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鄭穆如[允穆]謝恩赴京口二首
雲溪 全以性
北闕新恩命。
南關老督郵。
霜蹄千里道。
風翮九霄秋。
豈是長貧者。
初非不事侯。
平生抱負重。
應爲聖明酬。
送子長安路。
秋深雲漢明。
清輝藏韞樍。
美價抵連城。
日下歸心切。
天涯別意輕。
持盃不敢勸。
珍重愼行㫌。
사은사로 중국에 가는 정윤목을 송별하며
운계 전이성
중앙정부로부터 새로운 임명을 받았으니
진주목 지방의 나이 든 찰방에 임명되었다.
좋은 말은 천 리 길을 간다는데
바람이 불어 가을 하늘은 높아만 지네
어찌 오랫동안 빈궁하겠는가?
처음부터 벼슬살이하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고
평생의 포부가 중하니
응답하여 임금님께 밝게 보답하여야 하네
그대를 중국 장안으로 보낼 즈음에
가을이 깊어 구름 사이 은하수가 밝게 보이는군
맑은 빛이 물버들에 숨어 있지만
아름다운 명성은 구연성(중국)에 이르렀다.
일몰 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절실하지만
나는 세상의 끝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잔을 들자고 감히 권하지 못하오니
부임하는 깃발을 신중하고 소중히 여기십시오.
[국역] 전과웅
[출처] 운계선생문집
정윤목 [ 鄭允穆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예학·음양학·병법·율학에 두루 능하여 천거로 소촌도찰방 등을 지냈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목여(穆如)이고,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窻居士)이다. 우의정을 지낸 정탁(鄭琢)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구(鄭逑)와 류성룡(柳成龍)에게 학문을 배웠다. 성리학뿐만 아니라 예학·음양학·병법·율학에 두루 뛰어났다. 1589년(선조 22) 사은사를 따라 명나라에 가서 선진 문물을 둘러보고 왔다.
1616년(광해군 8) 천거로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에 제수되고 1618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가자되었으나 광해군의 난정에 실망하여 사직하였다. 시문집인 《청풍자문집》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윤목 [鄭允穆]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북궐[ 北闕 ]
①황제의 궁궐. ②경복궁(景福宮)을 창덕궁(昌德宮)과 경희궁(慶熙宮)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督郵 독우
1. 우역(郵驛)에 관한 일을 감독한다는 뜻으로, 찰방(察訪)을 달리 이르는 말.
2. 거북의 다른 이름.
霜蹄 상제
굽에 흰 털이 난 좋은 말.
구소(九霄) :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말한다. 구소는 신소(神霄), 청소(靑霄), 벽소(碧霄), 단소(丹霄), 경소(景霄), 옥소(玉霄), 낭소(琅霄), 자소(紫霄), 태소(太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