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옥 사모 간증-자살하러 가는 길에 만난 천사
서울 하나로교회 사모
‘소중한 사람들’ 단체를 통해 노숙자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예배를 드리는 사역을 하고 있다.
내가 천사를 만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그의 손짓과 표정 하나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나는 예수 믿지 않은 가정으로 시집가던 날부터 고통의 날이 계속되었다.
사업을 했던 남편이 돈을 엄청나게 벌어도 내 마음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돈 버는 것으로 내 인생을 다 허비하는 것이 억울했다.
그래서 주님께 우리 집의 돈을 다 거둬가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마치 그 기도하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6개월 안에 우리 집의 돈을 다 거둬가셨고, 우리는 산 같은 빚더미 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가난을 모르던 나는 그날부터 가난이 얼마나 시리고 아픈 고통인지 처절하게 체험했다.
신앙생활은 남편과 시댁의 핍박으로 할 수 없었고, 삶은 쉴 사이 없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니 질병이 찾아왔다.
몸이 아프니 마음마저 병이 들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깊은 우울증이 내 삶에 그늘져 왔다.
나는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고 택시를 탔다.
“아저씨 요금은 두 배로 드릴 테니 청평댐으로 가주세요.”
그 한 마디만 내 뱉은 나는 두 눈에 동공이 풀리고 이미 청평댐 푸른 물에 첨벙 빠진 듯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기사님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아무런 대꾸 없이 청평을 향해 달렸다.
“그래 이 세상 더 살아봐야 무슨 좋은 날이 있겠어. 어제와 똑 같은 오늘, 오늘과 똑 같은 내일이 계속되겠지.”
오늘 같은 내일이 또 주어진다면 나는 살아갈 마음이 없었다.
에너지가 다 소진돼 움직일 수 없었다.
한 마디도 없는 침묵이 비좁은 차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무 말 없이 운전하던 기사 분이 어렵게 입을 뗐다.
“창평댐에 자살하러 가는 거죠. 이 근처에 기도원이 하나 있는데 지금가면 아마 오후 예배를 드릴 거예요. 이왕 자살할 바에는 그곳에 가서 한 시간만 앉아 있다가 죽으면 어떨까요. 내가 가지 않고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겠으니 예배 참석 후에도 죽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면 말씀하세요. 그땐 청평댐에 데려드릴 테니 미련 없이 풍덩 빠져 죽으세요.”
그 차는 이미 기도원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자살하려는 것이 발각돼 화가 나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가 멈춰 섰다.
“여기까지 온 것은 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손님이 원하던 목적지가 아니니까요, 내가 여기 서 있을 테니 어서 들어가 봐요.”
나는 뭔가 이끌리듯 기도원 예배실로 들어섰다.
앉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와서 통로에 앉았다.
귀가 있으나 닫고 있으니 한 마디 설교도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힘없이 눈을 뜨고 한 곳만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초점 없이 풀린 내 눈에 누군가 내 앞에 서 있는 듯 맨발이 보였다.
그 발을 따라 천천히 그 사람을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이 보인 것이 아니라 그의 등이 보였다.
채찍으로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등은 빈틈없이 갈라져 있었고 피가 검붉게 엉겨 붙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왜, 왜요, 왜 그렇게 맞았나요.”
주님은 내가 소리를 질러도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네 죄 때문이라는 말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주님, 잘 못했어요. 다시는 힘들다 하지 않겠어요. 다시는 죽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주님이 저렇게 처참하게 채찍에 맞아 저를 살려주신 것을 다시 잊지 않을게요. 내 생명이 내 것인 줄 알고 마음대로 하겠다던 제 교만한 등을 주님이 때려 주세요. 주님 저 같은 것 사랑하지 마세요. 용서하지도 마세요.”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목이 쉬고 땀과 눈물이 뒤범벅 됐지만 나는 새 사람으로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
그 기사님에게 나를 기도원으로 데려다줘 감사하다고 인사하러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서 이쪽으로 주시하며 기다리던 그 기사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휑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나는 그 분의 이름도, 자동차 번호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분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죽음으로 가고 있는 이웃의 걸음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바꿔주는 일을 하게 한다.
오늘도 그분은 그의 마음에 생명 살리는 일로 가득 차서 일당까지 희생하며 이 거리, 저 거리로 바쁘게 씽씽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 기사님은 이 세상 어떤 훌륭한 목사님보다 내 인생을 주님께로 완전히 드리게 한 목사 중에 목사, 천사 중에 천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