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께서도 홀로 독처(獨處)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먼저 천주(天宙)는 인간을 위한 환경 창조의 일환으로 창조하시고 그 터 위에 당신의 절대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상 된 인간이 하나님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큰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들보다 더 잘되고 훌륭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부모들의 전통적 사랑입니다.
자식으로 지은 인간이 성장하고 완성하여 당신으로부터 축복결혼을 받고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열매 되는 참된 자녀를 번식하여 참된 가정에서 참되고 영원한 이상천국(理想天國)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이 되는 길은 먼저 상대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며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참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열리게 됩니다.』 무한한 거예요. 백만큼 계획을 했으면 백만큼 이루면 끝나는 거예요. 그걸 잊어버려야 돼요. 천만큼 투입하고도 잊어버려야 무한한 우주, 대우주가 생겨나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먼저 당신이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의 기준을 세워 놓고 그 위에 백퍼센트 투입을 했던 것입니다. 절대상대권(絶對相對圈)을 절대가치권(絶對價値圈)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가치권이 필요해요.
『참사랑의 주인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상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 가치권의 참사랑의 원리 앞에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영원히 부모가 참사랑의 주인이 될 수 없듯이, 하나님 자신이 절대사랑의 주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상대권인 인간을 당신의 참자녀로서 절대사랑의 가치권에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대주체와 절대대상의 가치관이 생겨나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를 보면, 크다고 하여 무조건 작은 것을 희생시키고 취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헬레니즘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弱肉强食)을 통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고, 참사랑으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절대복종의 대상으로서 주체적 참사랑의 주인으로 완성시키려는 절대가치관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가치관을 몰랐다는 거예요.
『참사랑을 배제하고 나면 투쟁 개념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투쟁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상호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면서 절대가치관을 향해 조화통일을 추구하는 원리입니다.』 법이에요. 원칙적 법이라는 것이에요.
『소(小)는 대(大)를 위해 희생을 할망정 그것을 투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상호발전을 위한 투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 가정은 국가를 위해 그리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어찌 투쟁이라고 하겠습니까? 이처럼 절대적 가치권은 먼저 서로 상대를 참사랑의 주인격으로 세워 주는 참사랑의 완성을 성사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기적인 개인주의적 사고나 행위는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이것은 타락성(墮落性)의 뿌리와 같은 것으로 모든 악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이기주의 행동이나 집단개인주의적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참사랑의 절대가치관의 정신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베푸는 대신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하게 만들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타락으로 야기된 인간의 몸과 마음의 싸움 속에 사탄이 교묘히 파고들어 인류에게 심어 놓은 독버섯입니다.』 인류가 타락한 걸 몰랐기 때문에 모르고 있어요. 『일신(一身)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보기에 아름답다고 하여 한번 자유행동을 취하고 나면 중독(中毒)에 빠져 일생을 고생해도 빠져나오기 힘든 악의 함정이요, 덫입니다.
우리의 몸을 살펴보아도 자유롭게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는 99.999퍼센트가 어머니의 피와 살과 뼈입니다.』 그걸 모르고 살아요, 지금까지. 『나머지 0.001퍼센트는 아버지의 정자(精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내 것’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이기적 개인주의에 대한 명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사지백체(四肢百體)는 모두가 어머니의 연장(延長)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우리 몸의 모든 요소는 이미 부모의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전(前)과 후(後)를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는 그 자체가 벌써 ‘후’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인정하고, 또 ‘위’라는 말도 ‘아래’를 먼저 인정해야 성립되는 말입니다.』 위가 그냥 나오지 않아요. 아래를 인정해야 됩니다. 오른쪽이라고 해서 오른쪽만을 말하지 않아요. 왼쪽을 인정해야 돼요. 선유조건! 『‘좌(左)’라고 할 때는 ‘우(右)’를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같은 논리로 남자라는 말도 여자라는 존재가 선유하기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여자에 맞게 남자를 만들 수 없었다 그 말이에요.
『즉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며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거 거짓말이에요, 사실이에요? 『같은 맥락에서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상대를 위해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우주 만상은 쌍쌍제도로 돼 있어요. 쌍쌍제도. 혼자 되는 법이 없습니다. 『상대적 관계로 이상향(理想鄕)을 향하게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누가 뜯어고칠 수 없어요. 타락했기 때문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요. 그걸 알아야 돼요. 그 뜻은 남아 있다는 거예요.
『인간의 오관(五官)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눈 자체를 보기 위해 생겼습니까? 눈, 코, 귀, 입, 손 모두가 상대를 위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관을 총동원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참사랑의 가치관을 완성시키려는 힘입니다. 우리의 오관은 참사랑의 실천을 위해 생겨난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위해서 베풀고 사랑으로 희생하고 복종으로 사랑의 주인을 완성시키는 생(生)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부응하는 삶인 것입니다.』 간단하지요. 간단합니다.
『상대를 위해 창조함을 받았으니 마땅히 상대를 위해 살아 주어야 하는 것이 천리인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여자를 위해 자기를 투입하고서 잊어버리면서 서로 돕게 되면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위해서 투입하는 자는 발전 외의 길이 없다!
『여기에서 참사랑의 절대가치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절대가치는 다 필요한데 남자 혼자 영원히 있지 못해요. 여자 혼자 영원히 있지 못해요. 둘이 사랑하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절대적 가치는 어디에나 커 가면서 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인류의 조상 되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생식기(生殖器)를 함께 허락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그걸 제일 나쁜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나님이 제일 귀하게 지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들이 성장하여 완성하면 그들을 결혼시켜…』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기 위해서 만들었지 그냥 타락하라고 만들었어요? 이 목사들! 눈이 먼, 눈이 죽었다는 목사예요. 나도 목사인데, 내가 레버런 문이라고 해서 제일 미워하는 거예요. 『죄 없는 참자녀를 번식케 하고 당신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인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아담 당대에 이 땅 위에 완성하려 하셨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474-162, 2004년 10월 30일, 로스앤젤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