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야화음(夜話吟)」 유배의 슬픔을 만취와 담소로 달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다음 칠언절구(七言絶句) 「야화음(夜話吟) 1547년(丁未)」 3수(首) ‘밤에 나눈 이야기를 읊다’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는 연구(聯句, 여러 사람이 구절을 이어 가며 지은 시)다. 이 3수(首)는 차례대로 ‘阮’, ‘先’, ‘歌’ 운목(韻目)이고 측기식, 평기식, 측기식 절구(絶句)다.
이 글은 1547년(정미년) 거제도 유배지에서 유배객 정황(丁熿)이 정의(鄭依), 정염(丁焰)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정치적 좌절감과 외로움을 달래는 애달픈 유배 작품(聯句詩)이다. 이 해는 정황 선생이 을사사화 여파로 거제도로 유배를 갔던 때다. 유배지의 쓸쓸함, 고독,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벗들(鄭依, 丁焰)과 밤새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래는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야화음(夜話吟)」은 3사람이 한 구절씩 이어 지은 연구시(聯句詩)로, 낯선 바다 거제섬에서 외로움과 시름을 술과 밤새 나눈 이야기로 달래며, 마음을 맑게 씻어내고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노래한 한시다. 덧없는 인생의 슬픔을 만취와 담소로 승화시키며 맑은 정신으로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에 ‘유배지의 공간적 고독감과 술을 통한 현실 도피 및 마음의 정화’가 이 글의 주제다.
○ [연구시(聯句詩)] 연구시는 두 명 이상의 시인이 자리에 모여 차례대로 한 구절씩(또는 여러 구절씩) 번갈아 읊어 한 편의 완성된 시를 만드는 중국 고전 시가의 한 형태다. 주로 문인들의 모임, 연회, 친구들과의 교류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창작되었으며, 일종의 고차원적인 문학 게임이자 사교 활동이었다. 한 사람의 독백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생각과 표현이 결합되어 완성된 집단 공동 창작물이었다. 앞사람이 운자(韻字)를 정하거나 시를 시작하면, 뒷사람은 그 운율(평측과 압운)과 시의 주제,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즉흥적으로 다음 구절을 지어야 했다. 대체로 앞사람이 첫 구절(上句)을 던지면 뒷사람이 대구(對句)를 맞추어 한 련(聯)을 완성한 뒤 다시 새로운 첫 구절을 던지는 방식과 한 사람이 2구 또는 4구씩 한 단락을 책임지고 이어서 짓는 방식, 2가지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연구시(聯句詩)는 제한된 시간 안에 앞 구절을 받아쳐야 하므로 시인의 즉흥적인 순발력과 깊은 학문적 깊이(시재, 詩才)가 요구되었다. 또한 여러 시인의 서로 다른 개성과 풍격이 한 작품 안에서 충돌하고 융합되면서, 혼자 지을 때는 나올 수 없는 독특하고 역동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매력이 있다.
○ 「야화음(夜話吟)」 3수(首)의 내용인즉, [제1수]에선 바다 끝 외딴섬이라 술도, 사람도 구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피리 소리를 들으며 만취해 시름을 잊고자 했다. [제2수]에선 일 년처럼 길고 지루한 유배지의 밤을 달래기 위해, 술에 취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신선이 되고자 소망한다. [제3수]에선 밤새 술잔을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사이, 세상의 수많은 걱정은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맑은 생각만 남아 정화된다.
이 시는 단순한 풍류 시가 아니다. 조정에서 쫓겨나 변방의 섬으로 밀려난 지식인들이 밤(夜)이라는 시간과 술(酒)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정치적 좌절감과 고독을 달래는 애달픈 유배 문학이다. 서글픈 피리 소리와 깊어가는 밤, 술에 취함을 통해 걱정을 지워내고 맑은 마음을 회복하려는 군자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야화음(夜話吟) 1547년(丁未)」** ‘밤에 나눈 이야기를 읊다’ 3수(首)
*연구(聯句) : 정황(丁熿), 정의(鄭依), 정염(丁焰) 3명
其一 (첫째 수) ‘阮’
海外酒難賓亦難 바다 밖 외딴섬이라 술도 구하기 어렵고 손님맞이도 어렵구나.[정황]
天涯人遠路俱遠 하늘 끝이라 사람도 멀리 있고 길 또한 모두 멀기만 하네.[정황]
羈愁三弄笛聲中 나그네의 수심은 세 가락 피리 소리 속에 녹아드는데 [정의]
醉未到泥非飮穩 진탕 취해 쓰러지지 않는다면 편안하게 마신 것이 아니라네.[정황]
其二 (둘째 수) ‘先’
閒愁無賴夜如年 한가로운 시름 어찌할 수 없어 밤은 일 년처럼 길기만 한데 [정황]
緣是浮生落海天 이 덧없는 인생이 바다와 하늘 맞닿은 섬에 떨어진 탓이라네.[정황]
除却杯談難度日 술잔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 빼면 날을 보내기 어려우니[정의]
醉如泥處便逃仙 진흙처럼 취해 쓰러지는 그곳이 바로 신선으로 도피하는 길일세.[염]
其三 (셋째 수) ‘歌’
擧白相屬君當歌 잔을 비워 서로 권하니 자네는 마땅히 노래를 부르게나.[정황]
明燈不眠夜半過 밝은 등불 아래 잠들지 못한 채 밤중이 지나가는데 [정황]
悠悠萬慮都消盡 아득하고 수많은 걱정들이 모두 사라져 없어지고 [정의]
秖有衿懷淸料多 다만 마음속에는 맑고 깨끗한 생각만이 가득하네. [정염]
○ 구절(句節) 핵심 시어 분석 및 해설
먼저 배경은 정미년(1547년)에 정황 선생이 거제도 유배 첫해에 지은 시다. '해외(海外, 바다 밖)', '해천(海天, 바다와 하늘)' 같은 시어는 유배지인 거제섬의 공간적 고립감을 극대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 시에서 연구(聯句)의 묘미를 보여준다. 정황이 시상을 열면 '정의(鄭依)'와 '정염(丁焰)'이라는 인물이 구절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유배지라는 극한의 외로움 속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벗들과 감정을 교류하는 애틋한 현장감이 돋보인다. 그리고 첫째 수의 '미도니(未到泥)'와 두 번째 수의 '취여니(醉如泥)'는 몹시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뜻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유배)을 잊기 위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에 의지하려는 유배객의 슬픈 자화상이다. 덧붙여 '신선으로 도피한다'는 도선(逃仙)은 술에 취해 현실의 고통을 잊는다는 점을 표현했다.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 술과 시, 그리고 벗을 통해 일시적인 정신적 해탈을 추구하고 있다.
○ 유헌(游軒) 정황(丁熿) 선생이 1547년(정미년)에 지은 「야화음(夜話吟)」 3수는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천 리 먼 절해고도 거제도로 쫓겨온 유배객의 극심한 한(恨)과 이를 달래는 초연한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조정의 바른말을 하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거제도라는 낯선 섬에 갇혔을 때의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게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왔기에, 가슴속에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와 분노, 그리고 조정에 대한 그리움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을 것이다. 섬의 파도 소리와 야삼경(夜三更)의 깊어가는 밤하늘을 보며, 인간의 삶이란 결국 한 조각 구름처럼 덧없고 유한하다는 깊은 슬픔과 마주하였을 것이다. 유배객은 찾아온 벗들과 함께 밤새 술을 마시며 가슴속 서러움을 쏟아낸다. 여기서의 ‘만취’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가혹한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마비시키기 위한 처절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술은 취했으나 정신은 도리어 맑아지는 ‘청성(淸醒)’의 상태야말로 「야화음」이 보여주는 유배객 심정의 절정이다. 밤을 새워 술을 마셔도 정신이 맑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결백한 선비’임을 내면적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뜻하며, 학문적 지조와 군자로서의 기개만큼은 불의에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정신적 승리의 선언이다. 결국 억울한 운명 앞에 눈물 흘리는 나약한 수인(囚人)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벗과의 신의와 술 한 잔에 의지해 인생의 허무함을 웃어넘기고, 끝내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지조를 지켜내려는 고결한 선비의 영혼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