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8] 임규문(林奎汶) - 나의 지주되신 하나님 5. 죽을 고비를 넘긴 순회노정 - 1 1 1월 26일에 오대산(五大山) 준령(峻嶺)의 진부(珍富)에서 개척하고 있는 하(河)양을 찾아갔다.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리(五里)쯤 떨어진 작은 마을로 갔다. 하양은 여기에서 부녀자들에게 야학(夜學)을 하고 있었다.
2 큼직한 사랑방에 20여 명의 부녀자들이 등잔불 아래 길쌈 바구니를 옆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양은 어제 배운 한글을 복습 시키고 나를 소개했다. 나는 재림론을 옛날이야기하듯이 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했다.
3 말씀이 끝나자 모두들 싸가지고 온 도토리묵과 고구마, 감 등을 내어놓고 먹으면서 즐겁게 밤을 보냈다. 이튿날 새벽부터는 사납게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4 며칠 전 폭설로 대관령(大關嶺)을 넘어가는 길은 차단된 채 오늘도 도로가 막힌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선군(旌善郡)의 개척지를 찾아가 집회를 해야 하는 나는 준비가 바빴다. 도로가 막혔으니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5 동네 어른들에게 지름길을 물어보니 한사코 못 간다고 만류한다. 쌓인 폭설로 산길을 분간할 수도 없으려니와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120리 길을 짧은 겨울 날씨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것이다.
6 지금 길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나 전도 대원이 굶주려 가면서 인연 된 생명들을 모아놓고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떠나야만 했다.
7 단단한 지팡이를 마련하고 털 모자를 푹 내려쓰고 가방은 끈을 달아 왼쪽 어깨에 메고는 농구화 끈을 졸라맸다. 20여 리의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다 쓰러져가는 손바닥만 한 판잣집에 ‘수하 감리교회(水下 監理敎會)’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8 이 깊은 산중에도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받기를 애원했던 흔적이 보였다. 여기서부터 60리 길은 인가가 없는 몇 개의 큰 산을 넘어가야 한다. 길을 재확인하고 지팡이를 앞세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