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산, 중봉 오르면서
노란 비늘을 털어내는
거리 한 복판에서
뒹구는 바람을 줍다가
빈가지 끝에 실려
혼자서 앓고 있는
가을을 보았습니다
--- 최지하, 『그리움』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9월 19일(수), 구름 많음
▶ 산행인원 : 4명(오기산악회 수요산행)
▶ 산행시간 : 7시간 23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1.8㎞
▶ 교 통 편 : 이계하 님 카니발
▶ 시간별 구간
08 : 30 - 천호대교 아래 주차장 출발
10 : 30 - 화악2리 건들내 샘골 입구, 차 타이어 펑크 수리
11 : 44 - 샘골 입구, 산행시작
13 : 00 - 암릉
13 : 25 ~ 14 : 00 - 중식
14 : 20 - 애기봉(△1,055.3m)
14 : 46 - ┼자 갈림길 안부, 중봉 2.8㎞, 건들내 3.6㎞
15 : 04 - 슬랩
15 : 37 - 1,142m봉
16 : 15 - 1,446m봉, 후퇴
17 : 17 - ┼자 갈림길 안부, 건들래 3.6㎞
18 : 26 - 오림골, 건들래 1.9㎞
18 : 43 - 비포장도로
19 : 07 - 샘골 입구, 산행종료
1. 오림골 계류
화악리 쪽에서 화악산 들머리를 찾기가 어렵다. 애초에 우리의 판단이 안이했다. 화악산
(1,468.3m)이 경기 최고봉이자 경기 5악 중의 하나이니 그 대접이 여느 산 못지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명지산이나 운악산처럼 등산로 안내는 물론이고 주차장도 널찍이 마련되어 있을
거란 예단이 잘못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들내 왕소나무에서 오림골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치고 조금만 더 가보자 한
것이 실운현 고갯마루까지 갔다. 실운현에서 화악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지만 그건 너무 싱거
운 산행이 될 것이어서 사양했다. 등산로 더듬으며 되돌아오는 길에 이 동네주민에게 화악산
가는 길을 물었더니 왕소나무에서 오림골로 들어 우선 천도교 수련원으로 가시란다. 천도교
수련원까지 3.2㎞라고 한다.
왕소나무 맞은 편 길가에 아까 놓쳤던 표지판과 등산안내도가 있다. 오림골 계류와 삼림골 계
류가 합류하는 지점에 잠수교가 있는데 계류가 정강이 잠기게 흐른다. 카니발 타고 건넌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곧 끊기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400m쯤 진행했을까 지
계곡인 왼쪽 샘골 입구에 공터가 보여 멈추었다.
이때 차를 더 움직이는 것이 왠지 거북했다. 차에 내려서 보니 오른쪽 앞바퀴가 펑크가 나서
주저앉은 게 아닌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다행히 휴대전화는 터진다. 즉시 보험
회사에 연락하였다. 수리차량이 4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이 산골에서까지 매우 신속한
조치다.
이계하 님은 화를 삭이느라 서성이다 막걸리 한 병을 혼자 다 비우고, 정용훈 님과 장여사님
은 산기슭에서 밤나무를 발견하여 밤송이 줍고, 나는 오림골 바위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계
류 와폭 구경한다. 보험회사 수리차량이 예고한 시각에 당도하고 앳된 젊은이 혼자서 능숙한
솜씨로 타이어 갈아 끼운다. 구경거리다.
이 일로 산행이 1시간 남짓 지체되었다. 정용훈 님과 장여사님은 타이어 펑크 덕분에 산행시
간이 1시간 줄어들었다며 사뭇 즐거운 표정이고, 나는 어차피 타이어가 펑크 날 것이라면 고
속도로가 아니라 운이 좋게도 여기 후미진 곳에서 펑크 났다고 안도하고, 이계하 님은 얼근한
술기운으로 힘든 산행을 자초한다.
2. 샘골 계류
3. 오림골 계류
4. 애기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응봉
5. 갓버섯(Macrolepiota procera)
천도교 수련원까지 산길 아닌 울퉁불퉁한 대로 3.2㎞를 어떻게 걷는단 말인가. 샘골 오른쪽
능선에 소로가 보여 옳다구나 하고 그리로 들어간다. 무성한 풀숲 헤친다. 꼭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을 뜯어내는 것이 더 고역이다. 낙엽송 숲 가파른 사면을 씩씩 대고 한 피치 오르자 이
장해 간 무덤 터가 나오고 그 위로는 인적이 뜸하다.
줄곧 가파른 오름길이다. 올가을에는 버섯이 풍년이라고 하니 내 눈에도 송이나 표고버섯 따
위가 보일까 가쁜 숨 고르는 중에 등로 주변을 두루 살폈으나 내 적덕이 부족한지 내내 허탕
이다. 감히 덤벼들기 겁나는 암벽이 가로막는다.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돈다. 협곡을 트래버스
하고 대슬랩 옆으로 기어오른다.
완만한 등로에 이르러 그 중 평평한 곳을 골라 자리 잡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가만히 있으면
바람 없어도 서늘하여 겉옷을 껴입는다. 큰 바위 돌아 곧추 오른다. 교통호 넘고 참호 지나니
애기봉이다. 오석의 정상 표지석이 있다. 삼각점은 춘천 301, 2005 재설. 화악산 정상(신선봉)
오르기는 산행 시작할 때부터 가망이 없었지만 중봉이라도 가자하고 서둔다.
안개에 가린 중봉을 바라보며 쭈욱 내려 ┼자 갈림길 안부. 직진 중봉 2.8㎞, 오른쪽 건들래
3.6㎞. 서서히 오른다. 마주 오는 등산객 한 분을 만난다. 수인사 나누고 서로의 산행정보를
교환한다. 10시에 건들래에서 산행 시작하여 화악산 정상과 중봉을 거쳐 오는 중이며 애기봉
넘어 애기고개에서 애기골로 하산할 거라고 한다. 부럽다. 대단한 준족이다.
슬랩이 나온다. 가느다란 밧줄이 달려있다. 암릉 오른쪽으로 돌고 또 슬랩이 나온다. 되게 가
파르다. 물 먹은 암사면은 아주 미끄럽다.
산행계획을 조정한다. 오림골로 내리는 갈림길이 나오면 정용훈 님과 장여사님은 그 길로 하
산하고, 이계하 님과 나는 중봉을 거쳐 화악산으로 내달아 실운현으로 가기로 한다. 차 키를
정용훈 님에게 넘겨주어 실운현에 있을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한다.
6. 진범(Aconitum pseudolaeve)
7. 중봉은 안개에 가렸다
8. 중봉 오르는 길에 바라본 명지산
9. 오른쪽 멀리는 연인산
10. 명지산
그런데 야단났다. 오림골 쪽으로 내리는 갈림길이 좀체 나오지 않는다. 김형수의 『한국400
산행기』화악산 중봉 지도에는 1,142m봉 넘어 오림골로 내리는 길 표시가 있지만 아무리 사
면을 쓸고 훑어도 이정표는 물론 길이 없다. 자꾸자꾸 더 간다. 1,220m봉 넘고 1,320m봉을
넘는다. 진땀이 난다. 중봉을 지척에 둔 1,446m봉까지 왔다.
오림골로 내리는 길이 묘연하다. 하산 예정시각 16시를 넘기자 시간은 곤두박질 친다. 마침
내 오기를 죽이기에 이른다.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중봉을 넘는다고
건들래가 가까워지기는커녕 더욱 멀어질 터. 이 자리에서 뒤돌아서는 것이 낫다. 이정표 거리
6.3㎞다. 사고는 날 때까지는 안 나는 법. 서운하지만 뒤돌아선다.
내림 길. 뚝뚝 떨어진다. 슬랩은 오르기보다 내리기가 더 고약하다. 애기봉 오르기 전 ┼자 갈
림길 안부에서 잠깐 숨 고르고 건들래로 내린다. 산행표지기가 반갑다. 소로의 등로는 지난
태풍으로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이 헝클어져 있어 어수선하다. 너덜이 시작된다. 이끼 낀 바
위가 미끄럽다. 골에 들어 하늘 가린 숲속이라 한층 어둑하다.
너덜 길이 헷갈린다. 눈에 힘주어 인적 더듬는다. 잡목 헤치기가 어째 버겁더라니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야트막한 지능선에 붙었다가 자갈 깔린 사면 쓸어내어 오림골 계류에 이른다.
계류 건너면 바로 천도교 수련원에서 내려오는 대로와 만날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다. 지능선
자락을 돌고 돈다.
풀숲 뚫고 시야 트여 대로다. 해는 진작 졌다. 헤드램프 켜지 않아도 잔광으로 갈만하다. 오림
골 급한 계류 물소리에 발맞추어 내린다. 길섶에는 하얀 미국쑥부쟁이 꽃이 줄줄이 길을 밝힌
다. 이도 가을의 정취다.
11. 명지산
12. 애기봉
13. 투구꽃(Aconitum jaluense)
14. 중봉 가는 길
15. 건들래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