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신(神)과 성관자재(聖觀自在), 인도신화로 본 신묘장구대다라니(천수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시작이다. 우리나라 불자들의 생활경전이라 볼 수 있는 천수경은 이렇게 신묘장구대라니를 중심으로 전송과 후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라니는 해석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불자가 되면 누구든지 천수경을 접하게 된다. 불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지만 일반적으로 각 사찰이나 단체에서 운영하는 ‘불교교양대학’에 입교하면서 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 때 천수경을 처음 접하게 되는데 가장 생소한 부분이 진언과 다라니이다. 보통 짧은 길이의 주문을 진언이라고 하고, 긴 길이의 주문을 다라니라 한다. 그런데 진언이나 다라니는 해석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진언이나 다라니를 해석하지 않는 이유는 부처님의 높은 차원의 의미를 담은 말씀으로서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한 이는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것, 다라니의 글자에는 수많은 뜻을 내포 하고 있어서 해설하지 않는 다는 것, 다라니는 허공의 신장들과 성현들의 이름이어서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풀어서 해설할 수 없다는 것, 다라니를 풀어 해석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 다라니는 불가사의한 위신력이 들어 있어서 지송(持誦)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므로 해설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진언이나 다라니는 해석이나 해설 없이 문구 그 자체를 단지 외우는 것이다. 이렇게 다라니를 지송하면 그 공덕 또한 매우 커서, 배고파 죽는 것과 같은 15가지 나쁜 죽음을 받지 않고, 늘 좋은 나라에 태어나는 것과 같이 15가지 좋은 태어남의 복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불자들은 항상 천수경을 수지 독송하는데, 그 중에서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여러번 반복해서 독송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철야정진기도회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독송열풍은 철야기도회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치 기독교의 철야기도처럼 사찰마다 매달 토요일 저녁이면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정진기도회가 열리는데 보통 108독을 한다.
저녁 10시에 108참회와 함께 108배를 하고 난후 잠시 쉬었다가 천수경과 함께 시작 한다. 천수경의 독송이 시작되고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이르렀을 때 반복해서 108독을 하는데, 108독이 끝나면 이어서 “일쇄동방결도량...”하고 사방찬이 시작되는데 길고도 힘들었던 독송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다.
신심 있는 불자라면 천수경 정도는 외운다. 그러나 마음을 잡고 외우기 전에 1,300여자에 달하는 한문을 외우기란 쉽지 않다. 그런 천수경을 외우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힘든 부분이 아마도 신묘장구대다라니일 것이다.
다라니의 내용을 해석하지 말라 하여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외우려 하니 어떤 기준이 없어서 특히 외기 힘들다. 그저 무식하게 막무가내로 외우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한번 외우고 나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암송하게 된다. 더구나 업장을 소멸하고 좋은 곳에 태어는 등의 공덕이 있다하니 더욱 더 집착하게 만든다. 거기에다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의 범어라서 더 신뢰가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멧돼지형상과 사자의 얼굴
뜻은 모르지만 열심히 외고 독송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대하다 언젠가 해설판을 보게 되었다.
다라니를 해석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해설판을 보니 관세음보살의 보살행에 대한 공덕의 찬탄으로 보였다. 그런데 말미에 ‘멧돼지’와 ‘사자’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룩하신 관세음보살을 한 번 보기만 해도 탐진치가 소멸되고 모든 죄업이 씻은 듯이 녹아 내릴 것 같은데, 그런 관세음보살은 중성 이미지로서의 천상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불화의 수월관음도를 보면 얼굴이나 입은 옷이 천상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최근 초기불교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불교계의 현실에서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리니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유는 힌두교의 신들을 찬탄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책도 나오고 구체적 예를 들어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천수다라니가 힌두신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 불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지금까지 믿고 있던 신앙의 체계가 뿌리채 뽑히는듯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중에 발견한 하나의 논문
뜻을 몰라도 단지 지송하면 좋은 일이 일어 날 것이라고 열심히 외었는데, 그 다라니의 내용이 힌두신을 찬탄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그런데 아니기를 바라지만 사실인 것 같다. 최근 인터넷 서핑 중에 발견한 하나의 논문이 그것이다.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에 대한 인도(印度) 신화학적(神話學的) 일고찰(一考察)’이라는 제목의 논문인데, 부제는 ‘성관자재 찬가(聖觀自在 讚歌)]를 통한 신앙적, 내용적 상징 기저(基底) 분석’으로 되어 있다.
천수다라니의 인도신화학적 고찰.hwp
저자는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의 正覺(문상련)님으로 되어 있고, 지금으로 부터 13년전인 1997년 ‘장경각’에서 간행된 ‘미래불교의 향방(목정배교수 회갑기념논문집)’에 실려진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가 이미 13년전 논문으로 문제제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논문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을까.
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서 먼저 논문의 저자는 서문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는 것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를 해석해 보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된다. 다라니의 내용 속에는 많은 신(神)들의 명칭이 등장하고 있는 바, 과연 그 신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그들 신들의 성격을 밝혀내는 작업이야 말로 현재 한국불교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천수다라니의 신앙적 성격과 그 기저(基底) 파악의 중요 관건이 될 것이다. (정각, 천수다라니에 대한 인도 신화학적 일고찰)
이처럼 저자는 다라니 속에 수 많은 신들의 명칭이 등장 하는데 과연 그 신들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인도의 로케쉬 챤드라(Lokesh Chandra)의 짤막한 글에서 근거를 찾는다.
로케쉬 챤드라는 그의 글에서 천수다라니에 등장하는 ‘닐라깐타 로케스와라’ 는 ‘하리-하라(Hari-Hara)’의 신격화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말 천수경에 나오는 ‘니라간타’와 유사한 ‘닐라깐타 로케스와라’는 무엇이고, 또 하리 하라는 무엇일까.
그런데 그 것은 놀라웁게도 힌두교의 ‘시바’와 ‘비시누’를 의미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천수다라니를 중국에 소개한 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예를 들고 있다.
대당서역기에 관자재보살이 머문다는 남인도의 보타락가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秣羅矩吒國의 남쪽 끝에 秣刺耶山이 있다...<중략>... 말라야山 동쪽에 布呾落迦山이 있다. 산길은 위험하고 암곡은 험준하다. 山頂에 연못이 있으며....<중략>... 연못 옆에는 돌로 된 天宮이 있다. 觀自在菩薩이 왕래하며 머무는 곳이다. 보살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身命을 돌보지 않고 강물을 건너 산에 오른다. ‧‧‧‧<중략>‧‧‧ 그런데 산밑의 주민으로서 모습을 보고자 기도드리면 觀自在菩薩은 때로는 自在天의 모습으로, 때로는 塗灰外道(도회외도)의 모습으로 되어 기원하는 사람을 위로하면서 願을 성취시켜 주기도 한다.”
(삼장법사, 대당서역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자재보살이 때로는‘자재천’이나 ‘도회외도’의 모습의 형상을 취한 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재천은 범어로 이스바라(Īśvara)라고 하는데 시바(Śiva)와 같은 말이다. 도회외도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말하는데, 빨래하는 할머니와 같은 우리나라 설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결국 시바가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śvara, 관자재)즉, 우리말 천수경의 발음인 ‘바로기제새바라야’로 신격화 된 것을 말한다.
시바신앙이 불교로 전이
천수다라니에 왜 시바가 나오게 되었을까. 그 것을 이해하려면 닐라깐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닐라깐타는 ‘청경(靑頸)’이라고 번역된다. 청경은 ‘푸른 목’이라는 뜻이다.
푸른 목을 가진 분을 ‘청경세자재’라 하고 범어로 닐라깐타로케스바라(Nīlakaṇṭha
Lokeśvara)라고 한다. 그런데 이 청경세자재가 ‘하리-하라’의 신격화라는 것이다. 그런 하리-하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리-하라(Hari-Hara)는 북인도에서 비쉬누교의 영역에서 시바신을 믿드록 유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비쉬누(Viṣṇu)와 시바(Śiva)가 결합한 형태의 상을 말한다.
하리-하라(Hari-Hara)
비쉬누와 시바가 결합된 상
이런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인도 학자 로케쉬 챤드라가 말한 천수다라니는 시바신앙의 형태가 불교적으로 ‘전이’한 것으로서, 천수다라니의 사상적 모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바신앙이 불교에 전이 되어 천수다라니가 만들어 졌다고 보는데, 이는 닐라깐타가 하리-하라로 신격화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바신앙 뿐만 아니라 비쉬누적 신앙도 남아 있어서 바이슈나비즘(Vaiṣṇavism)으로 보는 것이다.
또 인드라신앙의 흔적도 보여서 시바, 비쉬누, 인드라의 삼현이 불교의 법신, 보신, 화신의 대승불교의 삼신사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