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선도학교 학생들이 말하는 문제점
기자명 박지훈 2021.07.30 00:00
“진로 탐색 지원없이 진로 선택 압박”
“교원단체·전문가 외 학생들 의견도 들어야”
지난 6월 광주시교육청이 연 고교학점제 설명회. 광주드림 자료사진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가 2년여 남았다. 교육부의 설명에 따르면, 고교학점제란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이다.
고교 1학년까지는 대체로 공통 과목을 수강하지만, 2학년부터는 학교에서 개설된 과목 가운데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이하 광주교육청)은 타 교육청보다 앞장서 고교학점제 도입에 나섰다. 광주시교육청은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선도지구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교학점제를 위한 국가 재정을 확보했다.
또한, 고교학점제 안내 및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자신의 학교에 수강을 원하는 과목이 없을 경우, 타 학교에서 수강할 수 있는 제도) 신청 등을 위한 ‘고교학점제지원센터’ 사이트를 개설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전체 고교 가운데 53%가 고교학점제 연구 및 선도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진로따라 과목 선택·이수 2025년 시행
이같은 고교학점제 시행을 앞두고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선도학교 학생들도 고교학점제 반대 분위기로 쏠린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광주광역시 내 고교학점제 선도학교인 A 고교 학생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얘기를 정리한다.
학생들이 꼽은 첫 번째 문제점은 진로 탐색에 대한 압박이다. A 고교 2학년 B는 1학년 시절, 다음 학년 선택 과목 수강 신청 만료 때까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B 학생은 이공계열로 진학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2학년 1학기에 물리학Ⅰ 등 과학 탐구 과목을 선택했다. 하지만 겨울 방학과 1학기를 거치면서 정치외교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2학기 선택 과목을 사회 탐구로 변경하긴 했지만, B 학생은 1학년 때 정확한 진로 탐색을 위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시간의 압박에 섣부른 판단을 했다며 아쉬워했다.
B 학생처럼, 1학년 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과목을 선택한 뒤 나중에 후회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학생들은 진로 탐색을 위한 제도는 마련되지 않은 채, 고교학점제라는 제도가 진로 선택에 대한 시간적 압박을 가중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학점제 위해 구축공간 실질 이용 안돼
다음 문제점은 고교학점제를 위해 구축된 공간이 실질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를 위한 특별 공간 마련이 전국 학교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A 고교에서는 도서관을 새로 짓고, 잉여 공간에 자습 장소를 배치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돼 올해 완성됐다. 학생들은 새로 마련된 공간에서 수업이나 자습이 이뤄지기를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 측이 시설 관리 문제 등에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서 대부분 개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고교에서는 시험 기간 자습실 부족 사태도 일어났다고 한다. 선택 과목제의 시행에 따라 해당 선택 과목 학생들은 따로 교실에서 시험을 보는 한편, 그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자습하도록 했다. 그런데 선택 과목 수강자가 반마다 섞여 있다 보니 자습 교실이 부족하게 되었다.
결국 특정 반의 학생들은 시청각실에서 자습할 수밖에 없었다. 넓은 공간에 다수의 학생이 몰려 소음이 발생했고, 시청각실의 시설이 공부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학생들은 불편한 환경에서 자습할 수밖에 없었다.
상위권 골라서 포진 등 내신 경쟁 훨씬 더 치열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꼽은 문제점은 내신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는 점이다.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골고루 1등급을 받기 위해 과목 선택 전 사전 모의가 이뤄진다고 한다. 또한 2학년 때 학기제로 선택 과목이 운영되는 A 고교에서는 이른바 ‘시험지 구하기’도 성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학기 때 ‘확률과 통계’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1학기 ‘확률과 통계’ 수강생으로부터 1학기 시험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같은 교사가 1학기에 이어 2학기까지도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친구 관계까지 좋은 성적을 받는 노하우가 되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고교학점제에 대해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다수 언론의 초점이 교원 단체나 전문가의 의견에 맞춰진 채, 실제 연구 및 선도학교 학생들의 의견은 묻히고 있다. 학생들을 교육 정책 구성원의 일부로 인정하고, 학생들의 의견에 경청하는 자세가 바람직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있어 필요해 보인다.
박지훈 청소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