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상헌이 다시 말했다.
- 적이 비록 성을 에워쌌다 하나 아직도 고을마다 백성들이 살아있고 또 의지할 만한 성벽이 있으며, 전하의 군병들이 죽기로 성첩을 지키고 있으니 어찌 회복할 길이 없겠습니까. 전하, 명길을 멀리 내치시고 근본에 기대어 살 길을 열어나가소서.
최명길이 말했다.
- 상헌은 제 자신에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제 적들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면 세상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온데, 상헌이 말하는 근본은 태평한 세월의 것이옵니다.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터인데,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넋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
= 김훈의 <남한산성> 중에서 역적 장.
김훈의 <남한산성>은 영화로도 잘 묘사되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병자호란 당시 명나라보다 강해진 것을 넘어 조선까지 위협하는 청나라에 대해 중심국가(?)인 명을 배신하지 말고 오랑캐인 청과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의 대표격인 김상헌과 명에 비해 힘이 현실적으로 강대국으로 떠오른 청에 순종하여 조선의 살 길을 찾자는 주화파의 대표격인 최명길의 대결구도인 역사소설쯤으로 볼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펼치는 각자의 논리는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탄탄한 논리를 갖추고 누가 더 옳은지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듯 하다. 정작 문제는 무너져 가는 명나라와 그보다 국운이 더 기울어진 조선의 운명이다. 청에 대해 항거를 하다 무너지든 순종을 하다 무너지든 무너지는 것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조선은 내부적으로는 각자의 치열한 실존과 선택을 두고 왕부터 일반 백성은 물론 노비까지 자신의 삶과 미래를 결정하고 선택한다.
그렇기에 크게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대결국면이라는 외피에다 모든 계층적 실존들의 선택을 내피로 다룸으로써 김훈의 <남한산성>은 휴머니즘적 실존주의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훈은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자세히 준비하고 연구했지만 자신의 작품에 꼭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았다. 역사가 역사의 실제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논외로 치더라도 그는 문학의 본령에 맞게 역사는 기초자료로 활용했을 뿐이고 인간실존의 이야기를 새로이 구성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의 일부에서 행여 실제 역사와 같니 다르니 하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은 문학의 의의를 모르거나 이야기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김훈의 문학은 여러모로 그리스 비극문학과 교차된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로 대표되는 그리스 비극문학은 비극 이야기 자체라는 성격으로 인해 오래동안 회자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신화와 상상력이 인간실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서 삶의 선택에서 고민하는 실존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고 있다.
김훈의 문학은 <남한산성>뿐만 아니라 <흑산>, <칼의 노래>를 통해서 이 비극 속에 주어진 인간실존의 문제를 신화와 상상력의 영역으로부터 지금의 시대에서 멀지 않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내려온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로, 그들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으로, 그들의 선택은 우리의 결과로 이어진다.
신화의 비극은 역사의 비극으로 전환되고 존재의 실존은 허구나 상상의 철학이 아닌 살아날 수 있느냐는 생존의 문제로 귀결된다. 김훈 문학의 아름다움과 위대성은 이런 역사적 인간적 소재들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애써 구분하여 추출하지 않고 거의 모두 들여다 보는 점에 있다.
김상헌의 입장에 서든 최명길의 입장에 서든, 허망하고 모욕적인 결과를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 그 결과의 고통과 감내는 당대의 것이지만 세대를 통한 경륜과 지혜의 전수는 후세의 몫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또다른 무지 속에서 역사의 반복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역사는 종종 역사를 통해 후세에게 교과서적인 교훈을 전하지만 문학을 통해서는 개개인의 실존적 고민의 가치를 성찰케 한다. 바로 이 점이 문학의 존재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남한산성>의 100쇄 기념과 10년 출판을 기념하여 나온 개정판은 문봉선 화백의 그림과 김훈의 못다 한 말이 추가되어 나왔다. 문봉선의 그림은 작품에 어울리게 훌륭하고 작가의 못다 한 말은 문학작품이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가치를 추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훌륭한 사족(!)이다.
못다 한 말에서 김훈은 김상헌과 최명길이 노구가 다 되어 적국의 감옥에서 만나는 장면을 슬프고 아프고 아름답다고 서술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작가에게 돌려주고 싶다.
당신의 작품은 슬프고 아프고 아름답습니다. 문학의 존재이유를 여기에서 다시 찾고 각자의 실존은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매일 다른 선택의 삶을 살아나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