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생뚱맞았던 시어(詩語)를 나이 든 이제야 공감한다. 어릴 적 함께했던 동물들을 추억하여 마음의 고향, 그 동심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려고 한다.
수탉, 토끼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다. 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니, 늘 같은 장소에서 똥 과자를 파는 할아버지 옆에 오늘은 할머니 한 분이 더 앉아 계신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병아리들이 잔뜩 들어 있는 라면박스에 투명 비닐을 덧씌워 놓았다. 노란 병아리가 삐악거리며 서로 몸 위로 올라가려는 모습이 어찌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어머니를 졸라 병아리 네 마리 값을 얻어 다시 총알같이 학교 앞으로 왔다. 그새 병아리 파는 할머니가 장사를 접고 갔을까 봐서다. 한쪽에서 졸고 있는 놈은 제외하고, 몸 위로 서로 올라가려고 다투는 놈 중에 밑에 깔리는 놈은 또, 제외를하고, 손 위에 올려보아 눈이 초롱초롱한 놈으로 봉투에 담긴 네 마리를 넘겨받았을 땐, 금방 알을 낳는 큰 닭들이 내 손에 있는 것 같았다.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봐 품 안에 안고 내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라면박스를 구해 바닥에 신문지를 두 겹으로 깔았다. 쌀집에서 병아리 먹이로 좁쌀을 사고, 물도 조그만 접시에 담아 넣어 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에 신주처럼 모셔놓고 나니, 공부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았다가 잠시도 못 있고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내어놓으면, 신문지가 미끄러워 넘어지는 놈, 온통 난리를 쳐대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라면박스 속에 다시 가두고 얇은 이불보를 뚜껑 삼아 덮어 놓았다.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 시골에서 올라와 집안일을 거들던 사촌 누나가 부엌으로 난 작은 미닫이문을 열고 고개를 숙인 채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평소의 습관대로 아랫목 쪽으로 방향을 틀고 발을 들어, 그만 라면박스 위의 이불보를 사정없이 밟아 버렸다. 순간 내가 지른 비명소리와 누나가 뭔가 물컹거리는 것을 밟은 뒤 깜짝 놀라 펄쩍 뛰는 행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두 마리는 창자가 튀어나온 채로 즉사하고, 한 마리는 비실거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집 앞 언덕 공터에 정중히 묻어주었다. 사촌 누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철없던 나는 거기 병아리가 있는 줄 알면서도 어떻게 그쪽으로 올 수 있느냐고 징징거리며 원망만 길게 늘어놓았다.
어쨌든 나머지 한 마리는 별난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노란 털을 벗고 하얀 날개가 나고 붉은 벼슬이 솟아오르더니, 어는 날 2층에 위치한 우리 집 장독대 위에 서서 천하의 새벽을 알리는 “꼬끼오”를 목청껏 소리 질렀다. 늠름한 수탉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놈은 남다른 생명줄 못지않게 생김새 또한 특이했다. 우리와 이모 집은 담 대신에 장독대를 경계 삼아 나란히 이웃하고 있었다. 이모 집 장독대 앞에는 직사각형으로 생긴 긴 화단이 하나 있었다. 여기에 무슨 까닭에선지 열매가 독성이 강한 찔레꽃같이 생긴 덩굴나무를 심어 놓았다. 이 나무가 자라서 바깥 철망을 타고 넝쿨을 이루며 형형색색의 조그만 열매를 맺었는데, 이놈의 닭이 그 열매를 수시로 따 먹었다. 그래서 독이 올랐는지 다리가 퉁퉁 부어서 다른 닭 다리보다 세배는 굵었다.
한때는 싸움닭으로 키워 볼까 하고 고추장 넣은 물을 억지로 입을 벌려 먹여도 보고, 화단에 날아다니는 벌도 잡아서 주기도 하며, 나름대로 지극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이놈은 그딴 것은 상관없었다. 내가 아리다고 깐을 본 것이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 오는데, 눈도 뜨지 못하는 생쥐가 털도 없이 빨간 몸을 한 채로 길가에 나와 꼬물거리고 있었다. 하도 귀엽고 신기해서 동네 아이들과 같이 우리 집 마당으로 가져와서 빙 둘러앉은 채로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한데 이놈의 수탉이 갑자기 우리 사이를 비집고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고는 아기 쥐를 냉큼 물고서 몇 발짝 가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패대기를 쳐서 죽여 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는 등,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내가 빗자루를 챙겨 사정없이 후려쳤으나, 이놈은 훌쩍 피한 뒤 장독대 위를 유유히 활보했다. 주인 알기를 개떡같이 생각한 놈이 분명했다.
나중에 입담이 좋은 어머니에게 들으니 닭과 쥐는 본래부터 앙숙이란다. 닭이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쥐란 놈이 살금살금 다가가 닭 목덜미를 이빨로 물어뜯어 모이를 훔쳐 먹으면 닭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단다. 진위여부를 떠나 닭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탉에 대한 서운함을 다소 누그러뜨리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앙금이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었다.
이놈은 나의 불편한 심기 따위는 아랑곳없었다. 잘 때만 제집에 들어가서 자고, 담 없이 이웃한 이모와 우리 집 마당을 온통 휘젓고 다녔다. 닭 팔자로서는 그런 상팔자도 없었다.
어는 날, 우리 집에 식구가 새로 늘었다. 목형 일을 하는 큰형이 나무로 짠 토끼 집과 함께 토끼 한 쌍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빨간 눈을 한 하얀 털의 가족이 한꺼번에 둘이나 늘었다. 그 이후로 방과 후의 내 일과는 엄청 바빠졌다.
우선 어머니에게 토끼를 기르는 기본사항을 숙지 받았다. 토끼는 잡을 때 한 손으로 귀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서 잡아야 한다. 칡잎, 토끼풀, 쑥 등은 잘 먹으나 배춧잎과 같이 물기가 많은 것을 주면 설사를 하니 조심해야 된다. 새끼를 낳았을 때는 예민해져서 자기 새끼를 잡아먹으니 근처에 얼씬도 말아야 한다는 등.
그날부터 낫을 챙겨들고 근처 산에 칡넝쿨을 걷으러 다녔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돌 말아 가져오는 양이 어린 체격에는 한계가 있어, 보통 사흘분 밖에 걷어 오지를 못했다. 이게 놀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토끼 똥은 똥글똥글하고 작아서 토끼장 청소에 별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토끼 오줌 냄새가 고약치도 않아서, 큰형이 특별히 제작한 바닥 밑에 서랍처럼 설치된 오물 받이를 빼내 물청소를 하고 나면, 그날 저녁은 영 입맛이 없었다.
어느 정도 커서 새끼를 밸 때가 되었다고 판단이 서자, 어머니의 주도하에 토끼 가족 늘리기에 들어갔다. 우선 토끼장 앞 망을 신문지 등으로 가려 어두컴컴하게 하였다. 먹이도 토끼풀 등, 좋은 식재료을 골라 조심조심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암놈이라고 생각한 놈을 동네에 토끼를 전문으로 키우는 집에 데려가서 씨 수토끼에게 수태를 시키려고 하였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우리가 가져간 놈은 암놈이 아니고 수놈이라고 한다. 부랴부랴 나머지 한 놈을 가져가서 감정을 받으니, 역시 그놈도 수놈이란다. 이놈들을 잘 키워서 새끼를 치고 또 새끼에 새끼를 쳐서 앙골라 털을 깎아 엄청난 부자가 되려고 한 내 꿈이 산산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토끼 키우는 일이 재미없어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토끼장에 토끼는 간데없고 빨랫줄에 토끼 가죽만 두 개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내 허락 없이 토끼를 잡은 데 대한 섭섭함은 있었으나 토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없었다. 그날 저녁 가족들이 모여 앉아 볶은 토끼 고기를 먹을 때는 나도 끼어 앉아 한 점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얼마 후, 내 수탉을 잡아먹었을 때는 엄청 화도 나고 슬퍼서 닭 국물도 먹지 않았다. 아마 한곳에 가둬 키운 토끼와 달리 수탉은 조그만 할 때부터 먹이를 주면 따라오고, 얄미우면 걷어차기도 하면서 내 부하처럼 키웠으니 정이 들 대로 들었던 것 같다.
첫댓글
이사람도경험이 있는얘기이네요. 그옛날엔 학교앞에서병아리를왜그렇게 많이들들고나와 아이들을호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