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하늘바라기
모처럼 약간의 비가 뿌리고 지나간 엊그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야생초들을 훔쳐 제 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백일홍과 메꽃, 들깨와 강낭콩, 월남고추와 포도 묘목의 조합이니 야생초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하고, 우연히 길가에 씨가 떨어져 제멋대로 자란 식물들을 옮겨온 것이라 훔쳤다고는 하여도 법에 걸릴 일은 아니지만, 잘 자라는 풀꽃들을 무단히 옮겨온 것은 사실이니 조금 겸연쩍은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제 꽃밭은 작년 세월호 사건이 터진 다음 달 고교 벽화동아리 학생들과 동네사람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던 공터 옆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아래의 너비 두 뼘에 길이 20미터인 조각 땅입니다. 하늘바라기를 하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벽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고 있고, 벽화 아래 조각 땅에 옮겨 심은 풀꽃들은 작년 4월의 무참했던 어떤 사건을 잊게 해주려는 듯 볼 만한 경치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다른 주민들이 무심한 덕에 제일 게을렀던 제가 이것저것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만, 그때 같은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꽃밭 가꾸기라서 신명이 나지 않는 탓인 듯싶은데, 역시 깊은 맛을 나타내는 데는 여러 사람의 입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라 안이 전염병 메르스 때문에 온통 난리입니다. 이웃 도시인 평택과 동탄에서 메르스가 기세를 부려 샌드위치가 된 격인 오산시는 완전히 적막강산입니다. 휴업한 학교가 많아 길거리가 조용하고 심지어 5일장도 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자꾸 안 좋은 일이 겹치나 몰러. 작년에는 세월호 때문에 그 난리더니……”
단골로 다니는 어르신이 2주일 만에 나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6.25 참전용사로 여야와 좌우익을 편애하지 않고 가장 냉정하게 나라 일을 걱정하는 분이신데 이번에도 정확히 맥을 짚어 주십니다.
“쉬쉬 하다가 일을 더 키웠어. 자기들을 믿어달라고 말하기 전에 국민들을 믿고 모든 걸 밝혔으면 좀 좋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국민 수준을 못 따라 온 탓이여.”
그렇게 말씀을 흐리신 후 책 몇 권 챙겨 서둘러 나가십니다. 지역 참전유공자협회의 총무를 맡으셨는데 회원들이 모두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서 늙은이들 챙기는 일이 바쁘다고 하십니다.
“밭뙈기 조금 얻어서 집에서 먹을 채소를 키우는데 가물어서 큰일이여.”
잠시도 쉬지를 못하시는 성품이시라 팔순을 훌쩍 넘은 연세에 바쁘신 와중에도 텃밭을 가꾸시는 것입니다. 친구이신 노병들과 함께 가뭄 걱정을 하실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저도 꽃밭에 물을 주었습니다. 비가 왔다지만 병아리 눈물만큼 온 탓에 자꾸 말라가는 것입니다.
“소나기 한 줄금 시원하게 내리지 않고……”
불평을 해봅니다. 꽃밭은 작년에 주민 한 분이 심었던 대파가 제멋대로 씨앗을 떨어트려 싹을 틔운 게 꽃대를 내밀고 있고, 앵두나무 몇 그루가 살아남아 가지를 뻗고 있을 뿐, 잡초들이 제 세상을 만난 양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4월의 그 사건 때에는 참견장이들이 많았는데……”
5월 초에 고추 모종 열과 가지 넷, 호박 둘을 잡초 사이에 심어 밭 명색의 구색을 갖추려 했는데 워낙이 가물었던 탓으로 호박 하나, 고추 셋, 가지 하나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혼자 하려니 신명이 나지 않아 물주기를 게을리 한 탓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되나. 어르신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최근에 들깨 모종 열과 고구마 모종 열, 청량 고추 열, 월남 고추 열을 더 심었는데 그래도 아직 잡초가 훨씬 많습니다. 5월 초에 백일홍과 취나물, 강낭콩의 씨앗을 주신 이가 있어 뿌려 두기도 했는데 콩 외에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버린 듯합니다.
“이게 다 업보여.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이것저것 일만 벌렸을 뿐 단도리를 할 줄 몰러. 만사가 불여튼튼인데……”
어르신과의 대화 도중에 얻어들은 말입니다. ‘단도리’는 ‘야무지게 마무리하다’의 뜻이 있는 일본어라고 알고 있었으므로 어르신의 말씀하시는 뜻을 짐작한 제가 지혜를 여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지요? 일은 이미 벌어졌는데……”
어르신은 언사를 높여 꾸지람의 말씀을 주십니다. 해결책을 묻는 제가 ‘일’을 만든 장본인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떡하기는 뭘 어떡혀? 소 잃었다고 외양간 안 고칠껴? ”
비름나물과 까마종 등 잡초들이 주인인 꽃밭에 물을 주면서 어르신의 말씀을 되새겨 흉내를 내봅니다. 제게 주신 꾸지람이신 듯싶지만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신 줄 알고 있는 탓입니다.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이제부터라도 잘해야 할 것 아녀?”
어르신은 나라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평소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기를 즐기는 분이시니 단단히 화가 나셨을 것입니다.
“그 사람, 셋째 나이밖에 안 되어 보이던데……”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본 메르스 관련 부처의 장관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인 셋째 동생뻘인데 내 나이만큼이나 늙어 보이는 것이 마음고생이 크기는 컸던 모양입니다.
“그 친구, 모든 생명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랑가 몰라……”
제 꽃밭의 주인은 이름 없는 잡초들입니다. 제멋대로 자라나서 제멋대로 꽃을 피우는 잡초들……씨앗을 맺는 것도 참으로 열심히 하는……두어 달 열심히 꽃밭을 지켜본 결과 깨달은 것이 있는데 ‘모든 식물은 꽃을 피운다’는 것입니다.
“그 놈들, 참 질기네…….”
잡초라고는 하지만 애당초 꽃밭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던 가족이었던지라 지나치게 자라지만 않으면 그대로 놓아두는데 이름도 잘 모르는 풀들이 꽃을 피우는 게 신통하기만 합니다. 연분홍과 하양, 노랑, 자주빛깔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길거나 넓거나 둥그렇거나 뾰쪽하거나 한 이파리들이 나름 개성이 있어 뽑아버리기 어렵습니다.
“그 친구는 알랑가 몰라…… 하기는 나보다 젊은데 알 까닭이 없지……”
모든 식물은 꽃을 피운다…… 태어난 목적의 전부인 듯이 열심히……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고 가루받이를 하여 씨앗을 맺고 다음 생을 잇는다…… 이 간명한 사실을 예전에도 분명 알았을 텐데 갑자기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양 눈길이 닿는 이유는 제 나이가 어지간해진 탓일 것입니다.
“비라도 한 줄금 시원히 오시지 않고……”
벽화 속의 아이들처럼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가뭄이 끝나면 메르스 바이러스도 잠잠해질까 싶기는 하지만, 꽃밭에 물주기를 할 수 있을 뿐인 우리는 그저 하늘의 도움을 빌어 보는 것입니다.
“소 잃었다고 외양간 안 고칠껴? 이제도 정신 안 차릴껴?”
어르신이 남기신 말씀들을 되새겨 봅니다. 그럴 일은 거의 없을 테지만 나보다 몇 살 어린 그 겉 늙은이 장관을 비롯한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주기를 바라며…….
자연인으로 사시는 삶... 잠깐 엿봤지만 은근한 감동이 있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나이 들수록 꼰대 소리 들을 때가 많아지는데 잘 피해가시는 삶이로군요.
미소가 절로....^^
'병아리 눈물'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며 뒷북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하는데 반대로 '소잃고 외양간 안 고칠겨?'라고 표현하니 이 또한 가슴에 와 닳습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외양간 고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아 답답합니다.
참 글이 맘에 드네요 팬할게요 화이팅요 ^^
세월아 멈춰라!!
잘읽고 갑니다
그저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는 우리 국민들이 바로 애국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기.나름이긴한데.소신을.저버리지 않는다면....
선거철이라 다시 한번더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공감하네요
잘보고갑니다
좋은글입니다
소 읽고 외양간 안 고칠겨?
새겨들을 말씀 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글잘쓰는분들 부럽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4합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셨서~
추천드립니다..
잘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