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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수호천사 기념일]
마태오 18,1-5.10
먼저 자기를 멸시하지 않고는 타인을 멸시할 수 없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작은 이들을 멸시하지 않아야 하는 이들이 그들이
수호천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란 뜻입니다.
여기에 타인을 멸시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멸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위 ‘땅콩 회항’과 같이 나의 위치로 타인을 멸시하는 행위는 이미 자신이 자기를 멸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사랑받는다는 증거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 가장 큰 증거가 수호천사입니다.
수호천사와 가까웠던 비오 신부님은 항상 영적 자녀들에게 수호천사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수호천사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셨던 비오 신부님은 때때로 밤새도록 수호천사들이 메시지를 전하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비오 신부님과 함께 산 조반니 로톤도에 있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밤 11시가 되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군가가 성스러운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내어 축복받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오 신부님이 고아원으로 가시던 길에 그들 앞을 지나가시며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젯밤 11시에 다섯 명의 수호천사가 한꺼번에 들이닥쳤었소.”
어느 날 한 부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열이 나고 있었습니다.
약이 있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정 무렵,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이와 함께 여기에서 잠을 자고, 나는 옆 방에서 자겠소.”
그러고 나서 남편은 잠들기 전에 자신의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냈습니다.
정확히 1시 5분 전이었습니다.
새벽 3시에 남편이 깨어나 아이를 생각하고 가 보니, 아이의 열이 내리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기뻐서 아내를 깨웠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말했습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냈어요.”
그러자 남편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몇 주 후, 남편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비오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성당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비오 신부님은 남편을 향해 가리키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당신 집에서는 밤에도 쉴 시간이 없어요!”
남편이 미안하다고 말하자, 비오 신부님은 밝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오. 밤에도 수호천사들이 찾아오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오.”
남편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려고 하자, 비오 신부님은 그 감사를 사양하셨습니다.
“먼저 감실로 가요 아니면 성모님께 가든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안 남편은 겸연쩍게 물었습니다.
“비오 신부님, 하나 여쭤볼까요? 어느 쪽 수호천사가 먼저 왔지요?
제 아내의 수호천사였습니까, 저의 수호천사였습니까?”
이에 비오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셨습니다.
“당신 수호천사가 먼저 왔소.
1시 5분 전에 당신의 수호천사가 왔고, 조금 뒤에 아내의 수호천사가 왔소.”
비오 신부님은, 미사에 참석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거룩한 수호천사에게 미사 중의 뜻을 하느님께 전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수호천사를 통해 은총을 받는 존재임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타인을 멸시할 수 없습니다.
타인도 그러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나도 무시당하는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사라지려면 우리 곁에 수호천사를 많이 두어야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의 변신은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아버지를 죽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자각이 깊어지고 사랑과 구원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그를 공개적으로 죽이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사생아였던 스메르쟈코프였습니다.
드미트리는 자기 애인인 그루센카도 아버지가 빼앗으려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와 형제들,
애인에게까지 분노합니다.
그러나 스메르쟈가 자신의 살인이 들통날까 봐 자살하자,
형의 약혼녀인 카테리나와 바람을 비운 동생 이반까지도 형의 편을 들어 그를 석방시키려 합니다.
알료샤는 수도사가 되어 하느님께서 사랑하심을 매일 방문하여 끊임없이 설득하고 그루센카는 자신과 함께 벌을 받자며 20년 동안 드미트리를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지금까지 자신이 아버지와 형제들과 애인까지도 멸시하며 살아온 것에 20년 형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를 통한 모든 이들도 자신처럼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고는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이들이 수호천사들입니다.
하느님은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고 우리 각자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수호 천사를 믿지 않으면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이고 그 멸시는 이웃에게 이어집니다.
1948년 10월 3일, 요한 23세 교황은 자신의 여동생 안젤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매일 최소 다섯 번은 천사에게 기도하고, 마음속에서 자주 천사와 대화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네 수호천사와 친해지고, 당신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호천사와도 가까워져라.
이 하늘의 파수꾼들, 그 신비로운 증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0월2일 [수호천사 기념일]
복음: 마태 18,1-5.10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 나를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극(史劇)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호위무사(護衛武士)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왕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무예나 검술이 뛰어난 민첩한 사람을 호위무사에 임명합니다.
이 사람의 행동의 특징은 은밀함입니다.
언제나 왕 근처에 있지만 있는 듯 없는듯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과 온몸의 신경은 언제나 왕의 안전을 위해 깨어있습니다.
위기 상황이 오면 지체 없이 개입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온몸을 던져 왕을 대신해 칼을 맞습니다.
그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왕의 안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안전과 영혼 구원을 위해 아주 충실하고 날렵한
호위무사(護衛武士)를 파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에게 파견된 그의 이름은 수호천사(守護天使)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만큼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우리를 끔찍히 생각해주시고 귀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면서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매일의 인생 여정 안에, 지근 거리에서 경호실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인생의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주십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수호천사의 존재는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극진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우리 인생길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매일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들은 매일 우리가 걷는 여행길의 방향을 올바른 쪽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천사에 대한 강조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 여러 곳에서 수호천사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아주 명백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수호천사의 현존에 대해 의심치 말고 믿어야 마땅합니다.
수호천사는 굴곡지고 사연 많은 우리네 인생길을 지켜줍니다.(시편 91,11)
수호천사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탈출 23,20) 뿐만 아니라 수호천사는 우리의 시중까지 들어줍니다.(히브 1,14)
하느님을 대신해 인간에게 복을 내려줍니다.(창세 48,16)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줍니다.(토빗 12,12)
투옥되어 큰 곤경 중에 빠져있던 베드로 사도는 여러 차례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사도 12,7)
베르나르도 성인의 권고에 따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순수하고 어린이다운 마음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수호천사에 대한 신심을 좀 더 키워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수호하는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탈출 23,20)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수호천사 기념일 강론>(2024. 10. 2. 수)(마태 18,1-5.10)
<우리는 서로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1) 여기서 ‘작은 이들’은 ‘나보다 작은 이들’,
즉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천사들’은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뜻합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라는 말씀은, 수호천사가 항상 하느님 곁에 있으면서, 자기가 맡고 있는 사람의 일을 하느님께 곧바로 말씀드린다는 뜻입니다.
수호천사가 항상 곧바로 말씀드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일을 세세하게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을 뜻합니다.
알고 계시니까 곧바로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도 수호천사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천사가 하는 일은, 또는 천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진짜 뜻은,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의 일을 언제나 항상, 늘 살펴보시고, 다 알고 계시고, 언제나 항상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입니다.>
수호천사가 늘 지키고 있으니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작은 이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곧 그들을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힘이 없어서 무시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반대로 읽으면, “너희가 힘이 없어서 업신여김을 당하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하늘에서 너희의 수호천사들이 하느님께 늘 말씀드리고 있으니.”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이 말씀은 ‘작은 이들’, 즉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호천사가, 또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만 쳐다보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하느님의 도움을, 또는 수호천사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렇지만, 인간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도 많고,
곤경에 처한 이웃을, 또는 힘이 없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웃을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수호천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는 그 사람이 나의 수호천사입니다.>
3) 그것을 믿는다면, 이제 우리도 ‘작은 이들’을 위한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무기력하게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의와 평화가 제대로 실현되는 세상을,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공동체가 나서야 하고,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인들의 공동체, 즉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와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작은 이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4) 수호천사의 반대쪽에는 항상 악마가 있고, 수호천사는 늘 선행과 사랑을 권고하는데, 악마는 늘 악행을 부추깁니다.
천사의 권고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악마가 유혹하는 대로 할 것인지,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로마 12,13-16).”
<궁핍한 성도들, 우는 이들, 비천한 이들은 ‘나보다 작은 이들’이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곧 수호천사의 권고대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고, ‘작은 이들’을 위해서 수호천사가 되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마는 그들을 무시하고 외면하라고 유혹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9-21).”
<내가 ‘작은 이’의 입장에 있을 때, 수호천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선으로 악을 굴복시켜라. 주님의 심판에 맡겨라.” 라고 권고하는데, 악마는 “주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기다리지 말고 직접 정의를 실현해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율법이 있으니,
네가 당한 만큼 앙갚음해도 된다.” 라고 유혹합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