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23. 나무날. 날씨: 따사로운 봄날이다.
[잉글리쉬 카페와 숟가락 깎기]
풔엉 선생이 잉글리쉬 카페를 위해 맛있는 새참과 딸기 레몬 음료를 정성껏 채비해왔다. 물날(수)과 나무날(목), 아침 열기 전과 점심 시간에 여는 작은 카페가 점점 어린이들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아침에는 햇빛샘 찻집에서 1학년 은우와 산들이 풔엉 선생과 함께 딸기 음료를 준비한다. 재료를 섞고, 준비물을 챙기며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오간다. “strawberries, next, water, spoon, cup, stir”, “Let’s mix it together.” 같은 말들이 교과서가 아니라 손과 몸의 움직임 속에서 흘러나온다. 낮에는 숲속놀이터 평상으로 자리가 옮겨지고, 더 많은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음료를 만들고 나누며 영어를 사용한다. 이곳에서는 영어를 ‘배운다’기보다 ‘쓴다’. 틀릴까 걱정하기보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든 건네보려는 시도가 먼저다. 맛있는 딸기 음료와 새참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러운 동기가 되어, 영어는 부담이 아니라 놀이와 만남의 언어가 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고, 필요해서 말하고, 서로 도우며 표현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경험은 교실 안에서의 영어 수업과는 또 다른 깊이를 만든다. 언어는 삶 속에서 쓰일 때 가장 힘을 갖는다. 주문을 하고, 부탁을 하고, 함께 만들고 나누는 과정 속에서 어린이들은 영어를 하나의 살아 있는 도구로 익혀간다. 머리로 외운 문장이 아니라, 몸으로 겪은 상황 속에서 나온 말들은 오래 남고, 점점 자신감을 키운다. 풔엉 선생의 뜻대로, 잉글리쉬 카페는 ‘영어 수업’이 아니라 ‘영어를 즐기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맛있는 음료와 따뜻한 새참,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짧은 영어 한마디들이 모여, 어린이들의 언어를 조금씩 넓히고 있다. 자연스럽고 살아 있는 배움의 자리를 만들어준 풔엉 선생에게 마음 깊이 고맙다.
익숙한 나무날 흐름대로 아침열기 때 영어와 몸놀이로 농구를 하며 몸을 깨우고, 수학 시간에 저마다 속도로 익힘을 이어갔다. 낮 공부인 우리나라 알기 시간에는 먼저 책을 읽으며 문제를 냈다. 지난 시간에 읽고 고려시대 초기에 관한 문제를 공책에 적어놓았던 걸 저마다 발표하며 확인했다. 문제내기가 충분하지 않아 다시 책을 읽고 문제를 내서 발표했다. 어린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조건을 만들어내는 교사의 채비에 따라 문제 내기와 발표의 수준과 집중이 달라진다. 역사의 주요한 사실과 사건, 배경과 문화를 알아가는 방식으로 책 읽기과 문제 내기,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어린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방식은 일놀이, 견학과 체험이 같이 가야 한다. 팔만대장경과 직지심체요절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나무에 글자를 새겨보는 것과 함께 이번에는 마을 은행나무 가지치기때 주워온 나뭇가지로 숟가락 깎기를 더했다. 수공예(손끝활동)에 역사의 뜻을 넣어 역사 공부로 삼는 게다. 나무로 숟가락을 깎는 활동은 학교 교육에서 어떤 뜻을 지닐까. 나무 숟가락을 깎는 활동은 단순한 ‘체험’이나 ‘만들기’에 머물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배움을 삶과 연결하는 깊은 교육 의미를 지닌 활동이다. 몇 가지 결로 풀어보면 이렇다.
먼저, 손을 통한 이해다. 머리로만 배우던 고려시대의 기술과 생활이 손끝에서 되살아난다. 팔만대장경이나 목판 인쇄를 책으로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무를 다듬고 깎으며 “나무에 새긴다”는 행위의 감각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식을 ‘정보’에서 ‘경험’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시간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다. 숟가락 하나를 깎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고, 오랫동안 집중과 정성이 필요하다. 사실 한 달이 걸려 깍은 숟가락을 다이소에 가면 아주 싼 값에 공장에서 깎아낸 멋진 숟가락을 살 수 있다. 소비보다 땀 흘려 일해 만들어내는 기쁨을 담는 게 교육이다. 또한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옛사람들의 삶을 짐작하게 된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라는 물음은 곧 “옛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로 이어진다. 역사는 그렇게 살아 있는 질문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자기 속도와 몰입의 경험이다. 깎기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빠른 아이도, 더디지만 끝까지 해내는 아이도 있다. 정답이 없는 활동 속에서 어린이들은 견주지 않고 자기 리듬으로 배움을 이어간다. 자존감과 자기결정의 힘을 기르는 중요한 바탕이다.
네 번째는 쓸모 있는 배움, 삶으로 이어지는 배움이다. 완성된 숟가락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만든 도구로 밥을 먹는 경험은 배움이 삶으로 이어지는 강한 기쁨을 준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창칼로 숟가락 모양을 잡고, 조각도로 파내어 모래종이로 여러 차례 사포질해서 다시 완성해서, 수분을 모두 제거한 뒤 천연기름을 세 차례쯤 발라 완성된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기쁨은 직접 해본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다섯 번째는 역사와 현재를 잇는 상상력이다. 고려시대의 목판, 장인의 손길, 생활 도구들이 오늘의 교실에서 다시 살아난다. 어린이들은 과거를 ‘외워야 할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삶’으로 느끼게 된다. 역사는 그렇게 현재와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이 활동은 교육의 본래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느끼고 연결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숟가락 하나를 깎는 시간이, 한 단원의 역사 수업보다 더 오래 남는 배움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끝내 나무 숟가락 깎기는 손, 몸, 마음, 생각이 함께 움직이는 통합 배움, 삶과 이어진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이다.
칼과 조각도를 쓰는 손끝활동이라 안전에 주의를 주는 교사의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지만, 저마다 손을 놀리는 즐거움에 빠진 평화로운 순간이 행복하다.