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윤동재
구사당 김낙행이 해거름 산책을 나왔다가
우리 밭 컨테이너에서 내린 커피 한 잔 대접 받고 말하기를
자네는 엄청 부지런하고 열심이지만 농사일은 그것만으론 안 돼
제철을 알고 제철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했지
삼백 평 농사를 지어 삼천 평 수확을 얻는 사람도 있고
삼천 평 농사를 지어 삼백 평 수확을 얻는 사람도 있는데
제철을 알고 제철을 기다릴 줄 아는가에 달려있다고 했지
그리곤 내게 늘 보니 땅이 녹자 곧바로 씨를 넣더라며
이곳에서는 해마다 오월이 되어서야 씨를 넣는다고 했지
그래야 싹이 제대로 나오고 냉해를 입지 않는다고 했지
구사당 김낙행은 남들이 자기를 백면서생으로 알아
밤낮 글만 읽고 이웃들 제문이나 열심히 지어주는 줄 알지만
자기도 집사람의 권유로 돗자리도 짜고 농사일도 하고 있다고 했지
돗자리 짜는 일은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어
처음 시작할 때는 손이 서툴고 자기 마음에도 들지 않았지만
몇 번 해 보자 곧바로 손놀림이 빨라지고 익숙해지더라고 했지
그런데 농사일은 돗자리 짜기와는 사뭇 달라
무턱대고 부지런하기만 해서는 안 되더라고 했지
제철을 알고 제철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논농사든 밭농사든 과수 농사든 다 잘 지을 수 있다고 했지
구사당 김낙행은 말을 다 마치자 목이 타는지
내게 커피 한 잔 더 달라고 했지
내린 커피 말고 믹스커피를 달라고 했지
늘 달달한 믹스커피를 더 좋아한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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