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이모>처럼 / 정희연
서른 대 가까이 되는 24톤 덤프가 흙을 가득 싣고 아스팔트 도로 한 차선을 차지하고 줄지어 서있다. 작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해가 뜨려면 아직 먼 시간인데 이른 새벽부터 한 번이라도 더 옮기기 위해서다. 첫차는 새벽 세 시 30분부터 기다렸다.
출근 시간대 교통 체증이 일어나 민원을 일으키면 안 되는데, 일교차가 커 안개가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차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전화를 계속 해댄다. 시간이 되어 일렬로 들어오는데 현장을 잘 모르는 차가 첫 번째로 들어왔다. 현장은 넓고 특별한 지형물이 없어 흙을 부릴 곳을 찾지 못한다. 같은 현장에 있으면서도 서로 동문서답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 시간 가량 차와 씨름하서야 모두 현장을 빠져나가고 평온이 찾아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순서는 앞차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가 끝날 때 까지 계속된다.
이동이 어려운 포크레인(포클레인, 백호우)은 한 달을 기준으로 계약을 하지만 트럭은 장비 업체와 매일 필요한 수량을 정한다. 미리 알려줘야 다음날 일이 순조롭다. 어쩌다 수량을 맞추지 못해 덤프가 부족하면 포크레인의 작업 효율이 떨어지고 덤프가 많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덤프 작업이 부진하다.
비가 온다. 포크레인과 덤프가 멈췄다. 비상이다. 작업로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배수로를 만들어야 한다. 비가 그친 후에도 며칠 말려야 하는데, 덤프는 왜 작업을 시작하지 않느냐며 현장을 열어 주라고 안달이다. 하는 수 없이 시작해 보지만 채 마르기전에 무거운 차량이 연거푸 다니다 보니 진입로가 엉망이 되었다. 덤프는 꼬리에 꼬리를 물로 들어오는데 물을 먹은 흙은 본연의 성질을 잃어 부드럽고 차져서 도저히 더 이상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오전만 하기로 하고 출입문을 닫는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좋으련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으니 “나중에 되돌려 받을 수 있겠지”로 위안을 삼는다.
어디를 가든 경쟁은 있다. 생태계가 살아 있는 한 그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고, 자연에게 순응하는 것이 기본 질서다. 지금껏 해온 수 많은 작고 큰 선택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산업의 패러다임도 변했다. 세상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 더 강한 것, 더 감성적인 것을 원한다. 내 몫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 세상은 쓰디 쓴 마지막 짠물까지 짜내라고 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현실 앞에서 백기를 들 수 밖에없다. 불혹도 지천명도 지나서 무엇에 홀려 정신 못 차릴 나이도,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도 지났는데 한 번 세상과 맞서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백 번째 원숭이 이론이 떠오른다. <이모>라 불리는 암컷 원숭이 처럼 되고 싶다.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뻔히 알지만,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생각이 굳어 옛 것을 고집하는 아흔아홉 번째 원숭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말랑말랑 해지고 싶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이고 싶지 않아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찾을까?로 생각을 모아본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없어서 절망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자문하는 것을 그쳤을 때는 마치 자기가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씩씩하고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고 또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박웅현 지음, 『책은 도끼다』, 북하우스, 2011.)
어려운 일이지만 경쟁에서 빠져 나오려한다. 경쟁을 줄이는 내 길을 가고 싶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에서,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말랑말랑한 사고를 갖고 싶다. <이모>처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걱정스럽습니다. 또 혼날까 봐서요.
@정희연 음...같이 틈틈이 수정해 보게요.
무인도에서 혼자 살면 모를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한 어쩔 수 없어요..
맞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요.
현실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남자. 짠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가요? 하하하!
현실에 지치셔서 선생님도 농막을 만드셨나요? 이미 말랑말랑 하실 것 같은데요.
부모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이어받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만들어 놓으니 피난처(케렌시아)가 하나 더해져 좋습니다.
적당한 긴장과 경쟁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선생님 글에서는 오직 치열함만이 느껴집니다.
도로의 무법자 덤프트럭이 왜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지 선생님 글에서 배웁니다.
황선영 선생님 말씀처럼
남자, 짠하네요!
치열함에서 좀 벗어나도록 힘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어차피 삶 자체가 경쟁속에서 사는 것 아닐련지요. 치열한 현장속에서 일하시는 선생님을 그려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경쟁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