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 이사야(94)/앎
제목 :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성경 : 사 52:1~12
찬송 : 298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1220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사 52: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사 5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사 52: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사 52: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사 52: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사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사 52: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사 52: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사 52: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은 심판 중에 처했던 여호와의 백성에게 일어날 구원과 회복을 선포합니다. 여인으로 의인화된 ‘시온/예루살렘’은 수치와 비천에서 영화를 약속받습니다. 그 약속의 중심에는 여호와의 임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과 죄악으로 더럽혀져 버림받았던 성읍 시온이 이제는 거룩한 성으로 변화되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거하실 보좌로 회복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곳에 돌아와 자기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시라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신 긍휼함에 기반 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죄악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음에도 여호와는 그곳에서 핍박받는 이스라엘을 그냥 보고 계실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압제자들의 모독을 통해서라도 자기 백성이 여호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토로 돌이키실 때에 출애굽에서 보이셨던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그들을 지키십니다.
유다 백성을 깨우시는 하나님
사 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사 52: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하나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시온을 깨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을 향해서 ‘깰지어다. 깰지어다.’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면서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깨우시면서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두 가지 장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모습입니다. 죄수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 오랫동안 갇힌 채 힘없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누워 있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그를 데리러온 사람이 감옥 안에 들어와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꾸 일어서라고 합니다. 이제는 그 더러운 죄수복을 벗고 원래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질로 붙잡혀서 매일 두들겨 맞고 죽인다는 위협을 당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또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은 마약이나 술에 중독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몸을 웅크리고 마약 소굴 같은 곳에 누워 있는데 가족들이 그를 데리러 와서 그 모습을 보면 너무나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이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라고 크게 말하고, 밖에 나가 재활 치료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자고 이야기 하겠지요.
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다 유대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성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읍이었습니다. 화려한 건축술과 장식으로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거기서 흘러넘치는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즉 예루살렘 안에는 술 취한 자가 없었고 주정하는 자가 없었고 포악한 자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친절했고 상냥했으며 그 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넘쳤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이 세상의 성공을 사랑하고 우상을 끌어들이면서 불만이 가득 차고 분노와 욕심으로 마음이 포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즉 유다 백성은 미쳐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유다 백성은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욕심이 가득했고 다른 이들에게 잔인했으며 자신의 정욕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정욕과 욕심에 중독된 것입니다. 결국 어느 날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서 완전히 미친 사람들은 죽이고 덜 미친 사람들은 포로로 끌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고생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별력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신을 잃었던 사람이 정신이 들면서 가장 먼저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있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추위를 느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추위를 느끼기 시작하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드디어 세상의 성공과 정욕에 도취되었던 것들이 빠져 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하나님은 지제 정신이 들기 시작하는 시온의 손을 붙잡아 힘껏 일으키시고, 아직도 비틀거리는 예루살렘에게 더러운 죄수복을 벗기고 아름다운 새 옷을 입히십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몸에 붙어 있는 티끌을 털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가치를 모를 때 술에 취해서 이리저리 뒹굴다가 몸이나 옷에 티끌이 많이 묻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티끌들이 보석이나 되는 줄 알고 이것에 미련을 두고서는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티끌 중에는 돈도 있고 인간관계도 있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미련이나 아까운 것들을 다 떨쳐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연단 받을 때 세상에서 즐기던 것들이나 세상에서 잘나가던 시절이 너무나도 부럽고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먼지요, 티끌에 불과하므로 전혀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티끌을 털어버릴 용기가 없어서 한평생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로잡힌 시온에게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죄의 쇠사슬을 끊어 주셨는데 시온은 이것이 진주 목걸이인 줄 알고 여전히 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엉터리 쇠사슬을 풀어 버리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모든 자랑이나 자부심이 이 목걸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목에서 이 엉터리 같은 자랑이 끊어질 때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모릅니다. 학벌의 자랑, 가문의 자랑, 성공의 자랑, 이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부는 쇠사슬을 감지 않습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손에 꽃만 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 버릴 용기가 없어서 우리는 쇠사슬을 감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돈 없이 속량해 주시는 하나님
사 5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사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즉 아버지 여호와가 자기 자녀들을 노예로 내보낸 것은 결코 빚 때문이 아니었기에 자녀들의 회복은 여호와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시기에 이스라엘의 속량은 확실히 성취될 것입니다.
사 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 48: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사 59: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사 52: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사 52: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유다 백성의 불신앙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공격을 받기 전에 앗수르가 쳐들어왔을 때에도 애굽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아예 돈을 싸들고 애굽으로 이민을 갔고 관리들은 돈을 주고 애굽 군대를 빌려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에 있든지 애굽으로 피난을 갔든지 어디에서나 무시와 업신여김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온 종일 하나님의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유다 백성 중에 부흥의 불길이 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버리면 부흥이 없어지고 부흥의 불이 꺼지면 그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죄를 짓기 때문에 무지무지하게 욕을 먹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재산은 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저수지에 연결되는 파이프가 막히면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물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능력이 흐르는 파이프입니다. 우리가 결사적으로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길입니다.
사 52: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그러므로’가 두 번 반복되는데, 두 개의 대구가 논리적 발전은 있지만 결국 같은 내용, 즉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 상을 전달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주목할 만한 해석은, 첫째 구는 압제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힘으로 이스라엘이 역설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구의 ‘그 날에는’은 회복의 때를 의미하는데, ‘내가 여기 있다’라는 선포는 그 회복이 여호와의 임재로 성취될 것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잡았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느니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데서 찾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그분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통치하시는 하나님
전쟁 중인 나라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승리했다는 소식입니다. 다른 나라의 압제를 받고 있는 나라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나라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사야는 머지않아 유다에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사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는 화자가 여호와에서 선지자로 전환되고, 메시지를 듣는 대상이 이스라엘에서 시온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임재라는 주제는 지속됩니다. 7절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벨론으로부터 산을 넘어 시온을 향해 달려오는 전령을 묘사합니다. 전령이 전하는 기쁜 소식인 평화, 좋은 소식, 구원은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선언으로 함축됩니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바벨론은 페르시아에게 패망합니다. 그렇다면 페르시아의 통치를 여전히 이스라엘이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사야는 페르시아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 자유를 주실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 52: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파수꾼들은 적이 침략해 오는지 지켜보는 자들입니다. 파수꾼들이 하나님의 부대가 자기를 구원하러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부대는 천사들의 부대입니다. 파수꾼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그분을 눈으로 본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성경을 알았더라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았을 텐데 성경을 믿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만 믿느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사 52: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노래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이제는 나무나 돌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돌과 시멘트로만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예루살렘을 지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황폐한 곳도 아름다운 곳으로 변합니다. 즉 모든 성도가 다 변합니다. 못난 사람도 변하고 가난한 사람도 변하고 성질이 나쁜 사람도 변하고 모두 아름답게 변합니다.
사 52: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이 모든 이방인 가운데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온 세계가 보는 중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우리를 아름다운 예루살렘으로 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에게 빨리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사 52: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처럼 우리에게 이 세상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지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이동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6: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기구를 메는 자들은 예배드리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의 모든 자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자유입니다. 마귀는 이 자유를 우리 정욕을 위해서 쓰라고 유혹합니다. 그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귀한 것을 다 찾게 됩니다.
성막의 기구를 메는 레위인들을 앞세워 부정한 땅에서 떠나며 하나님이 앞뒤에서 그 백성을 호위하시는 모습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그들과 함께 하시던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살뜰히 보호하시던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이스라엘 위에 임하리라는 기대에 찬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것인 하나님의 백성이 가진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건, 우리의 영적 수준이 어떠하건 상관없이 하나님은 ㅈ금도 우리를 통치하시며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입에서도 이런 찬송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듯이 우리를 보로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영광과 권세를 누리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를 비웃지만,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다.”라고 선포하며 담대하게 맞서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을 바로 알고 따라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