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의 이러한 조치는 항우의 정치관을 보여주는 동시에 구시대적인 한계를 나타내는 점이었다.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의 제후들 중 최강의 자리에 오른 항우였지만 그는 '천하를 직접적으로 아우르는' 존재가 되지 않고 세상을 진나라의 통일 이전, 즉
전국시대로 되돌려 버렸다.
물론 전쟁 과정에서 공을 세운 여러 제후들을 무시할 수는 없고, 유방 역시 이성왕(異姓王)들을 임명한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했었지만 항우의 태도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항우는 이러한 분봉 조치를 취하면서 가장 생산력 있고 제후들을 대번에 견제할 수 있는 관중에 머물지 않고, 고향에 가서 자랑해야 한다. 는 이유로 초나라 땅으로 되돌아 와 버린 것이다. 당시 관중 지역은 진나라의 멸망 이후 힘의 공백지 였으니 항우가 자리를 잡는다 하여도 다른 제후가 지분을 주장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항우는 초나라로 돌아오고 대신 삼진을 설치하여 유방을 견제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이는 항우가 기본적으로 '진나라의 방식' 인 군현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이전의 방식인 봉건제를 선호했음을 보여준다. 여러가지 측면으로 볼때 항우는 '중국의
통일' 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진나라에 대한 극심한 반감으로 진나라의 제도 자체에도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신안대학살이나 함양에서의 학살은 '타국을 정복하고 외국인을 학살' 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행위였다. 이는 진나라와 아무런 연관이 없던 강소성 출신 유방이 관중에 들어온 이후 보여준 태도와 대비되는 점이다.
단, 이러한 모습을 항우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항우가 가진 세력로 문제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스스로가 초나라 귀족의 후예이자 초나라 땅에서 거병하여 그 세력이 주축이 된 항우로서는 초나라 땅이 아닌 관중을 중심지로 삼는건 불가능한 일이고, 진나라에 대한 잔혹한 모습 역시 통일 진나라와 그 제도에 반감이 극심한 세력으로서는 당연하다는 이야기.
항우가 제나라에서도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넘어가자 어찌되었건 이러한 모습이 항우라는 개성의 개인적인 모습때문이든, 혹은 그 세력 자체의 모습 때문이든 초나라 귀족 가문 출신 항우가
춘추전국시대의 관념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것과 반대로 유방과 그 패거리는 오히려 그 출신 성분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또한 이러한 관념적인 영역을 떠나 실제 분봉 조치는 엉망이었다. 이는 광무 대치 당시 유방의 비난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항우가 제후들을 분봉한 기준은 순전히 자신과 친하거나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 이었다. 물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더 챙겨주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사람들을 챙겨 주는 과정에서 여타 다른 제후들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이는 극심한 반발을 불러오게 되었다.
이를테면 멀쩡히 연나라 왕으로 있던 한광은 졸지에 요동으로 내쫒기게 되었는데 한광은 요동으로 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장도와 분쟁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장이는 상산왕이 되고 장이의 부하였던 신양도 왕이 되는 사이, 조나라의 대장군이자 장이와 비슷한 명망을 가지고 있던 진여는 터무니 없는 대우를 받았다. 유방을 견제하기 위해 삼진을 설치했지만 삼진의 군주들은 진나라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받고 있었으며, 파촉에 처박아 놓았다는 유방은 실제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 관중을 장악하여 파촉 + 관중이라는, 과거 열국을 압도했던 진나라의 영역을 그대로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가장 엉망이 된 곳은 제나라 지역이었다. 제나라의 전씨들은 항우와는 그다지 관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일으켰고 그다지 얽힌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항우의 조치로 인해 제나라의 일개 장수였던 전도는 제나라 왕이 되고 본래 왕이었던 전시는 교동와으로 쫒겨났는데, 전시를 앞에 세우고 제나라의 실세 노릇을 하던
전영(田榮)은 엄청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팽월(彭越)은 나름대로 세력이 있었지만, 항우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논공행상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팽월이 이로인해 불만을 가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속사정을 살펴보면 여러 사람들의
어그로를 잔뜩 끌어올리게 될 여지만 남겨놓았던것.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분봉을 한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혼란의 씨앗만 잉태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