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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 |
여행 중에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는 길을 잃어버리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도 초심을 잃고 혼란에 빠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불교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성철 스님 역시 ‘부처님법대로!’를 외치며 봉암사 결사를 단행했다. 불교의 뿌리, 근본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길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요즘 한국불교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종을 근본으로 하는 한국불교가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전성기 선원의 정신과 수행을 모델로 삼아 현재를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선종의 전성기는 선의 황금시대로 불리는 당송(唐宋)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명안종사들이 정법으로 지도하고, 눈 푸른 납자들이 수행에 몰두하고, 선의 정신에 부합하는 가람과 수행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윤창화 선생이 펴낸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민족사, 2017)은 한국불교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모범적인 수행문화를 이룩했던 당송 시대 선원의 정신, 수행체계와 조직운영 등 선원생활 전반에 걸쳐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원의 수행과 제반 규칙은 《선원청규》에 잘 담겨 있다. 이 책 역시 《선원청규》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 청규(淸規)에 대한 해설서로도 손색이 없다.
선원의 수행과 생활규칙이 성문화된 규율로 완성된 것은 백장 선사에 의해서다. 백장은 율장을 토대로 중국 선종에 부합하는 규칙을 정리하여 《백장청규》를 제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청규’로 불리는 이 내용은 소실되고 없다. 이후 청규는 1103년 종색이 편찬한 《선원청규》를 거쳐 1335년 백장덕휘가 고청규를 토대로 편찬한 《칙수백장청규》가 가장 널리 유통되어 왔다.
청규에 대한 내용은 이미 한글로도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번역이 난해하여 쉽게 읽히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윤창화 선생의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선원의 실상을 알 수 있도록 주제별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게다가 청규에만 의존하지 않고 선종의 다양한 문헌을 두루 참고하여 내용을 보완하고 각주를 달아서 청규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돕고 있다. 초심자는 물론 수행을 오래 한 수행자들도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선의 수행전통은 물론 선원생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원의 정신과 수행
책의 전반부는 선원의 목적과 철학, 선원의 직제와 조직, 법당의 등장과 불전의 쇠퇴 등 총론에 해당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중반 이후부터는 선원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주제별로 다루고 있다. 36장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핵심주제로 묶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선종의 사상과 정신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선원의 핵심 사상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법당(法堂)만 세우는 것, 둘째 생활경제는 차별 없는 노동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것, 셋째 방장(方丈)을 부처님과 같이 존숭하는 것이다. 선종의 문화와 전통은 이와 같은 정신을 확립하고, 담아내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소소한 계율 조항은 버려도 좋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청규 역시 세세한 조문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상과 같은 사상적 원칙과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다음은 선원의 수행과 지도방식에 관한 항목이다. 저자는 선원에 대해 ‘부처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수행은 선원의 근간이 되므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납자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선원의 수행체계를 ‘오도(悟道) 시스템’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즉 ‘법문’ ‘독참’ ‘청익’ ‘좌선’이 그것이다. 법문(法門)은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방장의 법문으로 반야의 지혜를 열어주는 것을 말한다. 독참(獨參)이란 수행자의 상태에 따른 개별적 수행지도를 말한다. 청익(請益)이란 보충학습과 같은 것으로 추가적 질문을 통해 수행자의 의심을 풀어주는 지도 방식이다. 끝으로 좌선(坐禪)은 마음의 분별망상을 제거하는 실참수행을 말한다.
저자는 선종이 가장 발달한 당송시대의 선원에서는 오로지 화두와 씨름하는 좌선 일변도의 수행풍토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상기한 것과 같은 체계적인 수행과정을 통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선원에도 도서관에 해당하는 ‘장전(藏殿)’이 있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장주(藏主)’라는 직분도 있었다는 점이다. 흔히 선 하면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이유로 언어를 경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당대 선원에서는 경전과 책을 보는 것도 수행의 한 부분으로 허용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선종사원의 가람 구성이다. 저자는 선원총림을 ‘선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완성시키기 위한 전문적 수도장’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선원은 사후 왕생이나 현세의 이익을 기원하는 기복적 신앙 공간이 아니다. 선원은 중생을 부처로 만들고, 범부를 조사로 만드는 ‘성불작조(成佛作祖)’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선원의 가람 배치도 기존의 사찰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기존의 사찰은 부처님을 모시는 불전이 핵심이 되고, 중요한 의례 역시 불전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선원은 불전 대신 법당(法堂)을 건립했다. 불전이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공간이라면 법당은 방장이 법을 설하여 눈을 뜨게 하는 법(法)의 공간이다.
그러나 남송 시대에 정형화된 칠당가람을 보면 후대에는 선원에도 불전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칠당가람이란 선원의 대표적인 전각을 말하는데 산문(山門), 불전(佛殿), 법당(法堂), 승당(僧堂), 고원(庫院, 부엌), 동사(東司, 화장실), 욕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수행과 관련된 핵심적 전각에 대해 법당, 방장, 승당을 꼽고 있다. 이들 가람은 법문-독참과 청익-좌선이라는 소위 오도 시스템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법당에서는 반야의 지혜를 열어주는 방장의 법문이 설해지는 대중적 법회 공간이다. 반면 방장실은 방장의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독참과 청익이라는 개별적 지도가 이뤄지는 수행 공간이기도 하다.
또 승당은 취침과 공양 등 수행자들의 생활이 진행되는 합숙 공간이다. 하지만 승당에서 일상생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승당은 달리 ‘선당(禪堂)’이나 ‘운당(雲堂)’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곳은 좌선하는 수행 공간이자 운수납자들이 머무는 생활 공간이기 때문이다. 좌선과 생활이 같은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수행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선원의 조직과 규율
선원은 집단수행 공간인 만큼 조직체계나 규율에 관한 세세한 규정도 담고 있다. 첫째, 선원의 조직과 직무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선원에서는 작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천 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함께 생활했다. 따라서 선원운영의 효율을 위해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직무도 세밀하게 분화되어 있었다. 당대 선원의 조직은 방장(方丈)을 정점으로 4명의 지사(知事)와 5명의 두수(頭首)가 좌우에서 보필하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사는 사무, 행정, 재정, 회계, 관리, 서무 등 총림의 경영과 운영을 담당하는 직책들이다. 반면 두수란 수행을 담당하고 지도하는 5개의 직책을 말한다.
이들 9개의 직책 중에서도 감원과 수좌가 방장을 좌우에서 보필하는 핵심적인 직책으로 손꼽힌다. 감원(監院)은 행정을 맡아보는 직책으로 동반(東班)을 대표했고, 수좌(首座)는 수행을 지도하는 직책으로 서반(西班)을 대표했다. 이상과 같은 직위 외에도 작게는 20개에서 많게는 50여 개에 달하는 세부 직책으로 소임이 구성되어 있었다.
둘째, 선원의 생활과 규율에 관한 것이다. 수행자에게 하루의 일과와 규율은 매우 중요하다. 《단경》을 보면 홍인은 불법을 찾아온 노행자에게 ‘파시답대(破柴踏碓)’라는 숙제를 주었다. ‘장작 패고 방아 찧는 것’과 같은 일상을 수행으로 제시한 것이다. 저자 역시 ‘부처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부제 아래 선원의 일과를 수행의 일부로 설명한다.
남송 시대 선원의 일과를 보면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시 30분 새벽예불, 5시 새벽좌선, 6시 아침공양 순으로 되어 있다. 오전 일과는 6시 40분 아침법문, 9시 아침좌선, 11시 점심공양이다. 오후 일과는 오후 3시 오후좌선, 4시 저녁예불과 법문, 5시 저녁공양을 한다. 밤일과는 오후 7시 좌선, 오후 9시 취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소 시간적 차이는 있으나 한국 선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셋째, 선원의 의식과 의례에 관한 내용이다. 입방 절차인 방부에서 발우공양에 관한 법, 조석예불에 관한 규칙, 수행자의 입적과 장송의례, 망자의 다비와 유품경매 등 선원에서 수행자의 일생에 관한 것이 모두 정리되어 있다. 선원의 입방 절차를 ‘괘탑(掛撘)’이나 ‘괘석(掛錫)’이라고 불렀다. 괘탑이란 ‘갈고리에 발낭을 걸어둔다’는 뜻으로 자신의 발낭을 걸어두는 것을 말한다. 또 괘석이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승당밖에 걸어두는 것을 말한다. 발낭이나 석장은 수행자의 출석을 증명하는 일종의 출석카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밖에 장송의례와 유품경매라는 절차가 눈길을 끈다. 수행자가 입적했을 때 다비를 치르고, 망자의 유품을 경매하는 절차다. 수행자의 유품이라고 해봐야 ‘비구육물(比丘六物)’이라고 해서 소소한 생활용품이 전부다. 유품경매 역시 옷가지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창의(唱衣)’ 즉 ‘옷값을 부른다’는 말로 불렸다.
보통 선종 하면 일체의 의례와 격식을 혁파한 파격적 전통으로만 설명된다. 하지만 그것은 기복이나 교학적 형식과 틀을 깨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이다. 선종이 독립된 종파로 발전하면서 선의 사상과 수행에 부합하는 의례와 절차들이 체계화되었다. 선종 나름의 의례와 격식으로 대체된 셈이다.
넷째, 선문화에 대한 내용이다. 선의 정신과 철학은 고유한 선문화를 발전시켰다. 저자는 다섯 개의 장에 걸쳐 선문화를 소개한다. 선시(禪詩)는 단연 선문학의 꽃으로 평가받는데, 저자는 ‘법신, 반야, 공, 불성 사상을 드러낸 시’를 선시로 규정한다. 간명직절한 선의 정신은 당대 문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선사들 역시 문학성 짙은 게송들을 남겼다.
차문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선문화로 손꼽힌다. 선과 차의 만남은 선의 문화적 지평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끽다(喫茶)’나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원에서 차는 그야말로 생활 일부였다. 그러나 차는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수행 일부이기도 했다. (끽다(喫茶-차를 마시다)
이상과 같이 이 책은 전성기 중국 선원의 정신과 수행생활 전반에 대해 담고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위기에 처한 한국불교가 탐구해야 할 롤모델이기도 하다. 물론 무조건 뿌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조건 과거와 똑같이 하자는 것은 인류의 기원이 원숭이니까 우리도 원숭이 흉내나 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던 수행 모델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길을 찾는 사람에게 필수 과정이다. 원형을 바로 알아야 차용할 것과 변용할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수행이 살아 있는 한국불교를 상상하게 할 것이다. ■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동국대 선학과, 동 대학원 졸업. 〈선의 생태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와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등 역임. 현재 전법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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