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dehV_xG7f-c&t=9s
https://www.youtube.com/watch?v=VOROdGFzXrQ
https://www.youtube.com/watch?v=qxC3qikxLJk
그리운 가곡 '그리움'
잠시 '쉼표'가 주는 여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 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아기를 보고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보고도
살짝 웃어 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번 더 뒤돌아 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좋은 생각 중에서]
이해하는 방법은 아래에 서는 것이다. "이해한다(Understand)"는 동사의 파생어가 문자 그대로
‘아래 서서 본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알고 재미있다고 여긴 적이 있다. 이 말에는 적지 않은 지혜가 담겨 있다.
무엇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밑바닥부터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인간들은 판단 내리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관해, 심지어 자신이 전혀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엄청난 시간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예측하고 평가하고 추측하고 결정하고 비평하는 데 보내고 있다. 이 말은 거의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만큼만 문제를 이해하고 만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 한 앎이란 사실상 매우 빈약한 것이게 마련이다.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종종 우리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우리는 좀 더 명확하게 다른 사람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오래된 미국 인디언 속담에 ‘우리는 그 사람의 오래된 가죽신을 신어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다른 사람의
가죽신에 발을 맞추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가죽신을 좀 더 편안하게 신을 줄 알아야 한다. - 레오 버스카글리아 -
고진숙 詩, 조두남 曲 그리움
고진숙
조두남
고진숙 작사 조두남 작곡 그리움
그대 머문 그리움으로 그리운 가곡
이 가곡은
제가 늘 불러왔던 노래입니다.
마음이 울적 할 때
눈을 지그시 감고
가슴속에 울림으로
그 그리움을 애잔하게
아주 나즈막히 머리에 올려
코 안 가득
입 안 목소리 그득히 담아내어 불러봅니다.
그리하면
가고 없음의 세월 앞에
그렇게
조용히 젖어들 수가 있답니다.
내 마음을 위로하듯이
조용히 시절 따라
또 이만큼 달려오게 됩니다.
2013/02/18
청사초롱/청원 추보선(추경열)
기약 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 산 위에 흰 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
아, 돌아오라
아, 못 오시나
오늘도 해는 서산에 걸려
노을만 붉게 타네
귀뚜라미 우는 밤에
언덕을 오르면
초생달도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운다
아, 돌아오라
아, 못 오시나
이밤도 나는 그대를 찾아
어둔 길 달려가네
그리움 - 고진숙 작사 조두남 작곡 6·25 전쟁 때 북한에서 마산으로 피난 와 살던 조두남과 같은 북한 태생 음악교사 고진숙이 1958년 어느 날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로 실의를 달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산이 ‘제2의 고향’으로 타관객지생활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음악을 연결고리로 친하게 지냈다. 그 자리에서 조두남은 악보를 그려주며 “노랫말이 맘에 들지 않으니 가사를 새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악보를 받은 고 시인은 그리움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6.25 전쟁 피난시절 헤어진 사람, 그중에서도 얼굴이 유독 하얗던 미모의 한 여대생(한영희)을 떠올렸다.
부산서 대학을 다녔던 고 시인은 부산대학교 사범대 음악과를 졸업했지만 본래는 문학청년이었다. 마침 그의 옆집엔 서울서 대학 2학년까지 다니다 혼자 피난 온 문학도 여대생 한 씨가 살았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글을 쓰고 책도 읽었다. 전쟁으로 어려웠던 시절임에도 취향이 같았던 두 사람은 남매처럼 의지하며 가깝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과로와 폐병으로 숨지고 말았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여대생의 죽음이 너무나 슬펐던 기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고 시인은 그녀를 소재로 한 ‘그리움’을 작시(作詩)했다. 시를 받아 든 조두남은 만족했고, 노래는 새로운 가사로 거듭 태어났다. 노랫말이 된 시는 하늘나라로 간 여대생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이다.
그리운 사람에 대한 공감대가 깊이 오버랩되면서 노랫말이 바뀐 가곡 ‘그리움’은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중·고교 음악교과서에까지 실려 애창됐다. 이어 개성 출신 성악가 김자경이 처음 녹음하고 김성길 교수(바리톤) 등 여러 음악인들도 연주하면서 대중에게 소개됐다. 음악교사로 활동했던 고 시인은 훗날 옛 제자들과의 만남에서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부산에서 여대생과의 만남) 사랑이었던 것 같다” 고 회고했다. |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도 잘 모를 때가 있거던요.
낮이지고 또 낮아져서 자기 성찰로 다듬고 다듬어 주변을 바라 볼 뿐.
"오늘의 일정대로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
오늘 아침의 기도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