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에 합딩한 요소들 I -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
1)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무지
- 우리는 찬양할 때 하나님을 가리키거나 대신하는 대명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필요한 것은 고유명사, 즉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무조건 과장하는 것도 아니고, 인색한 칭찬도 아닙니다. 찬양은 찬양의 대상께 맞는 영광을, 찬양하기 합당한 자들이, 합당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시 96: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알지 못하면 거기에 맞는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안다면 그렇게 취급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어떤 관념으로만 생각한다면 또 거기에 맞게 취급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의 이름으로 취급했기에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애굽왕 바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몰랐기에 모세의 말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 사울은 예수의 이름을 몰라서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 찬양의 대상의 이름에 대해 모르고 추측이나 예상에 의해 찬양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성품적 이름들
- 하나님으로서의 불변하는 속성을 대변하는 이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엘로힘 :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창 1:1) - 창조와 통치의 의미 내포 ② 엘 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 모든 것의 원천, 만족, 풍요 ③ 아도나이 : 소유주이신 하나님 (사 6:1) - 만물의 주인 ④ 여호와(야훼) : 성경 전체를 통해 6,800번 이상 나오는 이 명칭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름은 거의 부모님들이나 그의 조상들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각 생물涌“?이름을 지어 주었고(창 2:20), 하와에게도 이름을 주었습니다.(창 3:20) 그리고 아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아무도 붙여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지은 이름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출 3:14-15, 출 6:3) 3) 하나님의 사역적 이름들
- 하나님의 속성이 인간들에게 표현되는 방법에 따라 여러 사역적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성품적 이름을 내포하는 여호와와의 복합어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의 보이지 않는 속성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을 사역적 이름들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① 여호와 이레 :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준비하시는 주님 (창 22:14) ②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 15:26) ③ 여호와 닛시 : 승리와 구원의 깃발이신 하나님 (출 17:15) ④ 여호와(므)카데쉬 :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레 20:8) ⑤ 여호와 샬롬 : 평강과 화해의 하나님 (삿 6:24) ⑥ 여호와 로히 : 목자이신 하나님 (시 23:1) ⑦ 여호와 치두케누 : 의가 되신 하나님 (렘 23:6) ⑧ 여호와 삼마 : 그 곳에 계신 하나님 (겔 48: 35) 4) 예수 이름
-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되었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는 위대하고 거룩한 이름이었지만 죄인인 인간들에게는 구원과 용서가 없는 두려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라는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는 문자적으로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마 1:21)
- 여호와에는 구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 이름엔 구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또 다른 이름을 예언했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친히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임마누엘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연합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구원이 됩니다. 예수라는 이름과 임마누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 예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아들에게 주었고, 그 이름으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요 17:11, 요 14:26) 이제 그 이름을 우리가 갖게 되었습니다.
- 예수 이름에 합당한 영광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예수는 가장 뛰어난 이름이므로 찬양의 대상에 합당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 된 가사의 곡을 부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와 구원의 이름인 동시에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인 예수에는 이미 여호와의 의미가 모두 들어가 있으므로 예수를 사용한 가사가 더 바람직합니다.
<결론> 여호와의 이름은 찬양 받으실 이름이지만 우리를 구원한 이름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은 우리를 구원했고, 또 찬양 받기 합당한 이름입니다.
찬양에 합당해야 할 요소들 II - 거룩한 옷
앞의 여러 단원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의 대상임에 합당하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기 합당한 자들입니까?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기 합당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자격은 합당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와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마 22:10∼13) 1) 거룩한 옷
- 하나님이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신 후 모세를 통해 `거룩한 옷'에 대해 처음 말씀하셨습니다.
(출28: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 이 거룩한 옷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입는 것으로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을 뜻합니다.
(계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의복을 깨끗하게 할 것에 대해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9: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 그러나 우리의 의복은 거룩하고 깨끗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의를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마귀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정죄했습니다. 우리에겐 의가 없었고 우리의 옷은 더러웠습니다. (슥 3:1∼3)
- 예수께서 높은 산에 오르셨을 때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그의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희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막 9:3) 그 분만이 의로우신 분이라는 증거였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더러운 옷을 깨끗한 옷으로 만들 수도 갈아입을 수도 없습니다. 또 깨끗한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인간은 스스로 옷을 입은 적도 벗은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들에게 옷을 주셨습니다. 다음 말씀에서 어떠한 옷들을 주셨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출 40:13)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아론은 거기서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대하 20:21)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 (시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사 61:3) "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고 그들의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슥 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지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2) 찬양하는 자들의 예복
- 위의 말씀들에서 `옷'의 두 가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의로움이며, 둘째는 직분 위임입니다. 성도들은 누구나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특히 찬양 사역자들에겐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격과 신분에 합당하지 않은 실수와 죄로 인해 우리의 예복이 자꾸 더러워져 가기에 찬양할 담대함을 잃게 되고, 자신이 찬양할 만한 자가 못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더러워진 예복들, 훼손된 제사장의 거룩한 옷들, 우리의 직분과 신분에 충성하지 못함으로 해서 우리 모습이 찬양하기에는 초라해 보일 때, 우리는 예수의 피와 말씀으로 다시 우리의 거룩한 옷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찬양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레 8:30)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계 7:14)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 <결론> 거룩한 옷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우리의 의로움이며 찬양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직분 의식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예복을 입지 않았으나 곧 예복을 입고 하늘의 영광을 맛볼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이런 찬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였음이라"
찬양에 합당해야 할 요소들 Ⅲ - 표현 방법(음악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찬양의 대상이심과 또 우리는 그분을 찬양할 의무와 권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 있는 찬양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을 외부로 표현해야 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그 표현은 어느 정도까지가 상한선이고 하한선인지, 우리 나이에 맞는 표현인지, 우리 교회에 맞는 표현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함으로 해서 찬양이 멈칫하게 되고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 우리 교회에 맞는 표현 방법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맞는 표현 방법으로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표현방법
- 노래 (시 107:22) :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 외침, 함성(시 5:11) :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 손뼉 (시 47:1) :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 손을 듦 (시 141:2) :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 악기 (시 144:9) :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줄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 춤 (시 149:3) :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 몸을 굽히고 무릎을 꿇음 (시 95:6)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2) 찬양에 합당한 음악
- 성경에 나타난 찬양방법 중 대부분은 악기, 노래, 춤 등을 중심으로 한 음악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라도 아름답고 훌륭한 음악들이 있습니? 과연 찬양의 음악은 이러한 음악들보다 나아야 할까요 아니면 못해도 지장 없을까요? 세계적인 worship leader인 라마르 보쉬만(LaMar Boschman; Hosanna! Music 시리즈인 <Glory to the Kihg>, <Arise,O God> 등에서 찬양을 인도했고,찬양과 경배에 대한 많은 저서를 펴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악기는 아주 세상적인 것이어서 교회 안에서 절대로 연주될 수 없다는 등 악기의 종류에 대한 논쟁 뿐 아니라 음악의 형태에 대한 논쟁도 많았다. 모든 악기와 음악은 원래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 음악은 타락한 천사인 루시퍼에 의해 생겨난 것도 그의 독점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찬양하라고 음악성을 주셨지만 사탄이 그 음악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17-18세기 풍의 곡들을 어느 교회에서는 현대적 찬송을 주장하고 있고, 한 교회 내에서도 음악적 취향과 형태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어떤 악기로 찬양할 것인가, 어떤 음악으로 찬양할 것인가, 어떤 춤으로 찬양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기, 음악, 춤으로는 찬양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찬양의 대상만은 명확히 기록하고 있는데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악기, 어떤 음악을 주장하든 적어도 각기 주장하는 음악에는 익숙해서 찬양의 표현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 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대하 34:12) " ... 다 그 일을 주장하고 또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 하였으며" 3) 찬양에 합당한 가사
- 악기 연주나 음악 스타일만 가지고는 하나님께 속한 음악인지를 구별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사는 양자의 구분을 비교적 확실히 해 줍니다. 찬양의 가사는 그 대상에 따라 보통 다음과 같이 나누어집니다.
1.하나님을 향한 가사 2.사람들을 향한 가사:성도들을 향한 가사 & 불신자들을 향한 가사
- 가사 내용이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 중심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 찬양이 됩니다. 찬양의 가사는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1.성경 말씀 그대로 또는 상당 부분을 반영시킨 가사(Scripture song) 2.성경에 근거한 창작 가사 3.개인의 신앙 간증
- 찬양의 가사는 명확해야 합니다. 가사를 통해 뚜렷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라마르 보쉬만은 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중적 의미를 가진 노래들, 즉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노래를 통해서는 예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언급이 없는 사랑의 노래,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을 사랑합니다'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를 당신이 부른다고 가정할 때,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금방 연상하지 못할 것이다.(중략) 비록 그들이 당신이 크리스천임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결론> 아직까지는 많은 악기들 많은 종류의 음악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하나님이 자신을 찬양케 하기 위하여 지으셨기에 그분이 친히 음악을 통치하실 것이고 우리가 합당한 찬양으로서의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우실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