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발상의 원리
손병흥
시적 발상(發想)의 원리란, 평범한 현실이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시적 언어와 상상력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입니다. 시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새롭게 발견하는 예술입니다.
1. 관찰(觀察)의 원리
모든 시는 '본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같은 들꽃이라도, 식물학자는 식물의 이름을 보고, 화가는 색채를 보며, 시인은 삶을 봅니다.
예를 들어, 민들레를 보면 일반인은, "노란 꽃이 피었네." 라고 생각하지만, 시인은,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의 의지" 를 발견합니다. 즉, 평범한 사물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이, 첫 번째 발상입니다.
2. 발견(發見)의 원리
시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하는 예술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시는 존재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이라고 했습니다.
가령 비가 오는 풍경도, 평범하게 보면, 비가 온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이 오래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라고 발견합니다. 발상은 사물의 본질을, 새롭게 보는 힘입니다.
3. 연상(聯想)의 원리
연상이란,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이나, 감정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예)
낙엽
↓
가을
↓
이별
↓
인생의 황혼
이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습니다.
좋은 시인은, 끊임없이 연상을 이어갑니다. 예를 들면
강물
↓
세월
↓
흐르는 시간
↓
돌아오지 않는 청춘
이러한 연상은, 시의 깊이를 만들어 줍니다.
4. 상상(想像)의 원리
상상은 현실을 뛰어넘는 힘입니다.
사실을 그대로 쓰면 산문이지만, 상상이 더해지면 시가 됩니다.
예)
달이 떴다.
↓
달이 밤하늘에 외로운 등불 하나 걸어 놓았다.
↓
달이 그리운 사람의 창문을 두드린다.
현실은 하나지만, 상상은 무한합니다.
5. 비유(比喩)의 원리
시는 비교의 예술입니다.
대표적인 방법은
- 직유
- 은유
- 의인
- 상징입니다.
예)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숲의 피아니스트" 라고 말하면, 눈앞에 음악이 들립니다. 비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힘입니다.
6. 감정 이입(感情移入)의 원리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사물에 옮겨 놓습니다.
예)
꽃이 슬픈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슬프기 때문에, 꽃도 슬퍼 보입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도 별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을 노래합니다.
7. 역발상(逆發想)의 원리
좋은 시는, 남들이 보는 방향과 반대로 바라봅니다.
예)
겨울
↓
춥다.
↓
시인은, "봄을 준비하는 계절" 이라고 말합니다. 낙엽도 죽음이 아니라, 새싹을 위한 희생으로 바라봅니다.
이처럼 반대의 시선은, 새로운 시를 탄생시킵니다.
8. 상징(象徵)의 원리
사물을 통해. 더 큰 의미를 표현합니다.
예)
길
→ 인생
새
→ 자유
바다
→ 생명
촛불
→ 희망
산
→ 인내
나무
→ 삶
씨앗
→ 가능성
상징은 짧은 언어로. 깊은 의미를 담아냅니다.
9. 여백의 원리
시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완성하도록 남겨 둡니다.
예)
"그는 떠났다." 보다는, "빈 의자 하나 남았다." 가,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여백은 독자의 상상력을, 깨우는 공간입니다.
10. 삶과 체험의 원리
좋은 시는, 책상에서만 탄생하지 않습니다. 직접 살아낸 경험이, 시의 뿌리가 됩니다.
- 여행
- 노동
- 이별
- 사랑
- 실패
- 자연
- 침묵
- 기도
이러한 삶이, 시를 깊게 만듭니다. 법정 스님은,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 또한, 삶이라는 자연 속에서 자랍니다.
시적 발상을 키우는 실제 훈련법
- 하루에 하나의 사물을 10분 이상 바라보기
- 같은 사물에 대해 다섯 가지 이상의 비유 만들기
- 하나의 단어에서 열 개 이상의 연상어 적어 보기
- 자연 속에서 오감을 활용해 메모하기
- 사진 한 장을 보고 시 한 편 쓰기
- 좋은 시를 필사하며 이미지와 리듬 익히기
- 일기 대신 '시적 메모'를 작성하기
- "만약 ○○가 말을 한다면?"처럼, 의인화하여 상상하기
- 하나의 장면을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다르게 표현해 보기
- 창작 후 소리 내어 읽으며, 불필요한 표현을 덜어내기
참고도서
오세영, 『시론』
정끝별, 『시론』
김준오, 『시론』
이숭원, 『시 창작 강의』
김용직, 『문학개론』
박몽구, 『문예창작강의』
손병흥,『 문예창작 징검다리』
손병흥,『 문학아카데미 시 수필 창작강좌 』
노스럽 프라이(Northrop Frye), 『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cism)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
아리스토텔레스, 『시학』(Poetics)
맺음말
시적 발상은 특별한 재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말한 '낯설게 하기(остранение)'처럼, 익숙한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시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여기에 관찰, 연상, 상상, 비유, 상징, 여백, 그리고 삶의 체험이 더해질 때, 한 편의 시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래 살아남는 작품이 됩니다.
문예창작을 오래 공부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 좋은 시를 매일 한 편씩 필사하기
- 일상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시적 메모'로 기록하기
- 한 편의 시를 여러 번 고쳐 쓰며 퇴고의 힘을 기르기
- 고전과 현대시를 함께 읽어 표현의 폭을 넓히기
- 자연과 사람을 꾸준히 관찰하며 오감을 단련하기
끝으로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하는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좋은 시는 세상을 먼저 움직이려 하기보다, 먼저 시인 자신의 내면을 깊이 울릴 때, 독자의 마음에도 오래 머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