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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
잠 3:1-12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 3:1-12 /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받아야] 얘야, 내가 네게 가르치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일일이 이르는 말을 가슴속에 묻어 두어야 하느니라. 2) 그래야 네가 하늘이 내려 주신 목숨을 다 누리며 인생을 평화롭게 살 수 있으리라. 3) 남을 아끼는 마음과 진실된 마음, 이것을 버려서는 절대로 안 되니, 목에 드리우고 다니는 목걸이처럼 늘 달고 다니거라. 네 마음속에 이 둘을 꼭 새겨 두어야 한다. 4) 그러면 하나님도 사람도 너에게 깊은 애정을 가질 것이야. 네게 잘한다고 갈채를 보내지 않겠니? 5) 얘야, 너는 또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네 잔꾀를 하나님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6)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분을 생각하여라. 그분의 뜻을 늘 되새겨 보란 말이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분이 가르쳐 주시리라. 7) 스스로 영리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스스로 경험이 많다고 으스대지 말아라. 오직 여호와만을 진실되이 모셔라. 또한 못된 짓만 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아라. 8) 사람들은 몸을 튼튼히 하려고 보약을 먹지 않느냐? 내가 하는 이 말이 네게 보약이 되리라. 보약이 사람의 뼈마디 속까지 스며들어 몸을 튼튼하게 해주듯, 네가 올바로 생을 살아가게 해주리라. 9) 네가 가진 재산으로 여호와를 섬겨라. 네가 땀 흘려 얻은 농산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그분께 바쳐라. 10) 그리하면 네 곡식 창고에 곡식이 쌓아 놓을 데가 없을 만큼 꽉꽉 차리라. 네 술틀에 주체하지 못할 만큼 술이 흘러 넘치리라. 11) 얘야, 여호와께서 꾸짖으시는 말씀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타이르시는 말씀을 싫어해서도 안 된다. 12) 아비가 귀여운 자식을 꾸짖듯, 여호와께서는 아끼는 사람을 꾸짖으신단다.
지혜의 근본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의 교훈들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마땅히 그에 따른 반응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1-4) 솔로몬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법과 명령을 간직할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가르침은 장수와 함께 평강을 약속합니다. 오래 살아도 평안함이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을 사모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평안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3절의 ‘인자와 진리’는 ‘한결같은 충직함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요약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외적인 행동에서 나타나야 하며(네 목에 매며), 내적인 삶에도 적용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네 마음판에 새기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5–10) 우리는 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명철을 의지하는 자의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여기서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은 전면적인 의존과 위탁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수록 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재물과 소산물의 첫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에게 번영의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신 26:2, 10)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11-12)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꾸짖듯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우리는 징계를 싫어하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 12:6-7) 징계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징계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 온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의 모든 삶을 의탁하며 살고 있습니까?
심리적 고통을 겪을 때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고통이 사라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고통이 해결된 상황은 행복한 상태와 달라요. 신체적 질병에서 완치된 상태가 건강한 상태와 동일하지 않은 것과 같아요. 지금의 고통이 사라져도 삶은 계속됩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을 하나씩 심어가야 해요.-김도인<숨쉬듯 가볍게>중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우선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과신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 자신이 의롭다고 지혜롭다고 여기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오늘이 되시기 바랍니다.
< 설 교 >
그리하면 복(福)을 받습니다!
잠 3:1-10 / 송수천 목사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가 가냘픈 호박 넝쿨에 큰 호박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했습니다. "저 가냘픈 가지에 저렇게 큰 호박을 열게 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러고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이 농부가 호도 나무 밑에 가서 앉아 쉬다가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니까 그 나무에 호도가 열렸는데 큰 나무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게 너무 조그만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것을 보자 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평을 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에 저렇게 작은 열매를 맺게 하셔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 농부는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혀를 차고는 호도 나무 밑에 누워서 낮잠을 잤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호도 열매 하나가 이 불평 많은 농부의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난 이 농부는 호도 열매 하나가 떨어져서 자기 이마를 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농부의 뇌리를 번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호도 나무에 열린 호도 알이 작았으니 망정이지 이 호도 알이 호박만 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그러고는 하나님을 향해서 태도를 고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 호박 넝쿨에서 큰 호박 열리게 하시고, 호도 나무에서 작은 열매 맺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 참 잘하신 일입니다" 하고 하나님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 잠언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를 얻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서의 중심 사상을 뽑는다면 1:7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면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세상에는 많은 법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국법이 있으며, 미국에는 미국 법이, 일본에는 일본법이, 영국에는 영국 법이 있으며,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회사의 법이 있고, 어느 단체이건 그 나름대로의 법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에도 경기의 법칙이 있듯이 신앙생활 안에서도 법이 있고, 공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온통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내 아들아" 다정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엄하면서도 사랑이 담긴 모습으로 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가르침을 위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 속에 나타난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접속사인 조건절이 나옵니다. 그 단어가 바로 '그리하면'인데 공동번역에는 '그렇게 하면'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2절과 4절, 6절과 10절 등 네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하면'이라는 말인데 더 쉽게 표현하면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순종하면, 그렇게 충성하면, 그렇게 살면'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어떤 복을 준다고 약속하십니까? 2절에서는 장수와 평강에 복을, 4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복을, 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길을 바르게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는 복과, 8절에서는 건강의 복과, 10절에는 창고가 가득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는 풍성한 삶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리하면' 복을 받습니다!▶라는 제목으로-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1절)
'내 아들아!' 얼마나 다정합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자, 곧 천국을 상속받게 된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시험을 봐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할/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은 일반적 의미의 종교적, 도덕적 교훈들이면서 특히 개인적인 적용에 특징을 두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표현했는가? 법은 표준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표준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믿음의 표준이요, 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공법으로 보기보다는 내 자신의 삶의 철학이자 인생관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할 법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잊어버림'은 기억력의 부족에서 오는 '망각'을 뜻하지 않고, 고의적인 '무시'와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관심해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무시해 버리시고, 무관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손해입니까? 우리가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법과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최고의 안내문입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 속에, 삶의 범사 속에 하나님의 법과 명령인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여기에서 마음은 '감정과 사상의 원천'임을 뜻합니다. 마음은 사상과 생각을 담고 있는 틀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이 나오고, 마음이 병들면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사상이며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것은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의 사상으로써의 그 위치를 두고 있는데, 이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명령'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사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한 "던킨 도너츠" 창업주인 '로젠버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과 교육부재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주셨습니다. 저는 성공이란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자원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들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하면'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 2절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택)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장수는 동서고금과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인간이 누리는 축복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장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으로 누리면서 장수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원만한 인간 관계와 태평성대의 삶, 모든 위험과 장애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의 평정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래도록 평안한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순간 평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장수'의 복은 그 심령의 '평강'을 통해서 건강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평강'이 없는 '장수'란 축복이 아닙니다. 오래 살아야 하지만 평안해야 합니다. 평안하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장수가 온전한 축복이 되기 위해 평강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외적인 안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외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지금 북에서는 핵을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번 붙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무섭고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2.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3절)
▶인자란 '헤세드'인데 이는 폭넓은 주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사랑을 잘 간직하라는 말씀이요, 그 사랑을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말이고, 여기 진리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데, 이 말씀은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라는 뜻입니다.
▶또 '인자'는 전인격적인 순종과 헌신의 상태를 말하고, '진리'는 확실하게 준행하는 성실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에 대하여 가지는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어떤 채무보다 더 큰 의무로 생각하며 최대의 성실함을 보여야 합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성실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변하지 말고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메 마음 판에 새기라' 한 것은 믿음 생활의 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목에 맨다'는 것은 항상 생활화하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하고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진주 목걸이는 자랑삼아 매고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걸이는 달고 다니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나는 성림교회 여집사입니다. 성도입니다. 성가대원입니다. 나타내십시오! 그래서 주일날 세상으로 유혹하면 '나는 교회에 가야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목에 메고 다니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은 믿음의 삶이 생활화되고, 그것이 내면에 자리를 잡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소중해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목에 걸고 다니면서 마음 판에 새기지 않는다면 위선이고 형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하면 복이 임합니다. 어떤 복입니까?
■4절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할/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쉬운 말로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귀중히 여긴다'는 말은 '귀히 여기고, 칭찬하고, 값있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주머니에 돈 1000원을 넣을 때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넣습니다. 1원짜리는 있어도 골치가 아픕니다. 물론 1원이 있어야 천원도 되고, 만원이 되지만 지금 우리 나라에서 1원의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100만원이 생기면 지갑 속에 소중히 넣을 것이고, 만약 1억짜리 수표가 생긴다면 주머니에 넣고 '잘 있나'하고 수시로 만져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도, 사람에게도 사랑 받고 칭찬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살아도, 귀중히 여김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대학에 가고, 잘 살아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멸시받고 비난받고 미움을 받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3.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5-6)
여러분! 세상은 변하고 우리가 믿을 만한 안전한 도피성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는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매민지 개민지 태풍을 보셨지요? 세상은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조차도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유혹과 미혹에 빠져들어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역사를 통하여 늘 하나님의 명령을 떠났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실에 그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세계, 영적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기대해 보는 Lotto 복권이 현실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토 복권을 수학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매기는 세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분만을 인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참된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뢰하고'는 어떤 대상에 전적으로 몸을 의지하여 기댄다는 의미로 완전한 의탁과 신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모든 인생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의뢰한다'는 말은 '기댄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지게가 지팡이에게 의지하여 세워져 있듯이 우리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는 삶이 겉으로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기초, 기반, 디딤돌)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께 기대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디딤돌이 되어 주십니다. /믿/
●여호와를 의지하는데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이 구절은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과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일찍이 모세는 신6: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구약성경을 인용하시면서 막12:30과 눅10:2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믿/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꾀와 지식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명철'은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주장만 옳다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만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이 작은 머리에 다 들어갑니까? 하나님이, 이 작은 머리에 담기는 분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엔 많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자기 명철만 의지하다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철칙입니다. 창조주로 인정하십시오! 구세주로 인정하십시오! 그 분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막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하면의 복이 임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할/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①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②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③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참고: 마11:28절
④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⑤롬12:19절에서 원수 갚는 것도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⑥막11:24절에서 기도의 결과도 주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죠지 물러' 목사님은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7)
여러분!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지혜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라가 지혜를 얻는 자리입니다. /믿/
본문 16-17절에 지혜를 얻은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여러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얻는 비결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경외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드리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기본 정신 두 가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분을 높여드리는 모든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듯, 예배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마4:10절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 시험을 이기느라 동원한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이든 신약이든 '엎드리다, 절하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시99:5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을 높여드리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이런 행위 가운데는 하나님은 높고 위대한 분이지만 나는 낮고 천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95: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이것은 예배를 드리자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경배하는 것만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다음에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성경에서 예배라고 할 때, '노동, 사역, 일'이라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영어는 예배를 Service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로 해석하면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봉사하는 게 바로 예배란 말입니다.
경배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섬김은 행위의 영역입니다. 경배가 의식이라면 섬김은 의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경배가 뼈대라면 섬김은 살입니다. 경배가 원리라면 섬김은 실천입니다. 경배가 내적 태도라면 섬김은 외적 태도입니다. 경배가 예배시간에 하는 것이라면 섬김은 예배시간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이 두 영역 중 한 가지만 있다면 올바른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배만 있으면 외식이고 섬김만 있으면 사랑의 실천은 돼도 예배는 아닙니다.
바른 예배자들은 악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믿/
●7절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에게도 '그리하면'의 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리하면이 빠지고 '이것이' 나옵니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여기서 양약은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약인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보약은 100% 보약입니다. 세상 보약은 가짜가 판을 칩니다.
여기 '골수'는 의학용어로 히브리어는 '척수'를 말하는 것인데 골수는 피의 응고를 돕는 혈소판과 산소를 날라다 주는 적혈구와 싸워 백혈구를 생산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골수(척수)에 이상이 있으면 신체의 부분 부분이 마비가 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중풍도 척수와 연관이 있고 소아마비 같은 것도 척수에 바이러스가 침범하여 신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척수는 뇌와 신체 각 부위를 연결하는 주도로와 같아서 척수를 통하여 정보가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척수가 건강하지 못하면 신체에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골수가 윤택케 된다'는 말씀을 받으면 그 얼마나 복된 축복입니까?
5.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9절)
이 말씀에는 몇 가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있는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얻는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헌금을 드릴 때 우리가 드리는 그 재물에는 피, 땀, 눈물이 담긴 것입니다.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모욕을 당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라 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첫 아들, 처음 탄 월급, 탐스런 첫 열매는 남 주기 정말 아까운 것들이 바로 처음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구약 시대에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축복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표였습니다. 그들이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한다'고 하는 신앙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첫 것에 대한 마음이, 최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머지 모든 것도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은 본문을 십일조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물질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성별시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백적 표시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물질 헌금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시적 표식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십일조의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석원태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반대 유형: ①신약시대는 은혜의 시대요 구원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율법적 규례는 없어져야 하고,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롬6:14). ②재물의 소유주는 인간 자신이라는 주장입니다. ③또한 나의 수입이 너무 적다는 이유입니다. ④반대로 나의 십일조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다 드릴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⑤자기 십일조에 대한 산출근거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⑥교회가 헌금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⑦십일조는 구원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그것을 율법화 할 수는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혀 성경 교훈과 모순되는 인간 중심의 생각입니다.
▶마지못해서 드리는 유형: ①마지못해서 억지로, 의무감으로 내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는 즐겨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엡6:6-7,고후8:7). ②하나님의 응징(벌)이 두려워서 내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③자기 기분대로 내는 십일조 유형입니다. 형편 따라 적당하게 사전에 준비 없이 내는 십일조입니다. 자기가 급한 대로 우선적으로 다 쓰고, 여유가 있거나 나머지 부분을 십일조라는 이름을 붙여서 냅니다. 그러나 십일조 헌금은 최우선의 제물이 되어야 하고(마6:33),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함이 되어야 합니다(잠3:9). ④공명주의나 체면, 눈치껏 내는 십일조입니다. 자기의 교회 직분상, 또 타인과 비교해가면서 이른바 체면세우기식(?)의 십일조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십일조입니다.
▶기복적 십일조의 유형: 이는 일종의 기복적 축복관념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뇌물(?)을 드리는 심정이나 십일조를 축복 받는 공로처럼 여기는 유형입니다. 결코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상거래 행위나 기복적 공로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존속시키려는 목적으로 드리는 유형: 물론 십일조 헌금이 교회 재정운영에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존속시키고 부흥시키는 원동력은 주님 자신이고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이유로 십일조를 내는 자는 자신이 교회의 주인역(主人役)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드리는 십일조: 십일조는 하나님 자신의 지고하신 명령에 감심으로 순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영광의 수단으로 드린다는 사상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사상입니다(고전 10:31).
이런 의미에서 아드리안 로저스(A. Rogers)는, "십일조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통로이다. 왜냐하면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석원태 목사님의 십일조에 대한 실제적 문답을 참조합니다.
▶십일조가 연보의 전부인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모든 연보의 기본입니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여러 류의 감사행위가 많습니다.
▶십일조 계산은 총수입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순 이득에서 할 것인가? 성경은 소득의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눅18:12). 또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말3:10). 모든 경우의 소득에서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나, 또 너무 많아서 고액일 경우에는 어찌하는가? 양자 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적거나 많거나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할 창고가 교회뿐인가?
그렇습니다. 교회뿐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말3:10). 그렇다면 '나의 집', '나의 창고'가 비단 교회만을 가리킴인가? ①신학교나 기타 자선사업단체나 선교기관, 농촌 모(母)교회에 자기 십일조를 나누어 보낼 수 있지 않은가?
②심지어 십일조 중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는 특정한 교역자나, 자기가 벌여놓은 복음사업을 위해서, 아니면 교회 각종 기관에 월정회비나 교역자들 접대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종류는 십일조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금(公金)입니다.
그러므로 소유권이나 사용권도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몸된 기관인 교회에 바쳐야 하고, 교회는 공적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빚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도 십일조를 드림이 마땅한가?
마땅히 드려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여러 경우에 부채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빚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십일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퇴직금이나 유산을 받았을 때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당연히 드려야 합니다. 종신토록 받을 퇴직금은 종신토록 주의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유산은 유언에 따를 것이나, 특별한 유언이 없을 때에는 그 유산을 받아 자기 소유가 되는 재산 중에서 십일조를 구별시킴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 영'은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에 대한 보은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십일조 생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①십일조를 드림으로 자기 신앙이 더욱 확고해짐을 보고 놀랐고, ②자신의 물질적 생활이 넉넉해짐을 보고 놀랐고, ③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찌 내가 이런 돈을 낼 수 있는가 하는 사실에 놀랐고, ④믿음의 담력이 더하여짐에 놀랐고, ⑤나머지 십의 구(10/9)도 지혜롭고 규모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놀랐고, ⑥ 이 축복을 알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살았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놀랐다"라고 하였습니다.
'록펠러'는 두 가지 가훈(家訓)을 정했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둘째로 부자가 되어도 돈을 절대로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는자"는 ●그리하면의 축복이 임합니다. ●10절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차고 넘쳐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득히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벌어서 가득히 차고 넘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많이 벌어서 ①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②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③자신도 윤택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생각합니다. 자신만 윤택하게 살려 하고 종업원에게는 인색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더 인색합니다. 그러니까 자신도 어려울 정도로 안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자신도 윤택한 삶을 살게 사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새기라
잠언 3:1-12
본문 1~2절을 봅니다. 1절에서 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솔로몬이 아들을 부르는 형식이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전하기에 지혜가 부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부르면서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지키라는 것은 겉으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명심(銘心)하라고 합니다. 명심하라는 말은 마음에 새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에 새겨서 그 법대로 살면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할 것이라고 합니다. 장수를 하는데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강가운데 장수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고서 그대로 적용을 하면 내가 장수하고 평강하기를 원한다면 주의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명령을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고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지혜의 말씀이 주어졌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으로 이 법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롭게 장수하지 못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나라도 평안한 나라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문자 그대로 적용을 하게 되면 이것이 살리는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고후3:6). 이 말씀을 직접 받은 자들도 메지 못한 멍에를 우리가 어떻게 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석하야 마땅합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한다고 한 말씀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요5:39).
본문 3~4절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합니다. 1절의 내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마음으로 지키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만 선택한 단어가 언약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와 에메드는 자주 언약의 용어로 사용됩니다. 공동번역은 성실과 신의라고도 번역을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이 인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라는 말씀도 됩니다. 그 언약을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합니다. 언약을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씀이 율법을 주시면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에 받은 언약의 판은 돌 판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새기라고 합니다.
신명기 30:11~14절입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모세가 받은 율법이 어렵고 먼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15~16절을 봅니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여호와의 명령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기에 지키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모세가 율법을 노래처럼 외워서 잊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명령대로 살면 생명과 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망과 화를 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17~20절입니다.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잠언서가 신명기의 말씀의 요약과 같습니다. 분명히 외우고 마음에 있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가면 생명과 복을 얻을 수 있는데 문제는 유혹을 받아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을 받아 마음을 돌이킨 후손들의 별 수 없는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아무리 율법을 주어도 그 마음에 기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망과 화의 길로 간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렘17:9), 그 죄가 마음 판에 금강석 철필로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렘17:1).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광야를 지나면서도 언약을 배반합니다. 사사시대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왕들의 시대에 왕도 타락합니다. 이런 왕들의 시대에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을 예언합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마음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인간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목에 메며 마음 판에 새겨서 살면 생명과 복을 주시고 그렇지 못하면 사망과 저주를 주신다고 하셨지만 인간은 그 마음 판에 말씀을 새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을 예언하면서 이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해를 낯의 빛으로 주었고 달을 밤의 빛으로 준 이러한 법도가 폐하여진다면 언약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지가 없어져도 자신의 언약은 그대로 이루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다시 잠언 3~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이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누가 이렇게 살았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인자와 진리이십니다. 목메 매여 마음 판에 새길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태어나시고 자라나실 때에 키와 지혜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워 지셨다고 합니다(눅2:52).
그러나 이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표적과 기적을 보고 따르는 자들은 잠시 환영하였지만 곧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유일하게 인자와 진리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가 배척을 받았다면 이 땅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은 모습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 목록 중 첫 번째가 아벨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아벨이 형 가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인생 절반도 못 살고 행방불명된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자들이 언약 백성들입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잠언서 중에서 유명한 말씀입니다. 복음성가 가사로도 나옵니다. 여기서도 마음이 나옵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십니까? 나의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계획을 세우기 전에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마음을 다하여 헤아려보십니까?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주님을 인정하십니까? 온 천지가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으십니까? 나의 뜻과 계획이 실패할지라도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십니까?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뜻대로 계획을 세워놓고 그것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이 모습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근심을 하면 간이 안 좋아지고, 분노하면 무엇이 안 좋아지고, 하면서 여러 가지 의학적인 말을 하는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면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주님을 범사에 신뢰하면 염려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병에도 안 걸리고 늘 건강하게 산다면 히브리서 11장을 찢어 버려야 할 내용이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욥기나 시편 73편이나 하박국서를 통하여서도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에 대하여 많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이나 잠언서의 이런 말씀 몇 구절을 가지고 이렇게 지켜 행하면 범사에 복을 받고 형통하며 살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그런 말씀들을 끌어와서 계속하여 단순 반복을 합니다. 이것이 세뇌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를 듣고서 아멘하면서 따라가는 자들도 결국은 그런 세상적인 복들을 받고 싶어 하니 그렇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런 말씀도 현세적이고 육신적이 것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궁극적인 내용으로 풀어야 합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맥추감사절이나 추수감사절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재물과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가르칩니까? 교회당에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 대접하라고 합니다. 가장 귀하고 처음 것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시골에서 도시로 나올 때에 시골교회 전도사님이 저에게 신신당부한 것이 십일조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복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백년이 넘은 고신교단 교회입니다. 그리고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해서 전도사 첫 사례 전액을 헌금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십일조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우리 집사람은 항상 십일조보다 더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전셋집 얻을 형편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재물과 우리의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구약적인 상황에서는 십일조와 각종 헌물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성전이 유지되고 제사장들이 먹고 사는 것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까지 돌보는 일들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오늘은 처음 익은 열매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청년이 이 본문으로 질문을 하면서 구약에서 물질적인 복을 말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것을 드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전체에서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왜 처음 것을 드리는 것이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 되는지 성경 전체를 찾아보고서는 처음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는 답이 왔습니다.
출애굽기 23:15~19절입니다.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18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삼대절기에 여호와께 나아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이 단어를 찾다가 광주에 어떤 분이 출애굽기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제가 되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오지 말고 여호와께 나아올 때에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처음 것을 가져와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처음 것을 드리면 우리가 부자 된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장자의 죽음에서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처음 장자와 짐승의 처음 수컷을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처음 것으로 구별된 자들이 나중에 레위지파로 대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을 드린다는 것은 장자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26:1~11절입니다.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토지소산의 맏물 곧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것은 출애굽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이 우리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원하여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이루어내신 그 십자가의 완성이 바로 맏아들의 희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희생과 소산의 맏물이라는 개념들이 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실 때에 내 장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보여주어야 할 역할은 장자의 희생역할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지런히 토지소산의 맏물은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였지만 그것으로 부자 되기를 원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세의 수건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토지소산의 맏물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과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여호와의 징계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의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맏물을 드림으로 복을 받는 다는 이야기가 맏아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그 희생에 참여된 자들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없으면 그저 토지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바쳐서 창고가 가득차고 새 포도즙 이야기만 할 것입니다.
로마서 8:18~23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처음 익은 열매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성취는 곧 맏아들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희생하신 것이 처음 익은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빈손 들고 가지 않고 처음 익은 열매를 들고 가야 하는 것은 빈손들도 주께와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라면 몸의 구속이 일어날 그 날까지 탄식하면서 살아갑니다.
로마서 8:24~30절입니다.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는 소망이 달라집니다. 보이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들이 성도에게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 소망을 믿고 참고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니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예수님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십니다(롬8:34). 이렇게 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그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내용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바로 맏아들입니다. 맏아들의 희생을 구약에서 토지소산의 맏물을 드림과 장자가 여호와께 드려지는 것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영이 임한 자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판에 새겨진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처음 익은 열매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마음 판에 새겨진 십자가의 완성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새기라는 이 말씀이 구약을 가로질러 새 언약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이 임함으로 인하여 마음에 여호와의 언약이 기록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자들이 됩니다.
아들에게 주는 교훈
잠언 3장 1-12절
오늘은 세계적으로 지키는 꽃 주일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우리의 자녀들을 생각하지 않으리오마는, 특별히 이 날을 우리 자녀들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튼튼히, 좀더 경건히, 지혜롭게 바로 기를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자녀들에게 줄 교훈으로 가득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은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잠언」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보면 여러 번「내 아들아」,「내 아들아」반복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주는 간곡한 궈면이 있습니다. 경험 있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잠언을 쓴 분이 그 아들에게, 그 당시에 있어서 옳은 처세의 도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三장 一절에서 十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 청소년들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간단한 네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첫째,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해야 네가 이 땅에서도 장수의 축복을 받고 평강을 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인자와 진리도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네 재물과 네 소산의 처음 된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창고가 가득하고 네 즙 틀에 포도즙이 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1)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내 아들아 내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나의 명령을 기키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법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후에 모든 법을 낸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계에 자연의 법칙을 내시고 또한 우리 인간에게 모든 법칙을 내신 것입니다.
이 법은, 구약에 보면 율법과 선지자의 교훈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고, 신약에서는 산상보훈과 예수 님의 모든 교훈, 그리고 사도들의 교훈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중의 하나님의 법은 우리가 마땅히 살아갈 법칙인 것입니다.
즉, 이 하나님의 법을 잊지 말고 그대로 순종해야 이 세상에서도 장수의 축복을 받고 평강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명의 이치입니다. 자연과학자가 자연법칙을 잊어버리면 아무 새로운 기계도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지난주간에 미국에서 쏘아 올린 우주선 제미니 제四호가 여러 날 동안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돌다가, 또 우주 비행사 한 분은 약 二十분 동안 공간에서 산책을 하다가 무사히 이 지구에 안착했습니다.
그 우주선을 만든 과학자들이 자연의 법칙 중 어느 하나라도 잊어버린다고 하면 그 우주선이 지구에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화학자들이 자연의 법칙을 잊어버린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다 그렇습니다. 건축가가 중력의 법칙이나 철강이나 시멘트에서 적용되는 법칙을 잊어버린다면 집을 튼튼하고 옳게 지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의사가 건강의 법칙과 약물의 응용되는 법칙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는 병을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운전기사가 서울 시내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할 때 서울시의 교통 법을 모르고서 어떻게 운전을 바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인간 사회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지으시고 인간이 마땅히 하여야 할 법을 다 주셨는데, 이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이 법을 안다고 해도 잊어버리는 까닭으로 사고를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지난주간에 三十대의 젊은 현직검사가 우이동 산장에서 어떤 여자와 정사를 했는지 독살을 당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죽었습니다. 그런 비참한 일, 그런 인간사고가 어디 있겠어요? 수 십년 공부하고 고시 합격하느라고 갖은 고생을 다하고 인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물론 이 사람이 우리 국가의 법은 많이 연구했기에 고시에 합격했겠지만 하나님의 법은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결국, 그런 최후를 마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면 장수할 수 없습니다.
바로 어제 신문 보셨지요? 절도단원들이 두목을 도끼로 찍어 죽였습니다. 역시 三十대의 젊은이입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하나님의 법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릴 때에 장수할 수 없습니다.
또 여기 보니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평강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우리 마음에도 평강이 있고 우리 가정에도 평화가 있고 우리 사회에도 평화가 있습니다. 바로 어제 신문인가 봅니다. 한국의 재벌 가운데 한 사람이 부자(父子)끼리 송사 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습니다. 부자끼리 송사 하게 되면, 그 가정에 평화는 없습니다. 파산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법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면 그 가정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 가정뿐이 아니고, 온 가정이 다 그렇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의 법을 알아서 하나님의 법대로 생활할 때에 그 가정에 평화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 젊은이들, 특별히 자세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그 법을 지키세요. 교통 법을 지키는 것처럼 그 법을 꼭 지키세요. 그래야 장수의 축복, 아니 영생의 축복도 받고 평강의 축복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잠언 저자가 세 가지 방면에 구체적인 권면을 했습니다.
첫째는 나와 이웃과의 관계, 즉,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둘째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셋째는 나와 재물과의 관계입니다.
(2) 다음은『인자와 진리로 떠나지 않게 하고』라는 말씀을 생각하기로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하여 특별히 여기에 권면 하기를,『인자와 진리가 너를 떠나지 않게 하고, 네 목에 사슬처럼 메고 네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고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인자」란 말은「긍휼」과「자비」란 말입니다. 넓은 의미에서「사랑」이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외로운 이들과 병난 이들과 악한 이들과 죄지은 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인자라고 합니다. 이것이 늘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 이 사회를 살아 나가려면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언제든지 인자함이 내 생활에서 떠나기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진리라고 하는 말은 철학적, 신학적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한 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겸비, 충성, 모든 사람에 대해서 정직하고 진실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를 꼭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더욱이 한국과 같이 무심하고 무정하고 사악이 많은 사회에서, 허위와 가식이 많은 이런 사회에서, 인자와 진실을 떠나지 않게, 언제든지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보면 정의와는 반대입니다. 얼마나 강포(强暴)와 포악(暴惡)이 많습니까? 어린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대신 그들을 잡아가고 유괴합니다. 촌에서 철모르고 올라오는 처녀들을 꾀어서 사창굴에 팔아먹는 세상입니다. 도처에 싸움이 있습니다. 살인 사고가 납니다. 강도 사건이 발생합니다. 끔찍하고 참혹한 사건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많습니까? 이런 사회일수록 인자가 네 생활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 하셨습니다.
이 사회는 얼마나 가짜가 많습니까? 허위가 많습니까? 심지어는 사람의 생명에 관계되는 가짜 약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사이 신문에 메사톤이니 마약이니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을 봅니다. 무슨 홍콩 제니 뭐니 해서 밀수를 해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가 된 오늘날에 있어서도 밀수선은 횡행하는 모양입니다.
이러니 한국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고 다른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그래서 요사이 특별히 비도 안 오는 것 같습니다.
요새 어떤 신문에「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연재 난을 여러분도 보셨을 줄 압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보기 흉한 혹은 미운 한국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사람 가운데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이 특별히 그 인자를 버리고 그 진실을 버리고 남을 속이고 나쁜 짓을 합니다.
그리하여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청년이나 학생들 가운데는 미국에 가서도 인자와 진실을 떠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진실한 사람, 충성된 사람은 어디 가나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모든 사람에게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사무엘이 어떻게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을 입었습니까? 어렸을 적부터 인자와 진실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요셉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을 입었습니까? 어디 가나 인자와 진실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취직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인자와 진실을 구비한 사람을 구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 진실한 일꾼, 진실한 상품은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므로 지식을 얻는 것도 필요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자와 진실이 떠나면 그런 지식, 그런 기술은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것을 배우는 동시에 인자와 진실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목의 사슬처럼 걸고 다녀야 합니다.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3) 다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권면 했습니다.『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리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여호와를 의지한다』고 하는 말은 신약 적으로 표현하면「믿는다」고 하는 말입니다.「믿고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네 적은 명철을 믿지 말라고 하는 말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지혜와 그 사랑을 의지하고 그의 뜻에 순종해서 옳은 길을 걸으로고 하는 말입니다. 천지의 공로를 걸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네 적은 명철을 믿지 말라, 제한된 인가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잔꾀를 부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을 버리고 자기 재주로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대부분이 다 교도소입니다.
여러분,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무엇을 하려다 온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법이 아니고 자기의 방법대로 무엇을 하려던 사람들입니다. 자기 명철로 성공해 보려던 사람들입니다.『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떤 때는 역경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환난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생의 비극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라도 내 이성으로 앞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보십니다. 이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 보기에는 절망적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떤 환난을 당하든지 하나님 안에 섭리가 있고 하나님 안에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꾸준히 싸워 나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진리를 믿고 어떠한 역경을 당하든지 자포자기하거나 그것 때문에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으로 나가는 이는 하나님께서 지도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나갈 곳을 열어 주시겠다고 말했습니다.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태도는 육체의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습니다. 히스테리도 걸리지 않습니다. 왜? 근심과 걱정과 공포심이 깨끗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흔히 건강도 매우 좋습니다. 네 골수를 윤택케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4) 그리고 내 자신과 재물에 대하여 또 권면 하셨습니다. 즉『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살 때에 물질과 완전히 떠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와 물질과의 관계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재물에 대한 태도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여기의 말씀은 네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물론 사랑이시므로 무조건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조건 있는 축복도 있습니다.
요한 복음 十四장 二十三절에 보면 그 때 예수 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우리가 과연 예수 님을 사랑하고 예수 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거처를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더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를 존 귀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 귀히 여기고 나를 경멸하는 자를 내가 멸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뿐 아니라 그대로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존 귀히 여길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존 귀히 여겼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멸시할 때에 하나님께서 또한 그들을 멸하셨습니다. 여기에 너희가 나를 재물로 공경하면 내가 또한 너희를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로 여호와를 경경한다는 뜻은 재물을 얻는 데나, 재물을 쓰는 데나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재물을 얻는 데도 하나님의 뜻을 높이고, 재물을 쓰는 데도 하나님의 뜻을 높인다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고 물질을 얻기 위하여 힘쓸 때에 과연 하나님을 존경합니까? 마약을 섞어서 돈을 모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까? 아니,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밀수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입니까?
반대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재물을 얻는 데에 하나님의 뜻을 존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의 경제인들이 재물을 얻는데 하나님을 공경해서 모든 것을 진실히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면, 이 한국의 경제가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꼭 국산을 우리가 애용해야 우리 한국사람의 살림이 자립할 수 있는데 국산을 만든다고 하는 사람들이 좋지 않은 것만 만든다는 소문이 나니까, 이렇게 한국 경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재물을 쓰는 데 하나님을 공경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요사이 한국에도 재벌이 더러 있습니다. 해방된 이후에 갑자기 재벌 된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까? 공경하는 이가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은 재벌들이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집부터 크게 짓습니다. 그리고 그 둘레에 울타리를 잘 치고 철조망을 두릅니다. 다음으로 안 믿는 이들은 보통 첩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법정에서 본처에게 멱살을 잡혔다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금년이 선교 八十주년의 해이지마는, 맨 처음 미국 북 장로교 선교 부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려 할 때 원두우 목사가 자원해서 나가겠다고 했지마는 선교 부에서는 돈이 없어서 못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돈이 사실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어떤 분이 처음 六000불을 내어서 한국에 선교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물로 하나님을 존경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첫 선교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태국에 선교사 몇 분을 보냈지마는, 그들의 생활비가 없어 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한국에서 그들의 생활비를 책임지겠다고 자원하는 이가 없습니다.
미국에는 각 주에 주립대학이 있지마는 유명한 것은 다 사립대학입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 콜럼비아 등이 다 사립대학입니다. 이 사립대학들이 많은 인재를 양성합니다. 이 사립대학들이 다 자원해서,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이들에 의해서 설립이 되었고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큰 재산을 바친 까닭으로 이렇게 사립대학들이 잘되어 갑니다.
우리 장로교에 속한 작은 사립대학, 몇이 있지마는 아직 재정난으로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원해서 뒷받침해 주는 이가 없습니다. 국민학교도 교실이 없어서 二부 혹은 三부로 공부를 한다고 하지마는 국민교육을 위해서 한국의 재벌들이 교실을 몇 십 개, 몇 백 개 지었다는 소식 아직도 못 들었습니다. 이렇게 서야 우리 한국이 복을 받겠습니까?
제가 작년에도 갔었지만 미국 피츠벅에서 동부지방으로 가면 굉장히 아름다운 예배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예배당은 어떤 분이 지었습니다. 자기 어머니 이름으로 한 분이 지었습니다. 재물을 쓰는 데 하나님을 경경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서양 속담에『돈이 말한다』(money talks)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실 돈이 사람의 마음을 말해 줍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격이 나타납니다.
물론, 이 교훈은 어린 청소년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알 수 있을 만한 종교의 초보적 진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축복을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가 참된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여기 말하는 이상의 축복이 따라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예외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원칙적으로는 여기 말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마십시다. 인자와 진실이 떠나지 않게 하십시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맙시다. 내 재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웁시다.
하나님께 보장받는 생활!
잠 3:1-10 / 신삼철 목사
본문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장받을 세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인도를 필요로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활동해야하므로 건강의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해야 하므로 재물의 공급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뮬러가 어떤 사람에게 무려 500명 이상의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그의 고아원을 보여주자 그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이처럼 힘든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뮬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기 저쪽은 내가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은행이 있습니다.”라고...
“아무 은행도 보이지 않는데요?”하고 거듭 묻자 뮬러가 “저기 문을 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문을 바라보니 문에 “여호와이레”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주께서 준비하신다.”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하신다.”는 뜻입니다.
1. 인도를 보장받는 길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래들이 뭍으로 올라와 집단 자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고래들의 지도자가 병들어 방향 감각을 잃고 해안에 상륙하자 다른 고래들도 따라왔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인간 지도자는 병들어 방향 감각을 상실하여 나라와 민족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 하나님은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잠언 3:6절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6절)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잠언3: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고 말씀했습니다.
▮ “할레스비”의 고향에 신앙 좋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니다. 그 할머니는 그녀의 먼 친척을 찾아가 자신을 맡아달라고 하였지만 아무도 맡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성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맡아달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내 비록 나이는 많지만 결코 여러분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죽음이 아름답게 하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드렸고 주님은 나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죽음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누가 그의 말을 믿겠습니까? 아무도 받아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혼부부가 이 할머니의 간증을 듣고 맘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어머니처럼 할머니를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장담처럼 여생을 평온하게 사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날도 다른 날처럼 찬송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기척이 없어서 젊은 부부가 방에 들어가 보니 주무시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기에 “아무도 나를 맞아 주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나를 믿어 주었고, 내가 믿는 예수를 믿어 주었으며, 나의 신앙과 기도를 믿어 주어서 나와 함께 살아주고 베풀어 준 은혜에 참으로 감사하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뒤에 그가 가졌던 깜짝 놀랄만한 막대한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면서 “당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재산을 가장 잘 관리할 사람들로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이 재물을 써 주십시오.”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보장받는 길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다하여”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전적으로 믿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언제나 최선의 것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며, 맡긴다는 것은 전적인 복종과 신뢰를 뜻하는 것입니다. 나의 단편적인 지식, 나의 제한된 능력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나를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고 지혜로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잠언 3:5절에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5 절)고 말씀했습니다. “명철”은 공사, 진위,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인데 인간의 이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명철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 사상, 감정, 욕망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조명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장 위대한 황제라는 “아우구스투스”는 심한 위궤양으로 평생 고생했습니다. 2차 대전 때 영국 공군의 영웅인 “더글러스 베이더”는 두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끼운 뒤에도 공중전의 최우수 조종사였습니다. 버클리 박사가 신학교 교수로 있을 때, 희랍어에 최고점을 받은 학생은 “장님”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빌립보서 4장13절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신 것은 주목할 말씀입니다. 가치 있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의 근원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네 손에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해온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허락을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이미 확실한 조명이 끝난 것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독자적인 계획을 삼가야 합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잠언3:6절에“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과거, 현재, 미래 전반을 관통하여 당신의 뜻하시는 목적을 성취하십니다.
윌리엄 펜(영국 신앙인:1644~1718)은 “신의 섭리가 없이는 심지어 머리카락 하나도 저절로 빠지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가 함부로 거꾸러지는 일은 결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만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2. 건강을 보장받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정밀한 진찰을 한 후 의사는 그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목숨을 단축시키는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는 목회를 그만두고 편한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를 더 살 수 있느냐는 그가 얼마만큼 안정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의사의 충고를 들은 목사님은 “만일 내가 당신의 충고대로 한다면 얼마를 더 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약 6년”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계속해서 질문하기를 “만일 계속해서 일을 한다면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대답은 “길어야 3년입니다.”였습니다. 목사는 잠깐 동안 생각한 후에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를 “선생님, 나는 6년 동안 앓으면서 사는 것 보다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3년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병원을 나와 열심히 일하면서 12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잠언3:8절에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8 절)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건강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을 뜻하는 것으로 이 조건이 7 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잠언3:7절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기 지혜, 자기 능력을 과신할 때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혜는 불완전하고 그 능력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자기를 의존하는 데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16: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교만은 처음에는 낌새를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불편한 일이 생기면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하며 어떤 사람들은 피하게 되고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주기가 이전 만큼 쉽지 않게 됩니다. 잘못을 지적받으면 “그래, 넌 다 옳고 나는 틀렸어”라고 쏘아붙이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교만의 증상들을 계속 덮어둘 경우 분명한 것은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증상들은 계속 급속도로 늘어나 마침내 방치해두었던 암적인 교만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기에 이릅니다. 걸러내지 않으면 우리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삶이 재미없어 집니다.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잠언3: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악을 떠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겸손한 순종과 충성스러운 복종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자기의 지식 감정, 그리고 모든 욕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인간은 악에서 떠날 수가 있습니다. 심령의 건강은 육체의 건강을 보장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난 사람은 건강하고 정력적이며 언제나 희망에 넘쳐 있게 됩니다.
3. 생활을 보장받는 길이 있습니다.
잠언 3:10절에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입니다. 하나님의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을 이행해야 합니다.
이미 가진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잠언3:9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네 재물”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재물을 뜻하며, 하나님께 대한 공경은 마음으로써만 아니라 물질로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할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고 재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람에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새로 얻는 수입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께 봉헌한다 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머지 모든 것도 하나님께 드림이 됩니다.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그 관리자이며, 충성된 관리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재물을 사용합니다.
끝 맺는 말
보험에도 보장성 보험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보장성 보험은 가입자가 필요로 할 때 책임을 져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할은 보장성 보험입니다. 천국보험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일, 영혼의 일, 현재와 장래의 일, 개인과 가정의 일, 신앙과 교회의 일 등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 보장 받는 생활입니다.
3장: 지혜가 복됨
1-10절, 그리하면
[1-2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본문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한다. 솔로몬의 이 교훈은 성령의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나의 법’과 ‘나의 명령’은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육신의 본성의 죄악성을 따라, 욕심을 따라, 세상의 풍조에 따라 행하기 쉽고 마귀의 시험에 떨어져 범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2절의 ‘그리하면’이라는 원어(키)는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성도가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할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장수(長壽)와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함이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장수(長壽)를 누린다. 장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사람들은 단명(短命)을 재앙이라고 보고 그것을 다 싫어한다. 사람들은 장수를 위해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며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장수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게 한다.
성도는 또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평안을 누린다.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심적 평안뿐 아니라, 육신의 건강과 경제적, 환경적 안정까지 들어 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문안 인사 속에는 이런 포괄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 ‘안녕’의 비결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있다.
[3-4절]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는 선한 마음을 가리킨다. 악은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살인자이다(요 8:4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다. 인자는 실상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이다. ‘진리’(에메스)는 진실, 성실을 가리킨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요 8:44). 본문은 그 덕성들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고 그것들을 우리의 목에 매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자(仁慈)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본문은,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은총’은 호의와 사랑을 가리킨다. 또 ‘귀중히 여김’이라는 원어(세켈 토브 בוֹט ל)는 ‘좋은 이해’라는 뜻으로 ‘좋은 평판과 인정’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사람이 악하고 거짓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물리치시고 사람들도 그를 멀리하고 배척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인자하고 진실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욱 사랑하시고 그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이해와 평판과 인정을 받을 것이다.
[5-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되 반심(半心)으로가 아니고 전심(全心)으로 해야 한다. 반심(半心)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와 명철, 지식과 실력, 건강과 재산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창조자시며 섭리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본문은 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주권적 섭리자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주권적 섭리자로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본문은 ‘범사’에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영적인 일이든지 육적인 일이든지, 개인적 일이든지 단체적 일, 즉 가정의 일이나 교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든지,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실상, 거기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도 나온다.
본문은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혹은 평탄케 하시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지도하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길 앞의 장애물을 피하게 하시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좋은 길, 선한 길, 유익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7-8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본문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적 지혜와 판단이나 처세술로 살지 말아야 한다. 잠언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언 26: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불의와 악을 버리고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 참 지혜이다. 실상 이것이 성경의 요점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또 사람이 참으로 악을 떠나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날 수 있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본문은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양약’이라는 원어(리프우스)는 ‘치료’(BDB, NASB), 혹은 ‘건강’(KJV, NIV)이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이 의와 선을 행하면 건강을 누릴 것이다. 본문은 “네 뼈속까지 윤택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출애굽기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사람의 건강은 단지 영양식을 하고 보약을 먹고 충분한 잠을 자고 규칙적 운동을 함으로써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지으면 건강을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적인 건강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다.
[9-10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원문에는, “네 재물로 또 네 모든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재물, 즉 우리의 돈과 재산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실상 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주신 모든 좋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네 소산물’이라는 원문은 ‘네 모든 소산물’이다. ‘소산물’이라는 원어(테부아)는 ‘소산’(product) 혹은 ‘수입’(income)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득과 수입의 첫열매, 즉 가장 좋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정성으로 구별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바로 그런 것이다.
본문은,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한다. 물질로도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것은 죄 짓는 일이며 그럴 때 궁핍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건축에 무관심하고 자기들의 호화로운 집에 거주하는 것을 정죄하시며 그들의 물질 생활에 어려움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학 1:4-6). 또 그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말 3:8-9). 그러나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길 때,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유여함, 즉 양식의 풍족함과 은행 잔고의 풍성함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에 대해 풍성한 복을 약속하셨다(말 3:10). 또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사르밧 과부는 기근 동안에도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왕상 17:12-1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지키자. 성경말씀을 읽고 듣기를 사모하자. 또 그것이 우리의 몸의 장수와 평안의 길임을 알자.
우리는 인자와 진실을 간직하자.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범사에 진실하자.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과 인정을 받자.
우리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받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것이다. 또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과 병의 치료도 주실 것이다.
또 우리는 정성껏 구별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 생활에 안정과 여유를 주실 것이다.
지혜의 삶
잠 3:1-4 / 찬송가 80, 378장 / 은혜한인연합감리교회
‘소명’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소명은 모든 세속적인 직업이나 노동에 종사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르심이라는 용어를 영어로 vocati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직업이라는 말과도 같은 말입니다.
소명에 대한 의미를 고려해 볼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의 영역으로 불러주셔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에게 봉사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복된 삶인지를 깨달아야 될 줄 믿습니다.
성경 통독에 의해서 요즘 우리가 잠언서를 읽고 있는 줄 압니다. 잠언서에서 잘 알려진 구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1:7; 9:10)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잠언의 주제입니다. 잠언은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성경에 지혜서라고 불려지는 세 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욥기, 잠언, 전도서입니다. 이 책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잠언은 신자의 일상적인 생활과 깊이 연관된 "지혜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지혜는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과 우주를 이해하고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익하고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하여 많은 지혜를 짜내었습니다.
인간이 지혜를 추구하는 목적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하고, 행복을 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얻으려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여 이치를 터득하고, 자연의 힘이나 자원들을 이용하는 지혜를 배웁니다.
그리고 인간을 연구하고 서로 관계를 가지거나 이용하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나라는 자녀들이 우상이 되어 이러한 세상의 교육만 잘 시키면 자신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친 아이들이 성장하여 부모를 버리고 사회에 봉사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생활하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배려할 줄 모르는 되먹지 못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데 잠시잠깐 도움을 줄는지 모르지만 참된 지혜는 아닙니다. 하지만 잠언의 기록특성은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미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이 지혜를 추구하는 목적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안전하게 하고, 행복을 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얻으려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장수하면서 이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 일 때문에 보약을 지어먹거나 몸에 좋다면 심지어 뱀과 개구리, 곰, 오소리 할 것없이 씨를 말리면서 먹는 것이 우리 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얻고 귀중하게 여김을 받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날 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일 때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여러 관계를 가지고 줄서기를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결혼도 이러한 관점에서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언 3:8에서는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몸과 관련한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지만, 다른 말로 요약하면 잘 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인간의 지혜라는 것은 건강, 장수, 출세, 평안, 행복을 얻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 모든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잠언 3:1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이라고 하였고, 3:3에서는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3:5-6에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이라고 하였고, 3:7에서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 지어다. (그리하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잠3:1-2)
솔로몬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3:1-2)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장수하게 하고 평화를 누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에덴동산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 가운데 행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조건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법을 지킴으로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법을 주신 것은 이들의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하나님과 계속적으로 교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사탄의 말을 듣고 법을 어겼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을 주신 것은 우리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는 울타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잠언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을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2) 인자와 진리로 자신의 삶을 단장하라(잠3:3-4)
두 번째로 솔로몬은 잠언 3:3-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솔로몬은 인자와 진리를 떠나지 않게 하고,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자와 진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많이 알려진 헤세드라는 말인데, "불쌍히 여긴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뜻이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인간을 향한 언약적인 사랑과 은총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의미를 함께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진리 역시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언약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의지하겠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뜻은 인간편에 적용하여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고, 믿음에 따라 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어성경(NIV)은 "사랑과 신실함"(love and faithfulness)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번역한 것은 모두 우리 인간 편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자와 진리를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인 의미로 몸에 지니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에 율법주의자들은 이 말씀 그대로 목이나 이마에 성경말씀을 담은 가죽주머니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인자와 진리로 자기의 생활을 단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자와 진리,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자신을 단장해 보십시오. 자신을 비싼 보석과 좋은 옷으로 단장하기보다는 인자와 진리로 자신을 단장하십시오. 그러면 이 말씀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혜를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인정하라(잠3:5-8)
다음으로 솔로몬은 잠언 3:5-8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 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머리나 능력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지혜가 대단한 것처럼 알고 있을 때가 많지만 오히려 할 수 없는 일로 한계에 부딪힐 때가 더 많은 법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할 때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역시 권력을 의지할 때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돈을 의지해 보십시오. 역시 돈이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용히 생각해 보면 자신의 능력이나 돈이나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건강이나 행복은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가장 지혜로우시며, 가장 선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모든 행위 가운데 우리의 판단이나 지혜를 지양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인자와 진리와 자신을 단장하며,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는 일을 잠언서에 반복적으로 말하는 주제로 요약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야레이라는 말인데, 두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을 여호와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두려워하는 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두려움과 사랑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본문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구체적인 표현들이 몇 가지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며, 인자와 진리로 자신을 단장하는 것이며,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악에서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참된 지혜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지혜보다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의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복된 삶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내 아들아 그리하면
잠 3:1-10 / 지성래 목사
미국의 현직 44대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책 한 권을 집필해 출간하였다. 지난해인 2010년 11월에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14개 나라에서 저작권을 확보하여 판매에 들어갔다. 우리말로는 <아빠는 너희를 응원 한단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 원 제목은 두 딸에게 쓰는 책의 형식으로 “of THEE I SING A Letter to My Daughters”라고 되어 있다. 대통령의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책을 쓰는 대통령, 책을 읽어 주는 대통령이란 별명이 따라다니는 그는 이 책을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2008년 대선 기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2009년당선 직전까지 집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에게는 아내인 미셸과의 사이에 말리아와 사샤라는 이름의 두 딸이 있다. 버락 오바마는 케냐 출신 유학생이었던 아버지와 캔사스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하와이에서 1961년에 태어났다. 얼마 후에 아버지가 아내와 아들을 하와이에 남겨 둔 채로 미국 본토로 유학을 계속하기 위하여 따나간 후로 아버지를 다시 만나 볼 기회가 없이 성장해야만 했다. 나중에 엄마가 인도네시아 출신의 아버지와 재혼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성장기를 보내기도 하였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손길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자기 자신의 평탄치 않았던 성장기를 뒤로 하고 성공적인 지도자의 길을 가면서 두 딸과 세상의 어린이들을 향해서 쓴 그 책에서 13명의 각 분야의 지도자와 인물들의 삶을 정리한 13가지의 중요한 삶의 덕목들을 제시한다.
- Creative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 낸 미국의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
- Smart 반짝이는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Brave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흑인 최초의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
- Healer 상처 받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 준 인디언 부족의 지도자
시팅 불
- Own song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천재 흑인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
- Strong 장애라는 아픔을 꿋꿋하게 견뎌 낸 사회사업가이자 작가
헬렌 켈러
- Honor 존경하는 마음을 예술로 표현한 예술가 마야 린
- Kind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평화주의자 제인 애덤스
- Don’t give up 포기를 모르는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준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 Explorer 달에 처음으로 도착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 Inspiring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킨 노동 운동가 세자르 차베스
- Family 국민을 가족처럼 소중하게 생각한 제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 Proud 자랑스러운 나라를 세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이 책의 번역자인 고승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고시 삼관왕(사법시험 최연소, 행정고시 수석, 외무고시 차석)이 되었고, 수석으로 법대를 졸업했다. 미국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원지방법원 판, 이화여자 대학교 겸임 교수, 펀드매니저를 역임했다. 현재 국회의원이자 재단법인 드림파머스의 대표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꿈’에 대한 강연을 활발하게 펼치면서, ‘꿈’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물론 누구나 다 1등이 될 수는 없다. 누구나 다 최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일찍이 꿈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죄다. 사람은 어린이든 청소년이든 청년이든 심지어는 나이 많은 어른일지라도 꿈을 포기해선 안 된다. 꿈은 평생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 가고 지탱해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부모들은 아들딸들에게 “열심히 공부해라. 경쟁에서 이겨라. 좋은 학교에 진학해라. 열심히 해라. 더 열심히 해라.”하고 채근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 답게 성장해 가기 위해서 인생관과 가치관과 물질관과 가정관과 이성관과 결혼관과 역사관과 세계관과 신앙관을 바르게 갖는 것은 그 무엇보다 시급하고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인간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복음을 아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청년기를 살아가고 장년기를 맞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우선순위가 뒤 바뀌고 나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신앙의 태도와 그 약속된 축복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지키라.
그리하면 장수와 평강의 복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장수와 평강한 삶이 복이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인 법과 명령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지켜 행하는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강조이다. 이것이 소중한 것이다. 공부해라. 공부해라도 필요하고 중요하고 잘 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 나가고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 것 모든 부모들의 간절한 소원이지만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지켜 행할 줄 아는 말씀의 인격체로 양육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가정과 교회에서 이런 성경적인 가치관이 어려서부터 반듯하게 잘 심기어 지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잠언 1장과 2장의 마무리 강조가 3장의 서두다. 잠언 2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계명을 간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의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명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면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하는지, 왜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 법과 명령을 잘 기억하고 지켜 행하며 살아갈 때에 응답과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장수의 복이며 평강의 복이란 말씀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큰 복중의 하나라고 믿어 왔다. 사실 이런 신앙과 기대는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수가 왜 복인가. 가령 우리나라 조선시대 임금 27명 중에서 환갑을 넘긴 임금은 태조와 2대 임금인 정종, 그리고 15대인 광해군, 21대 영조, 26대 고종 다섯 임금 뿐이다. 17살에 비운에 죽은 단종은 말고라도 전체 27명의 평균 수명이 46살이었다. 저들 임금에게도 고혈압, 당뇨, 심장마비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팔도의 산해진미를 먹는 기름진 음식과 운동 부족과 방탕한 생활이 수명 단축의 주요한 원인들이었다. 왕족을 번창 하게 하려는 부담을 가졌던 임금들 중에 태종은 정비와 후궁 9명과의 사이에서 12남 17녀를 낳았고 세종은 정비와 후궁 5명과의 사이에 18남 7녀를 낳았다. 그리고 성종은 정비 3명과 후궁 9명 사이에서 16남 12녀를 낳았다. 게다가 과중한 업무의 스트레스가 수명 단축의 요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밤중까지 임금이 판단하고 결정하고 명령하고 지시해야 할 사항들이 하도 많아서 역사적으로는 임금의 업무를 ‘만기’라고까지 했다. 이 같은 조선시대 임금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영조 임금이다. 영조는 52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83세에 승하하였다. 그는 왕위에 있는 내내 몇 가지 원칙을 지켰다. 하나는 검소 검약이다. 자주 사치 금지령을 내리고 자신은 비단옷을 입지 않고 무명옷으로 일관하였다. 음식은 5첩으로 간소하게 적게 먹으며 대신 하루 다섯 번을 먹었다. 그리고 철저할 만큼 예절을 지켰다. 업무는 될 수 있는 대로 분산하여 책임 맡아 하도록 하였다. 열왕기상 3장 14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며 살면 장수와 더불어 또한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했다. 여기서 말씀하는 평강의 바로 ‘솰롬’이다. 이는 단순한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내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의 복을 말한다. 시편 119편 165절에 보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리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했다.
주의 인자(仁慈)와 진리(眞理)를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주의 인자와 진리가 왜 이리도 소중한 것인가. 인자(仁慈)란 측은히 여기고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다. 이 인자라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인간을 향한 끝없는 언약과 사랑과 은총을 말씀한다. 반대로 인간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향한 경건함을 뜻한다. 또한 인간 간의 관계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이웃 사랑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자’라 함은 다양한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진리’(眞理)라는 것도 그러하다. 진리란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말씀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신 인자와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약속의 말씀인가.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자자손손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자손들이 되도록 기도 하고 또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금번에 강영우 박사의 <원동력>이란 제목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 교육학자답게 7가지를 강조했다. “자신감과 자존감, 선명한 비전과 목표, 긍정적인 마음, 컴패션(Compassion), 소통의 능력,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 창의력과 집중력”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상의 이런 일곱 가지 요소들을 동력 있게 하는 강력한 힘의 공급원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즉 인자와 진리를 마음 판에 새기는 그와 같은 신앙의 노력은 점점 건강지수, 성공지수, 심력지수와 상관관계가 깊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 만큼 아들딸과 함께 대화하고 시간을 갖고 더불어 같이 예배도 드리고 함께 소통하는 노력을 계속해 가야만 한다. 그래야 소위 믿음 생활의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강영우 박사는 자신이 비록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이이지만 그 같은 성경적인 교육 원리가 자신의 두 아들들을 미국 주류 사회의 뛰어난 인물들로 키워 낼 수 있었노라고 간증한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信賴)하고 범사(凡事)에 그를 인정(認定)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 가정들 중에 어머니는 늘 가슴 졸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살아가는데 아들딸은 전혀 어머니나 아버지의 신앙기대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아들딸 사위 며느리가 의외로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매사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 훈련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잘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 명철을 의지 하지 않는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지도해 주시는 매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높은 산에 오르고 되돌아오기까지 그리고 먼 바다에 다녀서 되 돌아와서 항구에 도착하기 까지 그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의 손길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의 쓰나미와 더불어 원전의 방사능 유출과 관련하여 정부적으로 나서도 쉽게 해결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인정하는 겸손함이 각 분야마다 각 사람마다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지도하시는 손길을 매 순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스스로 악(惡)에서 떠나라.
그리하면 몸에 양약에 되고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가. 그래야 복이 임하게 된다. 그래야 몸에 양약이 되고 골수라도 윤택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자 구구 그대로 믿어라. 그래야 복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함부로 자기 지식이나 자기 지혜를 자랑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외하는 근본을 지켜 나가라. 그래야 한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지 말고 악을 떠나는 경건함을 지켜 나가야 한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것이 기본이다. 이 같은 신앙의 원리를 잘 지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 복되고 부모 자녀 모든 인생이 복되게 되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15%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3% 정도의 유대인들이 미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다. 교육, 의학, 과학, 미술, 음악, 예술, 영화, 군사, 금융, 경제, 정치, 사회 등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유대인을 빼고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도전이 되지 않나. 우리나라는 말 많고 탈 많은 그 평화 상 수상자 한 사람 뿐이다.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가 우리 민족이 그런 인물을 키워내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될 수는 없을까. 물론 무슨 노벨상이 역사와 인물을 평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교훈과 도전은 되지 않는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인생과 가정으로 살아가자.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친근히 하자. 삼 사 대 만에 반드시 큰 역사와 증거를 보게 될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책을 쓴 이는 대니엘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이다. 그는 런던에 있는 푸줏간 아들로 태어났다. 메리아스 장사도 하고 벽돌공으로 벽돌을 굽는 생활도 했다. 나중에 세무 관리가 되어 근무한 적도 있었으나 어느 것 하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런 그가 글을 쓰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40대에 활발한 언론이 되기 시작하였다. 매주 두 세 편의 생활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Review'라는 잡지에 그의 글이 실리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그가 59살 때에 완성한 것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시골 집 사랑방에서 겨울 방학 때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단순히 무인도에 표류된 주인공이 28년간의 긴긴 무인도 생활 중에 살아남은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의 내용을 보면 지은이인 대니엘 디포의 사상과 하나님 신앙이 들어 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늘나라에 이르는 확실한 안내자이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이를 가르치고 깨우치며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신다.” 소설의 주인공은 무인도에 조난당한 배 안에서 성경책을 발견하고 그 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늘 가까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간다. 그의 조난당한 배 안에는 먹을거리, 무기, 옷, 개와 고양이도 있었다. 그는 무인도에서 밭을 일구었고 산양도 키웠고 농사하여 곡식을 보관하며 자급자족하며 28년을 연명해 나갔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 생활이지만 하루 일과 원칙이 있었다.
첫째,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다.(신앙 우선순위)
둘째, 비가 오지 않는 날은 하루 세 시간씩 사냥을 나간다.(근면한 삶)
셋째, 잡아 온 짐승은 잘 요리하고 보관한다.(노동의 가치)
대니엘 디포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우리가 처하게 되는 온갖 경우에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를 정당하게 높이기 위하여 이 책을 쓴다."고 했다. 그냥 단순하게 항해 중에 무인도에 표류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영국 사회를 향한 청교도적인 신앙관과 생활관을 말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어느 시대나 이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아니하며 악에서 떠나면 그 하루하루의 삶을 강건하고 복되게 하실 것이다.
재물과 소득의 귀한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恭敬)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성경적인 경제관을 가르친 말씀이다. 어떤 재물이든 어떤 소산물이든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 공경을 표현하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러하다. 아들딸이 좋은 것 있으면 부모님께 드려서 공경을 표현하고 싶은 것처럼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고 살면 하나님이 창고에 복을 주시고 포도즙 틀에 복을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첫 열매와 십일조와 절기 예물을 비롯한 예물 헌신과 섬김 생활의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그에 상응하는 축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시다. 하나님을 잘 섬긴 나라와 가정과 인생들을 보라. 하나님을 잘 믿는 그 누구나 그런 복이 임하는 인생과 가정을 이루길 소망한다.
겸손한 지혜
잠언 3장 1-10절
만일 지금 우리 삶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아쉽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어 아쉽다고 대답합니다. 내 삶에 돈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탠데 돈이 없어 그렇지 못한다고 아쉬워합니다. 사람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잠언을 기록한 솔로몬은 인간이 정작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요소는 다른 데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물이 아니라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이처럼 지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혜의 유익은 무엇이며, 어떻게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사는 사람에게 복이 임합니다.
첫째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살아가는 지혜자에게 복이 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나의 법을 잊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법’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율법’을 뜻하는 ‘토라’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주는 교훈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잠언을 살펴보면 솔로몬은 자신이 전해주려는 지혜와 하나님의 법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가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와 자세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은 단순히 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냉대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말씀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지난 2017년 미국의 ‘라이프웨이’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왜 성경을 읽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높은 이유가 35%로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읽지 않는다가 나왔습니다. 성경을 왜 안 읽느냐고요?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그냥 읽고 싶지 않아서 읽지 않는다는 거에요. 두 번째 이유로, 27%가 ‘성경 읽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에’라고 대답했습니다. 셋째로 15%가 시간이 없어서 읽지 않는다고 했고, 넷째로, 13%가 이미 충분히 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읽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작년 2020년도 7월 코로나가 한참 진행 중일 때 American Bible Society가 발표한 the State of the Bible 2020 report를 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성경 보는 비율이 오히려 더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 가지 앞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더 신빙성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보지 않는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동안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성경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성경을 못 본다는 것이 통계적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솔로몬의 권면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또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솔로몬은 다시 한번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버리지 말고, 것을 목에 걸고 다니며, 마음 속 깊이 새겨두어라!” ‘인자’란 하나님의 사랑을, ‘진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버리지 말고, 마치 귀한 장신구처럼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 ‘목걸이’를 보면 아름답고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르와젤이란 여인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녀는 귀한 파티에 초대받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난한 신분을 늘 부끄러워했습니다. 비록 단 하룻밤의 파티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난을 숨기기 위해서 남편의 비상금을 털어 좋은 옷을 삽니다. 친한 친구에게 찾아가 파티에 차고 갈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렸습니다. 드디어 기쁜 마음으로 파티에 참석한 르와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만 친구가 빌려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후 부부는 전 재산을 팔아 잃어버린 목걸이와 똑 같은 것을 사서 친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남은 목걸이 값을 벌기 위해 더욱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르와젤은 그로 인해 고된 육체 노동과 극한 스트레스로 심신이 늘 피곤하여 늙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목걸이를 빌려준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르와젤의 변해버린 용모를 보고 깜짝 놀라 영문을 묻는 친구에게 르와젤은 그 잃어버린 목걸이 때문에 겪은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는 안타까워하며 그 날밤 자신이 빌려준 목걸이는 가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소설 ‘목걸이’의 작가 모파상은 허영심과 욕망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 르와젤이란 한 여인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거짓됨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목걸이를 차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르와젤과 같이 우리들도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허영심의 목걸이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그것 때문에 스스로 고통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위해서 늘 대가를 지불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것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의 목걸이, 교만의 목걸이는 결국 다 가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처럼 하나의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거짓 가치들을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삶을 허비한다면 그 만큼 불쌍한 삶도 없습니다.
솔로몬 왕은 우리가 ‘인자’와 ‘진리’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매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목걸이를 맨다는 것은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을 늘 우리 마음 속에 소중하게 모시고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3절 후반절을 보면 마음 속 깊이 새겨두라고 다시 한번 반복해서 권면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께서 이 자리에 백 만불자리 목걸이를 차고 앉아 있다고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시시 때때로 손이 목에 갈 것입니다. 목걸이가 잘 있나 보기 위해 두 눈이 주기적으로 향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기를 값비싼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잇는 것처럼 소중하게 대하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계속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금은보화보다도 진주와 그 어떤 세상 보물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말씀을 ‘목에 매고 마음에 새기라’고 한 이유는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귀중한 장신구를 목에 걸고 다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한 시라도 잊지 말고 말씀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자, 그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2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 복을 주십니다. 첫째로 장수의 복을, 둘째로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래 살고 마음 편히 사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풍성한 날들이 오래토록 이어지는 삶, 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복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신앙의 중심을 지키는 자들이 누렸던 축복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시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우리를 지켜준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돌봐 주십니다. 그 결과 그의 인생은 적과 원수들로부터 보호받고, 재앙과 삶의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솔로몬 입장에서 보면, 이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말씀 중심대로 살아가는 자가 받는 복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욕 중에 “쓸모없는 사람아!”하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내 자신이 아무런 쓸 데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그 말은 내가 지금 당장 세상에서 사라지고 먼지처럼 되도 나쁠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나의 존재 가치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사람아’란 말이 우리 귀에 매우 기분 나쁘게 들리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한 사람을 가리켜 쓸모 없다고 평가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를 배반하는 그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주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이 쓸모 없는 인생이 되는 것만큼 큰 저주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가치가 있는 삶입니까?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 그 말씀을 삶의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께 호의를 받고, 사람들에게도 존귀한 삶이라고 평가받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말은 단순히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일상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혹시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나누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과 일상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합니다. 말씀이 생활화가 되어야 하고, 신앙이 일상화가 되어야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이 삶의 현장 속에서 꽃 피어나야 합니다. 그 시작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백만불자리 목걸이를 잃어버린 사람을 떠올려보십시오. 오늘 밤 한 숨도 자지 않고 다음 날 해가 밝아올 때까지 밤새도록 집안 곳곳을 찾아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목걸이가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목걸이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에이 귀찮아. 피곤하다. 그냥 내일 찾아보자.”하고 넘겨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내일이 되어도 또 반짝이는 세상의 유혹의 목걸이에 정신이 팔려 말씀의 목걸이는 또 다시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날마다 일상의 현장 속에서도 말씀의 목걸이를 차고 살아가십시오. 말씀이 일상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2.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길을 지도하며 인도하시는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길을 지도하며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다 인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갑니까? 오늘 본문 5절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6절 말씀처럼 범사에 즉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셔서 그들이 복된 길로 걸어가도록 친히 지도해 주십니다.
잠언을 통해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신뢰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할 것을 주문합니다. 사람은 신뢰할 대상이 아닙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이 됩니다. 특히 솔로몬은 우리가 가진 지혜, 경험, 견문, 기술, 지식 이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여기서 솔로몬이 말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을 배제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식도, 지혜도, 경험도, 견문도, 기술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인간의 지식과 지혜, 아무리 풍부한 경험과 연륜일지라도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질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여 삶을 이끌어 나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도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쓰신 책 ‘내려놓음’은 다 아실 것입니다. 책에 한 문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이 내려놓으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그냥 ‘내려놓음’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내려놓음’입니다. “너는 내려놓으라! 내가 채워주리라!”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드리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한 채 자꾸만 내 짱꾸만 굴려보고, 내 계산기만 두들겨 보고, 내 지혜와 경험으로만 살아가려고 하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중에 홍해를 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중에 300명의 병사로 수십만명의 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지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지혜로는 우리 개인의 삶의 문제들도 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은 우리가 가진 지혜, 노하우, 삶의 주도권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주문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의 인도하심이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주도권과 결정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을 살피며 우리의 모든 일상 속 상황과 환경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마음 다해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인도’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보다 내 마음의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악’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할 수는 없다. 교만 자체가 악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도 내 경험과 명철만을 의지하여 해결하려 하는 교만한 삶의 영역이 있지는 않습니까? 내 진로의 문제, 가정의 경제적 상황, 자녀들의 문제 등등 사실 생각할 것이 많은 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경하는 자에게 복이 임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 다양한 복이 찾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은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을 나누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때 따라오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는 우리 몸에 보약이 되어, 상처가 낫게 하고 아픔이 사라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모든 뼈가 윤택하게 되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특별히 솔로몬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되, 마음만으로 하지 말고 물질적 헌신을 통해 그 마음을 고백하라고 권면합니다. 9절을 보면 우리의 재물과 소산물의 첫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쳣 열매’는 땅에서 나는 모든 곡식 중 최고와 최상의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내 모든 소유와 소산의 궁극적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내가 가진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자 응답입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물질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물질적 축복을 주실것이라고 선포합니다. 10절을 보면 그 사람의 창고가 가득 차고, 포도주 통에 포도주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다시 주실 것입니다.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최상의 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악에서 떠나는 것만 아니라, 소산의 첫 열매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요한 표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의 모든 삶을 의탁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하게 체워주시고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이다. 마땅히 주닝믜 것을 주님의 것이라고 인정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더 넘치는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와 일상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경건의 보상은 우리 삶에 놀라운 치유를 가져줍니다. 또한 우리 마음 속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케 하여 참된 만족과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일상 속에서 순간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참된 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