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夫當逕(일부당경) 足懼千夫(족구천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직전에 쓴 글로
한 병사가 중요한 지름길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의 적군 병사를 두려워 하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 직전의 사연을 아래와 같이 훔쳐와 옮깁니다.
여기서 逕은 <작은 길>, <지름길>이라는 뜻이지만 적군을 섬멸하기 위한 최적의 매복지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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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10일에는 해남과 진도에서 오래 산 노인과 어부들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명량(울돌목)으로 가서 지형과 해류 특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순신은 이때 왜군의 대병력과 싸울 장소로 울돌목을 선택했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바닷물의 유속과 방향 등을 숙지하며 작전을 구상했다.
울돌목이 갖는 복잡하고 험난한 해류 특성을 잘 살린다면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일 아침이 밝아오자 이순신은 일찍부터 13척의 판옥선을 꼼꼼히 점검했다.
특히 대포(지자총통·현자총통)와 투척용 포탄(발화탄·질려탄·비격진천뢰) 등
각종 무기의 수량과 이상 유무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문제는 싸우고자 하는 장병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엄청난 병력의 왜군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도록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이순신은 저녁 식사를 마치자 『오자병법』에 나오는 경구를 떠올리며 글을 썼다.
‘必死則生(필사즉생) 必生則死(필생즉사) 一夫當逕(일부당경) 足懼千夫(족구천부)’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병법에 나온 문구보다 좀 더 강하게 의지를 담은 표현이었다.
이순신은 부하 장수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한 뒤 훈시했다.
이순신의 비장하고 위엄에 찬 목소리에 다들 굳건한 얼굴로 결의를 가다듬었다.
같은 시간,
왜군 수군은 총사령관인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를 중심으로 전 지휘관이 모여 마지막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우군의 별동대 2만5000명을 이끄는 육상의 지휘관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을 격파하자마자 서해로 북상해 한강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이번 해전에서 최선봉은 내가 맡겠소.”
일본 내에서 돌격전의 달인으로 유명한 구루지마 미치후사(來島通總)가 선언하듯이 자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이순신의 목을 베어 오라는 특명을 받고 왔기에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더욱이 그는 친형인 구루지마 미치유키가 임진년 당시 당항포 해전에서
이순신 함대에 패해 전사했기에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어란포(해남)에 집결해 있던 왜군 수군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출동준비를 서둘렀다.
16일 새벽 4시경, 총 333척의 왜군 함정 중 선봉에 선 133척이 기세등등하게 먼저 포구를 떠났다.
“큰일 났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왜군 함정이 우리의 명량(울돌목) 앞바다 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무렵, 별망군(別望軍·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별도로 편성된 탐망군)이 급하게 달려와 보고했다.
이순신은 계속 동태를 살피라고 지시한 뒤 부하 장수들을 소집했다.
다들 잔뜩 겁에 질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