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보고 놀란 가슴
허봉조
딩동. 볕 좋은 휴일 오후, 가까운 지인과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참새처럼 가볍고 경쾌한 문자가 날아왔다.
보낸 사람이 ‘물망초’였다. ‘휴대폰을 바꿨는데, 단체 대화방에서 이름이 사라졌으니 다시 초대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망초, 청보라 색깔의 동글동글한 꽃송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애절한 꽃말을 가졌는데, 나의 기억 속에는 도무지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휴대폰의 연락처에도 그런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르는 이름을 초대해달라는 내용이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간혹 사회관계망을 통해 낯설고 생소한 이름으로 친구 요청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프로필 등의 내용을 검색 후 수락이나 거절을 한다. 몇 년 전, 이름과 사진만 보고 무심코 수락을 눌렀다가 ‘영국인 건설업자’라는 사기꾼과 채팅을 하게 된 적이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요즘은 이런 방법으로도 스미싱(smishing,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휴대전화 해킹)을 하나? 싶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대화 내용을 삭제하고, ‘수신 차단’ 버튼까지 꾹 눌렀다. 그러고는 세차게 훑고 지나간 한 줄기 회오리바람처럼 시원하게 잊어버렸다.
며칠 후 여고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다. 우리는 ‘무소식이 희소식’일 정도로 미리 정해진 날짜 외에는 따로 연락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편이다. 엊그제 만났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살짝 고조된 친구의 목소리는 ‘단체 대화방에 초대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 다시 연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추가로 보낸 문자가 발송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자 발송이 안 되다니… 모든 연락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 폰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지인이 가만히 귓속말을 들려주었다. 일전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아차,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대화 내용을 삭제하고 수신 차단을 했었지. 그러니, 친구가 문자를 보내도 발송이 되지 않을 수밖에. 미안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수신 차단’까지 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친구의 본명을 찾아 서둘러 대화방에 초대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거론하기도 싫은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불과 서너 달 전이었다.
“엄마, 휴대폰을 잃어버렸어”라는 너무나 통상적인 사기성 문자를 받고, 당황한 지인이 무엇에 홀린 듯 거래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것으로부터 피해가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린 지인이, 다음 날 아침 경찰서로 달려갔다. 하지만 휴대폰은 이미 통화 정지가 된 상태였다. 스팸 신고를 접수한 통신사의 조치였다.
범죄자 일당은 그들이 깔아놓은 악성파일을 통해 지인의 휴대폰을 원격조종하면서 마치 자기 것인 양 주물렀다.
지인의 번호로 스미싱을 유도하는 문자를 무작위로 발송시켜 문자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스팸으로 신고가 되고, 지인은 졸지에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입장이 바뀌는 수모도 겪었다. 그들은 휴대폰의 앨범에 저장된 신분증을 도용해 대포폰을 개설하고, 지인의 계좌로 소액 물품 대금 결제도 서슴지 않았다.
짧은 기간, 지인은 두 번이나 휴대폰 번호를 바꿨으나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은행 계좌를 해지하거나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은 물론 신분증을 재발급받는 등 시간적·경제적 피해도 이어졌다. 결국 기기와 번호를 모두 바꿔야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경찰관서에서 돌아온 답은 “상대방을 특정하기 어려워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한다”라는 짤막한 내용이 전부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도 ‘우체국 택배기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신용카드가 발급되었다는,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뻔한 수법이었다. 경계의 끈을 느슨하게 했더라면 나도 그들의 마수에 걸려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튼수작하지 마라’며 코웃음을 칠 수 있었던 것은, 지인의 피해 상황을 나의 일처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달 후 친구를 만나면, 그날의 해프닝에 대해 이실직고하고 손뼉을 치며 크게 한바탕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인이 당한 피해에 놀란 가슴이, 비슷한 사태를 우려해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노라’고 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은, 어떤 일에 크게 놀라고 나면 그와 비슷한 것만 봐도 겁이 난다는 뜻이다. 잘 활용하면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생활의 지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비유의 당사자가 된 친구에게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으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겪지 말아야 했을 일로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공유하게 해준 지인에게는 위로와 감사의 말을, 원치 않게 솥뚜껑의 비유가 돼준 친구에게는 사과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는 묘안을 강구해 봐야겠다. 더불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미력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