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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아침8시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뇌 수술을 받았습니다
뇌수막종인데 종양이 7-8센티. 너무 커서 하반신쪽 관할하는 부분에 밀착되어
수술하다 자칫하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고
그리고 파킨슨 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수술이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출혈도 많이 나서 수헐도 받아야 한다고
수술 시간은 6시간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술 일정을 빨리 잡고 첫 타임 첫 번째로 수술일정을 잡아 아침 8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 대기실에서 10개의 침대가 나란히 대기하고 있다가 일제히 수술실로 한 개씩 들어갔습니다
서늘한 수술실에 누워 곧 수술이 시작된다 하는 데 그 무렵은 파킨슨 증세가 더 심해져 무섭지도 않고 떨리지도 않더군요
8시 시작한 수술이 오후 2시 넘어서 끝나고
수술이 잘 돼 종양은 완벽히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크게 열었다 닫았는데 전~혀 통증이 없더군요.
아플까 긴장했던 실밥 뽑을 때 까지도..
아프지 않은게 참 신기했습니다.
그것도 종양이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감각이 마비된거죠
수술받고 일주일 만에 퇴원
신정 때 부터 와있던 저보다 3살 어린 여동생네로 왔습니다
굉장히 위급한 상황이라
분당서울대병원 엠알아이병동에서 12월 17일 첫 진찰
28일 엠알아이 검사. 바로 뇌수술 실력자 김재용 교수님팀으로 넘겨져
1월 15일 아침 첫타임 첫번째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잘 받고 초급속 회복을 하고
일주일 만에 퇴원해서 동생집에서 지내는데
11일째 되는 날 아침 자고 일어나 앉았더니 바닥에 닿는 엉덩이부분이 아프더군요.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었나봐요.
마비 되었던 감각이 돌아온겁니다.
수술 부위의 느껴지는 감각은 얼얼한 정도의 감각만 느껴진겁니다
작년 말
파킨슨 증세가 심했습니다.
두 달 여를 우울증이 심해 침대에 누워 불도 켜지 않고 거의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냈습니다.
저를 참 잘 챙기는 아는 동생이 전화를 자주 해주었는데 전화가 오면 어버버 거리면서 무슨 말을 하려다 잊고,
현관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아 에러 내서 한참을 기다렸다 조카에게 번호를 물어서 들어가기도 했고
누군가 불러내면
1시간이면 갈 거리를 2-3시간 걸려서 돌아돌아 가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오이도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버스도 잘 안다니는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는 또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데릴러 와달라해서 만난 적도 있었구요
칫솔질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에 치약을 짜서 소금으로 이 닦듯 닦기도 했습니다
미금역 근처의 분당 서울대병원에 혼자 찾아가서 접수 했는데 전에 미금역 근처에서 많이 놀았거든요 평소 다음지도로 검색해 잘 다녔는데 병원에 접수하러 갈 때는 산넘고 물건너 이상한 곳으로 돌아서 병원엘 간거에요 . 병원에 가서는 어떻게 접수해야할지 몰라 병원을 돌아다니다 엠알아이 병동을 보고는 소견서 받으러 동네 병원 갔더니 엠알아이 찍자던 생각은 나길래 엠알아이 병동으로 접수해서 진찰 일정을 받았습니다. 접수만 혼자 가서 하고 진찰 받을 때 부터는 3살 어린 여동생과 같이 병원에 갔습니다. 모임의 언니들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제가 파킨슨이란걸 알아채신거에요 그 언니가 분당서울대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동두천 사는 언니는 집으로 오라해서 맛있는 음식 사주시면서 병원 빨리가라고 야단치듯 전화해주시고 그 모임의 친구는 삼성생명 컨설턴트 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보험 설계사 자격증 교육을 받으라더군요. 불러내서 점심 한끼라도 먹이려고 한거였습니다. 며칠 교육 받으며 점심은 잘얻어 먹었죠.
시험 보기전 점수가 너무 형편 없어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동생번호를 물었는데 제가 못알려 주었나 봅니다. 제 집으로 와서 제폰 달라하여 동생번호 찾아 동생에게 연락해준거죠.
아들이 일본아이와 결혼해서 일본 오이타에 사는데 10월에 딸을 낳았습니다.
손녀를 보러 가려는데
평소 여행을 많이 다녀 저렴한 티켓을 잘 찾는 편이고
아이폰으로 구글지도와 다음지도 사용을 잘 해서 혼자 잘 찾아 다니는 편이었는데
그 즈음의 저에게 아이폰은 카톡과 통화만 하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공사로 전화 해서 제 값 다 주고 예약을 하고는 캐리어 하나 끌고 공항 철도 타고 가는데 제가 많이 약해지고 움직임이 많이 느려진거에요.
홍대역에서 들어오는 인천공항 행 철도를 타야 하는데.. 그 공항철도 놓치면 비행기 놓치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강단 있던 제가 많이 약해진거죠.
가방이 너무 무겁고 행동이 느려 그 전철을 타지 못해 후쿠오카 가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비행기를 놓치고도 속상하거나 아까운 생각도 나지 않더군요. 평소 우등도 안타고 일반버스만 탔거든요. 많이 아끼는 편입니다.
캐리어를 끌고 나가보니 바퀴가 고장 났는데
몸이 많이 약해져서 바퀴가 망가진 캐리어를 들지를 못했던거죠.
인천공항에 가서 티웨이 부스에 갔더니 몇시간 후 오이타 가는 비행기가 있다더군요.
(아들 사는 곳이 오이타인데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져
전에 갔던대로 후쿠오카로 예약을 한거죠)
제 값 다 주고 오이타 공항으로 갔습니다.
아들네 있으면서도 사건은 있었습니다.
혼자 맛있는걸 먹겠다고 오이타역 근처에 갔다가
아들집에 돌아 가는 버스를 탔는데 어디서 내릴지 몰라 종점까지 간거죠. 그 즈음 제가 자꾸 잊는다고 아들한테 집주소를 적어 달라 해서 갖고 있어습니다.
버스 종점까지 가서 기사에게 아들 주소를 내밀었더니 자가용으로 데려다 주더군요.
사례도 받지 않구요
심하게 이쁜 손녀딸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접수를 하고 수술 하기 까지
모든 일들이 저를 위해 준비 된 것 같았습니다.
저보다 3살 어린 여동생은 중학교 장애아 보조교사인데 마침 방학이어서 저를 계속 케어해 줄 수 있었구요.
굉장히 어려운 수술이고 출혈이 심해 1박 2일 수술전 필요한 시술을 받고, 본 수술 받는 동안 8박 9일 입원하면서 병실 세 곳에 입원했는데
세 번 다 5인 병실의 창가자리 였습니다. 하늘 을 볼 수 있어 참 좋더군요.
KTX보다는 새마을을 타면서 오래 태워주고 저렴해서 좋다고 농담을 했는데 KTX는 비싸기도 하지만 차창밖 보는게 재미없어서 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유복자입니다.
100일 된 손녀딸을 두고는 제 간병을 하러 왔습니다.
제 나이 57.
평소 병원 다닐일이 없이 건강했고 늙어서라도 아들에게 간병을 받을일은 없을거라 장담했는데 말입니다.
아들 제가 말 안듣는다고 싸우기도 하고 서운한 일도 있었지만 같이 있었던 것도 참 좋았습니다.
저보다 3살 어린 여동생은 이혼하고 26살 아들, 대학 4년 딸 하나 있는데 딸아이에게 동생이 큰이모가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자기랑 같이 이모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네요.
그 동생은 아버지 위암걸려 누워 계실 때도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서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간병을 하고,
재혼한 동생의 조카애도 어렸을 때 동생이 키웠거든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제가 데리고 있었는데 (이번기회에 독립시키려구요)
그래서 저는 항상 동생에게 고맙고 미안했는데
이 나이의 파킨슨병에 걸린 언니를 돌보겠다니..
아휴 동생과 조카들.. 얼마나 심란했을지,, 생각만 해도 참.. 끔찍합니다.
주변 많은 사람들 제가 파킨슨에 걸린 줄 알고 많이 걱정하고 울게 만들어 놓고
저는 마냥 행복해 하면서 여기저기 이사람 저사람에게 큰 수술 받고 무사하니 보양 시켜달라 하고 있습니다. ㅎㅎ
다음주면 제가 좋아하는 아는 동생 제게 뭔가 해주고싶어 안달을 하는 원주 사는 동생에게 갈거구요
목포와 해남에 장흥, 강진에 아는 사람들이 제게 보양식을 먹이고 싶어한답니다. 설 지나서 남도 한바퀴 돌려구요.
종양은 깨끗이 제거되었다고 합니다. 파킨슨증세는 없어졌습니다. 수술 후 테스트를 하는데 비행기, 소나무, 양파를 잠시후 다시 물어 볼테니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100에서 7을 빼면 얼마에요? 거기서 또 7을 빼세요...를 몇번 시키더군요. 그리고 아까 외우라 했던 세가지를 묻습니다. 교수님이 테스트를 한번 더 받아라. 무료로 해주겠다 해서 한번 더 테스트를 받았는데 첫번째는 21점, 두번째는 29점을 받았습니다.
또 대박인 건 병원비 5프로만 내는 중증환자로 등록되어 병원비가 10박 입원했고 엠알아이도 7. 8번 찍었는데 800만원도 안나왔답니다. 6시간 수술 했는데 수술비가 본인부담금 271,705원 지정 진료비 1,236,070 ㅎㅎㅎ
그리고 큰집에서 혼자 지내던 저는 제 집은 팔고 동생네와 합쳐 큰집으로 이사가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노후 준비하면서 연금 나올 때 까지는 집 팔아 놀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 인것도 무척 좋구요.
동생과 조카들과 아웅다웅하면서 같이 밥 차려 먹는 것도 무척이나 좋구요.
마구 수다 떨면서 밥 먹는 것도 참 좋더군요.
지금 조카딸램 친구들과 부산에 놀러갔는데
그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이기대 길과 부산어묵시장은 꼭 가봐라 훈수를 둘 수 있어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오래 안좋았던 올케와 화해도 했습니다.
병원으로 왔더군요.
이번일요일에 온 가족이 초밥 뷔페집에서 밥 먹기로 했는데 큰올케는 십 몇년 만에 함께 하는겁니다.
아! 그리고 제가 2남 3녀중 맏이인데 여동생들이 다 두리안을 잘 먹는 것도 무척 좋아요.
아버지일과 조카.. 동생에게 미뤄 놓고 저는 여행다니며 놀며 항상 미안했는데
앞으로 동생들이랑 조카들이랑 동남아 어딘가 가서
두리안, 망고스틴등 열대 과일 실컷 먹이면서 같이 여행하는 상상만 해도 무척 행복 합니다.
저 일본말 한마디 못 하면서 중학 입학한 조카 1, 고교 입학한 조카 2을 졸업 입학선물로 큐슈를 자유여행으로 데려 간적도 있었네요. 그 때 중학교 입학한 조카애가 지금 대학 4학년이 되어 파킨슨 걸린 이모를 돌보겠다는,
제 여행 스타일은 좋은 곳은 다른 계절에도 가고 여러 나라를 주마간산처럼 다니는 것보다 한곳을 구석구석 찾아 보는 것을 좋아 하거든요 태국 북부 치앙마이 치앙라이쪽에 한달쯤 머물며 주변을 둘러볼거구요
제주에 장기방 얻어 올레길 걸으며 빈둥 거리며 지낼 거구요.
저를 병원으로 가게 해준 언니들은 계절에 한 번씩 여행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놀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안놀아 줬다고 삐지셨더라구요.
내년에 환갑 여행으로 대만으로 가려구요.
꽃보다 할배 나온 것도 좋았지만 대만에서 살았던 친구에게 스케줄 짜달라해 가려구요.
오랜 시간 작성 했지만 전화번호 못찾아 애먹었던 사람이 {아이폰인데 전체가 아닌 그룹으로 되어있어 번호 못찾기도 했어요} 수술 한지 11일 만에 쓴 글로는 참 조리있게 썼죠?
병원에 들어 가면서 우울증 치료를 한 것인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무척 많더라구요.
여기저기 전화해서 "뚜껑 열었다, 병원에 누워있는데 보고 싶으니 문병와라"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와주셨습니다. ㅎㅎ
4, 50명은 다녀 갔나봐요 ㅎ
큰수술 받고 제가 소리내서 웃으며 제 모험담을 들려주니 수술이 잘못 된줄알고 더 걱정을 하더라구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들과 수다 떨어서 더 빨리 회복 된것 같습니다
제가 전국에 현지남을 만드는게 목표입니다
남도 쪽에 해남 강진 장흥 목포 대구 이천 원주에는 가가기만 하면 맛있는 음식 사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남도의 정서가 무척이나 좋아 한 때 해남을 한달에 두번씩 간적도 있었답니다. 들락거리면서 또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구요.
저에게 보양식을 사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설 지나면 맏겨 놓은 것 찾듯 얻어 먹으러 다니려구요.
좋아하는 사람들 줄 세워서 차례차례 얻어먹으러 다닐 생각을 하니 히히~ 무지 좋아요
그게 지금인거에요.
그러니
뇌수막종이 특별한 선물인 것 맞쥬?
첫댓글 쓰신 글을 보니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신 것 맞군요.
글을 참 잘 쓰셨습니다. (띄어쓰기 몇 군데 빼고).
세밀하게 기억을 떠올려 차분하게 써내려가면서 실감있게 묘사하여
독자가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병 나은 기쁨을 공감하기에 충분합니다.
회복하신 건강으로 행복하고 세상에 유익한 나날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증세가 행동이 굼떠지고
시력을 왜곡 시키더라구요
띄어쓰기 ㅋㅋ
원래 헷갈려했습니다 ㅎ
다행이시네요 신림동 양꼬치집과 맥주집이 엇그제 같은데 3년정도 지난거 같네요 ㅎ 잘 지내시구요 강진 장흥 갈때 같이가요 ㅎ 저는 운남성 따리에 있고 2.20일즘 한국 들어갑니다
인간 승리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병마에서 벗어나신 것을 축하드리며, 더욱더 건강하시길 빕니다.
축하합니다!
늘 행운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요..
인간승리 입니다.
인간승리네요
축하합니다. 인간승리군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