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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시선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그리고 그 시절의 그는 방황과 좀도둑질과 거짓말로 얼룩진 인생의 한페이지를 살고 있었다. 12살 되던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밤에도 그는 새벽2시까지 카드놀이를 하였고 그 다음날에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고 놀았다 어머니의 죽음조차도 그의 생활을 변화시키진 못하였다. 스무살 되던 해 그는 할례대학의 신학생이 되었고 교회에서 설교할수 있는 허가도 받았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뮬러를 그냥 버려두시지 않았다. 그해 11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그는 친구의 인도로 어느 가정집의 기도모임에 참석, 감동을 받은 후 예전의 나쁜 습관들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되었고, 성경읽기와 기도 에 힘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선교사들의 소식지를 통해 유대인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서 그는 영국에 있는 대륙 협회의 교육을 받기 위해 런던에 오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온 영국에서 이전에 앓던 병이 재발, 건강이 매우 악화 되었다. 그러나 육신의 약해짐 속에서 영적으로 는 거듭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병에서 회복되는 동안 그는 성경을 공부할수 있는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적인 것에 대한 유일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성경에 관한 서적을 읽기보다는 성경만을 더욱 열심히 읽게 되었다. 대륙협회의 선교사 파송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협회의 재정지원으로 런던의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이 주님 이외의 어떤 다른 사람에게서 통제와 지시를 받는 것이 점차 비성경적으로 여겨져 협회와의 관계를 끊게 되었고 주님의 열어주시는 사역지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수 있게 되었다. 처음 그는 테인 모우스라는 곳에서 목회할동울 시작했는데 교회 좌석료를 월급으로 받는 것에(그당시는 일반적인 상황이었음)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가난한 형제들이 부자들과 같이 좋은 좌석에 앉아 예배를 드릴 형편이 안되었고 헌금을 강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목회자는 월급을 지급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거슬리게 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하게 될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이 자진해서 내는 익명의 헌금을 빋음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는 날마다 생활의 필요를 주님께 구했고 주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던 것이다. 이후 브리스톨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크레일 형제의 요청으로 뮬러는 브리스톨로 이주, 베데스타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브리스톨과 외국에 복음을 전파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경연구회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그 당시 다른 종교단체들은 일정한 기부금만 내면 그사람의 종교나 생활과는 관계없이 그 단체의 회원이 될수 있었는데 뮬러에게는 이것이 비성경적이라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하며 영적인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후원자로 하는 성경연구회를 설립하기로 하였는데 이 성경연구회의 목적은 1.성경에 따라 가르치는 주일학교, 성인학교를 원조하고 2. 성경을 배부하고 3. 성경에 따라 선교 사역을 하는 선교사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또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며 고아원 사역을 했던 프랑케의 생애를 읽고 크게 감동받아 고아원 사역을 할수 있도록 간구하던 중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 81:10)는 말씀에 힘입어 그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 고아원 사역을 통해 그 자신이 주님께 더 가까이 갈수 있기를 바랐으며,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며, 자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기꺼이 그리고 넉넉히 도우시는 분임을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했다. 그는 그당시 그리스도인이 노후에 대해 염려함으로써 괴로와하는 것과 불신자와 같은 방법으로 사업을 하여 양심이 어두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던 것이다. 그는 성경연구와 고아원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물질적 필요와 개인적 삶의 필요를 단지 하나님 한분께 아뢰고 응답 받음으로써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분”임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뮬러는 이러한 그의 믿음과 기도로 63년 동안 750 만달러(한화로 약 30억원)이상을 주님의 일에 쓸수 있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그가 처음 고아원 사역을 시작할 때 준비된 것이라곤 선물받은 접시 3개, 쟁반 스물여덟게, 물병하나 , 컵 한 개 ,소금병 받침 세개, 칼 네개와 포크 네개, 채소를 깍는 강판 한 개뿐이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어린아이 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간구했으며 참으로 주님의 청빈한 청지기로써 모든 것을 필요에 따라 하늘 창고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설립한 성경연구회와 관련된 학교를 거친 학생들 중에 수만명이 구원을 받았으며, 63년동안 거의 세계 전역에 걸쳐 지역 언어로 수백만 권의 성경을 배포, 하나님을 모르던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왔다. 그리고 고아원을 거쳐간 많은 영혼들 또한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또 만년에 그는 젊었을 때 가졌던 선교사로서의 열망이 이루어졌는데 각 지역을 방문하여 그의 사역과 주님의 증거를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내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참으로 그는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분” 이라는 말씀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기도의 사람 뮬러가 얻은 신앙의 승리가 너무나 위대했기에 ‘뮬러가 언제 사련을 겪을 때가 있었나’ 하고 반문하기 쉽다. 또 그가 받은 응답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오만번 이상이라고 함) 그 응답이 하나님께로부터 즉각적으로 오지 않아서 언제 실망할 때가 있나 하고 생가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믿음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 지난세월동안 조금씩 신장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증하고 있다. ‘여러 번 내가 근심걱정으로 내 정신이 아니게 되었을 뻔한 경우에도 나의 영혼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를 믿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평온할수 있었다.’ 또 뮬러의 영적 평강의 삶뒤에는 내적인 투쟁의 시간들이 있었는데 물러는 규칙적으로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함으로써 평강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는 거듭난 후에 점차로 자신의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얻고 경고와 꾸짖음을 듣기 위해 그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게 되는데 자신을 바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세상의 유혹과 자만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이 기도의 시간은 뮬러 자신의 영혼을 적나라하게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고백의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뮬러는 기도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수 있었다. 그는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바르게 기도하는것도 얼마동안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끝까지 기도를 계속할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대 부분의 경우 우리는 축복을 받을 때 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축복을 쉬지 안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늘도 그 자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신 12:20
어떤 발이 복된 발입니까?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우리 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제11회 올림픽 경기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낸 마라톤 경기는 다음과 같은 유래에서 생겨났습니다. 주전 490년경, 페르샤(Persia)의 다리오 왕이 많은 군대를 보내 그리스의 아테네(Athene)를 침략해 왔을 때, 그리스의 명장 미르티 아데스가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군대를 거느리고 이를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대전투의 장소가 아테네의 동쪽에 있는 마라톤(Marathon)이란 곳입니다. 이때 승전의 기쁜 소식을 빨리 시민에게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라는 병사가 약 40km나 되는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서 '우리는 이겼노라'고 외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승전했던 장소의 이름을 따서 마라톤 경기라고 하며 그 거리를 약 40km로 정한 것입니다.
아테네 군대의 승전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100리 길을 단숨에 달려가 전해 준 페이디피데스 병사의 발이 당시 아테네 시민들에게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발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이보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발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이 말하는 복된 발이란 어떤 발을 말할까요?
롬 10:13-15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진리의 발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발입니다. 저는 언젠가 일본 경도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서, 1945년도에 원자탄을 맞아 쑥밭이 되었던 히로시마에 신간선을 타고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비참했던 모습을 사진과 실물로 전시하여 보여 주는데, 빌딩들은 콩가루처럼 부서져 내렸고 철근들은 엿물처럼 녹아내렸고 사람들은 잿덩어리가 되어 떼죽음을 당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광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철로가 엿가락처럼 휘어내렸고 멀리서 원자탄의 폭풍을 맞은 사람들은 머리칼과 옷이다 타고 피부의 껍질이 훌렁훌렁 벗겨졌는데도 목숨은 붙어서 피가 흘러 내리는 채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장사진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장면을 실물처럼 만들어 놓기도 하고 당시의 정경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기도 하였는데 참으로 끔찍해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 그 원자탄을 투하하기 몇달 전부터 여러 차례나 그것을 경고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말로 알아보기 쉽게 경고문을 살포했는데 신문지만한 것도 있고 반절지만한 것도 있고 책장만한 것도 있고 작은 쪽지만한 것도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설명하고 몇월, 몇일, 몇시에 떨어뜨린다고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마 그런 폭탄이 이 세상에 있을라구'하고 생각하면서 믿지 않고 피하지 않았다가 그런 끔찍한 변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구원받지 않으면 원자탄보다 수 만배 아니 수 억배 고통스러운 지옥의 형벌을 당한다고 전하는데도, 사람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코웃음이나 치며 '정말 지옥 이라는 데가 있을라구'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믿지를 않습니다.
일본은 돈 많이 벌고 잘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온 나라의 구석 구석까지 음란한 것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처처에 도박장이 즐비하고 경찰도 검찰도 정부도 손 못대는 깡패들이 세도를 부리는 등, 참으로 몸서리치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천리를 달려가며 보아도 교회의 십자가는 한 두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귀신을 섬기는데 800만개나 되는 귀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들 일본 사람들이 회개치 않으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의 심판보다 몇 천배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디 일본 뿐이겠습니까? 원자탄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히 9:27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구원받고 영원히 천국의 복락을 누릴 것이요, 전도하는 말을 헛되이 농담으로 들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유황불 못에 던지워져서 영원히 죽지도 않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발은 멸망해 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며 전도하는 자의 발입니다. 전도자의 발은 올림픽에서 금메달로 우리 나라에 영광을 안겨준 손기정 선수의 발이나 차범근 선수의 발보다 몇 천배 귀하고 복된 발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는 우리가 전도하지 않음으로 인해 원자탄보다 더 무서운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잠 24:11,12에 보면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 대로 보응하시리라"고 엄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발이 없어서 멸망해 가는 영혼이 그 얼마인지 모릅니다. '가라, 그렇지 않으면 보내라'(Go, or send!)라는 말대로 내가 전도하거나 아니면 전도자를 보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위로부터 들려오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어서 어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고 호소하는 뭇 영혼들의 간절한 소리와 지옥에 떨어져서 '나는 어차피 이곳에 왔지만 내 형제 자매에게 전도하여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절박한 부탁의 소리를 듣고, 빨리 빨리 복음을 전하고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전도하는 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 이보다 더 귀하고 복된 발은 없습니다.
전 5:1에 보면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 합니다. 곧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말씀을 듣는 자의 발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가까이 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의 발은 복된 발입니다.
또한 사 58:13,14에서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들어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발을 삼가서 안식일에, 주일에 사사로운 길로 가지 않고, 오락을 구하여 가지도 않고, 성일을 존귀히 여겨 성전으로 나아오는 자의 발이 복된 발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지금까지 사람을 타락시키고 멸망시킨 공작 가운데 가장 크게 성공한 것 중의 하나가 주일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발을 붙잡아 맨 것이라고 어느 분이 말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발을 붙잡아 교회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대신 세속으로 향하게 합니다. 마귀는 예배 시간에 손님이 찾아오게 해서 교회에 못나가게 합니다. 바쁜 일,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교회에 못나가도록 우리의 발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이런 유혹과 시험을 걷어차고 교회로 나오는 자의 발은 복된 발입니다. 또 어떤 믿지 않는 남편은 '여보, 오늘만 내 말 듣고 교회에 안나가면 다음 주일부터 당신 따라 교회에 나갈께' 하고 유혹합니다. 이에 그럴듯 해서 주일을 범하면 그 다음 주일에는 '오늘, 나 다른 곳에 약속이 있는데 거기에 가야해' 하고 딴청을 부립니다. 그 말에 '오늘부터는 교회에 함께 가기로 하였으니 함께 출석하자'고 권하면 '지난 주일에는 내 말을 듣더니 오늘은 딴소리 하네'하고 적반하장격으로 나옵니다. 여러분의 발이 이러한 마귀의 간구한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레닌이 사람들을 교회에 못나가게 하고 노동자의 수익을 올리려고 크리스찬들과 달리 8일에 한번 쉬자고 한 결과, 오히려 30%나 작업의 능률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크리스찬들보다 노동자들을 더 많이 쉬게 한다고, 5일만 일하고 6일에 한번 쉬게 했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어 다시 7일에 한번 쉬게 했다고 합니다. 엿새동안 일하고 하루 쉬게 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이며 인간을 위해 복주시려고 정하신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개척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고 황금을 찾으려고 말과 수레를 타고 모여들었는데 더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해 그들은 주일도 없이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교도들만은 주일이 되면 그 날 하루를 온전히 휴식하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일도 없이 쉬지 않고 간 사람들은 말이 병나든지 사람이 병들든지 해서 제대로 가지 못했는데, 주일을 지키며 달려간 청교도들은 빨리 가고 먼저 가서 오히려 쉬지 않고 달렸던 이들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로 향하는 발은 복된 발입니다. 참으로 세상의 가르침이나 쾌락과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성전을 가까이 하는 발이 복됩니다.
다윗은 시편 첫 편에서, 복있는 사람을 말할 때 그 발로 악인의 죄를 좇아 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않는 사람이 복있 있다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악한 길에 들어서지 않고 죄악된 길로 가지 않는 그 발은 복된 발입니다. 시 119:101에 보면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발을 금하여 악한 길로 가지 않는 발이야말로 복된 발입니다. 렘 14:10에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않는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벌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내 버리라 두 발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발만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잠 5:3-5에 보면,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지마는 나중에는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롭기 때문에 음녀, 창녀의 뒤를 따라가는 자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한 잠 7:21,22을 보면 음녀의 꾀며 홀리는 말을 따라가는 청년의 발걸음은 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같고,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집에 가면서 하는 말이, 친구의 권면을 뿌리칠 수가 없어 따라가니 술은 안먹고 안주나 좀 먹고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꼭 한 잔만 한다는 것이, 일배 일배 또 일배하다가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투전은 다시 안 하겠다. 친구따라 투전판에 가서 개평이나 좀 얻어가지고 오겠다 하다가 집문서, 땅문서 다 잡히고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람은 안피우지만 심심해서 춤이나 좀 배운다고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죄를 따라가지도 않고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죄악에 빠졌다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도 복된 발걸음이지만 아예 죄악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발이 더욱 복된 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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