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항]
5-1-A. 이 항은 2차적저작물의 성립과 그 보호에 관한 것이다.
법문상 “번역, 편곡--”이라고 하였으므로, 먼저 ‘번역’이란 어문저작물을 언어체계가 다른 언어로 변환한 것이다. 따라서 맹인용의 점자역이나 암호문의 해독, 속기문의 반역(反譯) 등은 번역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고어의 현대어로 번역한 것을 구법(1899년)시대에는 번역으로 보았으나, 현행법(1970년)에서는 번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나, 우리나라의 사법부 판단은 고전의 국역(國譯)을 번역에 포함하고 있다.
구법(1986년)에서는 번역에 관하여 새로운 것이 네 가지 있다. 첫째는 구저작권법(1957년)에서는 저작재산권의 일종으로 번역권이 규정되어 있었으나(동법 §25) 구법(1986년)에는 국제협약과 외국의 예에 따라 2차적저작물 등의 작성권에 포함시켰으며(§5 & 22), 두 번째로 구저작권법은 원저작물의 발행일로부터 5년 이내에 번역물을 발행하지 않으면 번역권이 소멸하는 이른바 번역권의 5년 단기소멸제도를 두고 있었으나(동법 §34) 구법에는 이를 삭제하여 번역권도 일반 저작재산권과 같이 50년간 보호된다.
세 번째로 구저작권법에서는 비저작물(동법 §3)을 번역하여도 번역저작권이 인정되었는데, 구법에는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번역물은 역시 보호받지 못하게 하였다.(§7.4호)
네 번째는 구법(1986년)에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면서 외국저작물의 번역이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번역 및 발행을 위한 법정허락제도를 두고 있었으나(§49), 베른협약에의 가입을 전제로 한 1995년의 개정에서 이를 삭제하였다.
그리고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이라도 번역을 하면 번역저작권(2차적저작권)이 발생하여 보호되는 것이며, 또한 타인의 번역물을 더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대폭적인 수정 증감을 하는 것은 최초 번역자의 번역저작권의 침해로 되는 것이다.
5-1-B. 오늘날 번역에 대하여 주의할 점의 세 가지 있다. 그 첫째는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한 기계적 번역인데, 기계적인 번역이라 하여도 처음부터 기계에 의한 자동적인 번역이 아니라, 번역 시스템을 이용하기 전후에 번역대상의 저작물이나 기계적 번역물에 대하여 특정인의 작업을 통하여 점검이나 수정 등이 행하여진다면, 정신적인 창작행위의 개재(介在)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용어나 문맥이 거의 고정된 상업적인 통신문 등은 한정된 범위에서 사람의 관여가 없는 기계적 번역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들에 대하여는 번역에 의한 2차적저작권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는 번역의 창작성인데,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창작적인 “표현”을 보호하는 것이며(위 2-1-E), 2차적저작물의 작성행위 중에서 번역을 제외한 ‘편곡’ ‘각색’, ‘영상제작’ 등은 원 저작물과 같은 내용을 같은 언어나 기호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원 저작물과 다른 별도의 창작성을 요구하는 것이나, 번역은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또한 원저작물의 내용과 분위기를 살리면서 용어의 선택과 문체(文體)의 구성 등에 이미 정신적인 창작행위가 개재된 것이므로, 위에서 말한 ‘각본’ 등과는 달리 별도의 창작성을 요하지 않는다. 셋째는 같은 원 저작물에 대하여 2인 이상이 각각 별도로 번역을 하였다면, 같은 원 저작물에 대한 번역물이 둘 이상 나올 수 있는 것이다.
5-1-C. 다음에 구저작권법(1957년)에서는 개작(改作)이라고 하여 수정 증감, 각색, 영상제작, 변형, 편곡, 녹음 등을 개작에 포함하고 있었으나(동법 §5.②), 구법(1986년)에는 편곡, 변형, 각색, 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 등으로 구분하였다. 우선 개작이란 영어의 ‘adaptation’으로 일본에서는 이를 ‘번안’이라고 하여 번역, 편곡, 변형, 각색, 영화화까지 포함하고, 독일은 개작물이라고 하여 번역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독저 §3)
다음에 편곡(arrangement)인데, 이는 음악저작물에 있어서 악곡을 변조하여 원곡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첨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오선보에 기록된 것을 하모니카용으로 1,2,3,4, 등 단순하게 수보화하거나, 피아노용으로 작곡된 것을 바이올린용으로 고치거나, 혹은 민요를 채보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편곡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편곡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저작물을 기본으로 하면서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의 판례도 ‘노래의 주 멜로디를 그대로 둔 채 코러스를 부가한 코러스 편곡은 단순히 화음을 넣은 수준을 뛰어넘어 노력과 음악적 재능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독창성이 있는 2차적저작물이라’ 하였고, 두개의 구전가요에서 리듬, 가락, 화성에 사소한 변형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적절히 배치하고 여기에 디스코 풍의 경쾌한 템포를 적용함과 아울러 전주 및 간주 부분을 새로 추가한 것은 구전가요들과 구분되는 새로운 저작물로서 2차적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또한 대중가요 184곡을 컴퓨터를 이용하여 연주할 수 있도록 컴퓨터용 음악으로 편곡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는 물론 편곡자의 독특한 방법과 취향이 반영되어 편곡의 차별성과 독창성이 인정된다면 2차적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세 번째는 변형(transformation)인데, 이는 주로 미술저작물에 있어서 그림을 조각으로 하거나 조각을 그림으로 하는 것과 같이 표현 형식을 변환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구저작권법(1957년)상 전화(轉化)에 해당하는 것이며, 건축저작물의 변형도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 사법부의 판례는, ‘세계명작동화의 그림을 데생(dessin)함에 있어서 일본 동화책을 참조하여 저작자의 그림이 일본 동화책 그림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할지라도 단순한 모사가 아닌 이상 그것이 일본 그림의 원작자에 대한 저작권 침해는 별론으로 하고, 저작자의 데생은 2차적 저작물로서 보호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된 음반을 디지털 샘플링의 기법을 이용하여 디지털화 한 것은 2차적 저작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지 아날로그 방식의 음반을 부호화하면서 잡음을 제거하는 등의 실제 연주에 가깝게 하였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이를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첨삭하는 등의 방법으로 독자적인 표현을 부가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또한 일본의 판례는 원화(原畵)의 모사작품은 원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창작적 표현이 부여되지 않는 한 원화의 복제물에 불과하여, 단지 모티브(motive)가 다르다는 것만 가지고 모사작품이 2차적저작물로서 원화와 별개의 저작물이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5-1-D. 네 번째는 ‘각색’인데, 각색이란 일반적으로 시, 소설 등의 어문저작물을 연극용, 악극용 기타 무대 상연을 위해서나 혹은 영상저작물을 제작하기 위하여 극본화 또는 각본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영상제작’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엄격하게 말한다면 영상제작을 위한 각본화는 제외하고 영상제작의 계획 없이 각본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이 조에서는 각본과 영상제작이 함께 규정되어 있으므로 구별의 실익이 없다.
그리고 이런 각본은 무대상연도 할 수 있고, 또한 출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상제작’인데, 여기서 영상제작이란 시, 소설 등의 어문저작물을 기본으로 하여 그 내용을 글이나 말로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우선 각본화와 출연, 촬영 등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영상제작이 2차적저작물로 되기 위해서는 원저작물의 본질적 특징 자체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법부의 판례는 ‘소설(원저작물)을 영화(2차적저작물)로 제작하는 경우에 원 저작물을 토대로 작성된 저작물이 단순히 사상, 주제, 소재 등이 같거나 유사한 것만으로 부족하고 두 저작물 사이에 사건의 구성, 전개과정, 등장인물의 교차(交叉) 등에 공통점이 있어 새로운 저작물로부터 원 저작물의 본질적인 특징 자체를 직접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법문상 ‘그 밖의 방법’이란 구 저작권법(1957년) 제5조 제2항 6호와 같이 소설, 각본을 시가화하거나, 시가를 소설 또는 각본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의를 요하는 것은 우리 사법부의 판례는 어떤 소설을 영상화하는 경우에 그 영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작곡한 음악저작물은 부문(genre)이 다른 소설의 2차적 저작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5-1-E. 그리고 법문에서 ‘창작물’이라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보호받는 저작물은 창작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2차적저작물도 저작물로서 보호받기 위해서는 창작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창작성을 요하느냐가 문제이며, 다만 약간의 수정, 증감이나 표현의 변경만으로는 창작물이라 할 수 없다.
2차적저작물이란 기본적으로 원저작물과 줄거리 내지 내용은 동일하여도 표현방법을 달리 한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비록 내용은 같아도 대폭적으로 표현을 변경하여 새로운 저작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의 판례는,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어떤 작품이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고 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어서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단지 저작물에 그 저작자 나름대로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의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이면 충분하며’ 또한 2차적저작물에 있어서는 ‘부분적으로 원저작물과 동일, 유사한 표현이 있어도 전체적인 구성이나 표현형식에 있어서는 기존의 다른 저작물과 뚜렷이 구별할 수 있으면 창작성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원 저작물과의 관계에서 그것을 토대로 하였다는 의미에서의 종속성을 인정할 수 있어 소위 2차적저작물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원저작자에 대한 관계에서 저작권침해가 되는 것은 별 문제로 하고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로서 보호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5-1-F. 마지막으로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는 것은 위와 같은 행위에 의하여 완성된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과는 관계없이 독립된 저작물로서 보호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위에서 인용한 대법원의 판례는 여기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주의를 요하는 것은 2차적저작물도 원저작물의 복제물이지만 원저작물과는 표현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 독립의 저작물이며, 내용에 있어서는 원저작물과 동일 또는 유사하기 때문에 원저작물의 2차적저작물이고, 내용이 원저작물과 다를 경우에는 완전히 별개 독립의 저작물로 되는 것이다.(다음 16-F 참조)
최근 우리 대법원의 판례는, 2차적저작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되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을 유지하고 이것에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을 부가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어떤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더라도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저작물이 되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모방에 대하여 엄격한 제재를 하는 것이며, 2차적저작물은 내용이 같고 표현방식만 다른 것이므로 저작권법의 관점에서는 떳떳하지 못한 사람 또는 숨어서 하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2차적저작물도 정보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를 장려하는 것은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으며,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저작물을 받아만 들이던 일반대중이 창작자와 한패가 될 수 있고, 또한 정보의 창작자 또는 발신자도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2차적 저작물은 문화를 대중화하는 한 형태로 볼 수 있고, 또한 이미 여러 분야에서 2차적인 대중화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므로, 저작권법의 세계에서도 디지털 기술에 의하여 2차적저작물의 대중화를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