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나는 지인들과 송구영신의 의미를 담은 문자 메시지와 카카오 톡의 ‘이모티콘’으로 인사말을 보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에는 연하엽서나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정성껏 만들어 보냈었지만, 휴대폰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멋지게 디자인된 영상카드를 글자 몇 자와 이름만 바꿔 전달하는 편리함에 익숙해 가고 있는 요즘의 세태이다. 그러다가 문득 죽마고우 종이의 문자 메시지가 눈에 띠었다. ‘가치 있는 삶’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짤막한 글이었다. 불현듯 종이 이 친구가 이제 ‘지공선사’(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나이)가 되니 철이 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의 고향은 논농사를 많이 짓는 김제 만경평야에 있다. 지평선을 떠올리게 하는 그곳은 여름이면 메뚜기와 잠자리 떼가 들판을 즐겁게 수를 놓으며, 가을이면 ‘황금물결’이 고개 숙여 흥겹게 춤을 추는 고장이다.
문득 종이와 함께 고향에서 소꿉장난하며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동갑내기 친구인 명근이와 종이 그리고 나, 세 명은 늘 붙어 다녔던 이른 바 삼총사였다. 하늘은 맑고 높아 잠자리가 짝짓기를 하던 여름철 어느 날, 우리들은 논두렁을 운동장 삼아, 뒷산을 놀이터 삼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햇살이 유난히도 어여쁜 빛을 선사하던 날 오후였다. 명근이가 심심했던지 종이를 놀려줄 심보로 나에게 제안했다. 잠자리 날개들을 살짝 비틀어 댓똘(큰 도랑의 우리 고향 옛말) 위로 던져 보자는 것이다. 나는 무심코 그러자고 했고 명근이는 잠자리 몇 마리를 댓똘로 힘차게 내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본 종이가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잠자리를 건지겠다며 후다닥 옷을 벗고 물속으로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다. 평소에 늘 하던 물놀이인지라 쉽게 잠자리를 건져 헤엄치며 나올 것 같았던 종이는 그날따라 어찌 된 일인지 한참 동안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때마침 상류에서 수문을 활짝 열었는지 물살이 세고 수면이 높이 올라와 있었다. 한참 후 한 번 그리고 잠시 후 또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던 내 친구 종이는 다시 물속으로 잠기더니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함께 물놀이를 할 생각에 옷을 벗고 있던 명근이는 팬티 바람으로 마을 쪽 빨래터로 뛰어가며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주세요!”라며 소리쳤고, 나는 종이가 뛰어든 방향으로 따라가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친구가 수면 위로 솟아오르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다. 짐자전거에 막걸리 통을 잔득 싣고 지나가던 양조장 배달부 아저씨가 나를 보고서는 달려와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다. 수영과 잠수를 몇 번 반복하던 그 아저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종이를 건져냈다. 뭍으로 나온 종이는 어찌나 물을 많이 먹었는지 배가 남산만 해져 있었고, 그 아저씨는 종이 머리를 옆으로 젖히고 배를 누르며 응급조치를 하여 물을 토하게 했다. 잠시 후 죽을 줄로만 알았던 내 친구 종이가 눈을 뜨며 살아났다. 우리는 울지도 못 하고 숨만 죽이고 있었다. 종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니 얼마나 놀랍고 기쁘던지 그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던 사건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들이 대똘에서 멱을 감고 있으면 긴 장대를 들고 와서 호령하시는 종이의 할아버지에게 야단을 맞고 줄행랑을 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종이와 명근이는 그 후로도 가끔 다투곤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왔던 그 무서웠던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그렇게 매일같이 만나 재미있게 지내던 우리 삼총사는 초등학교 4학년 즈음 종이가 도회지로 전학을 가면서 헤어져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
돌이켜 보면 종이는 생각이 깊고 자기 주관이 강한 친구였으며, 명근이는 체격이 비교적 크고 힘이 세며 열정적이었다. 반면 나는 침착하고 세심하며 감수성이 많았던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성격이었지만 우리 삼총사는 곁에 없으면 허전하고 늘 함께 붙어 다니며 공부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지내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죽마고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종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가치 있는 삶
서울 가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건,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건
세월은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 세월의 가치와 갈림은 자신이 결정해야 할 몫이다.
무탈한 한 해이길 바란다.
경자년 새해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며··· 종이가.’
이제는 친구 종이나 우리들이 어느덧 육십 중반에 들어서 있다. 마음은 아직 젊고 할 일도 많은데, 추억의 물가에 앉아 청승을 떨고 있다.
얼마 전 인생 백세를 산 김형석 노교수의 강연 말씀이 생각난다. ‘인생을 되 짚어보니 가장 좋았던 나이는 60세부터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는 75세 정도까지이다.’고 하시며 ‘나무에 비유하면 그 열매를 맺어 주위에 나눠줄 수 있는 시기이자,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가치 있게 살아가는 나이’라는 것이다. 과연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차를 타고 평탄한 길을 가든, 한적한 오솔길을 산책하듯 걸어가든 그 선택은 내 몫인데 말이다.
‘종이야, 우리가 어느 길을 가든 올 봄에는 삼총사가 한번 만나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하자. 지금이 우리가 가장 좋은 시절 안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