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고 왔습니다.
1.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전에 시간이 나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마침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로 2000원이 할인되더군요. 보통은 조조는 행사에서 제외되는데, 이번에는 조조도 포함되서 4000원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블랙프라이데이라는게 별로 실효성이 없어보이는데, 덕분에 저는 쏠쏠한 혜택을 받았네요.
아이맥스, 3D도 좀 포함시켜주지...
2.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합니다. 한창 영화를 좋아할 때도 다 챙겨보진 못했습니다.
지방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기에는 접근성이 많이 떨어졌고, 초기 작품들은 워낙 냉소적이고 거칠어서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홍상수의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어렸었구요.
나이가 들어서도 삶이 팍팍한 탓에 영화에서 재미와 위안을 찾으려는 성향이 있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쉽게 선택하지는 못했습니다.
3.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초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과 달리 재미있어졌습니다.
유머와 위트가 가미됐고, 그 때문에 초기작들처럼 불편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그 변화를 느끼고 재미있고 편하게 본 영화가 ‘하하하’였습니다. ‘하하하’를 보고 나서 이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그럼에도 ‘하하하’ 이후의 작품들을 꼬박꼬박 챙겨본 건 아닙니다. 상영관이 원체 적으니 잠깐 타이밍이 안 맞으면 놓쳐버리게 됩니다.
DVD나 다운을 받아 보면 되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영화관이 아닌 집안 거실에서 보게 되면 재미를 느끼지 못할까봐 선뜻 그러질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온전한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5.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저에게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가장 일상의 풍경을 담고 있고, 주변에 널리고 널린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판타지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다른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와 연출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영화적’인 영화들로 넘쳐나다 보니 ‘덜 영화적’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더 판타지스럽게 느껴지나 봅니다.
6.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봅니다. 저에게는 여느 서스펜스 영화 못지않습니다.
굉장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고 별 거 없어보이는 인물들이지만, 저들의 대화가 시작되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아주 조마조마 합니다.
실제로 큰 갈등과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솔직하면서도 의뭉스러운 말과 행동은 서로의 마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균열은 더 벌어지지만 결국은 제대로 봉합되지 않습니다. 여느 영화들처럼 갈등이 해결되고 관계를 회복하거나 아예 파멸로 가버리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균열과 인간 관계는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속 상황과 인물의 심리가 내가 겪었던 어떤 심적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뭔가 들켜버린 듯 한 느낌? 그래서 더 조마조마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7. 배우들의 연기는 좋습니다. 정재영은 요즘 전환점을 맞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과는 달리 정재영의 연기가 ‘뻔하다’는 평가가 있던데, TV드라마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저는 정재영이 아주 좋은 연기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가 세간의 평가보다 더욱 섬세한 연기자임을 잘 보여주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매우 ‘홍상수스러운’ 상반신 누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8. 김민희는 점점 믿고 보는 여배우가 되어가고 있네요. 예전에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김민희가 이렇게 신뢰감 있는 배우가 될지.
‘화차’의 강렬한 연기를 보고 ‘얘, 뭐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니, ‘연애의 온도’에서는 ‘얘, 이제 연기자 다 됐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유의 예민한 모습에 섬세한 감정변화가 담긴 표정과 연기를 보여줍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도 패션과 외모는 빛을 발하네요. 별거 아닌(?) 옷들을 입었는데, 옷걸이는 어디 안가나 봅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변하는 순간이 두 번 있었습니다.
당연히 김민희의 장면이었고, 하나는 귓속말하는 장면, 다른 하나는 ‘다음엔 입에다 해줄게요’ *^^*


9. 그런데 이 영화가 왜 청소년 관람불가인지 모르겠네요. 괜히 기대하게...;;
초기작들처럼 직접적인 성적 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는 해도 청소년이 아예 볼 수 없도록 하는 건 이해가 안갑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더 그렇네요.
10. 표를 끊고 상영관을 들어가니 역시나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평일 조조이다보니 더욱 그랬겠지요.
제 자리를 찾아가는데 바로 옆자리에 젊은 여자 분이 앉아있었습니다. 제가 예매할 땐 옆자리가 비어있었는데, 자리를 이동해 온 건지...
잠깐 고민했습니다. 내 자리니까 내 자리에 앉아야 되는 건지, 그런데 그 옆으로 모두 빈 자리인데, 바로 옆자리에 앉는 것도 이상한 것 같고.
내 자리이지만, 그 자리에 앉는 순간 뭔가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앉았는데 그 여자분이 자리를 옮기면 무안할 것 같기고 하고.
그냥 그 한 칸을 비워두고 앉았습니다^^; 여러분이 저라도 그렇게 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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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더욱 기대되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홍감독 영화는 패턴이 비슷하게 그려져서 그럭저럭이었는데, 글 읽고 있으니.. 보고싶어지네요.
1, 2부로 나누어진 구성이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이 킥킥대며 본 영홥니다. :) 두 사람의 스시집 대화 장면은 좋더군요.
정재영이 완전 속보이죠ㅎ 근데 그게 통한다는게 신기합니다^^
보고싶은 영화네요^^
볼 만한 영화입니다^^
ㅎㅎ보고싶었던 영화인데 ^^
많이 힘빼고 만들었나봐요 감독님이 ㅎㅎ
언젠가부터 힘은 많이 빼신 것 같아요ㅎㅎ
10번에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묘하게 오버랩되네요 ^^
그러게요. 저도 그 생각했네요^^;
홍상수 영화들은 집중되는곳에서 봐야 좋더군요.
힘들지만(?) 극장용입니다.
오히려 이런 유형의 영화가 더 극장용인 것 같아요
한국적이면서 한국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면서 초현실적이고 영화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누구보다 영화적이고 얼핏 촌스럽고 단순하지만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형식적이고 자유로우면서 강박적이며 절대 맞추지 못 할 퍼즐처럼 복잡하죠...이게 무슨 말이야...ㅋ 이젠 영화 감독이라기보단 영화 신선 수준인데 초기작 몇편 제외하면 그때그때 언제 어떤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영화가 다양한 얼굴로 바뀌는게 좋아요. 그리고 한국영화 역사상 한글 제목을 기가막히게 짓는 건 원탑....ㅎㅎ 말씀하신대로 이번 작품에서 김민희가 매력 쩔더라구요. 영화내내 막 반짝거리는데 그냥 쳐다보기만 하는데도 환상적이였다는..
제목도 잘 짓는데다가 이번에는 띄어쓰기까지 안하셨더군요. 본인은 칸이 모자랐다고는 하지만 이걸 누가 곧이곧대로 믿을까요ㅎ 김민희는 출연 작품 중에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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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 뽑으시죠^^
나이가 들었다(혹은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지점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홍상수감독 영화를 찾아보는 제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류(?)의 영화를 도대체 왜 보는지, 평론가들이 별 꽉 꽉 채워 추천하는게 다수 대중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허례인줄 알았었는데, 시간 지나 다시 찾아 보니 재밌어요. 술마시고 대화한 후 만나고, 헤어지며 적당히 찌질대고 이런 모습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우리 얘기같기도 하여 뜨끔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이 영화도 찾아보고 싶은데 여느 영화처럼 하루에 열번도 넘게 하지는 않네요. 찾아 보기 힘들어요. 그냥 핸드폰 보며 티비로 보면 집중이 안되는 영화인데..
서울이면 그나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지역은 힘들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비슷한 것 같지만, 보고 있으면 또 다르더라구요. 평론가들도 이번 작품에 대해선 기존 작품과 다른 의미를 두는 것 같던데 찾아보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풀코트프레스 영화 내리기 전에 찾아 봐야겠어요. 극장에서 못보면 12시 지난 늦은 밤 혼자 조용히 보는 맛도 좋더라고요. 추천 감사해요!
@좋은날에 그리구 추천해주신 인턴도 흐뭇하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좋은날에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말씀처럼 흐뭇한 영화입니다^^
역시나 좋은 후기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그리구 10번 같은 상황이면~ 잘못하신 거에요 ㅋㅋㅋ 물어본 후 영화 끝나고 또 얘기해야죠. 그리구 조그만 선술집에서 술한잔! 대화 길게! 적당히 껄떡껄떡, 치근치근^^
홍감독 영화를 혼자 보러 온 여자라면, 홍감독 영화 스토리같은.. 우연을 가정한 만남이 어쩜 통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영화관에 만난 남자와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하며 영화 얘기하는 그런...?
이래서 제가 ASKY인가요?^^;
@▶◀이탈리아나. 홍감독의 남자들같은 뻔뻔함과 말주변이 없어놔서...ㅎㅎ
저도 어제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봤어요. 김민희 진짜 최고!! 김민희를 보면 연기도 노력하면 정말 잘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김태희, 이연희와 비교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들고요.
정재영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표정과 상영관에서 정재영과 작별을 나누던 때의 손동작과 그 후의 표정은 잊혀지지 않더군요.
좋은글 잘 봤습니다.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
저역시 홍상수 감독 초창기의 불편함 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더 좋더라고요. 김민희의 연기 과하지 않은 적당한 웃음코드등 이번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10번은...거기서 영화에 나오는 대사 '커피 한잔 안하실래요?' 한마디만 했으면 바로 홍상수 영화 주인공이 되는 건데 아쉽습니다 ㅋ
그분이 바나나 우유만 먹고 있었어도...^^
상수횽님 영화는
영화 볼땐 내 일상(과거든 현재든)이 생각나서 계속 큭큭거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영화가 계속 떠올라서 피식하죠
상영관 여기저기서 큭큭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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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추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