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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노라마 코리안 이브(Eve) 1편 - 가덕도! 7천년의 수수께끼.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 남단. 부산의 가덕도에서 신석기시대의 인골 48개체가 발견되었다. 약 7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주인공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에 대한 DNA 검사 결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한국 사람에게 전혀 없는 DNA를 가진 인골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디서 온 것일까?
경상남도 남해의 해안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그 중에서 남해와 낙동강 하구가 만나는 곳에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가 보인다. 2011년 초, 이곳에서는 부산에 신항만 공사를 위한 기반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공사장에서는 다량의 신석기시대 유물과 인골들이 쏟아져 나왔다. 출토된 유물들은 놀라웠다. 신석기시대 전기 약 7천 년 전의 고인골 48개체가 발굴됐고, 옥제품을 비롯한 조개껍질 장신구들은 7천 년 전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고인골 48개체의 발굴은 우리나라의 산성토질 특성상 놀라운 일이다. 보통은 산화돼 형태가 보존되기 어려운데 가덕도 인골들은 달랐다.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수확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가덕도 신석기시대 장항유적지. 멀리 부산신항이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인골 출토된 게 전부 합쳐서 20기정도 나왔는데, 여기에서만 50기가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국의 신석기시대 인골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인골이 나왔고, 당시 사람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는 것을 정말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 그렇게 나타난 거죠.
(정의도 원장, 한국문물연구원)
매장방식 : 왼쪽은 신전장, 오른쪽은 굴장.
가덕도 유적에서 또 다른 수확은 토기다. 파편조각이 아니라 완벽한 모양을 갖춘 토기가 발견된 것이다. 완형 토기들은 토기의 문양과 제작방법에 있어서 신석기시대에 많은 변천이 있어 왔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인골들의 매장방식이다. 48개체의 인골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묻혀 있었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두고 두 다리를 곧게 뻗은 매장법은 신전장이다. 또 다른 매장법은 굴장이다. 굴장은 팔 다리를 구부린 채 하반신을 상반신에 붙여 옆으로 묻는 매장방식을 뜻한다. 마치 태아의 자세와 비슷하다. 신전장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매장방식이지만 굴장은 매우 보기 드문 매장법이다. 그런데 가덕도에서는 신전장보다 굴장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이 가덕도에서 나온 굴장. 그야말로 우리가 보통 말할 때 강하게 굴장되어 있다. 그래서 강굴이라고 표현합니다만은 마치 사람을 염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렇게 자세가 나오지 않는 사지를 굉장히 구부려서 마치 이렇게 끈 같은 것으로 묶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매장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때까지 한국에서는 없었던 것이고 그러한 것이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이 확인된 장법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죠.
(김재현 교수,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7천 년 전 가덕도의 주인으로 살다가 각기 다른 매장방식으로 묻힌 인골들. 이들은 우리의 조상일까? 아니면 누구일까?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여름. 국립현충원의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에서는 유해들의 분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시신 중에서 미군의 유해를 찾아내는 조사였다. 유해들은 유품을 통해 1차 신원확인을 한다. 유품이 없을 경우엔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미국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에서 일하는 진주현 박사는 미군 유해를 찾아서 미국 내 가족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한다. 그녀가 유해확인 과정에서 가장 유심히 살피는 것은 인골의 얼굴뼈다.
머리뼈 중에서도 얼굴뼈가 인종을 구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몸집 같은 경우는 인종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운동을 얼마나 했느냐 혹은 무엇을 먹었느냐 이런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얼굴뼈는 그렇지 않거든요. 얼굴뼈 같은 경우는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종구분 하는데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진주현 박사, JPAC, 미국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
특히 얼굴뼈의 길이나 턱의 발달 정도, 코뼈의 높낮이 같은 것은 인종구분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면 가덕도에서 발굴된 인골들도 얼굴뼈를 이용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가덕도 장항유적 발굴에 참여했던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팀에서 인골의 얼굴뼈를 살펴보기 위해서 인골에 붙은 흙을 분리해보았다. 하지만 뼈보다 더 단단해진 흙 때문에 뼈를 제대로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 전문가인 조용진 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의 전체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고성능 3D 스캔을 해봤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뼈의 온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가덕도에서 발굴된 인골의 머리뼈로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번엔 컴퓨터 단층촬영을 이용해봤다. 단층촬영은 X선을 비춰 나타난 조직의 흡수율 차이를 계산해 물체의 단면도를 그리는 것이다.
가덕도 33호 인골의 경우, 뼈보다 단단해진 흙 때문에 흡수율 차이를 구할 수 있어서 분석이 가능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붉은 부분이 단층촬영으로 밝혀낸 뼈의 조직이다. 촬영된 머리뼈는 머리뼈 복원 전문가인 서울대 이원준 박사에 의해 복원이 이루어졌다.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촬영된 얼굴뼈에서 흙을 제거하고 뼈로 추정되는 영상만 모아봤다. 그러자 서서히 머리뼈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연 가덕도 33호 인골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현대 한국인과는 다른 긴 머리뼈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특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인제 그 긴 머리뼈 형태는 한국인이나 동아시아인보다는 서양인에서 보여지는 머리뼈의 형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원준 박사,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
굴장으로 매장된 가덕도 33호 인골 외에 두 개체의 인골도 서양인과 유사한 머리뼈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유전자는 어떨까? 중앙대학교 이광호 교수팀은 인골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고인골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불순물에 오염되지 않은 뼈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출토 고인골들은 고대 한반도의 토양이나 기후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의 고인골들과 비교해서 볼 때 DNA 손상 정도가 가장 심해서 DNA 분석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가덕도에서 발굴된 48개체 인골 중에서 분석이 가능한 것은 17개체였다. 그것들을 1차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일부 인골에서 유럽계 모계 유전자가 검출됐다.
가덕도 고인골들 중 일부는 동양계, 일부는 유럽계의 모계 유전자형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추후 나머지 고인골들에 대한 반복적 모계, 부계 DNA 염기서열 분석하고, 다른 연구 그룹에 의한 가덕도 고인골 DNA 분석결과와의 비교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저의 결과에 신뢰도를 높일 예정입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가덕도 고인골은 유럽계 모계 유전자 그 중에서도 H형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골의 정체를 밝힌 모계 유전자는 무엇인가?
1900년 미국 영토가 된 하와이에는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동양인, 유럽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지만 그들의 출발은 20만 년 전 한 어머니로부터였다. 1987년 네베카 칸 교수는 미국 내 거주하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인 산모들이 낳은 아기들의 탯줄을 조사했다. 그 탯줄에서 모계 유전자인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사해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유전병을 확인하려다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
오로지 어머니에게서 아이에게로 유전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수백 명의 조상을 살펴보는 대신 단일하고 끊이지 않는 여자 조상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베카 칸 교수, 하와이주립대학교)
그녀가 발표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약 70억 명의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의 한 여성을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추론되는 이 여성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보았다.
매우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20만 년보다 더 이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 출신이든지 궁극적으로는 까마득히 오래된 매우 특별한 아프리카인 할머니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레베카 칸 교수, 하와이주립대학교)
지구상엔 서로 다른 환경에서 70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한 여성에게서 시작된 공통의 유전자를 지녔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그 여성의 자손들은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서 아시아인과 유럽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를 출발한 현생인류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수많은 돌연변이를 거쳐 지금과 같이 여러 유전 집단으로 분화된 것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떻게 여성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것일까? 서울 노원고등학교 과학반 수업시간.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다. 사람의 유전정보는 두 곳에 보관되어 있다. 대부분은 세포 내 핵에 있지만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도 조금 존재한다. 하나의 세포질 안에는 세포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수백여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그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와는 독립적인 유전자를 갖는데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이다. 그런데 그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계로만 유전이 된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로 전달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남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의 꼬리에 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하는 순간 정자의 꼬리가 떨어지면서 아버지쪽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사라진다. 하지만 난자쪽에 있는 어머니쪽 미토콘드리아는 남아있어서 자녀에게 계속 전해진다. 남녀 모두 각자의 어머니로부터 유전자를 받지만 난자를 갖고 있는 여성만 다음 세대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전달하기 때문에 모계 기원을 연구할 때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여성들은 어떤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을까? 누가 봐도 대한민국 20대 여성인 10명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개인에게 동의를 받고 이들의 DNA를 조사해봤다. DNA는 입안의 점막이나 침, 혈액, 머리카락 등 세포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다. 결과는 의외로 다양했다. 열 명은 여섯 개의 모계 유전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불과 10명을 갖고 조사했는데도 여섯 개의 다른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몇 개의 모계 유전자형으로 나뉘어 있을까? 10명의 여성들보다 더 다양할까?
단국대학교의 김욱 교수는 국내 6개 지역이 한국인 708명을 대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서 D4, B4, F, M7 등 다양한 모계 유전자형이 발견됐다.
한국인 집단은 여러 계통의 집단이 시기적으로 다르게 한반도 내로 유입돼서 어느 시기부터는 동질성을 가지고 한반도와 만주 내에서 한국인 집단끼리 주로 결혼하고 집단을 이루고 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에 적어도 여덟 개 내지 아홉 개의 서로 다른 계통이 우리 한국인을 이룬 계통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김욱 교수, 단국대학교 생명과학과)
그러나 김욱 교수의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포함해 그 어떤 모계 유전자 조사에서도 H형의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가덕도의 7천 년 전 인골은 누구의 것일까?
라인강이 흐르는 독일 중서부는 유럽의 중심지다. 유럽은 현재 모계 유전자 H형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H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H형 유전자를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독일의 마인츠 대학을 찾았다. 중세 때 대학 도시였던 마인츠는 1946년 쿠텐베르크 대학이 설립되면서 그 때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유럽인들의 H형 유전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구이도 브란트 박사를 만났다.
모계 유전자 H형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집단일 뿐만 아니라 800개 이상의 하위 그룹이 있는 가장 변형이 많은 집단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숫자가 많고 변형이 많은 것은 발생 역사가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이도 브란트 박사, 독일 마인츠 대학교)
H형 모계 유전자의 역사는 2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자들은 H형 유전자가 발칸반도를 포함한 근동지역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확산됐다고 추정한다.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동쪽으로 인도 서북부까지 분포됐다고 본다. 그러나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오늘날 유럽 전역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H형 유전자지만 800개 이상의 변이가 있는 만큼 현재 유럽에서 사라진 H형 유전자도 있다.
선사시대의 고인골을 분석하면 선사시대의 유전자 분포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중앙 유럽에서 농경문화를 발전시킨 초기 농경민 중에 특수한 형태의 모계 유전자 H를 가진 집단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구이도 브란트 박사, 독일 마인츠 대학교)
특수한 모계 유전자 H를 가진 집단은 누구였을까? 독일 중부의 하르츠 산맥 기슭엔 독일 이전에 프랑크 제국의 수도였던 크베들린브르크가 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고풍스럽고 정교한 목조주택에서 한 때 독일의 중심도시였음을 느끼게 한다.
크베들린브르크와 카스도르프를 포함한 독일 중부지역에서 6,500년 전의 인골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들은 줄무늬토기를 사용한 신석기인이었다. 학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독일에 첫 농경문화를 갖고 온 LBK 즉 줄무늬토기인이라고 부른다.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는 LBK인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고인골 DNA조사의 어려운 점은 현대의 DNA와 섞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염 방지에 철저해야 한다. 또 몇 차례 재실험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신빙성을 인정받을 만큼 까다롭다.
마인츠 대학의 부르거 교수는 LBK지역에서 발굴된 고인골에서 현대 유럽인에게 드문 다양한 H형 유전자를 발견했다.
중부 유럽에는 7천5백 년 전에 가축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류가 정착했습니다. 그런데 고인골 유전자 분석 결과에 의하면 이 줄무늬토기문화(LBK) 농경민들은 오래 전부터 유럽에 살고 있던 수렵채집민의 후예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요아킴 부르거 교수, 독일 마인츠 대학교)
다시 말해 LBK인들은 현재의 유럽인과 다른 종류의 H형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H형 모계 유전자는 현재의 유럽인들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사라진 유전자였다. 그렇다면 혹시 사라진 H형 유전자의 LBK인들과 부산 가덕도 인골의 연관성은 없을까? 7천 년 전 전혀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장례문화를 지녔다면 이들은 특별한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선사시대의 한국에 모계 유전자 H의 집단이 존재했다는 것은 터키의 아나톨리아나 유럽에서 한국까지 이동을 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멀리 극동까지 말이죠.
(요아킴 부르거 교수, 독일 마인츠 대학교)
독일 중부에서 발견된 고인골과 비슷한 시기에 부산 가덕도에서 살았던 H형으로 추정되는 모계 유전자를 지닌 고인골, 이들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동아시아 내륙 깊숙이 자리한 몽골은 국토의 80%가 목초지로 이루어진 나라다. 20여 년 전에 민주공화제가 되었지만 외부 세계에는 칭기즈칸의 고향 몽골제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와는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곳에 뜻밖의 흔적이 있었다.
몽골 국립대학연구팀은 수년에 걸쳐 서부 몽골지역에서 대량의 신석기유물들을 발굴했다. 그 중엔 형태가 온전한 남성인골도 발견됐다. 그런데 그의 두개골 모습이 지금껏 발굴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현재의 몽골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몽골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굴됐지만 두 인골 모두 신석기시대의 머리뼈다. 그런데 둘을 비교해보면 뚜렷한 차이점이 보인다. 서몽골에서 발견된 고인골의 눈뼈가 더 깊이 파였고 콧대도 더 높다.
이 고인골은 서남 몽골지역에서 발굴된 약 5천 년 전의 남성 두개골입니다. 이 두개골은 유럽형 타입 특히 유럽 구석기시대 크로마뇽인의 두개골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투멘 교수, 몽골국립대학교)
학교측의 양해를 구하고 서부 몽골에서 발견된 남성의 뼈 일부를 한국으로 가져와 모계 유전자 분석을 해보았다. 결과는 머리뼈가 보여준 그대로였다. 현재의 몽골인과 다른 유럽계 모계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 결과는 현대의 유럽인의 조상 중 일부가 최소한 신석기시대에 몽골, 한반도 등의 동아시아에서도 생존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결과를 가덕도 DNA분석 결과 종합하면 최소한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와 몽골의 일부집단 간에 유전적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부산 가덕도와 서몽골에서 발견된 유럽계 모계 유전자를 지닌 유골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1만8천 년 전부터 1만2천 년 전까지 추위의 절정을 이뤘던 빙하기는 1만 년 전부터 서서히 끝나기 시작했다. 북위 40도까지 덮였던 두꺼운 얼음이 녹으면서 지구의 기후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지구 표면의 30%를 덮고 있었던 빙하는 12%로 줄어들면서 지금에 이르렀고 빙하가 녹은 물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이 올라갔다. 해수면의 변동은 지구의 동식물 분포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인류는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해갔다. 수렵 채집의 원시생활에서 벗어나 농경과 목축생활을 통해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빙하가 녹은 이후에도 지구의 기온은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특히 7~8천 년 전에는 지금보다 지구기온이 2~3도 높아 동식물이 가장 왕성한 성장을 보였다고 한다.
빙하기 이후 기후 변화의 흔적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몽골도 예외는 아니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남서쪽으로 500km 떨어진 울란 호수에 과거 기후에 대한 단서가 남아있다. 현재 물이 메말라 사막화가 진행되는 호수에 시추봉을 뚫어 울란 호수가 예전에 어떤 기후변화를 겪었는지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시추봉에서 채취한 흙에서 장마가 빈번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여름장마 기후대 패턴이 발견되었다.
현재는 지금 만주지역에서 8월 말이면 끝내게 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 전에는 이러한 동아시아 여름장마 기후대가 몽골지역까지 아주 급격하게 북상해서 거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저희가 발견해 냈습니다.
(윤호일 책임연구원, 극지연구소)
우리나라의 여름장마는 7월 말에서 8월에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 붓는다. 그런데 최대 빙하기가 끝난 이후 홀로세(Holocene, 沖積世)에 접어들었던 시기에는 몽골에서도 장마비가 내렸다. 즉 현재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장마전선이 9천 년 전에는 몽골 중부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 참고 : 홀로세(Holocene, 沖積世)는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 빙하기가 끝난 약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이른다. =충적세.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 전에서 약 4천 년 전 사이에는 오늘날에 비해서도 훨씬 몽골지역이 습윤하고 온난했던 그런 기후 패턴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윤호일 책임연구원, 극지연구소)
빙하기가 끝나고 9천 년 전에서 4천 년 전 사이 몽골 남부는 지금과 같은 사막지대가 아니었다. 습하고 온도가 높아 풀도 많고 나무들도 잘 자라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때를 학자들은 홀로세(Holocene, 沖積世) 기후 최적기라고 부른다.
홀로세(Holocene, 沖積世) 기후 최적기의 흔적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 있다. 강원도 강릉의 자연호수이자 석호인 순포개호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석호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모래톱을 형성해 만들어진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한다. 서울대학교 박정재 교수는 호수의 퇴적물을 채취해 고기후를 연구해왔다.
생성된 지 8,000년으로 추정되는 석호에는 오랜 세월 기후의 영향을 받은 식생들의 화분 퇴적물이 쌓여 있어서 고기후를 확인하는데 최상의 조건이다. 순포개호에서 채취한 퇴적물들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고기후를 분석해봤다.
지금과 비교했을 때 1~2도 정도 높았을 것 같고 여름 기온이 지금보다 조금 높았던 때인 것 같고 그 다음에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같이 몬순기후지역 하에 있는 동아시아지역은 기온이 높고 비도 많이 왔고 그러다보니까 식생밀도가 상당히 높았던 시기다. 이게 홀로세(Holocene, 沖積世) 기후 최적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박정재 교수,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그렇다면 홀로세(Holocene, 沖積世) 기후 최적기와 가덕도 인골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할레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암염이 채취돼 일찍이 상업이 발달했고 도시 이름도 소금을 뜻하는 고대언어 할레에서 유래됐다. 할레는 작곡가 헨델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매년 헨델을 기리는 음악축제도 열린다. 할레 근교에서는 약 7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그리고 그곳의 유물들이 이곳 할레에 선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주로 작센 한 할트주에서 발굴된 줄무늬토기들을 비롯해 석관이나 인골 같은 유물들이다. 줄무늬토기를 사용했던 이들은 돌무덤에 사람을 매장했다. 그 주변 웅덩이에는 정착생활을 보여주는 가축의 뼈들도 함께 묻었다. 일종에 부장품 역할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농경문화를 처음 전파한 신석기시대 사람들을 줄무늬토기인(LBK)이라고 부릅니다. 당시의 토기에 줄무늬가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헝가리 지역에서 왔고 약 200년 만에 전 중부유럽에 퍼져 정착하게 됩니다.
(하랄트 멜러 관장, 할레 선사박물관)
유럽에 첫 농경문화를 이룩한 줄무늬토기인들은 중동지역에서 1만5백 년 전에 발생해 7,500년 전 독일 중부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독일의 북부 하르츠 지역에서는 7,500년 전 줄무늬토기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들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활수준이 높았다고 한다.
줄무늬토기인들은 발전된 농업사회를 이루었고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건축시스템도 복잡했습니다. 특히 환경을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줄무늬토기인들은 흙의 표면만을 보고도 어느 곳의 토양이 비옥한지 알아낼 수 있었고 또 비옥한 토양에서만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환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봐이트 드레셀리 박사, 할레 선사박물관)
북부 하르츠지역은 정착해 농경생활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줄무늬토기인들은 이곳에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하며 많은 유물들을 남겼다. 할레 선사박물관에 전시된 이들의 유물은 무척 정교하고 아름답다. 섬세한 문양의 정성이 깃든 토기와 지중해지역과의 교류를 짐작케 하는 조개장신구 그리고 7,500년 전부터 4,200년 전까지 사용됐던 갖가지 모양의 도끼 3,700여 개가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생활방식을 남겼다. 줄무늬토기인들의 거주지는 땅에서 올라간 고상식 가옥이었다. 3층 규모에 길이가 40m나 되었던 가옥엔 긴 복도가 있었고 여러 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줄무늬토기인들은 중부유럽에 널리 확산되었고 토양의 질이 좋은 곳에만 정착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긴 형태의 주택에서 살았는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인구증가로 계속 새로운 집을 지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랄트 멜러 관장, 할레 선사박물관)
이들이 남긴 유물에는 길이 20m 폭 3m의 거대한 규모의 돌무덤(할레 7호 석실고분, 약 5천 년 전 축조)도 있었다. 그리고 7,000년 전 사람의 무릎을 구부려 옆으로 눕혀 묻었다. 바로 굴장방식이다. (카스도르프 발굴 고인돌, 약 6,700년 전 매장)
독일 중부지방에서 무려 8,600km나 떨어진 한반도 남쪽의 가덕도에서 약 7,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두 집단은 놀랍게도 유사한 유물들을 많이 남겼다. 완형의 토기에서 보여주는 정교한 줄무늬들. 신석기시대의 주요 도구였던 돌도끼와 조개를 이용한 갖가지 장신구들은 분명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의 문화는 여기 어떤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문화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 요소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인데, 그 밖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그 문화요소들 중에 하나가 H유전자를 가진 사람들과 접촉의 결과에서 또 한 번 건너서 건너서 온다면 H유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정의도 원장, 한국문물연구원)
부산 가덕도에서 발견된 유럽계 모계 유전자를 가진 고인골과 서몽골의 유럽계 인골 중부유럽에서 발굴된 농경문화로 꽃피운 줄무늬토기인 그들간의 연관성을 풀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이다.
한국에서 신석기시대의 모계 유전자 H형 집단을 발견한 것은 아주 놀라운 일로 현재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연구를 더욱 자극하죠. 가덕도 신석기시대 무덤의 발굴이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연구에 좋은 자극을 주고 미래의 합동연구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랄트 멜러 관장, 할레 선사박물관)
부산 가덕도에서 발굴된 7,000년 전의 유골들. 그들은 한 때 이 땅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묻는다. 자신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 땅에 왔는지. 모계 유전자가 같은 7,000년 전 유럽의 인골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오늘날 우리들은 까마득히 그들을 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7,000년 전 한반도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가 단순히 이 한반도 내에서의 어떤 문화교류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넓은 시각에서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 전체 그리고 전체 글로벌한 시점에서 우리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 우리 신석기시대의 장항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도 원장, 한국문물연구원)
출처 : KBS 파노라마
코리안 이브(Eve) 1편 - 가덕도! 7천년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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