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과정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공천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의 쟁점을 지적하고, 문제 해결방안을 논하라.
유량(flow)과 저량(stock)
경제지표를 산출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유량은 '일정 기간' 동안 변동한 경제 수치를 측정하는 방식인 반면 저량은 '일정 시점'에서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를테면 1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해 더한 국내총생산(GDP)은 유량이다. 반면 일정 시점에 우리나라의 경제주체가 보유한 자산의 합을 측정한 국부는 저량이다. 그렇다면 선거의 표심은 유량일까 저량일까. 선출된 권력의 임기 동안 벌어진 정책이나 철학, 국정 운영 방식 등을 두루 고려해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선거는 유량이다. 선거 당일의 상황만을 보고 표심이 결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권은 선거를 저량으로 본다. 특히 제22대 총선 공천 때 더불어민주당은 비주류 의원을 대거 배제하며 '불공정 공천' 논란이 일었다. 분명 표심을 갉아 먹을 요인이었지만 당시 당 안팎에서는 "일단 공천이 끝나면 정권심판론이 살아나서 이길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국민들이 공천 과정을 지켜보고는 있지만, '선거는 저량'이기에 시끄러운 공천 논란은 묻고 가겠다는 말이었다. 과정에 상관없이 마무리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조용한 공천'으로 주목받은 국민의힘 공천도 결국 '조용한 친윤∙중진 공천'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이번 공천 논란의 핵심 쟁점은 정치권이 선거를 저량으로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이었던 셈이다. 이들이 선거 때마다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막판 뒤집기용 네거티브 공세에만 열을 올리는 이유다.
정치권의 이같은 결과론적 시각은 선거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소멸시킨다. 청년과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등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배제해 국회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당 주류에게 쓴소리를 하는 의원들을 컷오프시키면서 당내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동시에 '사익추구적 공천'을 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탓이다. 결국 다양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친명과 친윤으로 대표되는 사익추구적 인물들만 남았다. 모든 국민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 구성이 시작부터 꼬이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의 여성과 청년의 공천 비율은 각각 10%대, 5%대에 그쳤다. 국민투표에서 1위를 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됐다. 21대 국회를 사람으로 표현하면 'SKY 대학을 나온 55세 남성'이라는데, 22대 국회도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당사자성이 배제된 입법이 수월할 리 없다.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사실상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있었지만 5년째 대체입법은 깜깜무소식이다. 2007년 이후 수차례 발의된 차별금지법도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바뀌어야 한다. 선거를 저량으로 바라보지 않고 유량으로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프랑스는 2000년부터 ‘빠리떼법’을 도입해 하원의원 선거 등에서 후보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면 정당보조금을 최대 75%까지 삭감한다. 법 시행 직전인 1997년 10.9%이던 여성 하원의원 비율은 10년만인 2017년 39.6% 급증했다. (1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