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일 7월 23일(월) 아테네에서 파리로 몽마르트르 언덕, 세느강 유람선, 침대열차로 루르드행
오늘은 오전 7시 30분 모닝콜, 8시 30분 아침 식사, 9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하여 모처럼 늦잠을 잤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침 일찍 준비를 끝내고, 모두 짐을 들고 내려와 10분 먼저 떠날 수 있었다. 아테네를 떠나 파리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리디아 자매님께서 그리스의 세시풍속과 축제, 혼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다. 강한 종교심과 가족간의 깊은 유대감이 헬라인의 특성이다. 현실적이며 신앙과 일치하는 생활을 한다. 다른 유럽인들은 그리스를 빈껍데기만 남은 유럽의 고아라고 여기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굉장히 좋은 나라다. 동구권을 먹여 살리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유로 사용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스, 터키는 꼭 다시 오고 싶은 나라이다.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고 떠난다. 공항에서 김신부님은 대나무 안마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신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게이트에서 기다리는데 불가리아인들이 노래를 한곡 멋지게 선물하였다. 우리는 답가로 아리랑을 불렀다.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데도 기쁨의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을 하면서 스치는 인연의 소중함을 느낀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그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닐까? 공항에 도착하여 12시 35분 에어프랑스에 탑승하였으나 비행기 문이 고장 나서 1시 25분에 출발하였다. 프랑스, 파리, 루르드에 대한 설레이는 내 마음이 비행기 보다 앞서 간다.
나는 1991년 3월 25일 '믿음과 빛'의 국제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파리에 갔었고, 그 때 유학 중이시던 마태오 신부님을 만났다. 오늘은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서 다시 파리로 가게 되다니 참으로 각별한 인연이다. 기내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묵주를 꺼내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나서 못 다 읽은 '루르드의 기적'을 마저 읽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은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이다. 비극적 사건은 형벌이 아니라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하느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선택하기를 바라신다......하느님과의 싸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우리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파리에 도착할 무렵 기류이상으로 비행기가 마치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무섭고 긴장되는 순간이 지나갔다. 마르첼로는 멀미가 났는지 구토를 하고 말았다. 오후 3시 30분 드디어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짐이 나오지 않아 지루하게 기다렸다. 마음은 바쁜데 왜 이렇게 자꾸 늦어지는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가이드 차데레사 자매님을 만나서 주차장으로 버스를 타러 갔다. 그런데 버스가 고장이 나서 꼼짝을 않고 서있는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시동이 걸리지 않으니 다른 차가 와서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고 비도 조금씩 흩뿌렸다. 무더운 날씨의 그리스에 있다가 파리에 오니 추울 지경이었다. 모두 가방에서 긴 팔을 꺼내 입었다. 마태오 신부님께서도 가방에서 옷을 찾으시다가, 난감한 얼굴을 하셨다. 호텔에 잠바를 두고 오신 것이었다. "누가 긴 옷 하나 더 가져온 사람 없을까?" 하시기에, "제 옷이라도 맞으시면 입으시겠어요?" 그래서 시작된 신부님의 새로운 파리 패션을 보고 사람들은 젊어 보인다고도 하고, 시골 이장님같은 잠바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그 옷이 내 옷인지도 모르고 잠바를 잃어버리길 잘했다고 하며 재미있다고 웃어 댔다. 가방을 차에 실어두고 미사를 드리러 갔다. 파리에서의 첫 미사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예수 성심 성당에서 드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차를 고치는 동안 공항에 있는 작은 경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의자도 없고 겨우 우리 일행들이 서서 미사를 드릴 수 밖에 없는 아주 작은 경당이었지만 덕분에 오늘 하루도 미사를 거르지 않고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너무 더워서 미사를 드리기 힘들었다. 미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다음 일정에 좀 차질이 있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항을 빠져 나와 파리 시내에 들어갔다. 16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였다. 내가 다시 여길 오다니, 그것도 마태오 신부님과 함께, 그 때의 기억은 별로 나지 않지만 그래도 반갑고 감회가 새롭다.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알렉산더 다리 등 여전히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몽빠르나스에서 가까운 중국식당에서 부페로 저녁 식사를 했다. 파리에 와서 처음 먹는 음식이 중국식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어딜가나 인터넷이 되는지 먼저 확인하셨다. 식당에서 무료로 인터넷이 연결되자 신부님께서는 본당에 우리의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으셔서 식사도 뒷전인 채 컴퓨터를 하신다. 식사 후에 일행들을 몽마르트르 예수성심성당에 갔다. 9시에는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야 하므로 성당이 보이는 곳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오겠다고 한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나는 또 남아야 했다. 이번에는 신부님께서 함께 남아주셨다. 신부님께서 전화 카드를 사기위해 상점을 몇 군데 돌아다녔는데 결국 사지 못하고, 카페에 가서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멋진 거리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버스를 내린 곳에는 그런 곳이 없어서 아쉬웠다.
9시 세느강 유람선을 탔다. 전에 왔을 때는 강변에 앉아서 지나가는 유람선을 구경만 했었다. 천천히 1시간 동안 유람선을 타는 데 한국말로도 안내 방송이 나와서 설명을 잘 들을 수가 있었다. 에펠탑은 1시간 마다 조명을 밝히며 먼 타국에서 온 순례객들을 맞이했다. 비가 내리는 데도 갑판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루브르 박물관, 오벨리스크, 막달라 마리아 성당 등이 조명을 받아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듯했다. 멋진 야경이 펼쳐질 때마다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11시 15분 역으로 가서 루르드행 침대열차를 탔다. 두 칸에 나누어 타는데, 4인실에 우리 일행 4명이 한 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외국인들과 같이 쓰는 방도 있었다. 다행히 우리 방에는 일행들이 함께 탔다. 파리에서의 멋진 추억을 기념하기 위하여 포도주 파티를 했다. 내일은 내 축일이기도 하고 루르드를 순례할 것이다. 미리 축하 인사를 받았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기차는 아침에 우리를 루르드에 데려다 줄 것이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의 침대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쉽게 잠들지 않았다. 터키에서는 초승달을 보았었는데, 파리에서 보니 반달이 되었다. 오늘 하루 은총의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
출처: 티나의 오두막 원문보기 글쓴이: 티나
첫댓글 우리도 버스가 연료가 떨어져서 도로 위에 마냥 기다리며 차 안에서 30분 정도 묵주기도 드렸다. 퇴근시간이라서 퇴근하는 시민들 보면서... 참 웃기는 나라들이라.
이시도르 형제님, 오랫만에 들어오셨네요. 함께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