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택 작가님은 예전에 네이버캐스트에도 소개되셨을만큼 유명한 분이시더군요
지금 다시 찾아보니 저도 그 소개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작가님의 요령과 포장이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 본 현대미술전시중엔
가장 재미있었던 전시였습니다.
독특한 기법, 독특한 구성... 전시장은 단촐했고 입구에 작가님이 계셨는데
나가실때 손수 만드신 매뉴얼책자를 주셨습니다. 포장된 패키지도 빈티지하게 멋있었습니다.
오브제와 팝아트 장르는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작가님의 팝아트적 요소는 재미있었습니다.
그 중 비너스의 탄생.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작가는 저 이미지를 구상할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작업할까?
저기에 쓰인 소재들을 표현할 때 왜 저런 기법을 썼을까?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디지털시대의 비너스를 표현한 것일까요? 전시가 비표준 매뉴얼이니
매뉴얼에 따르지 않은 비 정형적인 비너스의 탄생을 표현한 그림 같기도 하고요. 아마 후자이겠죠
숫자와 점선의 일러스트, 콜라주... 모든것이 혼재되어 있는 이미지는 묘하게도 꽤 괜찮아보입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정신없는 이미지인데 저 모든 기법들이 조화롭게 느껴지는것은 작가님의 역량인 듯
저렇게 튀는 핫핑크 속에서 흑백이 더 돋보이는군요. 그림판으로 그린 것 같은 얼굴이 비너스라니.
그 옆에는 세트로 시와, 가사와, 책의 구절들이 각자 다른 느낌으로 쓰여 있는데
샤이니 가사를 보면서 따라불렀던건 둘째 치고 셰익스피어와 중국의 미녀를 묘사한 것, 500일의 썸머 영화속 대사와 목신의 오후가 인상깊었습니다.
저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어본적이 있는데요... 1학년이 되었을 때 교양인이 되겠답시고 고전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고 예쁜여자 겁나 좋아하네라고 생각했던것이 기억납니다. 그렇죠... 예쁜여자를 찬양하는데 이 아저씨가 빠지면 역시 앙꼬가 빠진 찐빵아니겠습니까. 간만에 그 특유의 장황하고 넋 빠진듯한 어투를 보니 왠지 반가웠습니다.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는 아무래도 드뷔시 때문에 많이들 들어보았을 법 한데
저는 지금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드뷔시가 말라르메의 영향을 받아 작곡을 한 것이었군요.
목신과 님프의 이미지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아이콘으로 여전히 사랑받는듯 합니다. '여전히'라고 하기엔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지만 50년 전에 쓰인 롤리타에서도 롤리타를 님프로 지칭하며 찬미하는 인물의 모습이 지금도 회자되곤 하니까요.
상당히 괜찮은 구절들이 많았는데 전시 부록엔 나와있지 않아 좀 아쉽습니다. 도덕경이었나? 중국의 미녀를 묘사한 글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샤이니는 선방했네요.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하다니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이름의 작품입니다. 조금 무섭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던 그림입니다.
말의 이미지가 약간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나요? 그게 필요조건이라는 것도.
그 옆에 나란히 있는 나체의 여자 3인방은 충분 조건..
혹은 이게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일수도 있겠죠.
아무튼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 옆의 스포트라이트도.
모든 것은 가능하다.
비밀스러운 협업.
뭐죠?
완벽한 분홍색 상자 안에 갇힌 두 명의 인물. 그 뒤의 모나리자처럼 보이는 주동자. 인물 1은 미켈란젤로인듯 하구요.
진짜 뭘까요? 무슨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상상이 안가는군요.
행동의 패턴이라. 훌라우프로 표현한게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고리 안에서 돌고 도는 정형화 된 인물이겠지요
낯선 수요일이라는 작품. 레스빠스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따르자면
Things have always been there but vague, invisible or swept away by other memories
그 자리에 계속 있었지만 애매모호하거나, 보이지 않거나, 다른 기억들로 인해 사라진 것
이라는군요. 비표준 매뉴얼 전시의 작품들이 제작된 배경을 압축해 놓은 문구라네요.
세계를 보는 눈은 각자 다르며 개인의 경험과 무의식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라. 뭐 이런 문구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철학적인데 철학적인 개념보다 우리 생활속 이야기들을 펼쳐놓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 가능하다는데
제게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그래서 공감은 잘 안가는데요...
뭐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 채라고 하면 뭘 가져다 붙여도 그런 것이겠죠.
저는 사실 현대미술은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작품의 해석이 납득 안갈 때가 있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닐 때도 많고 그래서요.
그래서 전시장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오른편에 있는 미디어 아트를 보고 한숨 쉬었습니다. 앞구르기...
이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전시... 이러면서 들어갔는데
역시 해석은 안돼도 이미지는 꽤 인상깊었습니다.
나오면서는 재미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아무튼, 좋은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