해 1969년 8월 31일 예배이후 기도소를 모두 폐쇄해 버렸다가 용산구 청파동에만 남아있다.
신령예배는 무당의 초혼의식과 유사한 것으로써 사무엘 천사, 정창래가 방언을 하면 어린종인 교주가 통역을 한다. 개별적인 작은 집회에서는 유교주의 모친 신종순 여인이 방언을 하고 미카엘 천사 김창도의 부인 마리아가 통역을 한다. 또 신령을 부르는 초혼 의식이 있는데 모세의 영을 부르려면 방언하는 자가 ‘모세스 모세스...따따따...’라고 모세의 영을 부르면 모세의 영이 임하여 방언이 터진다고 한다. 그러면 어린 종이 통역을 한다.
장막성전에서 쓰는 영명(靈名)은 신령이 임한 사람에게 교주가 붙여준다.7천사들이 춤과 여자들로 인하여 타락한 이후에는 신령예배가 중단 되었다.
8.장막성전의 분파들
(1) 천국 복음 전도회
‘재림예수’를 자처하던 천국복음 전도회의 교주 구인회가 장막성전 신도생활을 청산하고 새마을 전도회라는 새로운 이단으로 출범한 것은 1970년도였다. 원래 구인회는 열렬한 박태선 신도였던 모친을 따라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시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도에 가족과 함께 박태선 전도관에서 이탈하여 2년간 장막성전을 다니다가 다시 장막성전 마저 등지게 된 것이다.
구인회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신대리에서 1941년 5월 9일 구구와 모친 이 연실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구인회가 12세때 부친은 세상을 떠났고 은산 성결 교회에 모친을 따라 다녔던 구인회는 중학교 3학년때인 1956년도에 신앙촌에 가족과 함께 입주하여 13년간 살다가 1968년도에 이탈한 것이다.
그는 꿈에 계시를 받고 장막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꿈을 통해서 박태선은 한 마귀이며 일곱마귀는 장막성전의 일곱천사를 가장한 놈이라‘고 일러 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장막성전에 들어가 주일 예배만 봤고 틈틈이 저수지에서 낚시일로 소일하면서 2년을 머물러 있다가 영등포 구로동으로 나와서 1972년 봄부터 새마을 전도회란 이름으로 이단을 만들고 그 교주가 됐다가 1976년 2월 29일에 옥중에서 사망했다.
태극기가 하나님의 형상이고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면서 전국에 포스터를 부착하고 떠들썩하게 집회를 갔다가 사이비종교 일제 단속에 걸려들어 구속된 것이다. 구인회는 성경을 인용하여 박태선은 마귀의 왕이고 유재열을 비롯한 일곱천사는 일곱마귀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온 재림예수라고 공공연하게 공언을 했다.
(2) 신천지 안양교회 : 신천지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신천지)
경기도 안양시 비산 2동 238-13에 자리잡고 있는 신천지 안양교회는 이만희를 비롯한 장막성전 이탈자들이 세운 집단이다. 이만희 교주는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이란 책자를 발행하여 장막성전 유재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다.
‘무료 성경 신학’ 기독 신학원, 전국원로장로협의회,“신천지에 오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
(3) 증거장막성전: 재림예수 홍종효
성경속에 예수는 실물이 아니다. 그 예수가 실물이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육체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오리라고 한 예수가 벌써 이 세상에 계신다고 했지 않는가?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날 나를 위한 가상인 것이다.
(4) 무지개 증거장막 ; 심재권
(5) 성남 장막성전 : 정창례 이외 신광일, 백만봉, 김창도등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교주유재열의 근황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거주하였었음, 한 때 남성컨트리 클럽 경연진에 참여, 미국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아옴,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3거리 대한 장로교 이삭교회(오평호),
대한 기독교 장막성전
1960년대의 시대상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나라는 가난하였고 혼란하였으며 교육의 성과가 아직 없었던 때였습니다. 세계는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시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 여성 해방 운동, 비틀즈의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 등 독특한 청년 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15부정선거, 4.19혁명, 61년 5.16군사정변, 62년 제 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등 1970년 새마을 운동전 시대상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도 1920-30년 신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가 침체기를 거치고 1960년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신학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83불에 불과하였습니다. 60년대는 교회적으로 엄청난 부흥을 일으킨 때였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떠나고 신학적인 토대가 아직 마련되지 못하였고, 우리 민족에게 놀라운 경제부흥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독교계 이단 사상 가장 나이 어린 교주를 꼽는다면 바로 대한 기독교 장막성전의 유재열 교주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7세의 ‘어린 종’으로 등극하여 현재장년이 되었습니다. 한 때 말세 심판의 피난처로 알려졌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저수지 윗 동리는 제 2의 신앙촌이라고 불리울 만큼 장막 성전 신도들로 집단 취락을 형성 했고 지가를 올려 놓았을 만큼 그 교세가 엄청났었습니다.
1960년 중반기 용산시외버스 정류소에서 주일 아침이면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과천행 시외버스는 장막성전 신도들로 초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일곱천사, 25장로, 48집사, 72문도 등 각급 조직을 두고 수천명의 교인들을 이끌던 유재열 교주의 장막성전의 전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교주 유재열의 약력과 신비체험
교주 유재열은 1949년 2월 1일 충북 청주시 북문로 1가 83번지에서 부친 유인구와 모친 신종순 사이에 장님으로 태어났다. 유인구는 해방전 만주에서 살았으며 해방이후 귀국하여 6.25 동란 때는 고향인 충북 보은군 산외면 백석리에서 살았다.
6.25 동란 시 부역행위로 인하여 유인구는 1950년 10월 28일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한 바 있고 그의 누이 인순은 1954년 1월 4알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방경비법위반 등의 혐의로 5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1961년 6월 8일는 국민의료법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8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아우 인수는 의사로써 월북했다는 소문과 아울러 북괴 고위층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유인구는 월북한 아우 유인수의 의사 면허증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병원개업을 한 바 있고 자신의 이름을 유인수로 하여 행세해 왔다.
유인구는 1928년 12월 20일 생으로 그의 장남 유재열과는 1968년8월 7일부로 부자간의 인연이 해소되고 백부인 유인선에게 입양되어 양자가 되었다.
평소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켰고 때로는 유재열이 잘못을 저지르면 매질을 하고 묶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을 정도로 가혹했다고 한다. 부친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유재열은 후일 교주가 되어서 부친을 배척하는 반항가가 되었다.
유재열은 성격이 단순하고 학업성적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지만 운동에 취미를 가졌고 S고등학교 2년 중퇴시까지 기계체조선수로 써 금메달도 여러개 획득할 정도였다.유재열은 대방초등학교를 나와 성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2년 중퇴가 그의 학력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외삼촌 신종환(일명 모세장로)의 집에서 많이 양육 받은 바 있다.
유재열의 모친 신종순 여인은 처녀 시절에 받은 몽시를 내세우고 있다. ‘한 신령님이 보자기에 싼 책 2권을 주기에 하나는 남편 될 사람에게 주고 하나는 아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를 유재열 유인구 부자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작이라는 심증을 굳혀주고 있다.
2. 교단 창립의 배경과 그 경위
1964년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이란 사찰암자 아래에 김종규가 이끈는 일단의 신비주의집단인 호생기도원이 있었다. 신도들로부터 주님 또는 아버님으로 불리우는 교주 김종규의 집단엔 후일 장막성전의 교주가 될 유재열과 그의 부친 유인구부자가 끼여 있었다.김교주는 말세비밀교리를 강조하며 많은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으며 여신도들과의 추문이 파다햇다. 그는 신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고 방언 계시 등의 은사를 강조했다.
유재열 일가중 맨 먼저 김교주를 추종한 것은 유의 모친 신종순이었고 그녀는 방언의 은사 특히 중국어 방언을 한다고 했다. 유는 당시 S고 기계체조선수로써 일본 원정 시합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방언을 받기만 하면 마음대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모친을 따라 호생기도원에 드나들었다.
1965년 1월 어느날, 유재열이 친구 몇 명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향해 가는 도증 대방동에서 신림동 중간 에 위치한 다리를 건너는 길로 가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 해졌다.
거기서 그는 할 수 없이 두 무릎을 꿇자 어둠속에서 예수의 환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 예수의 머리 위로는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영롱하게 뻗혀 있었고 하늘에는 일곱별이 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어린 양을 안고 있었다.이때 유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더듬거리면서 외쳤으나 동행한 친구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안았다고 한다. 그러자 또 유는 ‘흰 강아지를 안고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랑하는 내 아들아...내가 네게 큰일을 맡기노라.’고 했다 한다.그 순간이 약 40분간 소요됐다고 하며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 몸에 땀이 물 흐르듯 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유재열은 열심히 호생기도원에 드나 들었다. 그때 학교를 중퇴하라는 계시를 따라 학교를 그만두고 기도 생활에만 전념하여 방언 강필 통변게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며 어떤 때는 만년필을 입에 문 비둘기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그후부터 중국어 헬라어 강필을 자유자재로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생기도원장 김종규가 상도동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저수지 뒷 골짜기에 자리를 옮기자 유재열도 다시 그곳까지 따라갔다.
한편 과천 삼거리에서 월북한 동생의 의사 면허증으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유인구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환자의 병을 고치기 보다는 그 환자의 죄상만 투시를 통해 보였다고 한다.
1965년 11월경 병원 간판을 떼라는 지시를 받고 아예 병원을 거둬 버렸다고 한다.
유재열은 그때 16세의 소년으로 하루는 밤에 기도원의 경비임무를 맡았는데 갑자기 새까만 앙장차림의 날씬한 여인이 핸드백을 들고 나타나기에 깜짝 놀라서 ‘당신이 누구냐?’ 고 쳤더니 아무말도 없이 김종규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재열은 즉시 그 여인의 뒤를 따라가 김종규의 방문을 열어 제켰더니 김은 두 처녀 신도를 양편 팔에 누이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부터 유재열은 교주 김종규의 추잡한 여신도와의 관계를 알고 실망했으며 친구들에게 이를 알려 소문이 퍼졌다. 김은 약 60여명의 여신도들을 간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열을 위시하여 김창도등 20여명은 호생기도원을 이탈하기로 결심하고 나와 과천 3거리에 있는 유인구의 집에서 27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다.
1966년 3월 1일. 유가 운동을 하고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태양 빛이 강렬하게 유재열에게 비추이는 것을 27명의 신도중에서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깜짝놀란 유재열이 몸을 씻다 말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 태양빛이 유재열을 따라 들어 왔고 유재열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고 한다.이 때 모인 사람들은 유가 죽은 줄로 악고 있었는데 그의 부친 유인구의 환상에 유재열이 두루마리를 먹는 광경이 나타났으며 이를 27명의 증인들이 지켜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루마리를 다 먹은 유재열은 누운 채로 종이 테프 같은 것을 자꾸 입안에서 끄집어 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한권의 성경책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펼쳐보던 유재열은 갑자기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울었고 또 한 장을 넘기더니 이마를 잔뜩 찌푸리면서 인상을 썼다고 한다. 그것은 심판의 광경을 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겔 2:8-16, 계10:9-11을 펼쳐 보았다. 그런 후에 지구모형을 두 손안에 넣고 돌리더니 이를 갈면서 힘을 주어 부셔버리니 그 지구 모형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고 한다.
이와같은 신비체험을 지켜 본 27명의 증인들은 막계리에 들어가서 계시 받은대로 청계산 계곡속에서 증거 장막을 짓고 6개월간 기도생활을 했으니 그때가 1966년 4월 4일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장막성전의 고적인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장막성전에는 1966년 5월 14일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성탄절로 지키기로 했으며 동년 6월 1일에 장막성전을 기공하여 9월 24일에 마쳤다고 한다. 그들은 1966년 4월 4일에 증거 장막에 들어가 약 6개월간 기도를 하고 9월 24일에 하산하여 본격적인 전도생활에 들어갔다.
3.교단의 내분
1967년 2월 경북 청도 출신 이만희가 장막성전에 들어가 재산을 털리고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탈해 버렸으며, 1971년 9월7일 이만희에 의해 40여개의 항목의 비행혐의로 고소를 당하여 유재열 교주와 미카엘 천사로 불리는 김창도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만희는 장막성전을 이탈한후 신천지 안양교회를 세우고 ‘요한 계시록의 실상’‘신탄’등의 책자를 내고 장막성전 별파로써 기성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평화시장에서 섬유도매상을 하던 장모씨는 700만원(현재 약 1억원 상당)을 들여 집회장소까지 마련하고 교단의 발전을 꾀했으나 교주를 비롯한 간부들의 비리를 목격하고 환멸을 느껴 탈퇴해 버렸다.
1970년 4월에는 장막성전의 실력자였던 예비역 대령 신모씨가 탈퇴를 했고 7천사중 하나인 솔로몬천사 백만봉은 애인을 놓고 교주 유재열과의 삼각관계로 인하여 성남에서 새 교단을 이끌고 있다.
7천사중 하나인 여호수아신광일(모세장로 신종환의 아들)도 1970년 9월에 탈퇴해 버렸고 삼촌인 신종환도 탈퇴하여 안양에 있는 이만희파에 합세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7천사는 뿔뿔히 흩어졌고 많은 신도들이 이탈했으며 더구나 1969년 11월 말세 심판설이 빗나가자 이에 의혹을 품은 많은 신도들이 장막성전을 등졌다.
신도들의 대거 이탈을 막기 위해서 미카엘 천사인 김창도는 신도 심재권에게 폭행을 가하며 ‘모세도 애굽 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폭행을 합리화시켰다. 전도부장이었던 송모전도사와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도 이탈했다.
1966년 3월 1일부터 1260일이 지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이 환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장막성전이 있는 과천 막계리에 들어 와야 한다고 했고 그 마지막 때가 1969년 11월 1일 이었으나 그때가 장막성전의 전성기였다.
1975년 9월 6일 유재열의 비서를 지낸 김모씨등이 교주와 감부들의 비행을 열거하여 경찰에 진정 함으로써 교주 유재열과 미카엘 천사, 김창도 집사, 임종대 교주비서 박용만 등 4명을 사기 폭행 및 무고 등 혐의로 구속했다.
4. 주요교리 및 주장
(1) 보혜사 성령인 교주 유재열
영생의 알곡을 거두는 자이고 하나님께서 인을 가지는 자로 심으신 사자이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일곱인으로 봉함된 책을 먹었고 열방 선지자로 만민에 기호로 삼은 종이라
(2) 주장
1> 우리는 오직 진리의 말씀을 위하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전한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이고 곧 신령이시다. 또 말씀은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요14:6) 말씀은 지팽이요 생수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능력이요 생명이 되신다(요1:14).또 말씀은 칼이다(히4:12).
2> 우리가 가르치는 말씀은 우리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나에 게 말씀하시고 보내 주심으로 그대로 옮겨 줄 뿐이다(요12:49-50)
3> 예수께서는 비사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오늘 날 말세지말을 당하여는 신령한 것을 밝히 보여 주심으로 그대로 일러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 께 받아 말한 것이므로 (벧후1:21) 이것을 마음대로 풀거나 억지로 풀 것이 아니고 오직 짝을 맞추어서 풀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책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 이 없기 때문이다.(사34:16). 창3:23에 그룹 화영검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나무에 나갈 수 없는데 영육이 다 함께 살 수 있게 영생하게 된다.
4> 마지막 때에 구원 받을 성도에게 때를 따라(마24:45)나눠줄 말씀은 영계설, 예언설, 역 사설로 구분하며 이사야서 이후의 예언서를 주로 상고한다.
5>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심령에게 주신 구원의 능력으로 받아들일 것이 며 그 이해도 나의 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사회,국가,인류에게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3) 장막성전의 일곱천사관
장막성전에는 일곱천사가 있다. 그런데 장막성전에 7천사가 있어야 되는 이유와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상을 가진 일곱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아와 밝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대를 띄고 (계15:5-9)...’ 에서 7천사의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고전9:9에 송아지는 종을 뜻하며 일꾼을 가르킨다. 그러므로 사자(렘4:7)와 송아지(고전 9:9)을 연결하면 ‘하나님의 사명을 지닌 일꾼이라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처럼 영으로만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예수처럼 육체를 입고 일하는 일꾼이 바로 장막성전의 일곱천사라는 것이다. 슥3:9에 한 돌에 일곱 눈이 나오는데 7눈이란 추수꾼으로 보낸 천사(마13:39)이며 이들이 바로 장막 성전의 천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막 성전의 일곱 천사중 현재는 4명의 천사가 있으나 다시 일곱 천사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이탈한 자들에 대해서는 계2:10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라고 이미 예언해 놓았다고 주장한다.
1> 마지막 날의 구원은 한 나라만을 택하여 이룬다.(겔3:1-5)
2> 그 곳은 해 돋는 곳 곧 동방에 있는 나라에서 이루어진다.(사24:15, 59:19, 2:5, 41:25)-극동
3> 물이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는 곳이다.(슥14:8)-한국-
4> 그 곳은 동서로 갈라진 산이 있는 곳이다.(슥14:4-5)-청계산-
5> 연못이 있는 곳이다.(사22:11)-막계리저수지-
6> 언약궤가 있는 곳이다.(계11:19)-장막성전-
7>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인 일곱종이 있는 곳이다.(계1:20)-장막성전 7천사-
8> 여기에 어린양이 나타났다.(슥2:8, 사11:1-10)-교주 어린종 유재열-
8> 7천사의 어린종은 배꼽줄을 자르지 않고 버리운 자 밑에서 났다.(겔16:4-5)-김종규 아 래에서 났다는 뜻-
10> 어린 종은 만국을 다스릴 철장 권세를 받은 자이다.(계12:5)-교주 유재열-
장막성전의 7천사는 구원 받을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아장막성전으로 끌어 들인다고 한다.
이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성경적 근거로 창19:1-2, 계21:17, 히13:1을 들고 있다. 또 그들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일곱 천사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제시한다.
1>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고 했는데 7목자중 작은 책을 받을 자는 선지자인 교주 유재열이라고 했다 또 순금등대의 비밀의 주인공은 스룹바벨(슥4:2-3)이며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택하신 심판 날의 대변자이며 계시록 7장 1절에 인 치신 자가 바로 어린 종 유재열이라는 것이다
2>슥4:2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3>계5:6, 4:5 ‘일곱 등불 일곱 눈을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 이며 이 일곱 영으로써 일곱 천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받아 가지고 땅위에 일곱 재앙을 내리는 사명을 띄고 왔다. 한다.
4>사11:10에 일곱 천사 중에 하나인 교주 어린종을 가리키는데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싹으로써 만인의 기호로 설 것이며 그는 순이라 이름하는 자이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자이며 택함을 입은 천사이다(슥6:12)고 주장한다.
또 어린 종은 예루살렘서 곧 교회가운데 다니면서 불의와 불법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자들의 이마에 인치는 사명을 맡았으며(겔9:2)인 맞은 자만이 14만 4천의 반열에 들어와 구원 받을 수 있다(계10:10, 겔3:1-3)고 한다.
(4) 신천신지
마24:5에 있는 바와 같이 오늘 모든 사람들은 이기주의적이 되고 교회는 사랑이 식어 냉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말세의 결정적인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칭하고 입술로는 거룩한 말을 하면서도 행위는 음란한 데 그것이 3년반 동안 계속되리라.’(단12:11)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호생기도원의 교주이며 유재열의 스승인 김종규를 지칭한다고 한다. 또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농부라 할 것이며 무식자라 하고 나는 날 때에 배꼽 줄을 자르지 않았고 들에 버리운 바 되었다’.고 했으니 바로 김종규라는 것이다. 이 성경의 예언이 김종규를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한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자기의 의를 앞세우고 믿음이 교만해져서 자멸할 수 밖에 없고 이를 따르는 양떼들은 그들의 거짓된 인도로 멸망하게 된다.(요16:11)는 것이다. 지금은 말세의 끝인데 언제 주가 심판하시러 강림하실지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마24:36, 살전5:1).그러나 주께서는 자기가 강림하시기 전에 추숫꾼으로서 천사들을 먼저 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마13:39-49) 말세에 아마겟돈전쟁의 환란을 피하기 위하여 이미 청계산 계곡에 큰 밀실을 마련 해 놓았다.(사2:18-22)고 하며 그 암혈과 토굴속으로 장막 성전의신도가 다 들어 간 뒤에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그후 다시 나와서 신천신지를 이루고 신도들은 왕이 되어 각 고을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장막 성전이 있는 경기도 과천 막계리에서 약 3킬로미터가량 청계산 쪽으로올라가면 최초 27명이 모여 그중 10명이 수도하던 증거장막이 있는데 그 주변 바위에 모두 성서에 있는 모세, 예수, 예레미야 등 위인들의 상이 역력히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산상예배 때 외에는 아무나 함부로 못하게 하며 낯선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고 있으며 여신도 모임인 일심회에서 그 근처 산을 매입했다. 함부로 그곳에 가면 징벌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데 모세의 상 등 89개의 영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본 사람들도 긍정, 부정적인 의견으로 엇갈리고 있다.
청계산을 천개산으로 고쳐 마지막 날에 하늘이 열리는 곳이 장막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장막성전의 증거장막 그거 영록 현장에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 예수가 나를 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모습, 천사들이 목욕을 했다는곳, 등이 있다고 한다.
5. 장막성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이단종합 연구2000년 6월 큰샘 출판사 이대복저)
유재열 교주는 ‘우리 성전의 현황’이라는 책에 아래와 같이 썼다. 인간의 지능과 노력으로 오늘날 과학의 힘은 신비에 쌓여 있는 수 천년 전의 달의 베일을 벗겨 신에 대한 일반적 도전을 성공리에 마친 것 같다.그러나 이 두렵기 까지 한 과학의 능력을 지어내는 인간은 과연 어느 분의 창조인가! 즉 우주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지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고 말하겠다.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를 말한 것이다. 즉 질과 양이 무한 변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지병을 만드는 토기장이의 능력에 따라 교묘한 장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오직 토기장이로서의 위대함을 과시할 수 있다. 그러나 흙을 떠나서는 이룰 수 없다 .이것이 곧 절대자(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는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렘31:35).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고 사람안의 심령을 지으신자(슥12:1)를 떠나서는 모략과 경영이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있다면 흙을 떠난 오지병이며 뿌라없는 나무로다.
이에 장막성전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흙이며 뿌리로다. 더 알기를 원한다면 흙이 뿌리에 덮히며 절대주가 물을 뿌리니 부패되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찌...구원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곧 인간들이 원하는 합목적(合目的)인 우주관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장막성전 단가]
1.시온산에 기호세워 나팔불어 외칠 때에
예루살렘 거민들아 돌아오라 모여라
스룹바벨 일곱눈과 일곱등불 켰으니
열방들을 멸하려 수풀에서 나왔네.
2> 방백들을 실심하고 깜짝놀랄 것이요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들이 없겠네
바다에서 큰 재앙의 멸망에 날 오리니
돌아오라 모여라 주의종은 오라네
3> 구원의 수 14만 4천 마음문을 열어라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 들어라
그날되어 어린아이 피리불어 외쳐도
감화감동 없으면 화가 닥쳐 오리라
4>보냄에 운 어린양이 험한 준령 인도할 때
따라올자 누구련가 첫째 부활 참여해라
구원예수 따르리니 겸손한 말 주께드려
이마에는 인 맞고 천국 잔치 참여해
5>지옥사자 마귀들 사자같이 덤비나
크신 능력 주 여호와 구원의 은총주니
하늘 문을 열으시고 하늘성사 이루니
누가 능히 하늘문을 닫을 자가 있으랴
6. 교단의 기구와 조직
(1) 1969년 당시
여호수아천사(신광일)탈퇴, 디라천사(김영애), 스룹바벨또는 임마누엘(유인구)탈퇴,
어린종 삼손(유재열), 미카엘 천사(김창도), 사무엘 천사(정창래), 솔로몬 천사(백만봉)탈퇴,
전도사 17-18명, 장로 24명, 집사 48명, 문도 72명(역군), 신도 14만 4천
* 1970년 2월 당시
어린종(교주)-제직회-회장:박옥래, 부회장5명
-총리부, 경리부, 교육부, 봉사부, 부녀부, 사업부(역군)
미카엘 천사, 디라천사,-선교위원회-국내선교, 국외선교.
(2) 전국 교회 분포(1986년3월 14일)
1>경기도-인천, 일산, 부평, 부천, 군자, 강화, 장봉, 평택, 오산,안양, 과천, 용인 신갈, 수원, 송탄, 안성, 성환, 여주, 이천, 성남, 신장, 인창, 의정부, 사기말, 기평, 포천등26개처
2>충남-천안 온양, 서산, 태안, 홍성, 대천, 공주, 입장등 9개처
3>충북-충주, 청주,괴산, 덕산 제천, 대월등 6개처
4>강원-춘천 강릉 동해, 홍천, 원주등 5개처
5>경북-대구, 안동, 영주, 김천, 구미, 포항등6개처
6>경남-창원, 마산, 울산, 거제, 진주, 충무등6개처
7>전북-전주, 군산, 이리, 부안, 정주등 5개처
8>전남-광주, 금성, 순천, 목포, 요수등 5개처
9>제주. 10>부산 ⇒ 72개처
(3) 사령장과 계급별 뱃지
장막성전 초기에는 계급별로 뺏지를 달고 다녔다. 7천사는 은색 24장로는 흰색, 48집사는 붉은 색, 72문도는 푸른색, 일반성도는 검정색 뺏지를 달고 다녔으며 제사장이라는 모세장로는 은색에 하얀 사기바탕을 한 뺏지를 달고 다녔다. 장막성전에서는 각 직분에 따라 사령장을 주는데 초기에는 유재열의 부친 유인수(본명 유인구)의 명의로 주었으나 다 회수한 후 유재열의 이름으로 주었다. 사령장 뒤편에는 일곱천사들의 혈관을 면도칼로 잘라 흘린 피로서 십자가를 그려서 주었다고 하나 감정결과 돼지 피였다는 설도 있다.
7. 장막성전의 예배
주일예배는 정오부터 시작하는데 보통 2-3시간씩 계속된다. 모세장로가 있을 때는 그가 사회를 맡았으나 그 후에는 천사들이 돌아가면서 인도하고 있으며 주로 천국에 관한 찬송가를 집중적으로 많이 부르고 있으며 천사 중 한 사람의 기도가 있은 후 어린 종 유재열이 설교에 나선다. 그는 주로 이사야서 이후의 예언서 즉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와 신약성서의 계시록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설교 노트를 준비하지도 않는다.
이때 단 위에 앉은 천사들은 성경구절을 찾아 읽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설교의 핵심은 말세의 징조와 구원 및 심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이며 세속적인 잡담이나 예화는 들지 않는다. 저녁예배는 8시, 어린 종이 집례하며 매일 새벽 4시에 새벽기도회가 있다. 한 때는 서울 시내6-7개처에 집회를 두고 있었으나 계시에 의해 1969년 8월 31일 예배이후 기도소를 모두 폐쇄해 버렸다가 용산구 청파동에만 남아있다.
신령예배는 무당의 초혼의식과 유사한 것으로써 사무엘 천사, 정창래가 방언을 하면 어린종인 교주가 통역을 한다. 개별적인 작은 집회에서는 유교주의 모친 신종순 여인이 방언을 하고 미카엘 천사 김창도의 부인 마리아가 통역을 한다. 또 신령을 부르는 초혼 의식이 있는데 모세의 영을 부르려면 방언하는 자가 ‘모세스 모세스...따따따...’라고 모세의 영을 부르면 모세의 영이 임하여 방언이 터진다고 한다. 그러면 어린 종이 통역을 한다.
장막성전에서 쓰는 영명(靈名)은 신령이 임한 사람에게 교주가 붙여준다.7천사들이 춤과 여자들로 인하여 타락한 이후에는 신령예배가 중단 되었다.
8.장막성전의 분파들
(1) 천국 복음 전도회
‘재림예수’를 자처하던 천국복음 전도회의 교주 구인회가 장막성전 신도생활을 청산하고 새마을 전도회라는 새로운 이단으로 출범한 것은 1970년도였다. 원래 구인회는 열렬한 박태선 신도였던 모친을 따라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시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도에 가족과 함께 박태선 전도관에서 이탈하여 2년간 장막성전을 다니다가 다시 장막성전 마저 등지게 된 것이다.
구인회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신대리에서 1941년 5월 9일 구구와 모친 이 연실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구인회가 12세때 부친은 세상을 떠났고 은산 성결 교회에 모친을 따라 다녔던 구인회는 중학교 3학년때인 1956년도에 신앙촌에 가족과 함께 입주하여 13년간 살다가 1968년도에 이탈한 것이다.
그는 꿈에 계시를 받고 장막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꿈을 통해서 박태선은 한 마귀이며 일곱마귀는 장막성전의 일곱천사를 가장한 놈이라‘고 일러 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장막성전에 들어가 주일 예배만 봤고 틈틈이 저수지에서 낚시일로 소일하면서 2년을 머물러 있다가 영등포 구로동으로 나와서 1972년 봄부터 새마을 전도회란 이름으로 이단을 만들고 그 교주가 됐다가 1976년 2월 29일에 옥중에서 사망했다.
태극기가 하나님의 형상이고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면서 전국에 포스터를 부착하고 떠들썩하게 집회를 갔다가 사이비종교 일제 단속에 걸려들어 구속된 것이다. 구인회는 성경을 인용하여 박태선은 마귀의 왕이고 유재열을 비롯한 일곱천사는 일곱마귀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온 재림예수라고 공공연하게 공언을 했다.
(2) 신천지 안양교회 : 신천지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신천지)
경기도 안양시 비산 2동 238-13에 자리잡고 있는 신천지 안양교회는 이만희를 비롯한 장막성전 이탈자들이 세운 집단이다. 이만희 교주는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이란 책자를 발행하여 장막성전 유재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했다.
‘무료 성경 신학’ 기독 신학원, 전국원로장로협의회,“신천지에 오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
(3) 증거장막성전: 재림예수 홍종효
성경속에 예수는 실물이 아니다. 그 예수가 실물이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육체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오리라고 한 예수가 벌써 이 세상에 계신다고 했지 않는가?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날 나를 위한 가상인 것이다.
(4) 무지개 증거장막 ; 심재권
(5) 성남 장막성전 : 정창례 이외 신광일, 백만봉, 김창도등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교주유재열의 근황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거주하였었음, 한 때 남성컨트리 클럽 경연진에 참여, 미국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아옴,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3거리 대한 장로교 이삭교회(오평호),
대한 기독교 장막성전
1960년대의 시대상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나라는 가난하였고 혼란하였으며 교육의 성과가 아직 없었던 때였습니다. 세계는 유인 우주선의 달 착륙,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시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 여성 해방 운동, 비틀즈의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 등 독특한 청년 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15부정선거, 4.19혁명, 61년 5.16군사정변, 62년 제 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등 1970년 새마을 운동전 시대상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도 1920-30년 신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가 침체기를 거치고 1960년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신학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83불에 불과하였습니다. 60년대는 교회적으로 엄청난 부흥을 일으킨 때였습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떠나고 신학적인 토대가 아직 마련되지 못하였고, 우리 민족에게 놀라운 경제부흥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독교계 이단 사상 가장 나이 어린 교주를 꼽는다면 바로 대한 기독교 장막성전의 유재열 교주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7세의 ‘어린 종’으로 등극하여 현재장년이 되었습니다. 한 때 말세 심판의 피난처로 알려졌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저수지 윗 동리는 제 2의 신앙촌이라고 불리울 만큼 장막 성전 신도들로 집단 취락을 형성 했고 지가를 올려 놓았을 만큼 그 교세가 엄청났었습니다.
1960년 중반기 용산시외버스 정류소에서 주일 아침이면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과천행 시외버스는 장막성전 신도들로 초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일곱천사, 25장로, 48집사, 72문도 등 각급 조직을 두고 수천명의 교인들을 이끌던 유재열 교주의 장막성전의 전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교주 유재열의 약력과 신비체험
교주 유재열은 1949년 2월 1일 충북 청주시 북문로 1가 83번지에서 부친 유인구와 모친 신종순 사이에 장님으로 태어났다. 유인구는 해방전 만주에서 살았으며 해방이후 귀국하여 6.25 동란 때는 고향인 충북 보은군 산외면 백석리에서 살았다.
6.25 동란 시 부역행위로 인하여 유인구는 1950년 10월 28일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한 바 있고 그의 누이 인순은 1954년 1월 4알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방경비법위반 등의 혐의로 5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1961년 6월 8일는 국민의료법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8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아우 인수는 의사로써 월북했다는 소문과 아울러 북괴 고위층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유인구는 월북한 아우 유인수의 의사 면허증으로 경기도 이천에서 병원개업을 한 바 있고 자신의 이름을 유인수로 하여 행세해 왔다.
유인구는 1928년 12월 20일 생으로 그의 장남 유재열과는 1968년8월 7일부로 부자간의 인연이 해소되고 백부인 유인선에게 입양되어 양자가 되었다.
평소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켰고 때로는 유재열이 잘못을 저지르면 매질을 하고 묶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을 정도로 가혹했다고 한다. 부친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유재열은 후일 교주가 되어서 부친을 배척하는 반항가가 되었다.
유재열은 성격이 단순하고 학업성적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지만 운동에 취미를 가졌고 S고등학교 2년 중퇴시까지 기계체조선수로 써 금메달도 여러개 획득할 정도였다.유재열은 대방초등학교를 나와 성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2년 중퇴가 그의 학력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외삼촌 신종환(일명 모세장로)의 집에서 많이 양육 받은 바 있다.
유재열의 모친 신종순 여인은 처녀 시절에 받은 몽시를 내세우고 있다. ‘한 신령님이 보자기에 싼 책 2권을 주기에 하나는 남편 될 사람에게 주고 하나는 아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를 유재열 유인구 부자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작이라는 심증을 굳혀주고 있다.
2. 교단 창립의 배경과 그 경위
1964년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이란 사찰암자 아래에 김종규가 이끈는 일단의 신비주의집단인 호생기도원이 있었다. 신도들로부터 주님 또는 아버님으로 불리우는 교주 김종규의 집단엔 후일 장막성전의 교주가 될 유재열과 그의 부친 유인구부자가 끼여 있었다.김교주는 말세비밀교리를 강조하며 많은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으며 여신도들과의 추문이 파다햇다. 그는 신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고 방언 계시 등의 은사를 강조했다.
유재열 일가중 맨 먼저 김교주를 추종한 것은 유의 모친 신종순이었고 그녀는 방언의 은사 특히 중국어 방언을 한다고 했다. 유는 당시 S고 기계체조선수로써 일본 원정 시합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방언을 받기만 하면 마음대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모친을 따라 호생기도원에 드나들었다.
1965년 1월 어느날, 유재열이 친구 몇 명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향해 가는 도증 대방동에서 신림동 중간 에 위치한 다리를 건너는 길로 가다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 해졌다.
거기서 그는 할 수 없이 두 무릎을 꿇자 어둠속에서 예수의 환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 예수의 머리 위로는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영롱하게 뻗혀 있었고 하늘에는 일곱별이 떠 있었으며 한 손에는 어린 양을 안고 있었다.이때 유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더듬거리면서 외쳤으나 동행한 친구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안았다고 한다. 그러자 또 유는 ‘흰 강아지를 안고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랑하는 내 아들아...내가 네게 큰일을 맡기노라.’고 했다 한다.그 순간이 약 40분간 소요됐다고 하며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 몸에 땀이 물 흐르듯 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유재열은 열심히 호생기도원에 드나 들었다. 그때 학교를 중퇴하라는 계시를 따라 학교를 그만두고 기도 생활에만 전념하여 방언 강필 통변게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며 어떤 때는 만년필을 입에 문 비둘기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그후부터 중국어 헬라어 강필을 자유자재로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생기도원장 김종규가 상도동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저수지 뒷 골짜기에 자리를 옮기자 유재열도 다시 그곳까지 따라갔다.
한편 과천 삼거리에서 월북한 동생의 의사 면허증으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유인구는 자기에게 찾아오는 환자의 병을 고치기 보다는 그 환자의 죄상만 투시를 통해 보였다고 한다.
1965년 11월경 병원 간판을 떼라는 지시를 받고 아예 병원을 거둬 버렸다고 한다.
유재열은 그때 16세의 소년으로 하루는 밤에 기도원의 경비임무를 맡았는데 갑자기 새까만 앙장차림의 날씬한 여인이 핸드백을 들고 나타나기에 깜짝 놀라서 ‘당신이 누구냐?’ 고 쳤더니 아무말도 없이 김종규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재열은 즉시 그 여인의 뒤를 따라가 김종규의 방문을 열어 제켰더니 김은 두 처녀 신도를 양편 팔에 누이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부터 유재열은 교주 김종규의 추잡한 여신도와의 관계를 알고 실망했으며 친구들에게 이를 알려 소문이 퍼졌다. 김은 약 60여명의 여신도들을 간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열을 위시하여 김창도등 20여명은 호생기도원을 이탈하기로 결심하고 나와 과천 3거리에 있는 유인구의 집에서 27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다.
1966년 3월 1일. 유가 운동을 하고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태양 빛이 강렬하게 유재열에게 비추이는 것을 27명의 신도중에서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깜짝놀란 유재열이 몸을 씻다 말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 태양빛이 유재열을 따라 들어 왔고 유재열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고 한다.이 때 모인 사람들은 유가 죽은 줄로 악고 있었는데 그의 부친 유인구의 환상에 유재열이 두루마리를 먹는 광경이 나타났으며 이를 27명의 증인들이 지켜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루마리를 다 먹은 유재열은 누운 채로 종이 테프 같은 것을 자꾸 입안에서 끄집어 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한권의 성경책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펼쳐보던 유재열은 갑자기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울었고 또 한 장을 넘기더니 이마를 잔뜩 찌푸리면서 인상을 썼다고 한다. 그것은 심판의 광경을 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겔 2:8-16, 계10:9-11을 펼쳐 보았다. 그런 후에 지구모형을 두 손안에 넣고 돌리더니 이를 갈면서 힘을 주어 부셔버리니 그 지구 모형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 내렸다고 한다.
이와같은 신비체험을 지켜 본 27명의 증인들은 막계리에 들어가서 계시 받은대로 청계산 계곡속에서 증거 장막을 짓고 6개월간 기도생활을 했으니 그때가 1966년 4월 4일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장막성전의 고적인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장막성전에는 1966년 5월 14일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성탄절로 지키기로 했으며 동년 6월 1일에 장막성전을 기공하여 9월 24일에 마쳤다고 한다. 그들은 1966년 4월 4일에 증거 장막에 들어가 약 6개월간 기도를 하고 9월 24일에 하산하여 본격적인 전도생활에 들어갔다.
3.교단의 내분
1967년 2월 경북 청도 출신 이만희가 장막성전에 들어가 재산을 털리고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탈해 버렸으며, 1971년 9월7일 이만희에 의해 40여개의 항목의 비행혐의로 고소를 당하여 유재열 교주와 미카엘 천사로 불리는 김창도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만희는 장막성전을 이탈한후 신천지 안양교회를 세우고 ‘요한 계시록의 실상’‘신탄’등의 책자를 내고 장막성전 별파로써 기성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평화시장에서 섬유도매상을 하던 장모씨는 700만원(현재 약 1억원 상당)을 들여 집회장소까지 마련하고 교단의 발전을 꾀했으나 교주를 비롯한 간부들의 비리를 목격하고 환멸을 느껴 탈퇴해 버렸다.
1970년 4월에는 장막성전의 실력자였던 예비역 대령 신모씨가 탈퇴를 했고 7천사중 하나인 솔로몬천사 백만봉은 애인을 놓고 교주 유재열과의 삼각관계로 인하여 성남에서 새 교단을 이끌고 있다.
7천사중 하나인 여호수아신광일(모세장로 신종환의 아들)도 1970년 9월에 탈퇴해 버렸고 삼촌인 신종환도 탈퇴하여 안양에 있는 이만희파에 합세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7천사는 뿔뿔히 흩어졌고 많은 신도들이 이탈했으며 더구나 1969년 11월 말세 심판설이 빗나가자 이에 의혹을 품은 많은 신도들이 장막성전을 등졌다.
신도들의 대거 이탈을 막기 위해서 미카엘 천사인 김창도는 신도 심재권에게 폭행을 가하며 ‘모세도 애굽 사람을 때려 죽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폭행을 합리화시켰다. 전도부장이었던 송모전도사와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도 이탈했다.
1966년 3월 1일부터 1260일이 지나면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이 환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장막성전이 있는 과천 막계리에 들어 와야 한다고 했고 그 마지막 때가 1969년 11월 1일 이었으나 그때가 장막성전의 전성기였다.
1975년 9월 6일 유재열의 비서를 지낸 김모씨등이 교주와 감부들의 비행을 열거하여 경찰에 진정 함으로써 교주 유재열과 미카엘 천사, 김창도 집사, 임종대 교주비서 박용만 등 4명을 사기 폭행 및 무고 등 혐의로 구속했다.
4. 주요교리 및 주장
(1) 보혜사 성령인 교주 유재열
영생의 알곡을 거두는 자이고 하나님께서 인을 가지는 자로 심으신 사자이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일곱인으로 봉함된 책을 먹었고 열방 선지자로 만민에 기호로 삼은 종이라
(2) 주장
1> 우리는 오직 진리의 말씀을 위하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전한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이고 곧 신령이시다. 또 말씀은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요14:6) 말씀은 지팽이요 생수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능력이요 생명이 되신다(요1:14).또 말씀은 칼이다(히4:12).
2> 우리가 가르치는 말씀은 우리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나에 게 말씀하시고 보내 주심으로 그대로 옮겨 줄 뿐이다(요12:49-50)
3> 예수께서는 비사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오늘 날 말세지말을 당하여는 신령한 것을 밝히 보여 주심으로 그대로 일러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 께 받아 말한 것이므로 (벧후1:21) 이것을 마음대로 풀거나 억지로 풀 것이 아니고 오직 짝을 맞추어서 풀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책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 이 없기 때문이다.(사34:16). 창3:23에 그룹 화영검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나무에 나갈 수 없는데 영육이 다 함께 살 수 있게 영생하게 된다.
4> 마지막 때에 구원 받을 성도에게 때를 따라(마24:45)나눠줄 말씀은 영계설, 예언설, 역 사설로 구분하며 이사야서 이후의 예언서를 주로 상고한다.
5>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심령에게 주신 구원의 능력으로 받아들일 것이 며 그 이해도 나의 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사회,국가,인류에게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3) 장막성전의 일곱천사관
장막성전에는 일곱천사가 있다. 그런데 장막성전에 7천사가 있어야 되는 이유와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상을 가진 일곱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아와 밝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대를 띄고 (계15:5-9)...’ 에서 7천사의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고전9:9에 송아지는 종을 뜻하며 일꾼을 가르킨다. 그러므로 사자(렘4:7)와 송아지(고전 9:9)을 연결하면 ‘하나님의 사명을 지닌 일꾼이라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처럼 영으로만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예수처럼 육체를 입고 일하는 일꾼이 바로 장막성전의 일곱천사라는 것이다. 슥3:9에 한 돌에 일곱 눈이 나오는데 7눈이란 추수꾼으로 보낸 천사(마13:39)이며 이들이 바로 장막 성전의 천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막 성전의 일곱 천사중 현재는 4명의 천사가 있으나 다시 일곱 천사가 되리라고 믿고 있다. 이탈한 자들에 대해서는 계2:10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라고 이미 예언해 놓았다고 주장한다.
1> 마지막 날의 구원은 한 나라만을 택하여 이룬다.(겔3:1-5)
2> 그 곳은 해 돋는 곳 곧 동방에 있는 나라에서 이루어진다.(사24:15, 59:19, 2:5, 41:25)-극동
3> 물이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르는 곳이다.(슥14:8)-한국-
4> 그 곳은 동서로 갈라진 산이 있는 곳이다.(슥14:4-5)-청계산-
5> 연못이 있는 곳이다.(사22:11)-막계리저수지-
6> 언약궤가 있는 곳이다.(계11:19)-장막성전-
7>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인 일곱종이 있는 곳이다.(계1:20)-장막성전 7천사-
8> 여기에 어린양이 나타났다.(슥2:8, 사11:1-10)-교주 어린종 유재열-
8> 7천사의 어린종은 배꼽줄을 자르지 않고 버리운 자 밑에서 났다.(겔16:4-5)-김종규 아 래에서 났다는 뜻-
10> 어린 종은 만국을 다스릴 철장 권세를 받은 자이다.(계12:5)-교주 유재열-
장막성전의 7천사는 구원 받을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아장막성전으로 끌어 들인다고 한다.
이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성경적 근거로 창19:1-2, 계21:17, 히13:1을 들고 있다. 또 그들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일곱 천사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제시한다.
1>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고 했는데 7목자중 작은 책을 받을 자는 선지자인 교주 유재열이라고 했다 또 순금등대의 비밀의 주인공은 스룹바벨(슥4:2-3)이며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택하신 심판 날의 대변자이며 계시록 7장 1절에 인 치신 자가 바로 어린 종 유재열이라는 것이다
2>슥4:2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3>계5:6, 4:5 ‘일곱 등불 일곱 눈을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 이며 이 일곱 영으로써 일곱 천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받아 가지고 땅위에 일곱 재앙을 내리는 사명을 띄고 왔다. 한다.
4>사11:10에 일곱 천사 중에 하나인 교주 어린종을 가리키는데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싹으로써 만인의 기호로 설 것이며 그는 순이라 이름하는 자이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자이며 택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