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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10
축복의 지도를 그려라 / 양인순 목사
미국에서 ‘자기개발프로그램’으로 선풍적인 화제를 몰고 온 베리 파버(Barry J. Farber)가 쓴『지금 당장 시작하라(김한영 옮김|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성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공시나리오를 마음속에 그리라’고 말합니다. 내가 성공했을 때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항상 그리라는 것입니다. 주어진 대로, 닥치는 대로 인생을 살지 말고,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멋진 성공 시나리오를 가지고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수고하고 노력해도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실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공에 대한 멋진 시나리오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멋진 계획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성공 계획과 함께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두 부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고 난 후에 한 부류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누립니다. 다른 부류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기업을 차지하고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 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이가 든 여호수아에게 요단 서쪽의 땅들을 이스라엘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하십니다.(수13:1-7)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한 상태가 아닙니다. 아직도 차지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보통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차지하지도 않은 땅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땅을 분배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을 가진 사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자는 상식에 메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합니다. 비전을 따라가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을 차지합니다.
여호수아는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미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가나안의 전쟁은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요단 동편의 땅들을 르우벤과 갓 두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요단 서편은 갈렙 지파와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가 차지합니다. 이 영토 분배가 길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다섯 지파만이 영토를 분배받고 나머지 일곱 지파(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 스블론 지파,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단 지파)는 영토를 분배받질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 약속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보고를 여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여전히 어렵고 힘든 삶을 살까요?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비전의 부재입니다.
요단서편의 땅을 이미 분배받은 유다지파와 요셉 지파의 공통점은 각각 갈렙과 여호수아라는 지도자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세에 의해 이미 가나안의 12정탐꾼으로 선발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땅을 탐지한 후에 믿음으로 보고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이 그들은 성이 견고하고, 장대같은 아낙 자손이 살기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모든 백성들이 밤이 새도록 울면서 모세를 돌로 치려합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반드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라고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실 약속의 땅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현실의 장벽 때문에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어떤 난관 앞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따라갑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입니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유라굴로를 만나 배가 깨지고 모든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입니다.
그때도 바울은 담대하게 외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큰 소리를 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기술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비전을 따라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5)
바울은 이미 하나님께서 가이사 황제 앞에 서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이사 황제에게 복음을 전할 때까지는 반드시 지켜주신다는 믿음의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가 깨지고 모든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생명의 복음을 외칠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의 비전의 부재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현실의 파도 앞에 좌절합니다. 낙심합니다. 포기합니다. 그러나 비전을 가진 자는 담대합니다. 어떤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말씀을 붙잡고 용기 있게 일어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나갑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회복하시고, 비전에 이끌려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열정의 상실입니다.
요단 서편의 일곱 지파가 땅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열정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지체하다’ 라는 단어의 원어(Rapa)는 ‘늦추다, 게으름을 피우다’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신명기 1장 21절에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이미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고, 주저하지 말고 너희 앞에 있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했음에도 땅을 차지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 안에는 애굽의 노예 근성이 남아있습니다.
이미 17장에서 땅이 적다고 불평하고 있는 요셉 지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산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 내리라(17:18).” 아멘!
하나님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개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요단 서편의 일곱 지파는 열정이 없습니다. 비전이 없습니다.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계속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열정도 없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현실에 안주합니다. 자꾸 과거를 그리워하며 삽니다. 게으름을 피웁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지요? 요단 서편의 일곱 지파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면서도 열정이 식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지는 않는지요? 현실에 안주하여 적당히 살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다시 한번 내 안에 식어가는 열정의 불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여 지체하지 말고, 벤처 신앙으로 무장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진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를 통해 이미 약속의 땅을 분배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나안 족속들은 철 병거를 가지고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힘겹게 싸워왔는데 아직도 자신들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각 지파별로 각개 전투를 해서 나머지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혹시 전쟁에 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결국 요단 서편의 일곱 지파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전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합니다. 지금까지의 전쟁도 자신들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했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게으름을 피우며 안주하고 있습니다. 안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야합니다. 링컨의 어머니는 아들 링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사귀지 말라 그들의 병균이 전염될까 두렵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나쁜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미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와 유다와 요셉 지파는 자신의 기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면 일곱 지파 가운데 어느 한 지파라도 용기를 내서 약속의 땅을 점령했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서로 눈치를 보며 지체한 이유는 안된다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각 지파에게 전염이 됐기 때문입니다.
나 한 사람의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의 힘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긍정의 말, 축복의 말을 하십시오. 생각대로 말대로 내 삶이 움직입니다.
저는 컴퓨터 앞에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책 <더 잘되는 나>의 일곱가지 핵심을 붙여 놓고 읽습니다.
1)나는 잘 될 것이다
2)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3)나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4)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5)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6)나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7)나는 믿음으로 산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십시오.
나는 부족해도, 나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이 내게 힘주시고, 능력주시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생각을 가지고 도전하십시오.
다시 바닥을 박차고 일어서십시오. 능력의 주님께서 약속의 땅을 넉넉히 차지하도록 도우실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점령을 미루고 있는 일곱 지파를 책망하면서 대안을 제시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책망만 하는 자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자입니다. 공동체 안에도 비판만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비판은 공동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참된 리더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자입니다.
여호수아는 멋진 대안을 제시합니다.
4절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서 세 사람씩 선발을 해서 차지해야 할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게 합니다. 그리고 직접 현장에 나가서 구체적으로 지도를 그려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 나누어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땅을 차지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축복의 지도를 그리라
자연에는 자연법칙이 있고, 과학에는 과학의 법칙이 있습니다. 축복 받는데도 축복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축복의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행복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성공하기 원하는 사람은 성공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축복받기 원하는 사람은 축복의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그림은 그린다는 것은 곧 비전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13장 17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그 후에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비록 조카 롯에게 기름진 소알 뜰을 주었지만 너는 낙심하지 말고 나머지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며 보라는 말씀입니다. 두루 다니며 본다는 말씀은 오늘 본문의 지도를 그려오라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아직은 차지하지 못한 땅이지만 네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그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을 밟으면 반드시 너에게 주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상을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응답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건강 주실 것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축복의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 1596~1650)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어라.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생각하고 그린대로 이루어진다.” 내가 지금 내 머릿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그리느냐가 그 인생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일곱 지파는 순종함으로 두루 다니며 지도를 그려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합니다. 제비를 뽑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겠다고 싸우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믿음의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부분에서 실수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하나님 최선의 결과를 주셔야지 왜 이렇게 신통치 않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비록 사람이 계획하고 뜻을 세우지만 그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잠16:9).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내 생각대로 판단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노동의 새벽> 이란 시집으로 유명한 시인 박노해 씨의 <꿈은> 이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꿈은 꾸는 것이 아니다 / 꿈은 묻는 것이다
밑불로 씨알로 / 꿈은 온 몸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자신을 묻어 캄캄히 썩어 꿈은 뿌리로 다시 피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꿈을 꾼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은 땅에 떨어져 묻혀야 싹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꿈은 머리로 단순히 꾸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온 몸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삶이 꿈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던져 헌신할 때 꿈은 마침내 피어나 또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꿈꾸는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꿉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개꿈으로 끝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머리로만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자신의 삶이 꿈이 되는 헌신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9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들은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흥회를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에 품고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얼만큼 노력하고 있는지요? 우리가 아무리 위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그리고 안된다고 말하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지금부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크게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도화지에 마음껏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나의 모습, 축복의 모습, 잘되는 나의 모습, 자녀들의 모습을 그리십시오. 지금보다 더 창대케 되는 직장의 모습과 사업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날마다 부흥하는 성지교회의 모습을 가득 그려보십시오.
날마다 축복의 지도를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리십시오. 그리고 단순히 허황된 꿈이 아닌 구체적인 비전으로 가슴에 새기고, 묻으십시오.
그리고 그 비전이 여러분 자신의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내 삶이 되고, 그 비전을 위해 내가 썩어지는 밀알이 될 때 그 꿈은 마침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축복의 열매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