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서 할 일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여태껏 살아오며 해놓은 게 없으니딱히 내세울 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이를 먹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집안의 어른이 되어 버렸다.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어영부영 승급이 되어 버린 셈이다.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고, 그래서 자연스레 자격지심도 느껴진다.
그렇기는 해도 어른이 되고 보니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편리한 점도 있다. 전처럼 세배를 다닐 일도 없어지고 대신에 앉아서 찾아오는 친족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기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다르지 않다. 설 명절을 맞으니 서울에 사는 조카들이 어김없이 내려온 것이다.
먼길을 달려와서 세배를 하니 고마운 한편으로 좀 겸연쩍기도 하다. 아직은 젊은 기분이 있고 안방 늙은이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일까. ‘무슨 본을 보인 어른이라고’ 하는 생각을 속으로 뇌이게 된다. 하나, 이게 엄연한 현실이니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금년으로 내 나이는 일흔에 한 살을 더 보태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집안에서 가장 연장자에 속한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렸을까. 나오는 건 한숨이요 깨우쳐지는 건 후회만 있을 뿐이다. 해서 새삼스레 도로의 삶을 살지 않았나 하는 회한에 잠기게 된다.
세배를 받고 보니 어렸을 적 설날 아침이면 마을 어른을 찾아뵙던 일이 떠오른다. 찾아가 세배를 하면 그렇게들 좋아 하셨다. ‘네가 왔구나’ 하면서 흐뭇해 하셨다. 그 모습을 그려보니 그때는 몰랐지만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아는 데는 머리로만 깨우칠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듯 나이 먹으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 입장에 서서 기분과 느낌이 파악되는 것이다.
어린 조카는 서울에서 출발하며 “큰 아버지, 지금 누나와 차를 탔습니다.‘ 하고 알려왔다. 그말을 듣고 나는 세뱃돈부터 꺼내놓았다. 먼 길 달려오는 것이 고맙고 얼마간은 어른으로서 도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거다.
조카들은 집안에서 드물게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상하게 내 윗대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형님의 손녀가 미술을 전공한데 이어, 막내 동생의 아들과 딸이 연극배우와 공연예술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우선 분야는 다르지만 예술을 한다는 의미에서 강한 동료의식을 갖는다. 먼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것은 그런 공감대가 있어서일 것이다. 조카들은 예술을 하는 만큼 감성이 남다르다. 때문에 내 작품의 애독자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을 읽고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것이었다. 내가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스무 살을 갓 넘겨 죽은 고모(나로서는 누나)의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
조카는 이번에 두가지 소식을 전해주고 갔다. 먼저 하나는 학교 홍보동영상을 소개했다. ‘서울예술대학교’ 신입생모집 홍보에 출연했다는 것이었다. ‘나 임이환 유럽 영에시티에서 공연하다’라며 첼로를 켜면서 외치는 장면이었다. 짜릿한 전율이 왔다.
그리고 하나는 아직 미 방영 상태로 이번주 일요일(2월 14일) 밤 10시 30분 kbs2 tv <다큐3일>에서 방영 할 것이란다. 이미 독립영화에서 데뷔한 제 동생 장환이와 함께 출연했단다.
흐뭇한 소식이다. 정진하여 일취월장하기를 바란다. 나는 하나의 책임의식을 느낀다. 우리집안에 일찍이 예술가가 없었던 만큼 내가 주춧돌을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찍이 내가 문학을 하고자 할 때 선친께서는 지극히 못마땅해 하셨다. 시골에 사신 분이 무엇을 알았겠냐마는 먼 일가 중에 문필에 종사한 분이 있어 가난을 면치 못한 다는 말을 듣고서 보이신 격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밥을 굶는 세대도 아니고 개성을 살려 표현 욕구를 마음껏 발현시키는 시대이니 공연한 편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카들이 세상에 나와 마음껏 제 기량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나 또한 단지 연장자가 아닌 어른으로서 그 중심에 서서 역할을 할 것을 다짐한다. 올바르게 살아서 모범을 보이는 이상의 좋은 가르침은 없다는 생각으로. 어느덧 한 집안의 어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2016)
첫댓글 '자동승급의 연장자'가 머리를 휑하게 스쳐 감니다.
나이들어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본분을 다하면 나중에는 " 잘했다" 할 것입니다.
모친 섬기고, 환자된 사모님 위해 정성을 다한 것은 저나 청석님이나 고희가 넘는 나이에
매우 장하고 특이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나 이런 호기는 없을 것입니다.
가족 중에 연예인이 생겼으니 큰 경사입니다~^^
어려서는 동네어른의 세배를 다니다보면 한나절이 다 걸렸는데 이제는 제가 집안에서
어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상한 세월에 회한만 스치는데 그러나 이제 부터라도 일을 찾아서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만이가 뭐라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나만이'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일컫는 여수말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공경받아야 할 어른이라는 의미이지요. "노인은 걸어다니는 도서관"이라는 말도 있고보면, 인생의 경륜이 실로 대단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집안의 최연장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른입니다. 더하여 가문의 본이 되시겠다는 새해의 다짐을 하시니 자녀분들은 물론하고 집안의 젊은이들이 선생님의 무언의 가르침을 받들어 나라의 인재가 되리라 믿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집안의 가장 연장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배다닐 일이 없어서 좋기는 하나 허망한 생각이 스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멀리 서울에서 조카들이 와서 얼굴을 보여주니 고마웠답니다.
아흔과 여든 일곱 어머님이 살아계신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까지 세배를 옵니다. 세배 오는 분들 앞에 늘 명절 음식을 차려내야 하는데. 해마다 자꾸만 버거워져요. 며느리도 늙어가니까요.ㅎㅎ
언제 나이를 먹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면 웃음만 나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곱게 늙어가시는 거 같습니다. 후손들한테 귀감이 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예술가 집안이 형성되는데 물꼬를 트시고 중심을 잡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저를 필둘 해서 우리 집안에 예술인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