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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山島
이준옥
이사를 한 이후, 책장 정리를 다시 하다 깜짝 놀랐다.
전5권의 대하소설 화산도 1,2,3권이 없다. 어디 다른 칸에 있나 싶어 황급히 책장을 살펴 봐도 없다. 책 배열상 대하소설은 책꽂이의 맨 윗칸에 자리했었다. 세세히 손가락으로 책을 훑어가며 다시 살펴보아도 역시나 없다. 손을 허리춤에 얹고 책장 앞에 서서 한숨을 들이쉬고 내어 쉬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이사하던 날이 떠올랐다.
책이 너무 많아 이삿짐센터 사람이 퉁명을 부렸다. 다른 짐에 비하여 책은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지식이란 본래 무거운 것 아닌가. 다시 말해 말도 무거운 것이다. 지키지 않을 말이라면 한없이 가볍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말이라면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 날 남편도 덩달아 책이 너무 많다며 목소리에 짜증이 담겼었다. 게다가 이제 새 책은 그만 사고 있는 책을 읽을 것이며, 읽는 것도 그만하고 쓰는 일을 하라는 잔소리까지 덤으로 얹었다. 읽는 것은 남의 인생이고, 쓰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나. 애초에 남편을 향해 낸 눈에 콩깍지가 씌이고 반했던 이유가 그 사람이 당시 한권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감성이 말랑한 시절에 남편이 암송해 주었던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시 한편은 단숨에나를 그 사람에게 메이게 하였다
無 題
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보고
눈썹을 길게 그렸었지요.
열 살 때 나물 캐러 다니는 게 좋았어요.
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고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은갑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요.
열네 살 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어요.
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
열다섯 살 땐 봄이 까닭 없이 슬펐어요.
그래서 그넷줄 잡은 채 얼굴 돌려 울었지요.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손을 잡고 걸으며 남편이 낭송해 주었던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스물두 살이었던 그때도 좋았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좋다. 막 사귀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그 밤 이 시 한편으로 그 사람은 나를 사랑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하였다. 그랬던 사람이 책이 너무 많다고 짜증을 부리다니. 이렇게 사랑은 시들어 가는 모양이었다.
대체 화산도 1,2,3권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화산도는 내가 아끼는 책 중의 하나다. 그러고 보니 다른 책들도 보이지 않고 책이 많이 비었다. 이삿짐센터의 커다란 박스 한 박스의 책이 몽땅 없는 것이다
- 당신 먼저 이사 할 집에 가 있어.
남편의 말대로 이사할 집에서 빈둥대다 이삿짐을 받았다. 센터의 직원들이 짐을 정리하고 수주가 지나서야 센터 직원들이 대충 정리해 놓고 간 책들을 다시 정리하다 책이 없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저녁까지 화를 누르고 참다 퇴근하여 돌아 온 남편에게 왜 책을 버렸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내가 왜 책을 버리느냐며 자신을 책이나 버리는 사람으로 몬다고 나보다 더 화를 내었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한 박스를 실수로 덜 실었나 싶어 남편에게 무턱대고 화를 낸 것이 조금 미안하기는 하였지만 지금까지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없으니 더 애가 탔다.
인터넷의 헌책방을 다 뒤지니 한곳에 다섯 권이 다 있는데 권당 1만2천원 달란다. 참고로 이 책의 발행가는 1988년 당시 3천5백원이었다. 헌책이면 더 쌀 줄 알았더니 무려 3배 정도 더 비쌌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가격은 더 올라 다섯 권이 19만원까지 올라 와 있다. 헌책방 측과 통화를 하며 발행가를 말하였더니 희소가치 때문에 그렇다며 비싸면 사지 말라며 배짱을 부렸다. 또한 1권에서 3권까지는 안 팔고 전권을 다 사야 한다는 책방 주인의 대답이다. 한숨과 함께 주문을 하고 책이 왔다. 책은 깨끗했다. 약간 누렇게 바랬을 뿐. 1권을 펼쳐들고 앞 뒷장을 살피던 나는 1권의 첫 페이지로 들어가기 전의 빈 여백에 쓰여 진 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너의 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제 대학생이 되는 너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
전공과 더불어 폭 넓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하여 지성과 이성의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주어 고맙다.
- 1989년 삼월 아버지가 -
친필로 1권 첫 장의 여백에 만년필로 쓰여 진 글씨는 달필이었다. 펜의 촉은 뾰족하였다. 글씨체가 간송 미술관에서 보았던 대원군이 쓰고 친 날카로운 난 잎의 끝부분과 서체를 연상 시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학 합격한 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 아비의 심정이 전해져 왔다. 그 사람은 화산도를 읽었을 것이고 화산도가 지니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일어났던 전쟁의 아픔과 광기,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념이나 신념이 얼마나 순결하고, 가혹하며, 무겁고, 혹은 잔인하기 까지 한 지, 또한 힘없는 무지한 백성에게 선택이란 수단이 던져졌을 때, 그것이 어느 쪽이든, 백성에게 주는 삶의 무게가 어떠한지를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아들이 자신의 탯줄을 묻은 이 땅을, 어디에서 살 건 가슴 깊이 뜨겁게 사랑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화산도를 아들에게 선물한 그는 분명 평범한 아버지는 아니지 싶었다.
화산도는 일반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일본의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 선생이 제주 4.3사태를 소재로 1976년 2월부터 1981년 8월까지 6년 반 동안 일본 문예춘추사「문학계」에 연재해 새로운 문학사조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이다.
4.3사태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중 8만여 명이 살해 되었다는 그 잔인한 혼돈과 혼란의 시기를 만개한 벚꽃처럼 화려하게 그는 써내려갔다. 화려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독한 슬픔과 고통이라는 것을 책은 보여 준다. 화려하기만 하고 향기는 없는 벚꽃과 달리 지독한 향기를 이 책은 내 뿜는다. 또한 그 당시 제주의 풍습과 생활상이 생생히 담겨 귀중한 기록물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금서였다. 인터넷에 대통령도 온갖 험한 말로 욕지거리 까지 하는 시절이다. 읽으면 안 되는 책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댓글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헛웃음이 나오는 기막힌 일이지만 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와, 읽어서는 안 되는 책들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가수들의 이름도 영어로 부르면 안 되서 죄다 한글로 바꾸던 시절이었다. 젊은 목숨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외치다가 몽둥이찜질과 물고문으로, 혹은 체류탄 파편에 맞아 죽어가던 시절이었다. 신문도 검열을 받아서 발행되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우리를 잘 살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박정희 독재시절이었다. 신기하기까지 한 것은 권정생 선생의 동화도 그 시절 금서였다. 이제는 놀라운 게 아니라 우스워서 고급진 유우머로 치부될 이야기다.
문민정부라는 이름을 붙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금서를 해금 시켰다. 그 해금으로 인해 우리가 읽을 수 없었던 많은 책들이 우리 곁으로 왔다.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 고리끼의 어머니,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신동엽 전집,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그리고 화산도. 등등. 나의 정신은 매우 흥분되어 산란을 하기 위해 강기슭을 죽자하고 뛰어 오르는 연어처럼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읽었다. 막 아기를 낳고 새댁이었던 나는 책을 읽느라 가사와 육아에 소홀하게 되어 책을 좋아하고 당시집 한권을 거의 암송하는 남자와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언쟁을 벌이게 되었다. 제주 4.3사태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몰랐던 무지한 나는 화산도를 읽고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제주 4.3사태에 대하여는 아마 그 누구도 김석범의 화산도를 능가하는 소설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화산도를 쓴 김석범은 책이 금서였듯이 조국을 방문할 수 없었다. 해금이 되어 노구를 이끌고 김석범이 김포공항에 내려 처음 한 일은 김포공항의 바닥에 몸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여 땅에 키스를 한 일이다. 흙이 아닌 시멘트 바닥이었지만 제주4.3사태를 피해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밀항 후 처음으로 조국에 정식으로 발을 디딘 순간의 감격을 그는 키스를 하는 것으로 벅차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언제든 조국에 올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었다.
책을 어루만지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쑥날쑥 했다. 날카로운 만년필의 촉으로 아들에게 서문을 써서 선물했던 아비의 심정을 아들은 헤아리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들은 책을 읽지도 않았구나 싶었다. 책은 세월이 지나 누렇게 변해 있었지만 깨끗했고 손때가 묻은 흔적이 없었다. 읽었다면 아버지의 친필이 들어 있는 화산도를 헌 책방에 팔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읽었다면 아버지의 친필이 소중해서라도 책을 잘 간직해 두었을 것이다. 안타까웠다. 아들이 아버지를 버린 것 같은 비약감 마저 들었다.
어떤 인연으로 그 책이 나에게 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 그 서문을 읽으며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만나서 차 한 잔을 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웬지 우리는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디 단서가 될 만한 메모가 없을 까 하여 책을 훑어보기도 하였다. 동네 이름이라도 적혀 있다면 그냥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그 동네에 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알겠는가. 그와 나는 서로 모르지만 같은 시각에 스쳐 지나가다 몸을 부딪쳐 어머, 죄송합니다. 하는 인사를 나눌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그때 벌써 그의 아들이 대학생이었으니 그는 어쩌면 이미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고, 75세 전 후의 멋진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만나서 생면부지의 여인이 자신의 필적과 생각을 25년이나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그는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반드시 서로가 소통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나도 나를 내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궁금해 하며 기억 할 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나에게 있어 책읽기란 연애와 같다. 화산도를 읽던 때의 시간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의 기억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련할 것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기 어려운 것은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과 설레임으로 사랑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긴 대하소설을 읽었던 밤들은 스스로 나를 이겨내고 위안 받았던 밤들이다. 육아와 결혼이 반드시 기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소모되고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았을 때 나는 책을 읽으며 위안 받고 이겨냈다. 남편 몰래 딴 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고 후회되더라도 잠시의 위안을 받는 여인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싶다. 그 연유로 수많은 애인이 나의 곁을 스쳐 갔으며 나는 불륜에 충실하여 그 애인을 마음껏 사랑하였다. 나를 환희에 차게 한 애인도 있었고, 절망에 빠트린 애인도 있었으며, 파안대소하게 한 애인도 있었다. 나를 실망시켜 버려버린 애인도 있었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애인도 있었다. 화산도는 나를 전율하게 한 애인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전혀 모르던 미지의 세계에 당도하게 한 애인이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어서 온갖 것을 손가락의 터치 하나면 알 수 있지만 그 시대에는 이렇게 책을 통해야만 미지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아주 깊이 있는 미지의 세계로의 입문은 역시 책이다. 그것은 먼 미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걷기 때문에 동물과 다른 것이 아니고 책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른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미지의 세계는 존재한다. 지금의 미지의 세계는 빈부 격차다. 빈부 격차를 줄이는 일은 어쩌면 인류가 화성이나 명왕성에 가는 일 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그 미지의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 할 것이다. 그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결국은 책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은 세계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는 서문이 담긴 책을 선물해야 한다.
_경기 양평 출생
-KBS라디오,한국수필 공동주관 수필추천완료(1988)
-제1회 <전태일 문학상>에 소설 '민들레' 당선(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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