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韓管境 本紀 第四 (256) (삼한관경 본기 제4) ― 58
[番韓世家 下, 번한세가 하] ―13
무술년(B.C.263년)에 水韓(수한)이 죽었는데 후사 없으매 이에 기후가 명을 받아 군령이 대행하였다. 연나라는 사신을 보내 이를 축하하였다. 이 해 연나라도 왕이라 칭하고 장차 쳐들어오려고 하였으니 기후도 역시 명을 받아 번조선 왕이라 칭하고 처음에는 番汗城(번한성)에 머무르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기후가 죽자 아들 箕煜(기욱)이 즉위했다. 기욱이 죽고 신미년(B.C.230년)에 아들 箕釋(기석)이 즉위했다. 이 해 각 주군에 명하여 어질고 지혜 있는자를 추천하게 하니 일시에 선택된 자가 270인이었다. 기묘년(B.C. 222년) 번한이 교외에서 몸소 밭을 가꾸었다. 을유년(B.C. 216년) 연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다. 기석이 죽고 경술년(B.C. 191년)에 아들 箕潤(기윤)이 즉위하였다. 그가 죽자 기사년(B.C. 172년)에 아들 箕丕(기비)가 즉위하였다. 처음 기비는 종실의 解慕漱(해모수)와 몰래 약속하여 제위를 찬탈하려 했으니 열심히 명령을 받들어 보좌했다. 해모수가 능히 대권을 쥐게 된 것은 생각컨대 기비 그 사람 때문일 것이다. 기비가 죽으니 아들 箕準(기준)이 즉위했는데 정미년(B.C.146년)에 떠돌이 도적인 衛滿(위만)의 꼬임에 빠져 패하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1.제위를 찬탈하려 했으니 : 원문에서 易璽(역새)라고 했으니, 옥새를 바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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