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말할 수 있다. - 이런 인생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짧은 기간에 기적을 일으킨 민족입니다.
세계 최고를 열거하자면 수많은 것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도 고속도로 및 지방도로, 자가용, 핸드폰 컴퓨터, 아파트, 해외여행, 중.고.대학 유학, 의료보험, 기초연금, 장애인복지 등은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입니다.
이런 밝은 면과는 대조적으로 암 사망률, 교통사망률, 고령화 속도, 자살률 등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라는 양면성을 지닌 것도 사실입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어려운 시절이 있음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춰서 오늘을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1965년도에 기록한 어머니의 일기를 보면서 떠오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먹고 사는 것이 무척 힘이 든 때였습니다. 피임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기술도 없었던 터라 아이들은 생기는 대로 낳아 한 가정에 자녀가 열 명이 넘는 집이 많았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녀를 두었으나 형편이 어려우면 입 하나 덜기 위해 남의 집에 보내져 먹고 살게만 해주면 고맙게 여겼던 그 시절에 저의 집에도 16살 때 온 누나가 있었습니다.
그 누나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은 유난히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여동생을 데리고 눈이 내려 푹푹 빠지는 산길을 한참 걸어서 한 오두막집에 들어섰습니다. 초라한 단칸방에 많은 식구가 누더기 같은 이불을 둘러쓰고 추위를 이기고 있었습니다.
어른들끼리 몇 마디 말이 오고 간 후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처음 본 누나의 얼굴은 큰 눈망울을 굴리며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6살이 되도록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이 가난한 집에서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한 채 남의 집으로 보내졌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어머니의 일기에는 12월 29일 무척 추운 겨울에 이 누나와 더불어 강에서 빨래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일 빨래하고 돌아올 때 손이 시려 울겠다. 손가락이 아렸다.”라고 하였습니다. 낯선 남의 집에 와서 한창 부푼 꿈을 간직할 나이에 추운 겨울 빨래를 강바람 맞아가면서 빨아야 했던 그 모습이 처연한 감상으로 와닿습니다.
그리고 12월 30일 일기에는 그 누나의 아버지 생일인데 바빠서 보내지 못하고 소고기 두 근을 사서 보낸 내용이 있습니다. 그날은 눈이 펄펄 내린 날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부모의 품을 떠나 아버지 생신도 챙기지 못한 누나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를 돌아보니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그 누나를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형제들이 찾아서 그간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얼마간의 돈을 쥐여주고 함께 식사를 나눴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70대에 이르러 건강한 두 아들을 두었고 큰아들은 교사 부부로 둘째 아들은 대기업에서 착실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세탁기에 빨래하고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면 수시로 더운물에 샤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궁이 불을 지피지 않더라도 중앙난방식으로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