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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18 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3장 12절-14절
“하나님의 대사 1, 2, 3권” “증언” “사랑의 메신저”등을 쓰신 김하중 장로님은 1965년에 서울대학교의 중문과에 입학하였습니다. 1965년 당시에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며 국교가 수립될 것을 꿈에도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중문과에 입학하신 이유는 장로님은 두 가지의 꿈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언젠가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할 것인데 국교를 수립할 당시 한중수교의 주역이 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주중 대한민국 대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꿈이 있으신 장로님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첫 단계로 중문과에 입학하였습니다. 결국 69년도에 대학졸업, 72년에는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시고, 73년에는 제 7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시므로 외무부에서 근무하시게 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외교관으로 재직하시다가, 1992년도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인 국교를 수립할 때 주 중국 공사로서 한중 수교의 주역이 되시므로 첫 번째 꿈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3년간 중국에서 공사로 재직하시다가 1995년에 외무부의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부임하시면서 “다음에 다시 중국에 올 때에는 반드시 주 중국 대사로 부임하겠다.”는 말씀하시고 귀국하신 후, 2001년도 10월에 결국 주 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부임하시게 되므로 두 번째 꿈도 이루시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로님의 꿈이 장로님 개인의 꿈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구체적인 꿈을 갖고 앞 만 보고 나아오신 장로님께 하나님께서 세계 선교의 중심지인 중국의 수도 북경에 하나님의 대사로 부임케 하신 것입니다. 꿈을 갖고, 정렬을 가지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도 승리한 신앙인을 소개합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사도바울의 신앙고백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 12절과 14절에서 매우 격앙된 어조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는데,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해 푯대를 향해서 좇아갑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외치는 바울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그 때는 로마감옥에 갇혀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청년도 아니고 이미 노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달랐던 꿈과 희망도 나이와 상황 때문에 접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는 불과 4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서신 속에 기쁨이라는 말을 무려 16번이나 외칠 정도로 바울은 주께서 주시는 기쁨과 당당함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기쁘고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로 바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12절에서 말씀합니다.
늘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날마다 성장하는 신앙생활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자동차와 배는 전진과 후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후진을 할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도 작전상 후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는 결코 후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천성을 향하여 날마다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라지 않고 전진하지 못하는 신앙인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결국은 안타까운 결과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독수리같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힘찬 신앙을 말했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10장 39절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을 비유로 천국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싹이 트고,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는 이야기와 밀가루와 섞이면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크게 부풀게 하는 누룩의 비유는 믿음의 성장을 이룬 자만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해가 죽은 바다가 된 이유는 흐리지 않고 고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장하지 못하는 믿음은 대부분 부패합니다.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은 한 달란트 가졌느냐? 다섯 달란트 가졌느냐? 하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처럼 나의 재주, 나의 배경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한 달란트의 인간일지라도 어떻게 하늘나라를 위하여 성장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담 안의 형제들이 성경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국 148개 감방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기쁩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믿음이란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성장하지 못하면 성숙을 기대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영적 수준에 만족하지 마시고, 날마다 성장하여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 지시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을 우리말 성경은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이 주신 은혜에 붙잡혔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붙잡혔다는 말씀입니다.
지난주 말씀에서처럼 믿음이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혔다는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헌신과 충성된 종의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혀서 바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비겁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사랑에 붙잡혀서 반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한 비겁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붙잡혀 모두가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2007년 5월 26일 방영된 ‘MBC 스페셜- 한 발의 디바, 레나 마리아’편에서는 선천적으로 두 팔이 없고 한쪽 발이 기형적으로 짧은 스웨덴 가수 레나 마리아가 소개됐습니다.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천상의 목소리”의 가스펠 싱어 레나 마리아, 그녀는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 하보 마을에서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 보호소에 맡길 것을 권유했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의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그녀를 정상아와 똑같이 신앙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녀의 팔을 대신하는 것은 한발과 다섯 발가락. 그러나 레나는 피아노도 칠 수 있고 칼질하면서 남들처럼 요리도 하고 핸드폰 문자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십자수며 무사고 운전을 자랑하는 베스트 드라이버이기도합니다.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스웨덴 대표로 세계 장애자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으며 “88서울 올림픽”때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성가대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에서 음악전공을 시작하여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가스펠싱어로서의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1년 일본 굴지의 방송 TV 아사히에서 “목표를 향해” 축약판이 <뉴스 스테이션>에서 방영된 것을 계기로 199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그녀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수기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9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특히 기독교 인구가 적은 일본에서 그녀의 책과 콘서트는 복음 전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프로 가스펠싱어로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은혜로운 찬양과 간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합니다. 레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날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여긴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장애가 믿음과 더불어 오늘날 자신을 있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장애를 딛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감동적이지 않으십니까?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이러한 장애를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비관하면서, 살지라도 죽지 못해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러한 장애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무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날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쁩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진정으로 승리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히면 성장함은 물론 성숙한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고린도 후서 4장 7절에서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예수)를 이 질그릇(약한 인간)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를 내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부활)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사랑에 붙잡히면 우리에게서 환경과 여건과 나 자신을 이실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붙잡힌다는 것은 전적인 항복, 전적인 헌신입니다. 내가 살아있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련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죽으면, 지혜로우시고, 능력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사시기 때문에 내 능력이 아니고, 내 지혜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지혜가 내 삶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보다 내 일을 더 잘하시는 예수님께서 내 일을 대신 하시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상 받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힌 바울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좇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신약 27권의 성경 중에서 무려 반 이상을 쓴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자기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전의 자신의 삶은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끝까지 좇아가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어떻게 이러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 중의 괴수인 나 같은 죄인을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려고 불러 주셨다는 사실에 바울이 감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그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다는 인생의 목표가 뚜렷해졌던 것입니다.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너무 공부를 못해서 선생님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서 자퇴를 권했습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질(Winston Churchill)은 초등학교 졸업까지 학습 지진아로서 특수반에 있었습니다. 또한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너무 성적이 나빠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정신박약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 세 사람은 이 세계를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헤겔은 ‘역사철학’이라는 책의 맨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온 인류 역사에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가 정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뿐만 아니라, 성경 속의 모든 위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른 목표를 세우고 끝없이 집중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면류관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 나름대로 왜 자기 자신의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알지도 못하고, 해보지 않았고,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그런 일을 해야 할 때 정신박약아가 아닌 담에야 왜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묵묵히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고, 결국 온 인류의 멸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왔다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우제가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잠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시는 일이 있으십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바울처럼 우리들도 지금 현실에서 자만하여 멈추거나, 실망하여 결코 뒤로 물러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글로벌 찬양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만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수께서는 우리들이 끝없이 노력하고, 중단 없이 전진하여,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이 땅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로 가득 채우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푯대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잡힌바 된 우리들은 주님께서 나를 써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주의 선한도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즉 우리에게 주실 생명의 면류관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영적인 성숙과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어려우면 기도하시고, 복을 받으면 감사하시고, 마음에 기쁨이 넘치면 찬양으로 영광 돌립시다.
하나님께서 시마다, 때마다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크리스천들은 모두가 승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