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문제인지, 아들이 문제인지?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란다.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놀라야 하는 이 현실이 무섭다.
아 그러니까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 학교에서 부모에게 전화를 먼저 해주세요.
'댁의 자녀가 오늘 아픈 다리를 끌고서 높은 창문에 끼인 먼지를 털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선생님들, 이런 소식을 가정에 전해주셔요. 그러면 학교가 좋아질 거여요. 뭐, 이런 소식들을 전할 수가 없다고요.
자식을 학교에 보내며 하는 기도제목중에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가 빠지지 않는다.
물론 좋은 친구와 선생님의 기준이 각자 다르겠지요.
'난 우리 아들이 좋은 사람되게 해주셔요'라고 기도했다. 우리아이들이 좋은 애가 되어서 다른 이들의 친구가 되게 해달라고.
잠언은 사람을 피하는 법을 가르친다. 악인을 따르지 말라고 가르친다. 오늘 피할 사람은 악인, 부당이익을 탐하는 자들이다!. 부당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동행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과 함께 가지말고, 그들과 다니지 말고, 네 발을 그들이 가는 길에 들여놓지 말아라"(1;15).
어디 이런 녀석들이 한두명이어야지요.
그래도 자녀들의 탐심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요. 어른들의 탐심은 규모가 큽니다.
심지어 한 가정을 몰락시키고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지요.
탐심이 가득한 사람은 죄없는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통째로' 삼키길 좋아해요. 한방에 모든 것을 얻는 자들이지요.
폭력의 특징이 있어요. 폭력은 스스로 멸망해요. '한방'에 모든 것을 얻었지만 자신도 한방에 '훅' 갑니다.
결국에는 '제 피'를 흘리고, '제 목숨'이나 잃어요. 부당하게 이득을 탐하는 자들은 재물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하는 자들이 많은 세상이지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의 자식을 죽인 세월호 사주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원인규명을 포기한 정부는 악한 정부이지요. 남을 해하는 길에서 자신이 목숨을 잃는다는 주의 법칙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작년의 일). 춘돌군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잡힌 친구와 같이 있었다고.
선생님이 가슴떨리는 소식을 전했어요. 우리 춘돌군은 훔치는 것을 말렸다네요. "휴". 안심이다.
춘돌군이 확실한 삶의 기준을 갖고 있어서 다행이지요.
집에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아빠가 춘돌이 친구에 대해서 한바탕 비난을 했어요.
아들 왈, '공부 못해도 내 친구야. 친구 욕하지마'. 아, 이거 어쩌면 좋을까요. 다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데. 이렇게 도둑질 하는 녀석, 공부못하는 녀석을 사귄다고 생각하니 부모 마음에 불안이 슬그머니 찾아오네요.
그런데 살다가 보면 악인도 의인이 되고, 의인도 악인이 되는 시절도 있지 않은가.
내 자식이 부당이득만 피하는 삶을 살아도 좋으련만 이 놈은 부당이득을 취하는 놈을 말리기까지 한다.
춘돌이 잘한다!. 그렇게 살아라.
인생 그렇게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