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이 되어서야 IBM은 마음을 바꿨고 이 분야에 대해 연구를 의뢰한 결과 우드랜드와 실버의 디자인이 실용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동시에 이들의 기술은 부호를 신뢰성 있게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차질이 예상되었지만 IBM은 이들의 특허를 구매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드랜드가 또 다른 전자 분야의 대기업인 필코사의 제안에 마음이 쏠려 1962년 IBM 대신 이 회사에 특허를 넘겼다. 그러는 동안 데이빗 콜린스라는 한 대학생이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에서 일하던 중 열차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59년 콜린스는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실바니아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곧 카트랙이라 불리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것은 열차 겉에 붙은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반사 줄무늬를 인식하는 장치였다. 이 줄무늬는 그 열차를 소유한 회사의 개별 열차를 나타내는 10자리 숫자를 부호화했다. 그러면 빛이 이 줄무늬에 반사되어 붉은 색과 푸른 색을 구별할 수 있는 광증폭기에 들어간다. 콜린스의 발명품은 1961년에서 1967년 사이 보스톤과 메인 주 사이를 잇는 철도에서 시험적으로 운영되었고 1967년 10월 10일부터는 미국 철도 협회가 카트랙 식별 시스템을 전체 열차에 설치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1970년대 초반 또 한 번의 경제 불황이 닥쳐 산업계 전반적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 여기에 더해 카트랙 장치에 먼지와 흙이 쌓여 정확도가 떨어지자 1978년 이 장치는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비록 철도에서는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중에 통행료를 징수하는 뉴저지의 한 다리에서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매달 통행량을 조사했고, 곧 미국의 우체국에서도 같은 기술을 활용해 창고를 드나드는 트럭을 확인했다. 이후 애완동물 사료 제조업체인 칼 캔도 창고 재고와 분류 설비를 단순화하는 저렴한 방식을 공급해 달라고 실바니아사에 의뢰했다. 마침내 IBM사도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모든 상품에 부착할 수 있는 바코드 시스템을 개발해 달라고 의뢰했으며 1973년에는 많은 식료품 제조업자와 소매업체들이 자기들의 상품을 모두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스캔 시스템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시스템의 개발자들은 1975년까지는 모든 소비재의 75%에 바코드 라벨이 부착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나도 실제로 계산대에 스캐너를 설치한 소매점은 200곳에 지나지 않았다. 범용 스캐닝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소매점 대부분이 스캐너를 설치해야 한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각 제조업체들은 상품의 포장지에 고유의 바코드를 할당해 인쇄하는 데 돈을 쓰려 하지 않을 터였다. 제조업체와 소매업체 사이에 이도저도 못하는 교착상태가 벌어졌다. 어느 한 쪽이 먼저 힘들게 얻은 자원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다른 한 쪽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모든 상품에 바코드가 부착되지도 않았는데 소매업자들이 과연 비싼 스캐너를 구입하려 하겠는가? 그리고 모든 소매업자들이 바코드를 읽어 들일 수단도 없는데 제조업체가 과연 바코드를 일괄적으로 인쇄해 부착하려 하겠는가? 이런 상황을 두고 '비즈니스위크'지는 "슈퍼마켓 스캐너는 실패했다"라고 전체 상황을 결론 내렸다. 하지만 스캐너를 설치한 소매업자들은 첫 6주 안에 매출이 10~12% 늘고 이 매출이 계속 이어진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스캐너 제조업체들은 곧 스캐너를 설치할 경우 투자 수익률이 40%를 넘는다는 통계를 제시했고, 1979년대 말이 되자 매출을 계산하기 위해 스캐너를 구입한 소매점이 8,000곳을 넘어섰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것은 충분한 수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음모론자들은 바코드 스캔 기술이 감시의 수단이라고 주장했고,몇몇 기독교인들은 바코드가 악마의 숫자인 666을 몰래 사용한다고 불평했다. TV프로그램 사회자들 가운데는 바코드가 "평범한 소비자들에 대한 기업의 음모"라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무분별한 반대는 모두 극복되었고 바코드 시스템은 개량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 1948년 버나드 실버와 노먼 우드랜드가 제시한 초기의 아이디어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마침내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왼쪽이 버나드 실버,오른쪽이 노먼 우드랜드입니다. 버나드 실버는 바코드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 되기 전인 1963년 38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했고, 우드랜드는 전 세계에 바코드 시스템이 일반화 된 2012년,89세에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