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 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 계간 『문학동네』 2016년 봄호 ........................................................................................................................................................................................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벽’이라는 매우 상투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 추상적인 ‘보이지 않는 벽’을 유리창이라는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을 가져와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리는 사람 사이에 서있는 투명한 막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따라서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