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1.소개
1)주전 2,000-1,800년 사이에 메소보다미아는 엘람 족속이라 불리는 일단의 동방인들에게 지배되었다(창 10:22/14:1, 9 참조). 엘람 족속이란 오늘날 흔히 페르시아(바사)인 들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다.
2)주전 1,760년에 엘람 족속들은 유브라데 강 서쪽에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들에 의해 메소보다미아에서 쫓겨났다. 이 침입을 주도한 승승장구의 아모리 장군은 함무라비였다. 이 인물로 더불어 고(古) 바벨론 왕국이 시작되었다. 그가 죽자 그의 제국은 분열되어 근 100년 동안이나 지리멸렬한 상태로 있다가 느부갓네살이란 이름의 갈대아 군인에 의해 신(즉 두번째) 바벨론 왕국이 수립된다.
2.고 바벨론 왕국
1)주전 1,760년 함무라비는 티그리스-유브라데 계곡을 점령하고, 유브라데 강가에 수도 바벨론을 세웠다.
2)바벨론의 주신(主神)은 마르둑이었다. 함무라비는 마르둑의 지상 사자(使者)임을 주장하여 통치권의 신성(神性)을 수립하였다.
3)그는 바벨론 제국의 창설자일 뿐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의 편찬자로도 알려져 있다.이 법전은 바벨론의 생활 중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국면을 규제하는 약 300조항의 법률집이다. 그러나 함무라비가 이 법률을 입안한 것은 아니며 약 300년 전에 수메르의 덩기가 이미 입안했던 것을 함무라비가 법률화하여 요약한 것이다.
4)고 바벨론 제국은 그의 치세 중에 번영일로를 걸었으며, 그는 42년 동안 재위에 있다가 죽었다. 주전 1,708년 그가 죽은 직후에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일단의 전사들인 헷 족속이 메소보다미아를 점령하자 고 바벨론 왕국은 멸망했다. 헷 족속은 헷의 후예이다(창 10:15/23:3-20/27:46 참조).
5)대략 170년 동안 헷 족속이 바벨론 영토를 지배했으나, 주전 1,530년 그들은 메소보 다미아 북부에 살고 있던 구스족(Kassites)에게 복속당했다(창 2:13/10:8 참조). 그들은 이 지역을 근 400년 동안 지배했으나, 앗수르와 엘람인들에게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3.신 바벨론 왕국
1)주전 620년경, 갈대아인들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인들이 초토화시켰던 바벨론을 재건했다. 앗수르 치하의 고 바벨론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갈대아인들이 메소보다미아 남단에서 건너왔다. 이들은 나보폴라살이라 하는 인물의 인도를 받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바벨론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 직후 그는 메소보다미아 북부 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메대 왕의 딸과 그의 아들이 결혼하도록 주선하였다. 주전 612년 나보폴라살의 유명한 아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인과 메대인의 연합군을 결성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략했다.
2)반란은 성공하였으며, 이 결과 신바벨론 왕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3)주전 606년 느부갓네살은 저 유명한 갈그미스 전투에서 눈의 가시로 남아 있던 애굽을 격파했다. 느부갓네살은 도망하는 애굽인들을 쫓아 서쪽으로 예루살렘까지 추격했다. 그의 첫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하여 짧은 시간에 그쳤다. 그는 주전 605년 8월 15일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는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최소한 세 번은 포위 공격한 후에 그 성을 전소시켰다.
그 세 번의 공격은 다음과 같다.
(1)주전 605년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여호야김(요시야의 아들)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웠으며, 성전 보물 일부를 약탈하고 왕족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이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있었다(대하 36:6, 7/단 1:1-3).
(2)주전 579년
그는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나머지 보물을 가져가고, 이와 더불어 선지자 에스겔, 왕 여호야긴(여호야김의 아들), 십만 명에 달하는 왕족, 관리, 주요 인물들을 포로로 끌고갔다(왕하 24:14-16). 이 일은 주전 597년 3월 16일에 일어났다.
(3)주전 586년
그는 또 다시 와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주도한 반란을 응징했다. 이때 예루살렘 방벽은 무너지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예루살렘은 전소되었다. 시드기야의 아들은 살해되고, 시드기야 자신은 눈알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거기서 그는 여생을 마쳤다.
그리고 나서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시를 개수하는 광범위한 계획에 착수했다(단 4장). 이리하여 바벨론이 그의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도시를 두른 방벽의 높이는 90m였고, 두께는 25m였다. 이 벽은 정방형으로 도시를 둘렀으며, 한 면의 길이 는 14km에 달했다. 내부 면적은 500㎟,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의 뉴욕시의 크기와 맞먹었다.
바벨론은 노아의 4대손 니므롯에 의해 창건되었다(창 10:8-10). 수차례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 도시는 세상에 알려진 가장 호화스럽고 웅장한 도시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세워진 그 도시는 38㎟에 뻗쳐 있었으며, 유브라데 강이 그 도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 도시가 높이 106m, 두께 26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전한다. 더구나 방벽의 밑부분은 굴착을 저지하기 위해 지하 10m까지 연장했으며, 폭은 여섯 대의 전차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성벽 위에는 전략적인 위치마다 모두 250개의 망대가 있었다.
이 거대한 성벽 바깥에는 커다란 외호, 즉 성 주위를 둘러싼 수로가 있었는데, 그 수로에는 유브라데 강의 물이 채워졌다. 이 거대한 외호는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막아내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무릇 바벨론 성을 공략하자면 성벽으로 다가서기 전에 이 물웅덩이를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성벽에는 놋으로 된 100개의 문이 있었다.
바벨론은 안전한 요새일 뿐 아니라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다. 저 유명한 바벨론의 가공 원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정원은 넓이가 36㎞로 대지 위에 여러 계단을 차곡차곡 포개놓은 형태였으며 하늘로 높이 90m가량 치솟아 있었다. 관람객들은 폭 3m의 계단을 통해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다. 멀리서 볼 때 이 가공원은 사람을 짓누르 듯했다.
탑 자체의 밑바닥은 한 면의 폭이 91m였다. 바벨탑에 가까운 거대한 마르둑 신전은 유브라데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성소였다. 거기에는 적어도 22t 이상 나가는 벨(Bel)의 금상과 금 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에 벨과 아스달의 황금 신상, 두 금사자, 길이 12m, 폭 4.5m의 금탁자, 높이 5.5m의 정금 으로 된 사람의 상이 있었다. 바벨론은 문자 그대로 금의 도시였다(사 14:4 참조). 바벨론에는 이스달 신전이 53개이고 제단이 180개 있었다.
4)느부갓네살은 주전 562년에 죽었다.
5)허약한 사람들에 의한 몇 단계의 짤막한 치세기를 거친 후, 나보니두스가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었다.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했으며 주전 556년부터 539년까지 권좌에 있었다. 그는 왕위가 싫어지자 왕권을 아들 벨사살에게 맡기고 바벨론 시를 떠나 동쪽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역사상 최초의 고고학자가 되었다.
6)주전 539년 10월 13일, 바벨론 시는 메대와 바사 동맹군의 손에 들어갔다. 벨사살은 살해되고, 신 바벨론 왕국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단 5장 참조).
7)바벨론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이 발전했다. 바벨론인들은 훌륭한 건축자들이었다. 저 유명한 가공원도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고향 메대의 산을 그리워하는 아내 아메티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건축한 것이다. 또한 그의 왕궁은 넓이가 12㎟였으며, 향연장은 폭이 19m, 길이가 52m로 면적은 1020㎞였다.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