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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왕의 옥좌, 이 홀 笏을 쥔 섬, 이 장엄한 땅……. 이 축복받은 장소, 이 땅, 이 왕국, 이 잉글랜드.”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2세』에 나오는 구절이다. 홀은 왕권의 상징으로 왕이 휴대하는 지팡이를 말한다. 북대서양 한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섬나라 영국을 작가는 이처럼 장엄하게 표현했다. (…)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 영국은 침략의 말발굽에 짓밟힌 적이 없었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도 이 자그마한 섬을 정복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 「프롤로그 - 영국이라는 숲을 걸어보자」 중에서
연구팀은 브리튼 섬 각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DNA 샘플 2,574개를 수집했다. 그 뒤 이 샘플을 노르웨이와 독일, 프랑스, 러시아,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터키 등 유럽 대륙의 다른 10개국의 DNA 샘플과 비교해 유사성을 검토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23쌍의 염색체가 있는데 그중 (…) 남성에게만 있는 성염색체가 Y염색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는데, 유럽 대륙에 거주하는 1억1천만 명이 넘는 남성이 보유한 독특한 Y 염색체가 현재 터키인의 것과 거의 일치했다. 현재 영국인의 먼 옛날 조상이 터키인이라는 말이다.
--- 「영국과 터키가 친척이라고?」 중에서
남편이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죽고 딸마저 눈앞에서 능욕을 당하자 그는 주변의 부족을 규합해 로마군에 대항했다. 콜체스터 인근 최후의 격렬한 전투에서 보아디케아는 항복 대신 자결을 택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운 정예 로마군 앞에서 켈트족의 저항정신을 보여준 영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 보아디케아, 즉 부디카는 켈트어로 ‘승리Victory’라는 뜻이다. 부디카는 영국의 전성기를 통치한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외세로부터 영국을 지킨 여성 영웅’의 이미지로 재소환됐다. 의사당 앞의 동상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졌고, 여왕이 사망한 다음 해에 그 자리에 세워졌다.
---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을 남긴 로마의 브리튼 지배」 중에서
전투 8일째 되던 날 강한 편서풍이 불자 드레이크 사령관은 낡은 상선에 화약을 싣고 스페인 대형 군함에 가까이가게 했고 멀리서 이 군함에 실려 있는 화약에 불화살을 쏘았다. 이 화공 작전으로 스페인 함대의 진형은 와해되었고, 이날에만 5척의 군함을 잃었다. 스페인 함대는 아일랜드 쪽으로 돌아서 두 달 만에 가까스로 귀환할 수 있었다. 43척의 배를 잃고 병사의 절반이 전사한 뼈아픈 회군이었다.
--- 「해적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다」 중에서
1702년에 즉위한 앤 여왕은 즉위 전까지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모두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의회는 여왕의 자식이 왕위를 잇기 어렵다고 판단해, 즉위 한 해 전인 1701년에 왕위계승법을 제정했다. 가톨릭 신자는 왕이 될 수 없고, 의회의 동의 없이 나라를 떠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앤 여왕 사후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인 제임스 3세의 계승을 막기 위한 법이었다.
--- 「독일 하노버 왕조와 최초의 정경유착 스캔들」 중에서
대학살 후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1821년 일간지 『맨체스터 가디언The Manchester Guardian』이 창간되었다. 이 일간지는 1959년 『가디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도 진보지로 계속해서 발간된다. 2019년 맨체스터 시는 대학살 200주년을 앞두고 기념물을 제막했다.
--- 「‘19세기를 규정짓는 피털루대학살」 중에서
“모든 국가들의 위대한 산업 전시회를 열자”는 여왕의 남편 알버트 공의 아이디어에서 이 박람회 개최가 준비되었다. 당시 수정궁 건설에 소요된 총 공사비는 2백만 파운드. 2019년 말 가치로 환산하면 2억8천만 파운드(약 4,400억 원) 정도다. 수정궁은 길이가 564미터였고 내부 높이는 39미터였다. 현대 규모로 봐도 꽤 크다. “영국 역사상 가장 성대하고, 아름다우며 영예로운 날이었다.” 여왕은 전시회 폐막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영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 「런던 세계박람회와 산업혁명의 절정」 중에서
“9명의 왕들이 말을 탄 채 에드워드 7세의 운구행렬을 뒤따라갔던 1910년의 5월 침은 너무나 화려했다.” 그리고 이는 “구세계의 태양이 다시는 보지 못할 화려한 빛 속에서 지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를 심층 분석한 역사책 『8월의 총성 The Guns of August』은 글의 첫머리를 위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그 뒤 4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서로 총부리를 겨눌 유럽 주요 국가의 왕과 지도자들이 그날에는 분쟁도 뒤로한 채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장례식에 참석했던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지원을 등에 업고 7월말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 편에 섰고, 독일은 세르비아와 러시아, 프랑스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 「유럽 강대국들의 첫 번째 ‘내전’ 제1차 세계대전」 중에서
케인즈의 마지막 문단을 보면 왜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의 연설에 열광했는지 짐작이 간다. 파리강화회의가 만들어낸 베르사유체제는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무너졌다.
프랑스가 요구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느라 독일은 돈을 마구 찍어냈다. 독일 최초의 민주주의 실험이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은 1923년부터 수십만 퍼센트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다. 수도 베를린에서 빵 한 조각을 사는 데 천억 마르크가 들었다. 1년 전 가격은 160마르크였다. 히틀러의 나치는 이런 혼란 속에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가 내세운 복수와 희망의 메시지에 독일인들은 열광했다.
--- 「2차 ‘내전’을 가져온 베르사유체제」 중에서
2016년 국민투표 당시 영국에는 폴란드인 80만 명, 루마니아인 50만 명 등 3백만 명 정도의 EU 시민들이 거주했다. 이들은 동기부여가 높아 영국인보다 취업률이 높았고 받은 복지혜택보다 3배 정도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지지한 정치인들은 이들이 복지를 앗아간다며 EU를 탈퇴해야 한다고 정체성을 우선했다. 경제위기의 와중에 취약층의 복지를 삭감한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외부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영국 사회가 연령, 계층, 지역별로 극심하게 분열됐음을 드러냈다. 65세 이상은 3분의 2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반면 20대는 같은 비율이 EU 잔류를 지지했다.
--- 「경제적 이익을 압도한 정체성의 정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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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사진과 도표, 지도와 그림
★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향연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의 뒤를 이은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이야기
카이사르부터 브렉시트·코로나19까지…
영국사를 알면 세계사가 보인다!
2020년 1월 31일,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영국의 독립’을 축하하고 있었다. 영국은 무려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타국에 점령된 적이 없고, 지난 백여 년간 수없이 많은 나라를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었던 나라다. 오랜 라이벌인 프랑스조차 나폴레옹전쟁 이후에는 멀찌감치 따돌렸고,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다. 그런 영국에게 새삼 독립이라 할 만한 사건이 있었을까? 그것은 브렉시트Brexit, 즉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였다. 그런데 왜 영국은 탈퇴를 독립이라고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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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유난히 공을 들였다. 그러나 3수 끝에 이룬 통합 이후에도 유럽에 대한 영국의 소속감은 유달리 낮았고, 급기야는 탈퇴로 결론이 났다. 영국은 유럽의 역사에 끊임없이 관련해왔지만 정작 유럽과는 선을 긋는 일이 많다. 왜 영국인은 유럽과의 차별성을 유달리 강조하려 들까? 이를 알기 위해 저자는 우리가 영국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왕조의 부침은 겪었을지언정 천 년이 넘도록 타국에 점령당하지 않은 본토에 대한 자긍심과, 전 세계를 아우르던 대영제국의 찬란함이 이들에게 민족이 아닌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다. 나폴레옹전쟁에 이은 양차대전의 승리는 영국인에게 승자의 자부심과 함께 다가올 백 년도 영국의 세기가 될 거라는 희망을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럽통합에 마지못해 뒤늦게 합류했고, 그 뒤에는 브렉시트라는 모순된 결론을 냈다. 최근 백 년만이 아니라 비슷한 일이 영국에서는 그 전,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해서 일어났다.
https://youtu.be/FVW0AfWfCRY
책은 카이사르의 브리튼 침공부터 브렉시트와 코로나19가 등장하는 오늘날까지 영국의 역사를 다룬다. 영국인에게 세계사는 곧 영국의 역사다. 영국인의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했다. 카이사르의 브리튼 섬 원정 이후 역사시대에 들어선 뒤부터, 영국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이고,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유럽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였다. 그 역사는 때론 세계를 긍정적인 면으로 물들였고, 때로는 세계를 어두움 속에 밀어 넣기도 했다.
하지만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는 이런 다양한 면을 보여주려 한다. 역사의 밝은 면과 함께 그 밝은 면이 만들어낸 어두운 부분 또한 동시에 조명하려 했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교과서식의 단순한 나열 대신 사람의 행위와 감정, 동기에 천착했다. 사람이 사건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와 이야기가 모여 영국의 역사, 아니 전 세계의 역사라는 큰 흐름을 관망한다.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와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반향을 책 속에 담아내려 했다. 아서 왕의 전설은 그를 흠모하여 아들의 이름을 아서라 지은 헨리 7세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아서의 갑작스런 사망은 영국 국교회 분리의 발단으로 이어진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두고 프랑스와 두 번의 ‘백년전쟁’(15세기와 18세기)을 벌였고, 세계대전은 유럽연합으로 이어지며, 전후 정치의 변동은 경제를 주인공으로 하여 다시 브렉시트의 오늘까지 이어진다. 페이지를 채운 사진과 도표, 상세한 지도와 그림들이 이야기로의 몰입을 돕고,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게 한다. 10여 년간의 기자생활을 거쳐 영국유학을 마치고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의 내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유럽통합과 브렉시트
최선과 최악이 교차하는 모순된 나라 영국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영국의 역사에는 유독 최초가 많다. 그 최초는 영국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쪽으로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는 최후의 군주제 국가이기도 했고, 산업혁명의 선두는 동시에 제국주의의 제1선이기도 했다. 자유무역을 퍼뜨린 영국은 역설적으로 보호무역에도 열정적이었다.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복지제도의 선구자이면서, 대처주의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다. 세계의 시간이 시작되고 끝나는 나라 영국은 세상의 최선과 최악이 교차하는 모순된 나라이기도 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일주하면 전 세계의 모든 최선과 최악을 골고루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영국의 접점을 단숨에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세계열강들의 탐욕스런 시선을 모았던 개화기 때조차 영국은 거문도사건이라는 소소한 흔적 하나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망명한 주영 북한 대사를 떠올릴 수도 있고,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이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중 하나라는 사실까지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영국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5만6천 명을 파견했고, 5천 명 가까운 병력이 전사하거나 사로잡혔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가 곧 영국사라는 말처럼, 근대 이후부터 극히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에 미친 영국의 영향을 부정하기란 불가능하다. 러시아와의 대게임Great Game이 거문도사건을 만들었고, 아편전쟁은 우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일본은 영일 협정을 자국의 위상과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력의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1,2차 세계대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전후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쟁 이후의 현대에조차 영국의 영향은 적지 않다. 영국이 시작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대립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 복지제도 형성에 영향을 주었던 영국의 복지제도는 역시 영국에서 시작된 대처리즘에 의해 수시로 공격받고 있다. 대한민국에게 영국은 미국과는 또 다른 선진국, 성장과 진보의 기준이 되는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 브렉시트와 그 이후 코로나19의 대응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에 대한 환상과 유럽 그리고 영국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 세계사의 주류이자 표준인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이상적인 모습에서 시선을 돌려 이제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 주목해야 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해도가 없는 바닷길을 간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 영국이 지금 머문 곳은 코로나19라는 암초지대다. “브리타니아 여신이여! 파도를 지배하라!” 18세기부터 널리 불렸던 『룰 브리타니아』처럼 영국은 역경을 헤치며 항해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민족이 아닌 국민으로 뭉친 영국인, 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 속에서 우리가 갈 길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의 700년 전 유럽 전역을 강타한 흑사병이 중세 봉건제 붕괴를 촉진한 한 원인이 되었듯이, 우리도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걱정 반, 기대 반을 한다. 세계가 고립된, 포퓰리스트적인 민족주의로 갈지, 아니면 열린,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로 갈지, 우리의 정책적 선택과 의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_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