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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저
면수 128쪽 | 사이즈 133*198 | ISBN 979-11-5634-434-6 | 03810
| 값 12,000원 | 2020년 12월 01일 출간 | 문학 | 시 |
문의
임영숙(편집부) 02)2612-5552
저자소개
월간 『韓國詩』 詩부문 신인상 2011년 1월 「보세란蘭」으로 등단.
사)한국문인협회, 구리문인협회 회원으로 구리에서 활동하고 있음.
광주교육대학교 졸업. 대한민국 근정포장 수상, 장관상 수상.
시집 『산새 소리』 외 다수 간행 2020.
차례
4 _ 펴내는 글 - 첫 시집을 내면서
105 _ 해설 - 자연친화적 서정의 시편(공광규 시인)
127 _ 맺는 글 - 반추
1부 자연과 더불어
13 _ 산새 소리
14 _ 풀꽃 시계
15 _ 아침을 여는 것들
16 _ 달팽이
17 _ 나팔꽃
18 _ 외갓집
20 _ 동물원의 하루
21 _ 장가계에서
22 _ 아침 이슬
23 _ 찔레꽃
24 _ 구절초
25 _ 코스모스
26 _ 용문사 은행나무
27 _ 밤꽃 피는 시골 풍경
28 _ 파뿌리와 민들레
29 _ 용문산 계곡
30 _ 첫 비행
31 _ 아차산에서
32 _ 새해맞이 두 번째 날
2부 사람과 더불어
35 _ 흐르는 강
36 _ 민둥산
37 _ 세탁기
38 _ 느낌 아니까
39 _ 호병골 순댓국집
40 _ 알고 있다
41 _ 누군가가
42 _ 코골이
43 _ 어머니의 가을맞이
44 _ 양파껍데기
45 _ 밴댕이
46 _ 불씨 하나
47 _ 색안경을 쓰고 보면
48 _ 푼돈과 새는 돈
49 _ 부부
50 _ 신발 한 짝
51 _ 한계령 휴게소에서
52 _ 보물섬
53 _ 신호등
54 _ 하늘로 날아간 뻐꾸기
56 _ 낮달
3부 흐르는 물처럼
59 _ 흐르는 물처럼
60 _ 걸음마
61 _ 바람이 전하는 말
62 _ 참새들의 수다
63 _ 윤사월 스무날
64 _ 서리산철쭉
65 _ 먼 산이 보이는 날
66 _ 붉은 벚꽃
67 _ 너는 꽃이다
68 _ 호면護面 쓰는 날
69 _ 세월호
70 _ 전국 노래자랑
71 _ 누에고치
72 _ 깔딱고개
74 _ 까투리와 장끼
75 _ 이쁜이 생각
76 _ 가슴앓이
77 _ 고스톱
78 _ 공산성에 부는 바람
79 _ 경고등
80 _ 보세란蘭
4부 살아간다는 것은
83 _ 살아간다는 것은
84 _ 하현달
85 _ 탁돌이의 하루
86 _ 바윗덩이
87 _ 순이
88 _ 나빌레라
89 _ 이쁜 꽃
90 _ 나뭇잎 편지
91 _ 해바라기
92 _ 오빠의 마음
94 _ 떠나보내는 정
95 _ 나이아가라폭포 아래에서
96 _ 믿음
97 _ 갈대밭의 바람 소리
98 _ 추석달
99 _ 장원
100 _ 산, 바람 그리고 나
101 _ 찬 바람 부는 날
102 _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
103 _ 숲속에 부는 바람
104 _ 동구릉 숲길
공광규 시인의 서평으로 본 시집 [산새소리]
_자연친화적 서정의 시편
1.
김성기 시인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월간 《한국시》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구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있으면서 틈틈이 시를 써온 것 같다. 이번 시집 <산새 소리>는 그의 ‘인생 수첩’이자 첫 시집이다. 자연친화적인 시를 쓰는 김 시인은 시집의 서두 <첫 시집을 내면서>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 있는 삶”으로 여기고 있다.
자연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삶의 가치를 두는 시인은 첫 시집을 내놓는 기분을 하늘을 나는 새끼독수리와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로 표현하고 있다. 산이 강을 품에 안고 큰 바다를 꿈꾸는 것처럼, “산과 숲을 가슴에 새기고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산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맑고 푸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싶다.”라는 시인 김성기. 이 시집은 그가 자연이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느끼는 생각들을 시로 모은 첫 시집이라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
2.
김성기 시인의 시집에는 풀에 대한 제재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를테면 「갈대밭의 바람소리」 「양파껍데기」 「파뿌리와 민들레」 「코스모스」 「나팔꽃」 「구절초」는 물론 「이쁜이 사랑」에서 갈대와 창포와 부들과 연꽃, 「보세란」에서 난, 「낮달」에서 봉숭아, 「불씨 하나」에서 달맞이꽃, 「풀꽃 시계」에서 클로버, 「아침이슬」에서 메밀꽃 등이다. 그는 풀에서 적절하고 아름다운 비유를 찾아내는데 “아침 이슬은/ 밤새 빚어진 메밀꽃 사리”(「아침이 슬」 부분) 같은 경우가 그렇다.
쑥도 아닌 것이
쑥부쟁이도 아닌 것이
허브 향기 풍기고 들국화로 피어났다
구구절절 깊은 사연
작은 이파리 겹겹이 쌓아 올려
노란 꽃심 키우던 구절초
갈바람에 잠 못 들고
하얀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꽃
아흔아홉 고갯마루에 꽃 피었다
순백의 꽃 무더기무더기
구절초 세상이다
- 「구절초」 전문
산이나 들에 핀 구절초의 외형과 향기, 그 안에 있을 법한 사연과 사연의 결과로 응결된 꽃심, 구절초에 투영된 시인의 상념이 투사된 시다. 시인이 구절초를 바라보는 상념은 가을바람에 잠 못 들고 “하얀 그리움으로 피어나”며 아흔아홉이라는 심심산골의 고개에서 자라 피는 순백의 꽃무더기다. 구절초는 가을에 피는 벌개미취와 감국 등 여러 가지 국화와 함께 들국화로 총칭된다.
시 「코스모스」 역시 「구절초」와 같은 그리움이라는 주제로 연결된다. 코스모스는 불특정의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그리움에/ 밤새워/ 바람소리 숨어” 우는 꽃이다. 이런 그리움에 대한 인고의 결과들은 다른 시에서도 대부분 긍정적인 결실을 맺는다. 구절초는 “허브 향기”를 풍기고, 코스모스는 고운 빛깔을 모은 “천리향 꽃내음”을 풍긴다. 구절초는 고갯마루에서 순백의 환한 꽃무더기로, 코스모스는 “청자빛 가을 하늘” 아래 고운 빛깔로 핀다.
몸에 좋다는 양파 삼십 킬로그램 한 박스를
시골 동생이 보내왔다유기농이라고 자랑하면서
친지 이웃에게 나눠주고 남은 몇 개중 한두 개를
겉껍질은 버리고 요리하다 깨달았다
그 껍데기 자양분이 내 동생 마음이란 걸
- 「양파껍데기」 전문
시인은 식물을 사람과 연관시켜 비유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양파껍데기에서 동생의 마음을 비유하거나 갈대를 통해 불특정의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다. 앞에 「구절초」나 「코스모스」가 화자의 막연한 상념을 투영한다면, 「양파껍데기」는 시골에 사는 “내 동생”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가져온다. 화자는 양파를 친지와 이웃에게 나누어주거나 요리를 하다가 “껍데기 자양분”이 자신의 “동생 마음”이라고 한다. 양파껍질과 동생의 마음을 동가로 대응시키고 있다. 상상의 폭이 넓은 시 「갈대밭의 바람소리」도 사람을 은유 형식으로 비유하고 있다. 썰물 때 넘어진 “외톨이 갈대”가 병원에 실려 가서 “엑스레이를 마구 찍어대고 시티촬영”을 하고, “구급차가 주저앉은 갈대를 싣고 갔다”는 구체성이 시에 생동감을 준다.
보금자리 떠난 아픔, 친구와 헤어진 상처
보듬고 쓰다듬어서 축하분으로 거듭 태어났다
화무십일홍 꿈은 사라지고
아파트 구석에 혼자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꽃대 하나 붙들고 견딘
인고의 세월은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몇십 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는 꿈
매만지고 갈고닦아서 둥글게 키웠다
이번 강추위에도
꽃대를 밀어 올려 꽃봉오리 맺혔다
- 「보세란」 전문
이 시는 등단 시로서 시의 마지막 부분을 능숙하게 잘 처리한 시다. 대개 시 창작 능력은 마지막 처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이 시는 보세란이 “꽃대를 밀어 올려 꽃봉오리를 맺기”까지 과정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고 있다. 보금자리를 떠나고 친구와 헤어지고 “보듬고 쓰다듬어서 축하분”으로 거듭 태어나기까지 서사가 신산한 삶을 산 사람의 아름다운 결말을 보는 것 같은 시다. 이별의 아픔과 상처, 화려한 시절이 지나고 난 뒤의 외로움, 시간을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 얻은 결과를 아름답게 형상하고 있다.
시 「파뿌리와 민들레」도 「보세란」과 같은 상상을 언어로 조직한 유형의 시다. 화자는 “땅 속에서 혹독하게 겨울을 이겨내고/ 강낭콩 줄기 햇빛 따라 커가듯/ 텃밭의 파뿌리는/ 칼날 같은 잎을 키워냈다”고 한다. 긴 시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결국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는 시인의 인생관이 오롯이 시로 담긴 작품이다. 시의 쾌락적 효용보다 교육적 효용을 활용하고 있다.
시 「불씨 하나」 역시 희망으로 이끄는 교육적 효용에 방점을 둔 작품이다. 사소한 일로 귀와 입을 닫고 살며 마음을 애태우다가 결국은 이른 아침 달맞이꽃으로 핀다. 「이쁜이 생각」도 희망의 메시지로 결론을 낸다. 시의 지리적 공간인 경안천은 각 마을에서 흘러내리는 지류를 통해 버려진 온갖 쓰레기가 떠내려와 모이는 곳이다. 천변에 사는 갈대와 창포와 부들은 이런 오염수를 걸러 맑은 물로 정화해 낸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운다. 화자는 이런 천변 산책로를 걸어가며 풀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고, 부들 잎으로 꽃방석을 만들려고 부들을 한아름 안고 있던 인물을 추억한다.
3.
나무와 숲을 제재로 한 시들도 많이 보인다. 「순이」는 살구나무가 있는 집에 사는 시적 주인공의 이야기다. 찬바람 쌩쌩 불 듯 토라지고, 춤추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발랄하고 당돌한 성격의 순이는 지금도 꽃이 피는 살구나무가 있는 집에 살고 있다. 어쩌면 이처럼 변덕스러운 것인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거나 마음일지도 모른다. 시 「먼 산이 보이는 날」에서 시인이 화자를 통해 가고 싶은 먼 곳은 아마 자연으로 어우러진 코로나 19 같은 전염병이 없는 천연의 공간일 것이다.
시인이 지향하는 천연의 공간은 본성에 충실한 순이 같은 인물이 사는 살구나무가 있는 마을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연의 마을에는 계절에 따라 꽃은 피었다 지고, 숲이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얼굴에 와닿는 것을 느끼며, 수수꽃다리 향기가 코끝으로 오는 곳이다. 화자는 이런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실이 아니라 자연이 오감으로 감각되는 공간을 소망하고 있다.
오월이 되어서야 성묘하러 갔습니다
비에 젖은 풀숲을 헤치고 갔습니다
언덕배기 뒷밭에 학비 보태던 감나무 없어지고
무성한 망초꽃만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농사일로 허리가 휜 아버지는
눈빛 마주치기조차 힘든 찔레꽃이었습니다
큰 나무였습니다
큰 산이었습니다
무덤가 옆 찔레꽃은
내리는 빗속에서도 피고 있었습니다
- 「찔레꽃」 전문
위 시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큰 나무와 큰 산과 찔레꽃으로 비유한다. 화자는 오월 풀숲으로 난 성묫길을 가면서 학비를 보태던 감나무가 있던 뒷밭에 망초꽃이 무성하게 피었음을 확인한다. 빗속에 피어있는 무덤가 옆에는 찔레꽃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환기한다. 농사일로 허리가 휜 아버지는 눈빛을 마주치기조차 어려운 찔레꽃이었으며, 큰 나무이자 큰 산이었다.
시인은 「붉은 벚꽃」에서 꽃과 생명의 순환을 진술한 뒤 “붉은 벚꽃이 불을 지피더니/ 연둣빛 잎새에 햇살 쏟아지고/ 푸른 숲이 되었다”고 한다. 「바람이 전하는 말」은 다른 나무들보다 싹이 늦게 나는 대추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바람에게 손글씨 편지를 받은 대추나무는 늦게나마 밤새 샘물을 퍼 올려 응어리진 옹이를 녹여내고 새잎을 틔운다.
극복의 사례와 의지로써 나무를 대상화시키기도 한다.
시 「가슴앓이」에서 화자는 산비탈을 오르며 오랜 시간을 견디며 살아낸 나무들을 관찰한다. 돌 틈과 자갈땅 위에서 삼백 년이나 견디며 자란 소나무와 오백오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켜온 은행나무다. 태풍에 뿌리가 뽑혀 넘어진 소나무도 있다. 은행나무는 다른 시에도 출현한다. 시 「용문산 계곡」에선 화자가 찾아간 여행지의 경관과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주체로 은행나무가 출연하고, 「용문사 은행나무」에서는 모난 가지가 잘려 나가고 병든 가지가 삭아 없어지고 벼락 맞은 가지가 부러져 나가는 고난과 수행의 주체로 출현한다. 표제시 「산새 소리」는 시인의 맑고 푸른 자연친화적 서정이 잘 드난 시다.
산은
강을 품에 안고
큰 바다를 꿈꾼다
강물은
산과 숲을 가슴에 새기고
바다로 흘러간다
숲속의 산새 소리
맑고 푸른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두 귀를 마구 때린다
- 「산새 소리」 전문
위 시는 산과 강과 숲과 바다가 연관을 맺으면서 하나의 일체로서 서로 자연을 형성함을 진술한다. 숲이 푸른 것은 강이 산을 품어서다. 강 역시 안기는 것만 아니라 산과 숲을 가슴에 안아 새긴다. 그러면서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숲속에 사는 산새가 우는데
소리가 맑고 색은 푸르다. 푸른 숲과 맑은 산새 소리가 시인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성정을 가늠케 한다. 이 시 「산새 소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시가 「숲속에서 부는 바람」이다.
시 「숲 속에서 부는 바람」에서 화자는 숲이 깊은 산 속에서만 있는 줄 알았고, 심마니만 가는 곳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숲에서 살고 싶어 흥얼거리는 주문을 외운 결과 어느새 “산새가 되어 숲속에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솔바람이 좋은 산새는 숲속의 바람이 된다. 시 「민둥산」은 산을 사람 머리카락 빠져 나가는 것에 비유한다. 현재 민둥산은 예전에는 짙푸른 숲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사람 머리처럼 민둥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모습에서 아버지를 환기한다. 「찔레꽃」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비유하고 있다.
4.
김성기의 시에는 자연 즉, 숲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표제시 「산새 소리」에서 산새는 물론, 「서리산 철쭉」에서 산비둘기, 「낮달」에서 뻐꾸기와 반딧불이와 소쩍새, 「아침을 여는 것들」에서 새와 구체적 물고기들, 「하현달」에서 반딧불이와 소쩍새 「깔딱고개」에서 산꿩, 「동물원의 하루」에서 다람쥐와 오랑우탄과 원숭이가 있다, 「추석 달」에서는 “강산이 변해버린 밤하늘에는/ 소쩍새 울어주던 별빛도 없이/ 별바라기 하던 할머니 누나도 없이/ 둥근 달만 떠 있었다.”고 한다.
시 「나빌레라」에서는 한강 둔치 코스모스 꽃밭에서 나비가 날아오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꽃밭에는 벌나비가 날아갈 듯하며, 이에 신이 나는 모습을 자진모리 장단에 어깨가 들썩들썩/ 초원에서 꽃사슴을 부르고, 흑두루미를 부른다”고 한다. 이들 시 가운에 「아침을 여는 것들」은 많은 동물들을 등장시킨다.
아침 다섯 시
동네 실개천을 따라 걸었다
새 박사 윤교수가 카메라를 들이대던 곳에
왜가리가 날아내렸다
청둥오리가 자맥질을 하고
여덟 칸 청춘열차가 사릉역을 지나가면
왜가리는 솟대가 되었다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산골에
산비둘기 뻐꾸기가 아침부터 짝을 찾았다
늙은 참새 수다에
덩굴장미 피었다 진 벤치에는
아침 이슬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수초 사이로 송사리 피라미 떼 튀어 올라
하루를 여는 길목
달팽이가 여행길에 올랐다
서해안 갈대가 실개천 따라 행진할 때
붓꽃도 나팔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 「아침을 여는 것들」 전문
새와 물고기와 연체동물과 여러 가지 꽃이 어울려 아침을 여는 풍경이 마치 신세계와 같다. 화자가 걷는 이른 아침 실개천은 왜가리가 날아 내리고 청둥오리가 자맥질을 하고 있다. 산비둘기와 뻐꾸기가 아침부터 짝을 찾느라 노래하고, 참새들은 수다를 떤다. 화사한 덩굴장미가 피었다 진 의자는 이슬이 앉아있다. 수초 사이로 송사리와 피라미 떼가 흘러 다닌다. 달팽이는 느린 걸음으로 대륙을 횡단하듯 기어간다. 붓꽃과 나팔꽃은 아침을 알리듯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시 「까투리와 장끼」는 내용이 시사적이다. 장끼를 아버지로 비유한다. 현재 인간 사회의 풍속과 문명을 장끼에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은 물론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자녀들 때문에 자식들 몰래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까투리와 장끼」처럼 「윤사월 스무날」도 인간의 행위를 산비둘기로 비유한다. 아마 시인으로 상정되는 산비둘기 부부가 짐을 꾸리고 이사를 가서 둥지를 틀어 안착하는 경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참새들의 수다」에서는 화자가 머리를 심은 후 참새들이 덕담을 하느라 수다를 떠는 것으로 의인화하고, 「하늘로 날아간 뻐꾸기」는 “뜨거운 불로 살을 태우고/ 매서운 쇠절구로 뼈를 갈아/ 상천한 혼령”이 뻐꾸기로 환생한 것으로 진술한다. 「아차산에서」는 까마귀가 비비새 가족 잔치를 훼방 놓고 있다.
부부유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시. 밴댕이 맛집을 찾아가다 거슬리는 말 한마디에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반응을 겪은 경험을 시 「밴댕이」로 형상화한다. 「어머니의 가을맞이」는 곤충을 출연시킨다. 가을에 메뚜기는 벼이삭처럼 몸 색깔이 누렇게 익어가고, 귀뚜라미가 짝을 부르는 노랫소리를 조롱박이 엿듣는다. 여치는 가을 달을 굴린다. 이에 덩달아 가을걷이를 하는 어머니의 부지런한 모습이 역동적이다. 「아침을 여는 것들」에서 달팽이가
대륙을 횡단하듯 기어가는 모습은 다른 시 「달팽이」로 다시 형상된다.
비 그친 이른 아침, 달팽이는
큰길을 가로질러 건너가고 있었다
걱정하는 마음에
나뭇잎으로 달팽이를 옮겨주려 했다
더듬이를 움직이던 달팽이는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루가 일 년 같은 그 길을
범선처럼 유유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촉 세우고 바람 따라
집 한 채 등에 업고 보금자리 찾아가고 있었다
당신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 「달팽이」 전문
화자가 달팽이를 발견한 공간은 “비 그친 이른 아침 산책길”이다.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건너고 있기에 사람의 발에 밟힐까 걱정스러워 달팽이를 나뭇잎으로 옮겨 주려는 화자. 그러나 달팽이는 다른 곳으로 피해 간다. 시인은 “하루가 일 년 같은” 길을 “범선처럼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달팽이”의 느린 생태적 특성을 비유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달팽이가 느린 걸음으로 도달하려는 곳은 ‘보금자리’인 “당신이 기다리는 그곳”이다. 아마 그곳은 풀과 나무와 꽃이 피고 지는, 숲이 우거진, 새들의 노랫소리가 즐겁고 물고기가 수초 사이로 유영하거나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자연공간이 아닐까?
5.
이상 김성기 시의 특징을 몇 가지로 유형화하여 정리해봤다. 그의 시에는 자연 사물, 그러니까 풀과 나무, 숲, 숲에서 피는 꽃, 숲이 발산하는 공기와 바람과 숲에 동거하는 새와 곤충의 노랫소리들, 그리고 물고기와 연체동물의 움직임이 입체적으로 형상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향하고 표현하는 시인의 자연을 닮은 순정한 마음이 시로 잘 드러나고 있다.
그가 보여준 거의 모든 풀과 나무는 푸른색과 꽃으로 환원된다. 죽은 나무가 아니고 시든 꽃이 아니다. 베어진 나무가 아니고 땅에 떨어진 꽃이 아니다. 꽃이 졌으면 열매로 대안을 찾아낸다. 이런 자연 사물에 비유되는 인간이나 인간의 사건들도 인고의 시간을 거쳐 긍정으로 끝을 맺는다. 시인의 밝고 순정한 삶과 인생관이 풀과 나무와 동물들에게 적실하게 투영되고 있다.
시에서 독자에게 “너는 꽃이다”라고 기쁘게 해 주는긍정의 시어를 던지는 시인, 농부의 손끝에서 자라는 누에처럼 식물성인 “뽕잎 책장”을 넘기고 새와 곤충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시를 읽고 시를 짓는 시인, 자연과 사람과 더불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 있는 삶의 가치로 여기는 시인 김성기. 다 자란 새끼 독수리가 둥지에서 나와 하늘을 높이 날 듯, 첫 시집 「산새 소리」에서 나와 시의 날개를 높이 더 높이 펴고, 대양의 돌고래처럼 시의 항진 또 항진하길 바란다
본문 일부
밴댕이
밴댕이 맛집 찾아가다가
거슬리는 말 한마디에
차창 틈새로 황소바람 들어왔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커져 나뭇가지 흔들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입 닫고 고개 돌리니
가슴앓이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회오리 한바탕 쓸고 간 자리에
먹장구름 몰려와 소낙비가 내렸다
밴댕이 소갈딱지 빗장 열어
푸념 덩어리 쏟아 내는 소리였다
밴댕이 부둥켜안고 눈물 쏟아 냈다
응어리 녹아내려 봇물 터져 나왔다
전국 노래자랑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면
체면도 던져버리고
어깨춤이 저절로 엉덩이가 들썩였다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도
벙어리 냉가슴 풀어헤쳤다
목청소리 드높이는 전국노래자랑은
신바람 나는 삶의 무대다
우리 동네 잔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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