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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아주 특별히 주님에 대한 말씀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부터 46절 사이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3:44 그 때는 여섯 시쯤이며 어둠이 아홉 시까지 온 땅을 덮었더라.
23:45 또 해가 어두워지고 성전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니라.
23:46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고는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숨을 거두시니라.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드디어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죽음을 당하시는 장면이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주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는가 하는 문제를 깊이 묵상하거나 상고하지 못한 고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발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과연 무엇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을까요? 그리고 누가 주 예수님을 죽였을까요?
우리는 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수많은 인도자들과 목회자들의 설교와 말씀들을 통하여 수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왜 죽으셨고 누가 그분을 죽였는가라는 이러한 문제에 직접적으로 다가서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셔서 죽임을 당하신 그 죽음의 목적에
대해서나 그리고 누가 주 예수님을 죽였는가에 관한 그러한 일들을 우리가 실제적으로는 아는 일에 있어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죽임을 당하시고 무엇 때문에 주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는가 왜 그분은 죽으셔야 했으며 누가 과연 그분을 죽였는가? 배신한 가롯유다에 의하여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
셨는가 아니면 위선자들이요 반대자들이며 주님을 대적하고자 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셨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로마 유대 지방행정관인 빌라도 총독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셨는가? 아니면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음을 당하셨는가라는 이러한 의아함과 의문을 가지고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정확하고 확실하게 이 누가 복음을 통하여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이 모든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교제를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의
교제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장 3절에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1:4 이것은 각하로 하여금 각하가 이미 설명 받은 그 일들이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예 그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하게 친히 목격한 제자들로부터 들은 그 이야기를 단 하나도 가감됨이 없이 그것을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인 우리에게 이 일을 통하여 주님께서 왜 죽으셨고 누구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셨고
그 죽음은 무슨 목적 때문에 죽음을 당하실 수밖에 없었는지를 오늘 여러분들이 그것을 아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간절합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되어진 것처럼 주 예수님께서는 외형적으로는 사람에 의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가장 먼저는 자신의 12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롯유다 라는 자에게 배신을 당하여 팔림을 당하셨습니다.
마귀가 심어놓은 멸망의 아들이라고 기록된 이 말씀처럼 첫 번째로는 가롯 유다의 배신에 의하여 팔림을 당하신
주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위선자들이며 반대자들이며 주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공생애 동안 끊임없이 주님을 괴롭혔던 바로
그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고소를 친히 당하셨습니다.
그다음에 로마 관원인 유대 나라의 총독으로 일을 하였던 그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는 다름 아닌 사형 언도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사형 언도를 빌라도에게 받으신 주님께서는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임을 당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가복음 23장 26절부터 43절에서 우리는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바로 이 구레네 사람인 시몬에 의하여
자신이 지고 가는 그 십자가의 무게를 잠시 그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이렇게 옮겨짐으로 말미암아 바로 부활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가 된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을 위해서 그 십자가 짐을 질수 있는 어떠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도록 권면하심을 은연중에 암시받게 됩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이와 같이 십자가 위에서 그전에도 십자가에 달리기까지도 가롯 유다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관원인 빌라도와 그리고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그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신 그 후부터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로부터
핍박당하시는 장면이 이 누가복음 23장 26절부터 4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사람을 오신 구주께서는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로마 군병들을 통하여 희롱을 당하시고 조롱을 당하셨던 그분이
이제는 십자가 위에 달리신 주님을 보며 그 곁에 모여 있던 수많은 무리들 수많은 백성들이 서서 구경하며 그리고 로마
군병들까지도 주님을 비웃는 장면이 누가복음 23장 35절부터 3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3:35 백성은 서서 지켜보는데 치리자들도 그들과 함께 그분을 비웃으며 이르되, 그가 남들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곧 그리스도이면 자기도 구원할 것이라, 하더라.
23:36 또 군사들도 그분을 조롱하면서 그분께 나아와 식초를 바치며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도 이미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주님께서는 이미 실질적인
죽음에 어둠의 그 터널 속으로 들어가신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가룟유다에 의하여 팔림을 당하시고 그 후에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친히 고소를 당하시고 로마 관원인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그 로마 군병들이 명령에 의하여 십자가에 주님을 달리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후에 십자가 위에 달리신 주님을 보며 그 수많은 백성들과 관원들과 무리들이 주님을 조롱하고 희롱하는 장면을
우리가 이 십자가에 달리신 6시간 동안의 구주의 모습을 통해서 이러한 장면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하시고 그 당시에 어떤 유대의 법의 집행 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희롱당하시고 조롱당하시고 또 헤롯에게 끌려가시고 또 빌라도에게 다시 돌아온 예수님께 수많은 질문들을 통하여 굉장히
마음과 몸이 아주 말할 수 없이 그 매 맞음을 당하시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무릎을 꿇게 하는 이러한 고초와 고난을 통하여
심신이 매우 지치고 아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그러한 주님의 모습을 우리가 암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드디어 유대 나라의 시간이 아닌 우리나라 시간으로 지금 현재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해질 무렵인 오후 3시 정도 까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음을 맛보는 장면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오전 3시간과 정오 12시부터 3시까지 그 3시간을 합하여서 도합 6시간 동안을 십자가 위에 매달려 많은
고통과 함께 그전에 수많은 심신의 고단함과 더불어 찾아오는 그 고통을 친히 경험하면서 십자가 위에 6시간 동안
계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6시간을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영적인 의미로 두 가지 부분으로 은밀하게 계시해 주는데요.
첫 번째 부분으로는 아침 9시에 달리신 주님께서 오후 3시까지 곧 6시간 동안까지 달리시는 동안에 9시부터 정오까지가
첫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정오인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3시간 동안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장면이 두 번째 방면의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통해서 보면 처음에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인 이 3시간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예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누가복음 23장 35절과 36절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바로 무슨 일을 주 예수님께서 친히 경험하셨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이 23장 35절 36절 말씀인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조롱하고 싫어하면서 신포도주를 주는 장면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오전 아침 9시부터 정오인 12시까지는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친히 사람들로부터만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종교적인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모든 위선적인 종교적인 지도자들 예수님을
친히 고소하였던 그 종교적인 사람들은 그분을 희롱하였고 그리고 반면에 무리들은 그 희롱하는 그들의 뜻에 따라 하나가 되어 주 예수님을 비웃어 말하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고초와 고난을 당하시는 그분을 심히 조롱하였습니다.
누가복음:23:39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예수님의 좌우편에 매달린 행악자 중 한 사람으로 사형 언도를 집행 받았던 그 사람은
그 무리들의 대표자로서 또한 십자가에 매달린 주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조롱하고 비방하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를 통하여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그 6시간 동안의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보면서
그 중에서도 특별히 오전 9시부터 정오 12시까지인 이 3시간 동안은 주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심한 조롱과 비방을 당한
순간이었고 이때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간적인 핍박과 조롱과 비방을 받으시는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순교자로서 이 핍박을 경험하시고 조롱을 당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6시간을 달려 계셨는데 그러면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사람들로부터 친히 핍박을 당하시고
비방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순교자로서의 핍박을 경험한 것이라면 후반에 그 두 번째 방면인 3시간 동안인 정오12시 부터
3시까지 친히 하나님께 심판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를 위한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하는 죽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으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성취를 이루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친히 매맞음을 당하고 계시는 장면을
우리가 계속적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6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 처음에 3시간 동안은 사람의 핍박을 당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고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하나님께 친히 매맞음을 당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율법의 지팡이로 때림을 받으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친히 맛보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의 방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6시간 달리신 동안에 첫 부분의 방면은 사람의 핍박의 방면이었고,
두 번째 방면은 하나님의 심판의 방면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는 먼저는 하나님의 핍박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핍박을 당하신 것이 오전 9시부터
정오 12시까지인 이때에 이 위선적인 모든 종교 지도자들 그 백성들 모두가 주님을 희롱했고 심지어 로마 군병들은
그분을 아주 노골적으로 정면으로 조롱 한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고 무리들을 대표하고 있는 그 행악자
중에 한명인 이 강도는 심지어 예수님을 친히 비방하여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리스도라면 어찌해서 당신과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까 라고 당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라고 감히 그런 비방의 말을
건네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먼저는 수많은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속자로서가 아니라
순교자로서 이 핍박을 모두 받으셨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면으로는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 3시간 동안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친히 받는 이 사건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핍박당하는 순교자로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때리시는 심판을 내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구속자로서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친히받으시는
장면이 두 번째 방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첫 번째 3시간 동안은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셨고 두 번째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바로 구속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한 죽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곧 대치물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친히 받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달리는 동안에는 두 가지 방면의 그 일들이 이렇게 발생되었는데
하나는 사람들로부터오는 모든 핍박이요 또 하나는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음을 당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 때림을 받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시는 바로 그러한 일들이 발생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 까지의 이 3시간 동안에 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위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곧 순교자로서가 아닌 바로 구속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곧 죄인들을 대신하는 죽음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대체물이 되고자 하는 이 3시간 동안의 일을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성경은 온 땅에 어둠이 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과 45절에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라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그전까지만 해도 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부터 온 세상이 깜깜하게 된 때는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제육시로 부터 우리나라 시간으로 육시는 바로 정오 12시를 말하죠.
예 우리나라 시간으로 제가 계산해서 읽겠습니다. 정오 12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 곧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시간으로 오후 3시까지 계속하더니 온 땅에 어둠이 3시간 동안 계속했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었다 라는 것은 해가 어두워져 깜깜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 어두움이 우리 시간을 계산하는 방식대로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 유대 땅에만 임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 갈보리 언덕 라틴어로는 갈보리, 히브리어 언어로는 골고다 곧 갈보리라는
언덕에만 이 어두움이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곳에만 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루살렘 그 도성에만 그 어두움이 임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나라 전체의 이 어둠이 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어둠은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 라는 말씀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께서 이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아들을 친히 때리시고 심판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으시는 구주를 계시하기 위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깜깜함이 온 땅에 임하였는데 누가 온 땅에 어둠을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예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았다고 그 가롯 유다가 온 땅에 어두움을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고소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종교 지도자들이 온 땅에 어둠이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천만에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예수님을 달려 죽게 한 그 로마 군병들이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빌라도가 사형 언도를 내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죽게 되었는데 빌라도가
온 땅에 어둠이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빌라도와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모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로마 군병들은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게 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깜깜함과 어둠이 임하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은 다름 아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온 땅에 3시간 동안 셋이라는 시간을 여러분 유념해 주십시오.
셋은 항상 전능한 하나님 안에 고유의 숫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이 3시간 동안에 온 땅에 깜깜함이 임하게 할 수 있었던 분은 다름 아닌 전능하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두움이 온 땅에 3시간 동안 임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성취인
우리의 대치물이신 무슨 대치물이요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음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대신하는 죽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바로 구속자이신 주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오셨다 라는 암시가 다름 아닌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론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은 돌아가셨지만 이 어두워지는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일을 통하여 우리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하는 죽음을 성취 하신 주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주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오셨다는 암시인데 왜 주 예수님을 심판하십니까?
왜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셔야 됩니까? 우리의 대치물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 죄 없는 그분을 모든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고 그것을 가지고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하는 죽음을 당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의로우신 주 예수님을 바로 심판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위한 죄인들을 위한 유일하고도 우주적인 대체물로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우주의 대치물로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순교자로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모든 무리들과 백성들에게 핍박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그분께서 담당하시기를 원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그분이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순교자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하는 죽음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할 수 있는 대치물이 되고자 대치물로서
죽어가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셔서 순교자로서 죽음을 당하신 것이고 그리고 정오 12시부터
3시까지는 순교자로서가 아닌 구속주로서 곧 대치물로서 죽어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원한 구속주가 되실 수가
있으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죄 없는 이 아들 하나님을 십자가에 달려 심판함으로 말미암아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주 예수님을 우리 죄인들을 위한 구속자로 인정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은 십자가에 달릴만한 하등의 이유와 죄가 없으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주 예수님을 우리의 구속자로 인정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심판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돌아가시는 그날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3시간 동안 하나님이
친히 임하시는 장면이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한다는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십자가위에 6시간 동안 달려 계셨는데 그 마지막 3시간 동안인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그 3시간
동안은 바로 죄인들의 구속의 성취를 위하여 심판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속자로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성경은 알려주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죄 없는 주 예수님을 죄를 위한 우리의 고통당하는 대치물로 간주하신 그것은 바로 이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바로 3시간 동안이었다 라는 것을 우리는 이사야서 53장 10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길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오 또 그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아주 간절히 갈망하심은 질고를 당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위한 고통당하는 대체물로 그분께서 간주하시고 대신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들과 허물들이 바로 땅에 속한 옛 창조안에 속한 모든 것들 첫 사람인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의
죄들과 허물들인 이 부정적이고도 깜깜하면서도 이 소극적인 모든 나쁜 것들이 다 처리되고 있는 순간이 바로
이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3시간 동안의 일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의 모든 세상에 속한 것들이 부정적인 것들이, 소극적인 것들이, 죄된 것들이, 옛 피조물에 속한 것들이, 옛 육체 안에
있는 것들이, 옛 창조 안에 있는 것들, 첫 사람인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잘못된 그러한 악한 것들이 모두 처리되고
제거되는 순간이 이 3시간 동안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사이의 시간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세상에 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소극적이고도 부정적이고도 나쁜 모든 사탄에 의하여
발생되어졌던 그러한 죄된 것들이 모두 처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을 우리는 누가복음 23장 44절과
45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탄에 의하여 비롯된 그리고 첫 사람인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죄된 것들 소극적인 것들이 다 깨끗이 처리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3시간 동안 하나님도 우리의 죄 때문에 그분을 완전히 이 온 땅에 어둠이 임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을 내리시는 장면을 통하여 그분을 버리시는 장면이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이렇게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시 22:1〕
예 아버지 하나님께서 바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죄인들을 위한 대체물로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 주 예수님을 완전히 외면하여 등을 돌리고 내동댕이 치셔서 버리시는 순간이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외침의 외마디의 아주 왜냐하면 창세
전부터 영원 과거 안에서 이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하셨던 아들 하나님은 한 번도 주 하나님과 분리되거나 떨어지거나
버리심을 당한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에 이 버리시는 이 경험을 처음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시는 주 예수님의 그 격한
표현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그 마음의 상태를 담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이 말씀으로 대신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죄를 위하여 우리의 고통당하는 대치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구속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는 분으로서
우리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한 구속자가 되시기 위하여 주님은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외견상 주님을 핍박한 자들이 그분을 죽인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을 배신하고 팔았던 가롯유다에 의하여 사람들은 주 예수님이 죽음을 당한 것이라 생각 합니다.
아니면 종교 지도자들이 그 죄 없는 주 예수님을 고소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거라 여깁니다.
빌라도가 사형 언도를 내렸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수 없는 말들을 하지만 로마 군병들이 그분을 죽였기 때문에
로마 군병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죠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외견상 그렇게 보이는 주님의 죽음이 실상은 핍박한 자들에
의하여주님이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상 주님을 핍박한 자들은 그분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그들의 핍박 아래에 있는 동안에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그 행악자 한 사람으로부터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당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십시오라고 비방을 하고 거기에 모인 무리들과 군병들이 그분을 조롱하고
종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희롱하였을 때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셨던 것입니다.
아침 9시부터 12시간 동안에 그 3시간 동안에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시는 동안에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셨지만
정오 12시 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이 3시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을 하신 그 온 땅에 온 세상이 깜깜함이 임하는
그때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므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을 죽이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 복음 1장 3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미루어 살폈다라는 말씀 가운데는 십자가위에 마지막 여섯시간 동안의 행적도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암시받게 됩니다..그렇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정오 12시까지 3시간 동안에 사람들로부터 인간으로부터
핍박을 당하시고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그분은 살아계셨지만 주님께서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친히 오셔서
깜깜함이 임하는 상태에서 그분을 치셨을 때 그분께서는 죽임을 당하고 계셨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온 땅에 임한 이 어둠은 하나님이 친히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여주신 표적인 것입니다.
해가 빛을 잃은 이 어두움은 하나님이 임하신 표적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이 어두움이 그 갈보리 언덕에 임한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갈보리 언덕이나 예루살렘 도성이나 예루살렘 위에 가장 높이 우뚝 서 있는 시온산도 아닌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성도
아닌 또 유대 땅에도 아닌 온 땅에 이 깜깜함이 임하였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친히 의로우신 주 예수님을 심판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이셨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로 하여금 빛을 잃게 하셔서 인류의 죄인들을 위한 모든 인류의 죄인들을 위한 대체물로서
죽어가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 두 가지 표적 중에서 첫 번째 표적에 불과한 것입니다.
땅에 임한 어둠은 하나님께서 3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을 통하여 첫 번째 보이신 표적으로서 하나님이 친히
임하여서 심판을 하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땅에 임한 어두움이 하나님이 임하신 첫 번째 표적이었다면 그 3시간 동안에 정오 12시부터 3시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을 받으시는 그 시간 동안에 보여주신 표적이었다면 두 번째 표적은 무엇일까요?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찢어졌다면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인위적으로 찢어진 행위로 볼 수 있지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가운데가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하나님이 임하신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땅에 임한 어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요.
두 번째로는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장면에 대해서 우리에게 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7장 51절은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다고 친히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휘장이 찢어졌다 이 무슨 말씀입니까? 휘장은 바로 성육신하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육신이 휘장으로 상징되어져서 이것이 찢어졌다는 것은 주님께서 의로우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가지셨기 때문에 죄의 육신으로 상징된 것이 바로 휘장이라는 것입니다.
휘장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죄의 육신이 십자가 위에 못 박히는 이 정오 12시부터 3시까지의 3시간 동안의
시간을 통하여 그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이 되셔서 죄인들의 죄를 친히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혔다 라는
것을 바로 히브리서 10장 20절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렇습니다. 육체가 바로 휘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운데로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는 것은 죄의 육신이 찢겨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위로부터 아래까지라는 말은 휘장의 찢어짐이 사람이 찢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위에서부터 아래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음을 성경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우리가 전해 듣지 않으면 우리가 자칫 오해하여서
잘못된 주님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인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은 그분의 죽음을 그분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대신하는 죽음,
죄인들을 위하여 대치물로서 대신하는 죽음을 당하신 것이 십자가 죽음이라는 것을 여러분 반드시 명심 하셔야만 되겠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대체물로서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친히 죽음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을 대신하는 죽음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서도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바로 주님께서 이 모든 인류를 대신하는 죽음을 우리의 대치물로서
대신하는 죽음은 십자가 위에서 성취되었는데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에 벌어진 그 첫 번째 방면에서의 3시간 동안의 시간에서 보여진 것이 아니라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그 마지막 3시간이 두 번째 방면에서 표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때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성취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내동댕이 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외면하시고 등을 돌려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철저히 버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속주가 되실 수가 있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오 12시부터 3시까지의 이 3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들을 주 예수님 위에 두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모든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우리 죄인들의
죄악을 의로우신 주 예수님 위에 둠으로 말미암아 담당시킴으로 말미암아 대신하는 죽음을 십자가에서 그분이 당하신
것입니다.그래서 죽임을 당하셨다라는 말씀이 정확한 바로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깜깜한 해가 빛을 잃은 이 어두움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들을 죄 없으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위에
두셨음을 상징하는 것이 어두움이라는 것입니다.어두움은 해가 빛을 잃고 깜깜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구주에게 죄를 삼으셔서 담당케 하신 것은
바로 구주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바로 아무 죄 없는 의로우신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위에 두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분을 죄로 삼으셨습니다.바꿔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대치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들을 그분에게 놓여두시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속해 주기 위하여 그분 자신을 죄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인 3시간 동안에 발생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주님께서는 이 죄의 총체가 된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바로 죄 그 자체가 되신 죄의 총체가 되신
아들 하나님을 버리실 수밖에 없으셨기 때문에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철저히 버리셔서 심판을 하신 시간이 3시간 동안의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15장 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구시에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막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 이와같이 철저히 내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고, 영원 과거 안에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기뻐하셨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우리의 대치물이 된 주 예수님을 죄의 총체로 보시고 우리의 대치물로서 우리의 죄들을
이사야서 53장 6절 말씀과 같이 담당하시고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분을 죄로
삼으셨다. 예 우리의 죄들을 그분이 담당하셔서 그분 위에 두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분을 죄로 삼으신
우리의 대치물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죄를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죄로 삼은
분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하나님을 버리실 수밖에 없으셨고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곧 이것은 인간 안에 들어온 사단으로부터 기인된 인류안으로 들어온 모든 죄들의 뿌리가 사망과 죽음을 갖고 오게 하는
결과인 그 열매까지도 우리의 모든 죄들이 다 그분 안에 놓여져서 찢어졌다 라는 것을 휘장으로 상징된 그리스도의 육체가
3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의 지팡이로 심판받으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말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 자신의 어떤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 죄인들을 위한 죽음을 그분이
당하셨다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는 이 말씀을 한 번 더 증명해 주기 위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예수님의 12제자를 대표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를 대표하고 있는 베드로 사도를 통한 이 말씀으로 한 번 더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 나무에 대한 말씀은 전에 한번 교제를 통해 다룬적이 있는데요
그부분에 관한 말씀은 다음 카페 말씀방에 요일3:8 벧전2:24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의 비밀 4부에서
다시 한번 말씀을 찾아 보시고 참고 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이 죽은 나무들을 생명을 소유한 나무들로 변화시키고 변형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는
대치물이 되신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들을 가지신 바 되어서 친히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라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심이 되셨다.
히브리서 9장 26절에서는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나타나셨다 라는 말씀을 기록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인들의 죄들이 그분의 십자가에 달려 3시간 동안에 죽음을 당하시는 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처리가 되었는데
어떻게 처리가 되었죠? 단번에 즉시 한꺼번에 모두 종결되어지고 제거 되었다 두 번의 제사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유일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단 한 번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영원한 죽음을 당하신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요. 단 한번의 죽음인 것입니다.
단번에 죽음을 통하여 영원토록 그 일의 효력을 우리에게 가지고 오게 하는 영원한 죽음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단과 죄를 무효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영원한 죽음 단번에 처리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들을
우리 모든 자들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죄로 삼은 바 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주 예수님을
간주하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3시간 동안 정오 12시부터 3시간 동안에는 주님께서 바로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분을 죄인들의
죄로 삼으셨기 때문에 죄의 총체로 보셨기 때문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간주하신 것이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구나 모든 것을 죄로 삼은 바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그분 위에 두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그분을 죄의 자체로 삼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죄의 총체가 되게 하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렇게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만족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요 라는 이 세상은 이 세상에 있는 땅이 아니라 인류인 사람인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어린 양은 인류의 죄 곧 세상 사람들 모든 죄인들의 죄를 없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죄는 사단으로부터 인류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단이 우리 육체 안에 거하여서 우리 혼의 생명을 갉아먹고 무감각하게 하고 영까지 침투하게 하여서 바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갖지 못하게 하는 이 일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성취를 위한 구속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한
주님의 대신하는 죽음인 대치물이 되시는 희생 제물로서 말미암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일을 통하여 단번에 해결되게
하셔서 영원한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영원한 생명 가운데로 인도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외형적으로는 나사렛 갈릴리 출신의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 보여지지만 실제 그분은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서 곧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사람으로 돌아가셨는가요? 아니면 하나님으로서 돌아가셨는가요 라는
이러한 질문들을 우리 목회자 분들이나 성도 분들이 하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특별히 정오 12시부터 3시까지 3시간 동안에 그러한 시간의 과정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하나님으로서 죽음을 당하셨나요?아니면 사람으로서 죽음을 당하셨나요?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애매모호한 가운데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수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인 자 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을 때 본질적으로는 그분 안에
그분의 신성의 존재이신 하나님을 담고 계셨던 것입니다.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는 바로 마리아 몸에 수태되어져서
출생되기 전에 이미 본질적으로 이미 성령님으로 인하여 잉태되어진 하나님의 신성의 본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진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신 구주께서는 바로 신성한 본성을 가지신 신성한 존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신성한 하나님이신데 육체로 말미암아 가두어져 있었고 감춰져 있었고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서 삶을 살고 계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본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잉태함으로 말미암아 마리아 몸에 수태되기 이전에 이미 성령님으로 잉태하여
지므로 그분의 신성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담고 계셨지만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는 경륜적으로 의로우시고
심판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내쳐진바가 됨으로 버려진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본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잉태되어져서 그분의 안에 신성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담고 계셨지만 그러면
경륜적인 주님이 또 계십니까? 이 말씀은 여러분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본질적인 신성의 본성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또한 이 땅에 사셨을 때 얼마 동안 사셨죠?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 가운데 30년 동안에 생애를 마치시고 30세부터 33세 반까지 3년 반 동안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땅에 사셨을 때는 33세까지는 본질적으로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져서 신성의 존재이신 그분의 육체 안에
하나님을 담고 계셨지만 그러니까 하나님을 담고 계셨다 라는 것은 바로 본질적으로 출생하는 순간부터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져서 30세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그 전까지 성령님을 소유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져서 땅에 사시는 동안에도 성령님을 소유하셨고 그리고 공생애의 일을 하기
전까지 30세 때까지도 성령님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 신성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담고 계셨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주님이 무엇을 하셨습니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존재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또 한 번 성령님을 소유하셨습니다. 여러분 좀 이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태어나실 때 이미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져서 성령님을 소유하신 분이 왜 침례를 받으실 때 또 한 번 성령님을
소유해야 되나요? 침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침례를 받고 나오시는 바로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한 준비를 하시는 시점에서 침례를 받고 나올 때 비들기 같은 성령님이 그 위에 임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다라고 세상 가운데 공표를 해 주십니다.
그런데 왜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진 주 예수님께서 또 한 번 성령님을 소유하시는 침례 사건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본질적인
성령님과 경륜적인 성령님이 주님 안에서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혹시 잘못 오해하여서 그럼 성령님이 본질적인 성령님 경륜적인 성령님이 있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두 성령님이
있다는 얘기입니까 라고 오해 할수 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성령님은 한 성령님 한 영 하나님이시지만 그 성령님이
두 방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방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분이 바로 잉태되어질 때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본질적인 방면에 성령님이 주님과 함께 하셨고 바로 이 예수님 안에 성령님이 이렇게 함께 하나 되어 움직이고 계셨고
그리고 또 물에서 침례받고 나오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그분 위에 머무심으로 말미암아 경륜적인 방면에서의
성령님이 그분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그 방면으로서의 주 예수님께서 바로 출생하시기 전에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 본질적으로
이 주 예수님 안에 신성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이렇게 그 성령님을 통하여 함께 하나 되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바로 주 예수님
자신이 주 예수님의 그 존재를 위한 것으로서 본질적인 방면으로서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질 때 이미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지는 이 일들을 통하여 본질적인 방면으로서의 주 성령님은
예수님의 존재를 위한 방면으로서 성령님이 함께하셨고 경륜적인 방면으로서 침례자 요한으로부터 침례 받으실 때 비둘기같은 성령님이 그분 위에 임하신 이 경륜적인 성령님의 방면은 바로 주 예수님의 그 사역 천국 복음을 선포하고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나타냄에 있어서 그분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 경륜적인 방면으로서의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본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잉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 성령님을 소유하셨고 침례 받으셨을 때는
그분의 존재 본질적인 부분으로 성령님을 소유하신 그분 위에 또 한 번 그분의 사역을 위한 어떤 복음 전파를 위한 일들을
위해서 바로 성령님께서 그분 위에 내려오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시려고 십자가 위에 계셨을 때 바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됩니까?
예 본질적으로 이미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마리아 몸에 잉태되기 전에 이미 사전에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져서 신성한
존재인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담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심을 당하시려고 십자가 위에 계셨을 때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륜적으로 심판하시는 동안에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죄인의 총체가 되어져서 죄인 그 자체가 되어 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죄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신 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구주를 심판하시는 동안에는 본질적인 사역을 위한
경륜적인 영이 그분을 떠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매우 어렵죠. 예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6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 계셨을 때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그분 안에 계셨다 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신 그분은 본질적으로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이십니다. 곧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그분이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실 때 또 한편의 방면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이신 하나님 사람이신 그분을 심판하시는 동안에는
경륜적으로 그분을 떠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버리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수행과 관계가 있는 경륜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버리시는 것은 경륜적인 영이 그분을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심판하시는 동안에 경륜적인 영의
방면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분을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의 수행과 관계 있는 경륜적인 문제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계셨을 때 그분 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죄들을 위해서 죽으신분은 본질적으로 그분 안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죽임을 당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의 방면으로써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동안에는 경륜적으로 잠시 그분을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경륜적인 영의 방면이 뭐죠? 그분의 사역 그분의 일을 위한 일에는 바로 침례를 받으셨을 때 그분에게 임한 바로
그 영 하나님이 그분을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경륜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그분 안에 계시긴 하셨지만 바로 그분의 일을 돕기 위해서
떠났기 때문에 그 온갖 고초와 죽음을 친히 맛보고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분께서 경륜적인 방면으로서의 영의 하나님이 함께하였다라면 이러한 일들이 무효화될 수가 있기 때문에
심판받으시는 동안에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심판하시는 동안에는 경륜적으로
그분을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성취를 위해서 대치물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혼자 감당하시도록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성령님으로 잉태되는 순간에 본질적으로 주 예수님 안에 사람으로 오신 신성한 존재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그리고 침례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경륜적인 영 하나님을 소유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본질적인 방면에서의
성령님과 경륜적인 방면에서의 그 하나님을 소유하면서 주님께서 사역을 하고 계셨지만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을 때 곧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동안에는 경륜적인 영으로서의 그 하나님이 그분을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죄들을 위하여 유일하신 우주적인 대치물로서 죄인들을 위한 구속자가 될 수 있는 것에 단 하나의 결격 사항이 없도록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잠시 후에 다시 2부의 말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