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63
쉽게 편하게, 상상을 현실로
신병은(시인)
지금도 그렇지만 시에 대한 의문이 두 가지 있다.
‘왜 시를 어렵게 공부해야 하나?’
‘왜 시를 어렵게 쓰야 하나?
요즘도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가 많다.
누가 내 시를 이해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도록 어려운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시를 접하면서 ‘외계인이 많이 산다’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언어를 억지로 우겨넣거나 짜 넣은 듯한 막무가내로 내뱉어 두고 있는 시 아닌 시들이 많다. 그들의 시를 읽고 있으면 코로나 정국보다 더 답답하고 안개속에 헤메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평소에 시를 잘 쓰려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어렵게 쓰지 말고, 편하고 쉽게 쓰라고 주문한다.
예술이 어려워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요즘 와서는 시도 그렇고 미술도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해가 되면 고전, 이해가 안 되면 현대라는 말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아무리 보고 아무리 읽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식한 건가 하는 자책마저 든다. 나름 나도 똑똑한 사람인데 그 시인과 화가가 나를 무식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 분하기까지 한 것이다.
좋은 예술품, 좋은 시는 먼저 이해가 잘되는 쉽고 마음에 와 닿아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는 곳
가을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구르다가 모여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찾아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그 곳이 없으면
나뭇잎들의 굴러다님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휴지들의 구겨진 꿈을
누가 거두어 주나
우리들 사랑도 마음 한 구석에서
싹트는 것이니까 - 이창건 <구석> 전문
구석은 뒤안, 소외, 위안, 외로움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석이라는 공간은 구겨진 휴지들이 찾는 곳, 굴러다니던 나뭇잎이 멈추는 곳,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이 싹트는 곳이다.
소외당한 것들에 대한 배려와 끝내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구석이다.
구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쉽고 편하면서 의미가 넓게 다가온다.
며칠 전에 페친이 낮달을 올려놓은 사진을 보았다.
하나의 작품이었다.
지중해의 바다색, 하늘색을 닮은 형광색이 감도는 하나로 모든 산업분야를 작품화한 이브클랭의 블루 피그먼트가 생각났다. 이브클랭 고등학교 때 친구와 지중해의 바닷가에 누워 하늘 어딘가에 사인을 하면서 나는 하늘이 나의 첫 작품이라고 한 적이 있다.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색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지중해의 바다색과 하늘색을 자신의 색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색으로 고유명사화 한 것이다.
참 수월하게 작품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림을 잘 그려야만 화가가 될 수 있냐는 생각을 했다
이브클링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색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미술재료의 혁신성을 이룬 데미언허스트의 상어처럼, 죽음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이 상상할 수 없었던 재료를 활용하여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으로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화려함이라는 죽음에 대한 관점을 전환시켜 주었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 블랙리스트작가인 아이웨이웨이 작가의 <해바라기씨 2010>도 마찬가지다. 그는 1600명의 장인들을 동원하여 2년 동안 수작업으로 도자기 1억개를 제작하여 설치했다.
도자기에 대한 통념을 깨뜨린 것으로 이면에 중국의 힘을 보여준 전시였다.
전시가 끝나고 해바라기 씨 1개당 4.5달러에 판매하기도 했다.
2007년 동화 Fairtale(1001Chairs)로 1001개의 청나라시대 중국 의자를 전시하기 했다.
단 한 번도 외국에 가보지 못한 소외계층 중국인 1001명을 초대하는 프로젝트로 42억원의 예산이 들었다고 한다. 또 미술관 숙박프로그램으로 일생에 단 한 번의 체험으로 12마리의 순록과 함께 자는 미술관 체험, 우주인 체험을 한다든지, 물위를 걷는 기적의 체험을 한다든지 하는 조형예술의 영역이 확장된다.
창의성Creativity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직업의 으뜸으로 손꼽기도 한다.
창의성은 없는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있는 것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다르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파블로 피카소, 뒤샹, 스티브잡스도 다르게 생각하고different thinking 다르게 본 사람이다.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이다.
남자가 치마를 입는다든지, 굽 없는 하이힐을 생각해본다든지, 마르셀 뒤샹의 <샘>처럼 미술에 관한 상식을 깨뜨려본다든지 하는 일이다. 사과 반쪽에 성냥개비를 꽂아보고, 나이프에 노를 꽂고,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를 만드는 일이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는 사람이다.
하늘의 구름을 길이를 재어본다든지 계란을 부화하기 위해 품에 달걀을 품어보는 사람이다.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황진이처럼 시간을 공간으로 본다든지. 벌레 먹은 나뭇잎을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으로 본다든지, 지주목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기대어 사는 삶을 본다든지, 겨우살이를 보고 얹혀사는 삶을 생각한다든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꽃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김종삼 시인은 언젠가 어린 딸의 봄소풍을 따라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부분은 소풍을 갈 적에는 어머니들이 동행하는 분위기라 아버지인 시인은 멋쩍기도 해서 혼자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런데 딸이 아버지를 찾아보니 아버지가 멀찌감치 떨어진 햇살 좋은 잔디밭에 누워 있었는데 그것도 배위에 크다란 돌을 올려놓고 누워있는 것을 본 딸이 놀라 왜 그러냐고 묻자 ‘응, 하늘로 날아올라 어딘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인이 표현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봄의 서정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전문
시가 뭐냐는 물음에 시인이 못되어 모른다고 대답하고선 남대문 시장에서 빈대떡을 먹다 문득 생각이 났다. 고생을 하면서도 순하고 명랑하고 인정이 있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고귀한 인류고 영원한 광명이라고 한다.
정 많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결국 시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서 특별한 사람이라고, 시는 일상 중 일상보기란 뜻으로 다가왔다. 봄날에 꼭 하늘로 날아 올라가 버릴 것 같아 큰 돌을 배위에 올려놓고 누워있는 것처럼 조금은 낯설고 다른 생각일 뿐이다.
예술은 불가능은 없다. 상상을 현실로....
아인슈타인은 상상이 지식보다 중요하다며 상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예술가라 했다.
예술의 충동은 기존의 틀을 깨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며 예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가 시인이고 소설가라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